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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00화 (100/300)

[100화] 찾았다. 사과 장수

“대단한데? 국물 맛을 보니 분명 푹 끓인 거 같은데, 아직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니. 이거 잠깐 사이에 몇 번을 놀라는 거야.”

곽마권은 숟가락으로 살을 듬뿍 퍼서 국물에 한 번 적셔 입안에 넣었다.

“음~”

그의 얼굴에 황홀감이 떠올랐다.

그 뒤로 잠깐 그의 기억이 날아갔다.

곽마권은 3일 굶은 개처럼 쏘가리 매운탕을 퍼먹었다.

냄비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은 그의 얼굴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허~ 내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맛있다니. 내가 이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언제 먹어 봤더라…….”

곽마권은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기억을 생각해 내려고 애를 썼다.

“맞아. 예전에 김 의원이 권력자들의 파티에 나를 소개해 준다고 데리고 간 자리에서 먹어봤지. 그 당시에는 음식 맛도 제대로 못 느낄 만큼 긴장해 있었는데, 메인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지. 분명 그때 먹은 거랑 같은 수준의 음식이야. 이건, 던전 식자재로 만든 것이 틀림없어.”

그는 자신이 발라 놓은 쏘가리의 뼈도 소중히 보였다.

‘저걸로 육수를 내면 또 얼마나 맛있을까? 이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무슨 사골도 아니고 버린 생선 뼈를 다시 먹을 생각을 하다니. …아니지? 던전 물고기가 얼마나 귀한데, 생선 뼈도 보물이야, 보물. 쏘가리 뼈가 우러나온 매운탕 국물이 얼마나 맛있었어? 그런 걸 버리다니 말도 안 돼. 이건 사골과 비교할 수도 없는 보물이야. 아예 뼈가 국물 속에 녹아내릴 때까지 고아서 먹어야 해.’

곽마권은 쏘가리 뼈를 모두 모아 소중히 봉지에 담았다.

그제야 그는 이 음식의 출처가 5팀장이란 것이 떠올랐다.

너무 맛있게 먹는 바람에 순간 잊은 것이었다.

그의 머리 위로 쏘가리와 던전 채소에 효능이 담긴 여러 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곽마권은 메시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음식을 먹고 좋아진 컨디션과 머리가 맑아진 듯한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비서를 호출했다.

“네, 길드장님.”

“지금 바로 5팀장을 불러.”

“알겠습니다.”

곽마권의 지시가 떨어진 지 30분도 되지 않아 5팀장이 숨을 몰아쉬며 길드장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길드장님.”

“그래. 다름이 아니라 오늘 음식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이야.”

5팀장은 길드장의 표정이 밝은 거로 봐서 자신의 의도가 잘 먹힌 듯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나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특히 미식가로 알려진 곽마권에게는 그 어떤 비싼 선물보다 오히려 쏘가리 매운탕을 먹고 느낀 감동이 더 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길드장님.”

“오늘 가져온 매운탕은 직접 만든 건가?”

곽마권은 설마 음식점에서 사 온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던전 재료로 전문적으로 하는 음식점을 열기에는 재료 수급이 너무 어려웠다.

웬만큼 힘 있는 인사가 뒤에 있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던전 재료의 수급이 가능할 만큼의 권력자가 돈 몇 푼 벌자고 음식점을 열 리가 없었다.

“매운탕 재료를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있을까?”

“그건 직접 만든 게 아니라 아내가 음식점에서 사 온 겁니다.”

“뭐? 이걸 음식점에서 사 왔다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있던 곽마권이 깜짝 놀라 스프링처럼 튕겨져 일어났다.

그의 찢긴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때까지 커졌다.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 같이 상체를 숙여 5팀장의 얼굴 앞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곽마권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놀란 5팀장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이걸 음식점에서 사 왔다고?”

“네. 저기… 음식에 이상이라도 있었나요? 제가 먹어 봤을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

5팀장은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곽마권은 5팀장이 기가 죽어 제대로 대답을 못 하는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아니, 5팀장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야. 이걸 나에게 가져온 건 매우 잘한 일이야. 이것에 대해서는 따라 포상이 나갈 거니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얘기해 봐.”

5팀장은 밝아진 얼굴로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두 전했다.

‘그런 허름한 동네에 던전 재료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다고? 그것도 두 시간이나 줄을 서서 사 왔다는 건, 던전 재료가 엄청나게 많다는 이야기잖아. 그것도 매일 영업하는 식당에서. 이게 가능한 이야기야? 그리고 가격이 이만 원? 이게 말이 돼? 이거, 옛날에 던전 사과 때랑 너무 비슷하잖아. 엄청난 수량이랑 말도 안 되게 싼 가격. 혹시 같은 놈 아닐까? 이런 짓을 할 만큼 정신 나간 놈이 두 놈이나 있진 않을 거 아냐. 일단 확인을 해 봐야겠지?’

생각을 마친 곽마권은 5팀장에게 당장 아내를 데리고 올 것을 지시했다.

똑똑똑!

누군가 길드장실 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곽마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크 소리를 듣자마자 말했다.

문이 열리고 5팀장과 그의 아내가 들어왔다.

“앉으세요.”

곽마권이 웃는 얼굴로 의자를 권했다.

“네, 길드장님.”

설거지를 하다 급하게 불려 나온 5팀장의 아내는 얼떨떨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너무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가져오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몇 가지 물어보려고 부른 겁니다. 그리고 저를 이렇게 신경 써 주신 거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5팀장에게 포상이 내려질 겁니다.”

포상이라는 말에 5팀장의 아내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제가 성심껏 답하겠습니다.”

5팀장의 아내가 갓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처럼 허리를 곧게 세웠다.

곽마권은 5팀장의 아내로부터 분식점의 이름과 위치, 젊은 사장이라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조금 전 생각했던 의혹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 사과를 사서 저한테 보낸 거 기억하시죠?”

“네, 그럼요.”

5팀장의 아내로서는 당연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냥 맛있어서 대접하려 보낸 사과로 인해 길드가 발칵 뒤집히지 않았는가.

그로 인해 자신도 남편에게 욕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기억하지 않으려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건이었다.

“혹시 그때 만난 사과 장수 얼굴이 기억납니까? 이번에 매운탕을 산 가게의 사장이랑 같은 인물이 아닌가요?”

5팀장의 아내가 곽마권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

곽마권은 마음이 급했지만, 참고 그녀의 대답을 진득하게 기다렸다.

“맞다! 어쩐지 어디서 본 거 같더라. 내가 진성 아이돌 팬 생활이 몇 년 차인데, 그런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잊을 리가 없지.”

그녀는 생각이 났는지 손바닥을 마주치며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에서 간질거리던 의문이 해결되자, 이 자리가 어떤 자린지 까먹고 엉뚱한 소리를 해 댔다.

“아얏!”

그런 푼수 같은 아내의 옆구리를 5팀장이 꼬집었다.

“당신, 왜 남의 살은 꼬집고 그래요. 아파욧!”

“이 여편네가 지금 길드장님 앞에서 무슨 짓이야?”

그제야 지금 누구 앞에 앉아 있는 건지 깨달은 5팀장의 아내가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게 분명 본 듯한 얼굴인데, 기억이 안 나서… 길드장님 얘기를 듣고 나니 기억이 났거든요. 맞아요. 그때랑 스타일이 많이 바뀌긴 했는데, 분명 그때 본 사과 장수가 맞는 거 같아요.”

곽마권의 얼굴이 더없이 환해졌다.

자신이 사과 장수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

그 덕에 길드가 망할 뻔도 하고, 자신 또한 다른 사람도 아닌 길드원들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뻔하지 않았는가.

그간의 고생을 보답받는 기분이 들자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역시 하늘은 내 편이었어. 노력하는 자를 배반하지 않는다니까. 화려한 제2의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되는 건가? 애증의 대상이던 사과 장수를 드디어 볼 수 있다니… 반가워 미쳐버리겠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놈인데, 벌써 정이 들었어. 내가 아주 제대로 귀여워해 주지. 꿈에서도 잊히지 않게 말이야, 흐흐흐.’

이 자리에 5팀장과 그의 아내가 없었더라면 분명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날로 곽마권은 일 잘하고 똑똑한 수하 몇을 골라 경일에게 24시간 감시를 붙였다.

경일에 관한 은밀한 조사도 같이 진행되었다.

마음이 급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실수는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

이번에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몇 겹의 촘촘한 그물을 쳤다.

어두운 그림자가 경일을 향해 스멀스멀 은밀하게 다가갔다.

* * *

스탄다비아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로 돌아선 뒤의 첫 공격에서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천이 넘는 고블린 대군과의 싸움이었는데, 아주 적은 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뿐이었다.

죽은 병사가 안타깝긴 했지만, 이들에겐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전투 중에 죽은 이는 가슴에 묻고 승리를 자축했다.

자포리자는 병사들이 입고 있는 플레이트 메일을 보며 경일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플레이트 메일에는 많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의 수만큼 병사들의 목숨을 건진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금보다 비싼 힐링 포션을 아끼지 않고 다친 병사들에게 풀었다.

병사들은 그 모습에 크게 기뻐했다.

자포리자에 대한 충성심이 골수까지 박혀 들었다.

그는 자신의 힘의 근간이자, 스탄다디아를 수호하는 든든한 병사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스탄다비아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선인의 이야기는 모두 알 것이다. 나는 전설의 선인을 직접 만났다!”

갑작스러운 자포리자의 말에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모두 조용히 하라. 영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나.”

칼튼이 병사들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자포리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미 많은 이들이 스탄다비아에 찾아온 축복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선인이 행한 일이다. 우리가 가장 배고플 때 음식을 주었고, 우리의 목숨이 위험할 때 강철을 주어 목숨을 지켜 주었다. 그대들이 들고 있는 무기와 갑옷, 모두 선인이 보내 준 것이다. 비누 또한 마찬가지. 우리를 가엽게 여겨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자포리자가 말을 끊고 일일이 병사들의 눈을 마주쳤다.

다들 긴장된 모습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것은 바로 스탄다비아의 발전이다. 선인은 아낌없이 베풀면서 오로지 스탄다비아의 발전만을 원하고 계신다. 우리는 단지 강해지고, 잘 먹고 잘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의 함성이 개활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몇몇 병사들은 감동으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사실 그들은 지금의 스탄다비아가 잘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앞에서는 몬스터가 흉측한 이빨을 내밀며 자신의 목을 뜯으려 하고 있었고, 뒤에서는 거머리 같은 알리사 영주 나바론이 그들의 등에 빨대를 꼽아 피를 빨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포리자는 식량을 영지민들에게 풀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먹어 본 적이 없는 천상의 맛이 느껴지는 식량을 아낌없이 풀었다.

그리고 불이 꺼진 대장간에서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24시간 꺼지지 않았다.

거기다 상상도 못 한 무기가 병사들의 손에 쥐어졌다.

매일 전우이자 친구가 몬스터의 이빨에 갈려 나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 그들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를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병사들에게 기존의 기사들이 쓰는 무기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무기를 쥐어 주자, 병사들의 죽어 있던 눈이 되살아났다.

어느새 성벽 위 몬스터와의 전투는 사냥이 되어 버렸다.

병사들은 자포리자가 찢어지게 가난한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영주와 다르게 자포리자는 검소했고, 하나라도 더 영지민에게 베풀려고 노력했다.

그런 영주에게서 강철이 나왔을 때, 다른 궁금해하고 있었다.

농사꾼의 자식들인 병사들은 자포리자가 새로운 흙을 척박한 땅에 뿌린 뒤로 농사가 잘된 걸 부모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 겨울 영지민들에게 역대 최악의 위기가 왔지만, 자포리자가 끊임없이 쌀을 영지민들에 나누어 주었다.

지금까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고 겨울을 넘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알리사 영지의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도 그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 냈다.

병사들이 그동안 궁금해하던 걸 자포리자가 대승을 거둔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밝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한 번 터진 함성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위대한 존재가 자신들을 도와준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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