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01화 (101/300)

[101화] 수로의 완성

병사들은 영지의 누구보다 이 행운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맛보지 않았는가.

그런 행운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더욱이 행운을 독차지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자포리자의 병사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우리의 땅은 물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힘들게 우물을 파서 농사를 지어야 했으며, 이미 농지 대부분은 계속되는 농사로 인해 지쳐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수로를 만들어 새로운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시작할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스탄다비아를 살찌우고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여러분의 손에서 시작됐다는 것에 긍지를 가져라!”

자포리자가 공식적으로 선인의 존재를 밝혔고,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려 주었다.

목숨을 건 전투가 끝이 났음에도 병사들은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이 나고 있었다.

자포리자는 인벤토리에서 경일이 보내 준 던전 작물을 아낌없이 꺼냈다.

곧바로 즉석에서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졌다.

병사들은 지금 만들어지는 요리가 얼마나 맛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모두의 기대감이 부푼 지금, 자포리자는 인벤토리에서 또 하나의 선물을 꺼냈다.

그건 바로 술이었다.

경일이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것이었다.

술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와 함께 병사들의 함성도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식량이 부족한 스탄다비아에서 술은 사치품 중에 사치였다.

더군다나 믿을 수 없게도 이건 차가웠다.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와 소주가 병사들에게 지급되었다.

현대의 술은 이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술을 한잔 마신 이들의 감탄이 여기저기서 수없이 흘러나왔다.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병사들이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 경비를 자처한 것이다.

몬스터가 사라진 개활지의 밤은 아름다웠다.

하늘에 선명하게 수놓아진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한줄기 미풍에 이름 없던 들꽃이 한들한들 춤을 췄다.

오늘의 힘든 하루가 지나간 것이 들꽃도 기쁜지 낮보다 훨씬 짙어진 향기를 내뿜었다.

들꽃의 향기는 자포리자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수로 공사가 시작됐다.

일부의 병사들은 경계를 서고 일부의 병사는 수로를 팠다.

마나를 받아들인 병사들이 대장간에서 이번 공사를 위해 특별히 만든 강철 삽을 얼어붙은 땅을 향해 거침없이 찔러 넣었다.

순식간에 2m 폭의 기다란 골이 생겼다.

자포리자는 경일이 보내 준 방수포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양쪽 벽은 자연석을 이용해 성벽을 쌓듯 벽을 만들었다.

수로가 너무 쉽게 뚝딱하고 생겨났다.

모든 영지민들이 동원되어도 불가능하다고 말한 사미르가 이 모습을 봤다면 기절했을 것이다.

가끔가다 큰 바위를 만나거나, 땅에 묻혀 있을 때가 수로 공사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포리자의 롱소드가 춤을 추었다.

오러가 담긴 롱소드가 바위를 두부 자르듯이 잘라 냈다.

대단한 무위였다.

자포리자의 무위가 펼쳐질 때마다 병사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희망과 선망 섞인 눈빛이었다.

그들도 자포리자의 무위에 다가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마나 연공법을 꾸준히 수행하고 검술을 연마하면 분명 그들도 도달할 수 있는 길이었다.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컸다.

확실한 목표가 생긴 병사들이 더욱더 노력할 건 당연했다.

공사의 진도는 빠르게 나아갔다.

힘이 넘치는 병사들이 흙을 파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지대가 낮은 곳에서의 공사도 무리 없이 이루어졌다.

깊게 땅을 파고 그곳에 경일이 보내 준 골판지 파이프를 매설했다.

파이프에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게 파이프 끝을 촘촘한 철망으로 감쌌다.

주기적으로 철망에 붙은 이물질을 청소해 주기만 하면 물은 이상 없이 흐를 터였다.

파이프를 매설해 나가며 꾸준하게 수로를 만들어 갔다.

가끔 덤벼드는 몬스터의 비명을 노동요로 삼은 병사들이 더욱 열심히 땅을 팠다.

영지에서는 자포리자의 명을 받은 사미르가 영지민을 동원해 수로를 파고 있었다.

영지민들은 일당을 받을 수 있다 보니 많은 이들이 수로 공사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이들은 단순히 물이 흘러갈 길을 파기만 하면 됐다.

‘이 상태로 물이 흐르면 모두 땅속으로 물이 스며들 텐데. 그 먼 거리를 단지 땅을 판다고 해서 물이 이곳까지 올 수 있는 게 아닐 건데… 영주님은 무슨 생각일까?’

사미르는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갔다.

그의 지적은 정확했다.

단지 단차를 이용해 수로를 만든다고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수로의 바닥에 최대한 돌과 돌 사이의 틈이 없도록 꼼꼼하게 돌을 깔고 벽에도 돌을 쌓는 공사를 해야 했다.

그러고도 물이 이곳까지 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짧은 거리거나 단차가 심하게 난다면 가능할지 몰라도 이곳까지의 거리가 거의 10㎞나 떨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사미르는 공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았다.

영지의 재정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닌데, 헛돈 날릴 게 빤한 공사에 많은 인부를 고용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원래는 영지 곳곳으로 물이 흘러갈 여러 개의 수로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하나의 수로만 만들고, 자포리자가 지시한 작은 소류지를 파는 것으로 공사를 끝냈다.

자포리자는 병사들을 이끌고 간 지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영지로 돌아왔다.

고생을 많이 했을 터인데, 병사들의 얼굴은 밝았다.

떠나기 전과 비교해 오히려 살이 오른 병사도 보였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지시하신 일은 모두 해 놓았습니다.”

사미르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지금까지의 일을 보고했다.

자포리자는 생각보다 수로 공사가 얼마 돼 있지 않아 실망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영지의 살림을 모두 책임지는 사미르로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명을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자기 생각대로 공사를 한 면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이미 그는 경일이 보내 준 역사책을 읽을 뒤라고 무조건적인 복종 관계가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신이 아닌 이상, 여러 사람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알았다.

사미르는 혹시나 자포리자가 화를 내지는 않을까 눈치를 봤으나,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수고했다, 사미르 행정관. 이 정도면 급한 대로 쓸 수 있을 거 같군.”

사미르는 자신을 칭찬하는 자포리자가 대단해 보였다.

이미 그는 자신의 의도를 모두 읽었을 것이고, 칭찬을 했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병사들은 이미 보름이 넘게 해 온 작업이라 영지민들이 한 작업을 넘겨받아 빠르게 수로를 완성시켰다.

사미르와 영지민들은 병사들이 수로의 바닥에 까는 처음 보는 파란 방수포가 궁금했다.

“영주님, 파란색 천 같은 건 무엇입니까? 저걸 왜 수로에 까는 겁니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사미르가 물었다.

“저건 방수포라고 하는 물건이다. 물이 새는 것을 막아 주지.”

“네? 물이 새지 않는다고요? 세상에! 그런 물건이 정녕 있단 말입니까?”

사미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었다.

“하하하, 나중에 수로에 물이 흘러 소류지에 물이 들어차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

자포리자의 말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워낙 기적 같은 일을 많이 행하지 않았는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반신반의하며 병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병사들은 마치 기계 같이 방수포를 깔고, 그 위에 일정량을 흙을 덮고 돌을 가져와 수로의 벽을 쌓았다.

마지막으로 소류지에 방수포를 깔고 돌로 벽을 세워 공사를 마무리했다.

손발이 척척 맞다 보니 순식간에 수로 공사가 끝이 났다.

이제 우르비노 언덕으로 돌아가 물길을 터 주기만 하면 됐다.

자포리자는 수고한 병사들은 남겨 놓고, 기사들만 이끌고 우르비노 언덕으로 말을 타고 달렸다.

자포리자는 몸속의 마나를 일으켰다.

그의 온몸이 오러로 인해 은은히 빛이 났다.

기사들과 함께 직접 삽을 들어 개울과 수로를 막고 있는 벽을 파냈다.

병사들과 마나를 다루는 수준이 다른 자포리자와 기사들은 금방 벽을 뚫어 냈다.

시원한 물이 자포리자와 기사들을 향해 콸콸 쏟아졌다.

“시원하군.”

칼튼이 온몸으로 맑은 물을 맞으며 소리쳤다.

몇 명의 기사들은 물의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잠깐 떠내려가기도 했다.

그도 스탄다비아에서 일평생을 살아온 이상,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일평생을 아껴 써 온 물을 온몸으로 맞으니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물은 빠르게 수로를 타고 흘렀다.

매설해 놓은 파이프를 통과해 스탄다비아로 흘러 들어갔다.

스탄다비아에 가까워질수록 물의 흐름이 느려지긴 했지만, 생명과 같은 물은 작은 소류지까지 도착했다.

“이건 기적이야!”

사미르가 너무 기쁜 나머지 귀족이라는 체면도 잊고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영지민들의 기쁜 함성 또한 터져 나왔다.

성격 급한 영지민은 수로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물을 맞기도 했다.

아직 추운 날씨였지만, 그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소류지의 물이 차오르는 모습에 영지들의 얼굴에 새로운 희망이 가득 차올랐다.

스탄다비아에 흐르던 개울이 마른 지 50년 만에 새롭게 물이 들어왔다.

영지민들은 축제를 벌였다.

얼마나 기쁜지 축제는 며칠 동안 진행됐다.

물은 그만큼 그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자포리자는 하나의 물길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이 땅에 새로운 혈관을 촘촘히 깔 생각이었다.

힘들던 그들의 삶에 빛이 되어 주고 싶었다.

자포리자는 경일을 향해 깊은 감사를 보냈다.

* * *

경일은 한창 던전에서 싹이 튼 감자를 자르는 중이었다.

감자의 맨 윗부분을 기준으로 크기에 따라 두 쪽에서 다섯 쪽까지 잘랐다.

이건 씨감자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경일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척박한 땅에서 그나마 잘 자라는 작물이 감자였다.

감자가 스탄다비아의 척박한 땅을 이겨 내고 자란다면 그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영양분도 풍부하니 안성맞춤이었다.

스탄바이아의 크기를 생각하면 엄청난 양의 씨감자가 필요했다.

애초에 그걸 혼자서 준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경일이 본 스탄다비아의 농부들은 누구보다 부지런했으니, 감자가 퍼져 나가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감자 농사 방법을 적은 쪽지와 함께 씨감자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계획한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나니 마음이 뿌듯했다.

씨감자 만드는 일을 마친 경일은 벽돌을 만들 준비를 했다.

지금의 집은 불편한 점이 많았다.

처음 던전에 와서 급하게 집을 짓다 보니 아주 허름했다.

나무를 최대한 평평하게 다듬어 바닥을 깔았지만, 초보가 한 작업이라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자 나무가 마르면서 바닥이 많이 틀어졌다.

그러다 보니 잘 때마다 등이 배기곤 했다.

인벤토리가 생기면서 살림은 늘어나는데 집이 워낙 좁으니, 이것도 문제였다.

결국 경일은 새로운 집을 짓기로 했다.

이번에 지을 집은 벽돌집이었다.

자포리자에게 알려 주기 위해 벽돌을 만드는 법을 공부한 적이 있어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지구에서 벽돌과 시멘트를 사서 집을 지으면 편하고 쉬웠으나, 이 아름다운 던전에 웬만하면 지구의 물건을 들이곤 싶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바꾸어 준 소중한 던전인데, 최대한 본래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아끼고 싶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 그리 큰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나무로 만든 틀에 진흙을 넣어 모양을 만들었다.

경일은 네모나게 모양을 만든 흙벽돌을 넓게 펼쳐 자연 건조를 시켰다.

자연의 흙이 자신의 손길을 거쳐 흙벽돌로 만들어지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넓게 펼쳐진 벽돌이 보는 것으로만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다음 순서로 자연 건조한 흙벽돌을 가마에 넣었다.

경일은 벽돌이 구워지는 동안 새로운 던전 고유 식물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산악 오토바이 엔진이 돌아가는 터프한 소리와 함께 산을 올랐다.

경일이 찾고 있는 건 영인초였다.

영인초는 헌터가 마의 구간을 넘을 수 있게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넓혀 주는 역할을 했다.

정확하게는 헌터 힘의 근간인 마나의 수용성을 넓혔다.

몸이 더 많은 마나를 받아들여 레벨이 오를 수 있는 것이었다.

영인초는 다른 던전 고유 식물에 비해 엄청나게 고가로 거래가 되었다.

아니, 돈이 있다고 해도 무조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