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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02화 (102/300)

[102화] 진상

마의 구간에 막혀 성장이 끝이 난 헌터는 어디에도 있었다.

돈과 힘이 없는 이들이야 어쩔 수 없이 레벨 업을 포기했지만, 돈과 힘이 있는 이들은 방법이 있으니 포기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영인초는 마의 구간에 걸린 헌터들만 먹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가진 잠재력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 자신의 레벨 업이 멈출지는 아무도 몰랐다.

알려진 마의 구간은 레벨이 10, 17, 30, 50레벨이지만, 이게 꼭 정해진 건 아니었다.

통계적으로 저레벨에 마의 구간에 걸린 헌터가 많을 뿐이었다.

50레벨 이상의 마의 구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 마의 구간이 존재할 가능성은 당연히 있었다.

지구상에 가장 레벨이 높다고 알려진 헌터의 레벨은 67이었다.

그의 잠재력이 높아 마의 구간이 아직 오지 않았는지, 아니면 67레벨까지 마의 구간이 존재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헌터는 그의 잠재력이 높아 마의 구간을 겪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 마의 구간은 존재할 거라고 모든 헌터들은 확신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잠재력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0년 전만 해도 마의 구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때의 헌터들은 지금과 다르게 무난하게 성장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강자라고 알려진 이들은 대부분 10년 전에 각성한 사람이 많았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헌터의 전력이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잠재력을 늘려 주는 영인초는 수요는 언제나 넘쳤다.

“영인초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네. 어떤 환경에서 잘 자란다든지 하는 생태 정보가 전혀 없으니, 찾는 게 싶지가 않구나. 이거 던전에 있긴 한 건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으니 경일은 의심이 들었다.

“뭐, 꼭 영인초만 찾는 게 아니니까, 일단 돌아다녀 보자. 산악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못 찾으면 취미 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면 되고 말이야.”

그 뒤로 한참을 더 던전을 돌아다녀 봤지만 결국 찾지는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아직 할 게 많으니까.”

경일은 영인초를 찾는 것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마에 구워지고 있는 벽돌을 꺼내야 할 시간이었다.

나무는 모두 타 재가 되어 있었다.

가마가 적당히 식어 있어서 벽돌을 꺼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괜찮은데? 강도도 세 보이고. 이 정도면 시멘트로 만든 벽돌이 하나도 안 부럽겠는걸.”

첫 시도였는데도 벽돌은 꽤 괜찮게 나왔다.

가마도 처음 만들어 본 거였고, 벽돌을 굽는 시간도 모른 채 무작정 시도한 것임에도 이 정도 결과물이면 집을 짓기에 충분해 보였다.

가마의 크기가 한계가 있어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벽돌의 수는 한계가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굳이 급하게 집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짬짬이 벽돌을 만들 계획이었다.

분식점에 출근할 시간이 되자 경일은 던전을 나왔다.

오늘도 기분 좋게 장사 준비를 했다.

손주아가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여느 날과 같이 분식점을 열었다.

첫 손님이 들어왔다.

큰 덩치에 험상궂은 얼굴에 인상까지 잔뜩 찡그린 남자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자의 무게에 의자가 고통의 신음을 낼 정도였다.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에 손주아가 다가가기를 머뭇거릴 정도였다.

경일이 얼른 손주아 대신 손님에게 다가갔다.

“손님, 주문하시겠습니까?”

“아니, 다른 사람 오기로 했으니 그때 하지.”

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파리를 쫓듯 경일을 향해 손을 털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요.”

남자의 버릇없는 모습에 화가 난 손주아가 경일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사하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오기 마련이니까. 주아 씨는 저 사람 근처에 가지 말아요. 보아하니 질이 안 좋은 사람 같으니까. 혹시 모를 봉변이라도 당하면 안 되니 내가 알아서 할게.”

“괜찮으시겠어요?”

손주아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수아 씨, 걱정하지 마. 수아 씨가 몰라서 그렇지, 사실 알고 보면 내가 좀 많이 강한 남자야. 믿어도 돼.”

경일이 웃으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허세를 떨었다.

“그럼요. 사장님이 강한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확실히 믿고 있어요.”

“어, 그래. 하하하.”

농담을 섞어 한 이야기에 손주아가 한 치의 의심 없는 믿음을 보여 주니 오히려 경일이 당황했다.

돌아서 주방으로 들어가는 손주아의 눈빛이 반짝였다.

‘혹시 내가 헌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 아냐?’

경일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야, 여기 물 잔 빈 거 안 보여?”

홀에 있던 남자가 큰 소리를 내며 빈 물 잔을 흔들어 댔다.

“하여간 기본적인 서비스도 좆같네. 동네도 거지 같더니.”

물 잔에 물을 채워 주고 돌아서는 경일의 등을 향해 남자는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경일은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참았다.

남자는 분식점에서 제일 큰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가 말한 일행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 테이블이 꽉 찼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남자는 핸드폰을 보고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저기 손님, 다른 손님들이 자리가 없어 기다리고 있으니 주문을 하시든지 아니면 다음에 방문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경일이 정중히 남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씨발, 지금 손님을 쫓아내는 거야? 장사 잘된다고 손님을 막 무시해도 되는 거야? 분명 일행이 온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어? 분식점에서 일행을 기다리면 안 된다고 법에 적혀 있기라도 한 거야?”

경일의 말에 남자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식사하던 다른 손님들이 놀라 식사를 멈추고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 좆만 한 분식점 사장 새끼까지 사람을 괄시하네.”

“아니, 손님. 괄시하는 게 아니라 오신다는 분이 안 오시니까 자리를 비워 달라고 부탁드린 거지, 제가 언제 괄시를 했습니까? 지금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계시니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잖습니까?”

“아, 씨발. 알았어, 알았다고. 주문하면 되잖아. 여기 라면 하나 가져와.”

“지금 욕한 겁니까?”

경일의 기세가 제법 날카로웠다.

이제 더는 참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내가 언제 당신한테 욕했다고 그래. 나한테 한 말이야. 그냥 내가 나에게 하는 추임새 같은 거라고.”

그는 아슬아슬하게 경일의 인내심을 긁었다.

그러고는 경일이 화를 내려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꼬리를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경일은 라면을 조리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에이, 좆같은 분식점. 동네도 거지 같더니 분식점 사장 새끼도 지랄이네. 하필 약속을 잡아도 이런 거지 같은 동네에 약속을 잡아 가지고 말이야. 어휴~ 하여간,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빈티가 아주 줄줄 흐르네, 흘러.”

남자는 누구 들으라는 듯이 계속해서 구시렁거렸다.

이건 동네와 동네 사람까지 싸잡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식당의 다른 손님들까지 모두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경일은 얼른 라면부터 끓였다.

다른 주문이 먼저였지만, 먼저 라면을 주고 내보낼 생각이었다.

“손님, 라면 나왔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경일이 최대한 웃으며 라면을 남자의 앞에 내려놓았다.

“개나 소나 누가 끓여도 똑같은 맛인데, 뭘 맛있게 먹어. 혹시 여기에 침이라도 뱉은 거 아냐?”

남자는 주방으로 돌아가는 경일의 등에 대고 들으라는 듯이 혼자 구시렁대더니 국물을 살짝 맛보고는 곧바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핸드폰만 바라봤다.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나 몸에 걸친 액세서리를 보면 산동네에 올 사람 같지는 않았다.

동네 분식 소문을 듣고 온 사람이라면 라면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무슨 목적이 있어 이곳에 온 듯이 보였다.

그 순간, 경일의 뇌리에 행복 분식 사장 김만복의 사주를 받고 장사를 방해하던 양아치 삼 인방과 주폭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는 다정 분식이라는 확실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지만, 애써 머릿속에서 털어 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냥 진상 손님일 수도 있었다.

한창 바쁜 점심시간이 되었으나,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라면은 이미 불어 터져 국물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손님, 식사를 다하신 것 같은데, 자리를 비워 주시겠습니까?”

경일이 웃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여기, 라면 남은 거 안 보여? 음식을 다 먹지도 않았는데, 손님에게 나가라 마라야.”

“손님 음식 값은 안 받을 테니, 이만 나가 주십시오.”

“지금 나를 거지 취급하는 거야? 나 참, 이거 어이가 없어서. 자, 여기 라면 값.”

남자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하나를 꺼내 탕! 소리가 나게 테이블을 내려쳤다.

“라면 세 개 더 가져와. 안 온 일행 거까지 음식 주문했으니, 이제 할 말 없지?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거 다 먹으면 나가지 말래도 나갈 테니.”

남자는 화를 내고 등을 돌려 버렸다.

경일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으나 겨우 참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손주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아~ 씨발, 눈 돌아가겠어. 할 말 있으면 내 앞에서 하라고. 좆도 아닌 것들이 말이야.”

손님들이 남자에게 눈치를 주자 오히려 남자가 큰 소리로 위협했다.

이날의 불운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제일 바쁜 시간에 식품위생과 공무원들이 분식점에 들이닥쳤다.

“아니, 무슨 일입니까?”

경일이 음식을 조리하다 말고 공무원에게 물었다.

“네, 위생 점검 나왔습니다.”

“아니, 제일 바쁜 시간에 나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 네. 사장님, 죄송합니다. 우리도 위생 점검 스케줄이 있는데, 이 시간에 사장님 식당이 걸린 거라 어쩔 수가 없네요. 식당 사정을 모두 봐주면서 점검을 하기에는 애로 사항이 많아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일은 어쩔 수 없이 주방에서 물러섰다.

오늘따라 공무원은 평소와 다르게 아주 꼼꼼히 식당을 점검했다.

그런 모습에 화가 났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의 세 시간을 넘게 위생 점검을 마친 공무원은 이상 없다고 말하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덕분에 경일과 손주아는 오는 손님들에게 계속해서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하도 머리를 숙였더니 머리에 피가 쏠릴 지경이었다.

웃긴 건, 이 와중에도 라면을 시킨 남자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음 날.

경일은 찝찝한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이게 한 번으로 끝날 거 같지 않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분식점 입구에서부터 더 기가 막힌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오픈 전부터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어제 라면 하나로 가장 큰 테이블에서 무려 여섯 시간을 버티고 간 남자였다.

오픈과 동시에 큰 덩치의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어디에서 그런 옷을 샀는지 알록달록하게 몸에 딱 붙는 티를 입고 털이 숭숭한 배가 튀어나온 채로 한 테이블에 한 명씩 의자에 앉았다.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엔 모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굳이 옷을 들쳐 보지 않아도 온몸이 문신일 터였다.

“손님 일행분들이랑 같은 곳에 앉아 주세요.”

경일이 말하자 남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나 저 새끼 몰라. 일행 아냐. 그러니 신경 끄고 주문이나 받으셔.”

“아니, 밖에서 같이 대화하는 걸 봤는데, 무슨 소립니까?”

경일이 따지고 들자 남자는 귀를 후벼 판 손가락을 입에 대고 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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