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던전을 들켰다
“모른다니까. 아까 밖에서는 기다리기 심심해서 몇 마디 나눈 거뿐이야. 헛소리 그만하고 주문이나 받아. 좆만 한 분식점이 더럽게 불친절하네. 여기는 혼자 밥 먹으러 오면 안 되는 곳이야? 왜 이렇게 따지는 게 많아?”
“마음에 안 드시면 나가 주시면 됩니다.”
경일은 남자와 눈을 맞추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쭈, 세게 나오네? 그래서 더 못 나가겠는데? 내가 배가 너무 고파서 말이야. 힘이 없어 아무것도 못 하겠어. 이것 봐, 오죽했으면 내 목소리가 다 떨리겠어?”
남자는 경일을 보고 빈정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당신들에게 음식 안 파니까 나가세요.”
경일이 큰 소리로 말했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도리어 주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라면 하나 줘. 혹시 알아? 내가 라면을 빨리 먹고 나갈 수도 있잖아. 킥킥킥!”
경일에게 주문하는 남자는 어제 라면을 시켜 놓고 여섯 시간을 버틴 남자였다.
경찰에 신고 했지만 그들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경찰이 중재해서 덩치 큰 남자들을 분식점에서 내쫓았으나, 그들은 가지 않고 분식점 입구에 서서 험악한 분위기를 풍겼다.
도로를 점령하고 담배를 꼬나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오던 손님도 겁을 먹고 돌아갈 정도였다.
“이런 개새끼들이.”
경일은 매대에 서서 강렬한 시선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경일을 보고 오히려 히죽히죽 웃었다.
얼마나 분한지 그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결국 이날도 장사를 망쳤다.
경일은 약이 바짝 올랐다.
자신을 조직적으로 괴롭히는 놈이 나타났는데 정체를 모르니 더 짜증이 났다.
“제기랄,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꼭 피똥을 싸게 만들어 주마. 지금은 너희가 이긴 거 같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난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최후에 웃는 자가 누군지 분명히 보여 주지…….”
경일은 손주아에게 전화를 해서 휴가를 주었다.
다음 날은 의외로 조용했다.
“이 새끼들이 분명 그냥 넘어갈 놈들이 아닌데.”
덩치들이 분식점에서 사라지자 손님들이 들어왔다.
지금 조용한 게 태풍의 눈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밀려드는 손님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손주아를 쉬게 했기 때문에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했다.
너무 바빠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날은 경일의 예상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거 이상한데? 이대로 물러날 놈들로는 안 보였는데.”
경일은 마음이 무척이나 찝찝했다.
“그냥 진상이었나?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한두 명도 아니고. 이건 또 이거대로 불안하네.”
던전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분식점에 출근하는 경일의 발걸음이 무척 무거워 보였다.
늘 즐겁고 설레던 출근길이었는데.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다행히 분식점은 여느 때와 같았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첫날에 온 남자가 화가 안 풀려 다음 날 동료들을 불러서 한 번 더 진상 부리고 끝이 난 건가?”
경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의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문받은 음식을 정신없이 만들고 있는데, 일련의 무리들이 분식점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자리에 앉지 않고 경일부터 찾았다.
“사장님 되시죠?”
“네. 무슨 일입니까?”
“저희는 구청 식품위생과에서 나왔습니다.”
남자가 공무원증을 내밀었다.
“위생 점검은 며칠 전에 했는데, 또 나온 겁니까?”
경일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는 구청에서 하는 불시 점검으로 정기적으로 하는 겁니다. 오늘은 신고를 받고 나왔습니다. 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는 신고가 무려 열두 건이나 접수됐습니다. 조사 차 나온 거니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공무 수행 중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공무원은 정중한 말과 달리 다짜고짜 주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꼼꼼하게 주방을 점검했다.
주방을 살피더니 모든 음식 재료를 조금씩 떼어 내 식중독균을 검사하기 위한 샘플을 만들었다.
거기다 각종 주방 도구를 면봉으로 닦아 비닐에 넣어 밀봉했다.
그 덕에 장사는 완전히 망쳐 버렸다.
공무원은 꼼꼼한 건지 느린 건지 모르겠지만, 샘플을 만드는 데에만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주방을 사용하지 못해 장사는 올 스톱이 된 상태였다.
“사장님, 음식 재료는 어디서 공급받으시나요? 신고가 들어온 이상 공급하는 업체도 조사해야 합니다.”
경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재료 대부분은 던전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보니 거래처가 없었다.
“아침마다 시장에서 직접 장을 봐서 옵니다. 딱히 정해진 거래처는 없습니다.”
경일은 대충 둘러댔다.
“그래도 중요 거래처가 있을 거 아닙니까.”
경일은 만두에 들어가는 고기를 사 오는 정육점을 알려 주었다.
“참, 그런데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는데 확실한 겁니까? 우리한테 식중독이 걸렸다고 연락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어떻게 구청으로 그 많은 신고 전화가 간 겁니까?”
경일이 묻자 이번에는 공무원이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글쎄요. 그건 저희도 모르죠. 우리는 신고가 들어 왔으니 규정에 맞게 조사를 하러 나온 것뿐입니다. 설마 지금 식중독 신고도 없는데 점검 나온 거라고 의심하는 겁니까?”
공무원이 인상을 쓰면 말했다.
경일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아주 제대로 경일을 괴롭혔다.
김만복이 장사를 방해하기 위해 한 짓에 비하면 훨씬 체계적이고 몇십 배 더 악랄했다.
경일은 식중독 이야기가 나왔으니 계속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장사를 포기하고 구청으로 향했다.
“오늘 열두 건이나 되는 식중독 신고가 들어왔다고 해서 확인하러 왔습니다.”
“어떤 확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담당 공무원이 말했다.
“식중독이 걸렸다고 하는데 확실한 겁니까? 진료 기록이나 이런 걸 봤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개인 정보라 보여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만약 허위 신고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희가 무작정 단속을 나가진 않습니다. 그 근거가 있으니 나간 겁니다. 신고한 사람 중 몇 명은 병원 진단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방에서 채취한 샘플을 조사하면 며칠 안으로 위생 검사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때 가서 이야기하시죠.”
‘덩치들이 안 보인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마음 놓고 있다가 맞았더니 몇 배나 더 아프고 성질이 나네. 어떤 놈인지 걸리기만 해 봐라. 이번에는 최소 백배로 돌려줄 테다.’
경일은 별다른 수확 없이 구청을 떠나야 했다.
다음 날부터 손님이 확연히 줄었다.
좁은 동네라 식중독에 대한 소문은 금방 퍼졌다.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밥을 먹으러 오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천연색 문신으로 몸을 도배한 남자들이 분식점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욕을 내뱉어 위압감을 주었다.
경일이 따지면 혼잣말이었다고 둘러대며 라면 하나로 온종일 자리를 차지하고 버텼다.
“대체 누구지? 이 정도로 원수진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데. 이거 느낌이 무척 안 좋아. 이게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문신충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같이 분식점을 점거하고 라면 하나로 시간을 보냈다.
식중독 신고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또다시 위생 점검을 받아야 했다.
식중독을 검사한 결과라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점검은 칼 같이 나오면서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는 다라… 역시 공무원한테도 손을 쓴 게 틀림없어.’
가장 괴로운 건 동네 아이들과의 힐링 시간이 사라진 것이었다.
경일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데 정체를 모르니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보름 정도 지나자 매출은 바닥을 기었다.
매출의 대부분이 문신충이 시킨 라면이었다.
계속되는 식중독 신고에 문신충이 오지 않는 날에도 손님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분식점을 망하게 하려는 목표치고는 그들의 수작이 너무 과했다.
‘분식점이 목표가 아니라면… 그럼 남은 건 던전뿐인 건가.’
최대한 외면하고 싶던 사실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암시장에 미스릴을 판 것에서 꼬리가 잡힌 거겠지. 도대체 어떤 놈들이 냄새를 맡은 거지?’
던전이 목적인 걸 알게 되니 불안이 부쩍 커졌다.
절대 피하고 싶은 현실을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던전을 노리는 세력이라면 결코 작은 세력은 아닐 것이었다.
이미 신화 길드라는 이 동네에서 알아 주는 길드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아직은 게이트의 위치를 찾지 못한 듯 보였지만, 이대로라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었다.
이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무너지면 스탄다비아의 5만 명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경일은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었다.
아직 경일이 헌터인 걸 눈치를 채지 못해서인지 그들의 감시가 치밀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별다른 방법 또한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갈까? 아니, 그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저 정도로 치밀한 놈들이면 이미 내가 사는 곳도 전부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사라지면 집부터 뒤질 게 빤한데, 던전이 넘어가는 가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어. 그냥 무턱대고 싸워 볼까? 아냐, 혼자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하~ 분식점에 있자니 불안해 미치겠네. 혹시 지금 옥탑방을 뒤져 게이트를 발견한 건 아니겠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옥탑방으로 뛰어가고 싶은데.’
옥탑방으로 시선이 모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던전을 노리는 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경일을 제대로 압박했다.
마치 거대한 뱀이 자신의 몸을 감싸고 조금씩 몸을 쪼아 오는 느낌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사방이 막힌 방에 갇힌 기분이었다.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로지 적의 처분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얼마나 화가 나고 약이 오르는지 몸에서 열꽃이 피어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새끼들은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 거지? 나라면 그냥 납치해 고문하는 게 던전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속의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던전으로 유인해 목숨을 걸고 싸워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싸우다가 죽는 게 오히려 덜 억울할 거 같았다.
하지만 이건 적들을 위하는 길이었다.
던전을 알아서 갖다 바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경일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이대로 흥분하면 싸우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무너질 수도 있었다.
경일은 매일 분식점을 열었다.
옥탑방에서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대로 분식점 문을 닫으면 자신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싫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한 명의 손님도 받지 못한 채 옥탑방으로 퇴근했다.
옥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느낌이 싸했다.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이럴 수가!”
경일은 머리가 순간 새하얘졌다.
다리에 힘이 빠져 몸이 휘청거렸다.
그는 거의 기다시피 옥탑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엉망이었다.
누군가가 신발을 신고 들어왔는지 신발 자국이 엉망으로 찍혀 있었다.
그 자국 중의 하나가 장롱으로 향해 있었고, 장롱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의 보물을 누군가가 알아 버렸다.
손끝부터 퍼져 나간 떨림이 온몸을 덮쳤다.
경일은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그저 멍하게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