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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04화 (104/300)

[104화] 던전을 원하는가?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당혹스러움은 분노로 바뀌어 갔다.

“그래, 애초에 내가 너무 불리한 싸움이었어.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는 건 나답지 않지. 내가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죽인다.”

경일은 죽을 각오를 했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칼을 쥐고 게이트로 몸을 넣었다.

다행히 게이트를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는 없었다.

그의 눈앞에 던전의 자연이 펼쳐졌다.

그는 들어온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고 게이트 주위를 수색했다.

그들의 뒤를 쫓아가 덮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자신의 발자국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흔적을 찾았으나,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흙바닥인 이상,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이동을 했으면 풀잎이 눌린 자국이나, 작은 나뭇가지가 부러진 흔적이 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데. 이렇게 흔적이 없을 수도 있나? 내 생각보다 적은 인원이 던전에 들어와 내가 못 찾는 건가?”

경일은 인벤토리에서 산악 오토바이를 꺼내 주위를 달렸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더 큰 엔진음을 내며 주위를 수색했지만, 던전은 평소와 같이 조용하기만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옥탑방에는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어. 그리고 게이트가 있는 장롱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런데 왜 아무런 흔적이 없지? 게이트를 발견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그냥 물러났다고? 아니면 상급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던전에 들어오지 않은 건가?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경일은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약간의 시간을 벌었으니 그 시간 동안 함정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그가 준비한 것은 가장 원색적인 함정이었다.

동물을 잡기 위한 덫이나, 바닥의 나무를 건드리면 통나무가 날아오고 이런 건 애초에 만드는 방법도 몰랐다.

그저 땅을 파서 입구를 위장한 가장 기본적인 함정만을 만들었다.

헌터인 이상 땅을 깊게 판다고 해도 금방 빠져나올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릎 깊이의 함정을 여러 개 만들었다.

그러고는 사선으로 자른 대나무를 촘촘히 땅에 박았다.

싸우는 도중 함정에 발이 빠져 대나무에 찔리기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게이트 입구에 많은 함정을 만들고 경일은 적을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꽤나 흘렀음에도 적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정도 시간이면 던전에 들어와도 여러 번은 들어올 시간이었다.

그동안 게이트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히고, 24시간 미행하고, 자신의 옥탑방까지 뒤진 놈들이 아닌가.

이런 놈들이 한참 시간이 지났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의구심이 들었다.

경일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게이트를 통과해 옥탑방으로 갔다.

옥탑방은 자신이 던전으로 들어갈 때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조심히 옥상에서 건물 입구를 살펴보니 평소와 같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상한데. 게이트를 발견했을 건데, 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 설마 그들의 목적이 던전이 아니고 분식점인 건가? 내가 지레 겁을 먹고 던전이라고 생각한 건가? 아니지. 무슨 이런 산동네 분식점을 망하게 하려고 공무원을 매수하고, 그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한다고 그래.”

경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대충 씻은 뒤, 분식점으로의 출근 준비를 마쳤다.

경일이 옥탑방을 내려가 건물의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자, 여전히 여러 명이 몰래 그의 뒤를 따라붙으며 그를 감시했다.

평상시와 같이 경일은 그들을 모른 척 분식점으로 향했다.

오늘도 몇몇 인상이 더러운 문신충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경일은 귀찮아 주문도 받지 않았다.

“야, 주문 받아. 뭐 하는 거야? 장사 안 해? 이거 간이 처 부었네. 손님이 불렀는데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새끼야. 귀에 좆 박았어?”

경일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오히려 자신이 더 열 받아 하는 모습이었다.

계속해서 문신충들이 주문을 받으라고 소리쳤지만, 경일은 아예 무시해 버렸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번에는 공무원이 들이닥쳤다.

경일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적이 알아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는 수밖에.

공무원이 오히려 민망한지 경일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돈을 받아먹었어도 자신의 양심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경일이 팔짱을 끼고 똑바로 서서 무섭게 노려보자 공무원이 움찔거렸다.

양심에 찔렸는지 아니면 경일이 혹시나 자신에게 해코지하지 않을까 걱정됐는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일을 마치고 분식점을 나가 버렸다.

저녁이 되자 한 명의 남자가 분식점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문신충들이 곧바로 일어나서 90도로 인사를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악당들의 보스의 등장이란 것을 직감했다.

남자는 곧바로 다찌로 와서 자리에 앉았다.

혈색이 좋고 피부 관리를 잘 받아서 그런지 피부에서 광이 났다.

입고 있는 옷이나 시계, 몸에 걸친 각종 액세서리 등 부티가 나긴 했지만, 찢어진 눈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있어 만만치 않게 비열해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거만한 눈초리로 경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 오늘의 안주 하나 주문하지.”

경일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단지 서릿발 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남자는 신화 길드 길드장 곽마권이었다.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볍게 손을 들어 흔들자, 문신충들이 인사를 하고는 모두 나가 버렸다.

분식점에 경일과 곽마권만이 존재했다.

“아직 기가 살았군. 일게 분식점 주인치고는 제법 깡이 있어 그래.”

“너 누구야? 왜 날 노리는 거지?”

“어린놈의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하는군.”

곽마권이 기세를 일으켜 경일에게 집중시켰다.

수십 수백 개의 바늘이 피부에 파고드는 고통이 일었다.

경일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면서 쌍코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이빨을 강하게 깨물며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참아 냈다.

하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숨길 수는 없었다.

눈에 핏발이 터지고 얼굴이 터져 나갈 듯이 벌게졌다.

그런 경일의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곽마권이 기세를 풀었다.

“자, 이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 볼 수 있을 거 같군. 난 신화 길드 길드장 곽마권이야. 이름은 들어 봤겠지? 이런 거지 같은 동네에 산다고 못 들어 봤으려나?”

경일의 얼굴이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신화 길드, 그가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정말 너를 보고 싶어 했거든. 오죽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보다 네놈이 더 보고 싶을 정도였어. 얼마나 네 생각을 많이 했는지 정말 큰 정이 들어 버렸어. 오늘 너를 처음 보는데도 반가워 미치겠다니까? 사실 너를 찾았다는 이야기에 당장이라도 달려오고 싶었는데 말이야. 생각해 보니 그러면 재미가 없겠더라고.”

사실 곽마권은 처음에는 경일을 납치할 생각을 했고, 그가 하는 분식점을 알아내고 뒷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뒷조사 결과, 이건 쉬워도 너무 쉬운 상대였다.

그가 정말 던전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는 헌터도 아니었고, 가진 것도 없었다.

고아였고 비참하게 살다 분식점을 연 게 다였다.

뒷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불알 두 쪽 가진 게 다였다.

분식점을 연 시기가 사과를 팔다 사라진 시기와 거의 비슷했다.

아무리 시장을 뒤져도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산동네에 숨어 있었다니, 5팀장의 와이프가 아니었으면 평생이 걸려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경일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경우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다면 그동안 돈이 없어 하지 못한 걸 하거나, 주위에 자랑하든가 돈을 펑펑 쓰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이놈은 달랐다.

시장에서 무슨 눈치를 챘는지 그날부터 던전 사과를 파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할 곳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곽마권은 납치를 하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그동안 이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가.

납치해서 간단히 끝내는 거로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24시간 감시가 들어간 이상, 그가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이 끼어들 염려도 없었다.

사과 장수를 관두고 이런 산동네에서 생활할 만큼 조심스러운 놈이라면, 던전을 가진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던전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거로 봤다.

경일을 미행하다 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을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게 더 재밌었으니까.

그에게는 유희일 뿐이었다.

어릴 때, 날개를 찢어 날지 못하는 곤충이 괴로워하는 모습은 늘 재미있었다.

그가 성장하면서 그가 괴롭히는 대상이 곤충에서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던전을 찾은 뒤에는 납치해서 직접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이 모든 일의 흑막인 자신을 보는 순간, 일그러진 경일의 생생한 표정을 볼 생각을 하면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직접 육체의 고통을 줄 생각이었다.

고통을 주는 건 누보다 자신이 있었다.

아주 뼈를 하나하나 으깨 버릴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경일 때문에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몇 배로 증폭해 그의 몸에 아로새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도 못 한 곳에서 계획이 틀어졌다.

쉽게 찾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이트를 찾지 못한 것이다.

경일이 감시를 눈치채기 전부터 그들은 훨씬 더 빨리 그를 감시했고, 그의 동선은 모두 파악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했다.

옥탑방까지 그가 간 곳은 모조리 뒤졌는데도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곽마권은 계획을 바꾸고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하면 나의 힘을 충분히 깨달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자~ 이제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봐.”

경일은 조금 전 곽마권의 기세를 받을 때 몸속의 마나가 반응하려는 것을 억지로 막았다.

다른 헌터들에게는 불가능한 기예이지만, 마나 연공법으로 꾸준히 수련해 마나를 깨우친 경일은 마나에 의지를 심을 수 있었다.

곽마권의 기세를 온몸으로 받아 내며 극심한 고통을 참아낸 건, 아직 그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비장의 한 수는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 효능이 사라진다.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였지만, 경일은 자신이 죽더라도 끝까지 상대의 목줄을 물어뜯을 생각이었다.

이 작은 한 수가 얼마나 큰 이변을 만들지는 몰랐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이것뿐이었다.

“던전을 원하는 건가?”

경일은 이 정도의 헌터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목적이 던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옥탑방을 뒤지고도 던전으로 들어오지 않아 혹시 그게 목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곽마권을 본 순간 그의 목적이 던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이 풀렸다.

‘이들은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했어. 옥탑방 장롱 문을 활짝 열고도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그들의 눈에 게이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경일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 던전 식물을 먹고 그 효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이게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헌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게이트가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던전이 기존의 던전과 무척 달라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특별할 줄이야.

그제야 던전에 다른 사람의 흔적이 없던 이유를 깨달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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