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08화 (108/300)

[108화] 먹이는 하나 노리는 맹수는 둘

“이 새끼야, 누가 나오라고 했어. 다시 들어가.”

신화 길드 헌터가 경일을 보고 거세게 화를 냈다.

하지만 경일은 도로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쪽도 나를 찾아온 건가요?”

경일이 대복 길드 헌터를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랑 같이 가시지요. 저 새끼들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대복 길드 헌터는 경일에게 존대를 하며 호감을 사려 했다.

“이 새끼야, 죽고 싶어?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고.”

이상함을 느낀 신화 길드 헌터가 다시 한번 경일을 압박했다.

“닥쳐, 비열한 새끼들아. 지금 우리가 대화 중인 거 안 보여?”

대복 길드 헌터가 경일을 핍박하는 신화 길드 헌터에게 소리쳤다.

“저런 개새끼들이. 남이 다 차려 놓은 밥상에 뭐 하는 짓이야?”

“뭐 밥상? 무슨 밥상? 니가 뭔데? 이분이랑 계약이라도 했어? 아니지? 너희가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지. 또 뒤에서 비열한 수법으로 사람을 옭아맸겠지.”

“닥쳐, 이 새끼야. 분명히 말했다. 우리가 침 발라 놓은 거에 손대지 말라고. 이 이상 선 넘으면 뒤지는 거다. 잘 생각해.”

신화 길드 헌터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협박했다.

곽마권에게 철저하게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은 상황.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인물이니 정신 바짝 차리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들었다.

길드장이 이 정도로 신경을 쓰는 인물을 만약 놓친다면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다.

더군다나 원수 관계인 대복 길드에게 뺏기는 건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만약 경일을 뺏긴다면 더 이상 헌터로서 살아가기 힘들 것이었다.

이미 이전 2팀이 모두 병신이 되서 길드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절대 내줄 수 없었다.

대복 길드도 경일을 내줄 수 없는 건 같은 입장이었다.

몇 달을 넘게 고생하며 겨우 찾아낸 상황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손필견은 이 일에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성격상 만약 앙숙인 신화 길드에 뺏겼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들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자리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잘 봐. 여기를 넘어오면 끝이다. 난 비열한 너희와 다르게 입으로 협박하지 않아. 바로 행동하지. 죽고 싶으면 이 선을 넘어오면 된다.”

대복 길드 헌터가 신화 길드 헌터의 말을 맞받아치며 한술 더 떠 길에 기다란 선을 그었다.

그에 호응하듯 그들의 중간에 서 있던 경일이 대복 길드 쪽으로 움직였다.

“이 새끼야, 움직이지 마! 너 그러다 죽는다.”

신화 길드 헌터가 협박했다.

“흥~ 그래, 한 번 죽여 봐. 너희가 나한테 한 짓을 잊었나? 동네 양아치도 너희 같이 더럽게 놀지는 않아, 이 더러운 새끼들아. 자신이 있으면 어디 한 번 죽여 보든가.”

오히려 경일이 목을 길게 빼고는 신화 길드 헌터를 향해 큰소리를 쳤다.

순간, 신화 길드 헌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한 주먹도 안 되는 놈이 면전에서 자신을 모욕하니,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죽여 보라고, 이 새끼야. 왜, 자신이 없어? 좆도 아닌 새끼가 어디서 큰소리야. 하여간 길드장 새끼나, 똘마니나 비열한 게 아주 똑같아!”

경일이 신화 길드 헌터에게 끝까지 이죽거렸다.

그의 말아 쥔 주먹이 벌벌 떨렸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벌겋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그는 치켜뜬 눈으로 경일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눈에서 아주 레이저가 나오겠네. 아이고, 아파라. 눈빛으로 저놈이 날 죽이네. 조금만 더 하면 진짜로 죽겠는걸. 더 노려봐, 병신 새끼들아.”

그동안 싸여 있던 울분을 다 풀려는지, 경일은 온갖 액션을 해 가며 신화 길드 헌터들의 약을 올렸다.

“이 좆만 한 개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진짜 죽고 싶어?”

신화 길드 헌터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검을 빼 들며 소리쳤다.

“죽여 보라고, 새끼야.”

경일이 검을 치켜든 신화 길드 헌터에게 오히려 다가가서 목을 내밀었다.

“여기야, 여기.”

그는 오른손으로 내민 목의 옆 부분을 탁탁 쳤다.

“…….”

“뭐 해? 검을 빼 들었으면 내려쳐야지. 너 여기서 나 못 죽이면, 넌 평생 쪼다 소리 들을 거야. 어서 내려쳐. 왜, 각도가 불편해?”

경일의 몸을 살짝 돌려 목을 더 앞으로 쭉 내밀었다.

“죽어, 이 새끼야!”

신화 길드 헌터가 참지 못하고 경일의 목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이런 미친 새끼가! 무슨 짓이야?”

놀란 신화 길드 2팀장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검은 경일의 목을 자르기 직전에 멈췄다.

그의 목에 가느다란 붉은 실선이 생기더니, 목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경일의 상의가 금방 피로 물들어 갔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경일의 깡다구에 대복 길드 헌터들도 놀랐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고 할지라도, 일반인인 그가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기죽지 않고 큰소리치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네가 아주 기가 살았구나? 그래, 내가 널 죽이지는 못해도 팔다리 하나쯤은 잘라 줄 수 있지. 어디 그러고도 기가 살아 있을지 한 번 보자고.”

신화 길드 헌터는 경일이 전혀 겁을 먹지 않자 약이 올랐다.

그는 검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스톱!”

그때, 대복 길드 헌터가 소리쳤다.

신화 길드 헌터는 그의 흉흉한 기세에 경일에게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끝이다. 우리는 너희 같이 입으로만 허풍을 떨지 않는 건 잘 알고 있지? 어차피 게임은 끝났어. 당사자가 우리에게 오고 싶다고 의사를 표시했잖아. 이제는 너희가 낄 자리가 아니야. 이대로 조용히 물러나라.”

경일이 대복 길드 헌터의 기세에 놀라 발을 멈춘 신화 길드 헌터를 천천히 쳐다봤다.

그의 눈과 입가엔 커다란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경일의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받자, 신화 길드 헌터는 타오르는 것처럼 뺨이 화끈거렸다.

자신의 못난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그는 자신의 무리 속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2팀장님, 어떻게 하지요?”

신화 길드 헌터들은 2팀장의 눈치만 살폈다.

‘씨발, 만약 저 새끼를 뺏기고 이대로 물러서면 난 길드장에게 죽는데. 그럴 바에는 저 얄미운 새끼들을 모두 죽여 버리는 게 훨씬 났지.’

2팀장이 주위의 헌터들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을 받은 헌터들도 화답하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조져 버려!”

2팀장의 외침과 함께 신화 길드 헌터들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급한 마음에 작전이고, 뭐고 없이 무작정 대복 길드 헌터들에게 뛰어들었다.

“죽여! 저 쓰레기들을 모두 죽여 버려!”

대복 길드 헌터들도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챙챙챙!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찢어 발겼다.

“으악!”

싸움이 시작된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려 40명의 헌터들이 서로 얽혀서 목숨을 건 난전이 벌어졌다.

잠깐의 실수로 목숨이 사라질 판에 타인의 비명 따위에 신경을 쓸 여력은 없었다.

그들은 오직 눈앞의 적만을 신경을 썼다.

평소 한두 사람이 다닐 때나 넓어 보이는 도로에서 40명이 한꺼번에 싸우기엔 너무 좁았다.

전쟁 중 유탄이 튀듯 사방에서 적과 아군의 검이 날아왔다.

이곳에서 실력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는데, 동료가 휘두른 검에 걸려 공격이 무산되기 일쑤였다.

바로 옆에서 튄 피가 자신의 얼굴을 적시고, 귀를 찢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날카로운 검이 사방에서 날아와 자신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자신의 몸을 베고 지나간 칼의 반은 동료의 칼이었다.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졌다.

피을 뒤집어쓴 헌터들은 광기에 물들어 갔다.

싸움의 목적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 되어 있었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신화 길드와 대복 길드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 나머지 헌터들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

서걱!

신화 길드 헌터가 휘두른 검이 동료의 허리를 깊숙이 베고 지나갔다.

검에 베인 헌터는 살기 위해 상하좌우, 마치 방탄막을 형성하듯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 여러 명의 헌터들이 벼락을 맞았다.

“으아악!”

“미친 새끼야! 무슨 짓이야?”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살려 줘!”

“헉!”

헌터가 휘두른 검은 그의 사정거리 안에 있던 모든 헌터들의 살과 뼈를 가르고 지나갔다.

동료의 손에 허무하게 죽어 가는 헌터의 눈에는 커다란 원망이 담겨 있었다.

경일은 이 잔혹한 광경을 한발 물러나 담담한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살육의 현장에서 그가 담담할 수 있던 이유는 스탄다비아 때문이었다.

스탄다비아 사람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을 자주 들여다보는 경일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몬스터와의 싸움은 지금의 싸움보다 더욱 악랄했고, 적나라했다.

영지민이 몬스터에게 산 채로 뜯어 먹히던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일주일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은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았지만, 익숙해지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많은 헌터들이 갈려 나갔다.

도로의 경사를 따라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주인을 잃은 팔다리들이 여기저기 흉하게 버려져 있었다.

잘린 단면에서 피가 흘러나오면서 생기로 가득하던 팔다리가 푸석해졌다.

싸움을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서 있는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들은 실력이 좋아 살아남기보다, 바닥에 널브러진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씨팔, 개새끼야! 죽어!”

신화 길드 헌터가 핏발이 가득한 눈을 치켜뜨며 악귀 같은 얼굴로 대복 길드 헌터를 노렸다.

챙, 챙, 챙!

몇 번의 검이 부딪치는 소리 뒤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앞뒤 가리지 않고 대복 길드 헌터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들었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포위해!”

대복 길드 헌터 중 한 명이 소리쳤다.

그의 지시에 따라 다섯 명의 헌터가 이제는 세 명밖에 남지 않은 신화 길드 헌터들을 둘러쌌다.

“썅! 내가 이대로 죽을 거 같아?”

신화 길드 헌터가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소리쳤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그들은 한 명이라도 더 저승에 데려가려고 노력했다.

결국 승리는 대복 길드가 가지고 갔지만, 그들은 겨우 세 명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남은 두 명도 상처가 심한지 서 있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그나마 그들에 비해 멀쩡해 보이는 헌터가 경일에게 다가왔다.

경일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굉장히 사나웠다.

마치 동료들이 경일 때문에 죽었다는 듯이 원망이 가득 찬 눈빛이었다.

순간, 경일이 어이가 없어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그 모습이 기분이 나빴는지 헌터가 검을 경일의 목에 가져다 댔다.

“이 새끼야, 지금 웃었어? 감히 웃었단 말이지? 지금 당장 죽여 줘? 너 같은 새끼 하나 때문에 지금 몇 명이 죽었는지 안 보여? 길드장님은 널 사로잡아 오라고 했지만, 난 여기서 널 죽이고 신화 길드 헌터에게 죽었다고 보고하면 끝이야. 알아들었어, 이 새끼야!”

경일을 협박하는 대복 길드 헌터의 온몸에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칼이 스친 흔적들이 가득했다.

저 많은 상처 중에 하나라도 더 깊었다면 이렇게 멀쩡히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엄청난 운이었다.

“…….”

경일이 아주 작은 소리로 무어라고 이야기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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