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이빨을 드러내다
대복 길드 헌터는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소리가 입 밖으로 제대로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는. 똑바로 말하지 못해?”
대복 길드 헌터가 마치 경일을 죽일듯한 험한 기운을 발산했다.
그의 얼굴은 마치 부모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죽이지 못한 것을 분해하는 듯한 고통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크크크크크크.”
꽉 깨문 이빨 사이로 경일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복 길드 헌터는 자신이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만큼 경일의 입 밖으로 새어 나온 웃음소리가 그의 신경을 강하게 긁었다.
그건 분명 비웃음이었다.
대복 길드 헌터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흥분했다.
“감히 우리를 비웃어? 지금 내가 너를 못 죽일 거 같아?”
“크크크크. 그럼 죽여 봐, 병신아. 아까부터 똥폼만 잔뜩 잡고 있는데, 넌 입으로 싸우냐? 그리고 네가 뭐라도 되는 거 같아? 아~ 나보다 강하니 막 나가도 된다 이거지? 혹시 네 부모도 헌터니? 스물두 살이 되기 전에 대부분 각성하니 헌터가 아닐 확률이 99.99%쯤 되겠네. 네 논리라면 내가 힘이 더 세니 찾아가서 막 협박하고 때려도 되지?”
경일이 방긋방긋 웃으며 흥분한 대복 길드 헌터에 면상에 대고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이야. 왜 나를 원망하지? 원망할 상대를 잘못 찾은 거 아냐? 남의 걸 뺏으러 와 놓고 이러는 건 좀 웃기지 않아? 어릴 때 학교에서 안 배웠어? 도둑질은 나쁜 거라고? 넌 도둑질보다 더한 강도질을 하면서도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해? 내가 약하고 네가 강해서?”
“이 씨발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죽, 죽고 싶어?”
대복 길드 헌터는 터져 나올 거 같은 분노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
그는 경일의 신랄한 비판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자신이 경일을 죽일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긴 했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혼자 살아남았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지금 자신의 동료 두 명이 상처가 심하긴 하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경일을 죽이는 순간, 열일곱 명의 대복 길드 헌터들의 죽음은 개죽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군다나 경일을 죽인 책임을 떠안을 수 있을 만큼의 위치에 있는 이도 아니었다.
그저 만만해 보이는 경일에게 화풀이를 한 거뿐이었다.
이 끔찍한 싸움의 분노를 풀 사람이 필요했을 뿐.
“병신.”
경일이 신랄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죽거렸다.
경멸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며 혀를 찼다.
그 순간, 대복 길드 헌터는 눈이 돌아갔다.
벌레 같은 놈이 계속해서 자신을 무시하자,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진 것이다.
“죽어, 이 새끼야!”
대복 길드 헌터가 더는 참지 못하고 검을 들어 올려 경일의 머리를 향해 내려쳤다.
“안 돼!”
상처를 입은 헌터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분노로 정신 줄을 놓은 헌터는 검을 내려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허억!”
폐부의 깊은 곳에서 토해 낸 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병신 같은 새끼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나마 지금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대복 길드 헌터가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조금 전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지 않았는가.
앞으로 벌어질 일이 떠오르며 눈앞이 깜깜해져 왔다.
안 그래도 다혈질인 길드장이 얼마나 날뛸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운이 좋아야 병신이 되어 쫓겨 날 것이다.
사실, 죽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는 반쯤 나간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여기서 도망칠 궁리만 했다.
괜히 자신이 한 일도 아닌데 같이 날벼락을 맞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한수야, 정신 차려!”
한창 도망갈 궁리를 하던 박한수를 누군가 불렀다.
심한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살아남은 자신의 동료였다.
“이 새끼야, 정신 차리라고!”
그제야 박한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미친 새끼야, 나 말고 앞을 봐! 앞을 보라고!”
“저 새끼는 왜 저래?”
박한수가 투덜대며 다친 몸을 힘들게 일으키며 앞을 봤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경일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친 헌터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40명과의 싸움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헌터가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의 얼굴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핏발이 가득한 두 눈을 부릅뜬 채 갑작스러운 고통에 대비하지 못한 듯 그의 입은 꽉 다물어져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그의 몸에서 차가운 느낌이 감돌았다.
죽은 것이다.
박한수가 눈이 커졌다.
비릿한 웃음을 짓고 서 있는 경일이 귀신처럼 그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칼날이 30㎝ 정도로 보이는 단도가 들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그의 손에 단도가 들려 있자,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죽어야 인물은 살아 있고, 살아야 할 인물이 죽어 있는 지금 이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한수야, 정신 차려! 저놈 헌터다. 지금까지 우리를 속인 거야!”
박한수는 동료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씨발! 감히 우리를 속여?”
박한수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새끼가 있네. 야, 지금 네가 나한테 소리를 지를 때냐? 다쳐서 제 한 몸 간수도 못 하는 새끼가. 어떻게 된 게 너희 길드는 전부 돌대가리냐? 무식한 게 자랑도 아니고.”
“이 씨발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동료가 헌터라고 소리쳤지만, 실제로 경일의 움직임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경일을 죽이려던 동료가 죽어 있었고, 경일이 단도를 들고 있는 게 다였다.
지금도 저놈이 헌터라는 사실이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먹잇감이라고 한 번 뇌리에 박힌 이미지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확실히 무식한 놈들은 직접 몸으로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경일이 인상을 쓰고 단도를 들어 올렸다.
단도에서 오러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헉!”
지금껏 이런 강렬한 마나를 본 적이 없었다.
가끔 TV에서 고레벨의 헌터가 자신의 무기에 마나를 동조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기는 했으나, 저 정도로 진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는 모습에 박한수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에게 정보를 줄 한 놈만 살려 주지.”
경일이 성큼, 크게 발걸음을 뗐다.
“제가 아는 것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박한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자, 그의 동료가 먼저 선수를 쳤다.
경일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헌터의 모습을 내보였다.
박한수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에 그제야 박한수는 현실을 확실히 인식했다.
퍼억!
경일의 주먹이 정확하게 박한수의 턱을 후려쳤다.
박한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360도 회전을 한 뒤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살, 살려주세요!”
순간 혼이 나갈 것 같은 충격에 박한수는 경일을 향해 빌었다.
경일이 빌고 있는 그를 무시하고, 그의 명치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허억!”
박한수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동료는 더는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늦었어, 이 새끼야. 그리고 다음 생에는 기본적인 눈치는 가지고 태어나라.”
경일의 손에는 한 치의 자비도 없었다.
이미 스탄다비아와 동조를 이룬 그는 적의 목숨을 끊는 것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급소에 제대로 파고들었는지 박한수의 눈에서 빠르게 생기가 빠져나갔다.
그는 고통 없이 생을 마감했다.
고통 없이 보내 주는 것이 적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경일의 마지막 호의였다.
경일은 남은 헌터를 어깨에 짊어지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향한 곳은 집 뒤에 있는 산이었다.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린 경일은 깊은 산속에 부상을 입은 헌터를 내려놓았다.
다친 헌터는 경일의 강인함에 겁을 먹었다.
자신이 헌터라고 해도 사람을 메고 한 시간을 달릴 자신은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경일을 업신여기던 마음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이름, 그리고 소속 길드.”
경일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허태윤입니다. 대복 길드 소속입니다.”
“대복 길드라……”
경일은 가볍게 이름을 되뇌었다.
신화 길드만큼 악명으로 유명한 길드였다.
“나를 찾은 목적이 뭐지? 역시 미스릴 때문인가?”
“네?”
허태윤이 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일은 그 모습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욕심 많은 놈이라 부하들에게 얘기하지 않았구나.’
자신의 비밀을 남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나의 존재를 어떻게 눈치챘는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찾았는지 모두 말해 봐.”
경일은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신화 길드야 길드장의 능력으로 찾아왔다지만, 대복 길드는 자신을 어떻게 찾았는지 궁금했다.
“그게… 저도 잘 모릅니다. 모든 건 길드장님의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그쪽을 찾으라는 길드장님의 명이 떨어졌고, 고생고생하며 그쪽이 몰던 차의 번호를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차번호를 추격해 뒷조사했고, 오늘 그쪽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출발하기 전, 길드장님께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럼 내가 던전을 가지고 있다고 것도 모르고 나를 납치하러 온 건가?”
허태윤은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굳이 자신이 모르는 사실을 말해 주는 건, 살려 줄 의사가 없다는 뜻이었다.
납치범이 얼굴을 드러냈다는 건, 반드시 인질을 죽이겠다는 의미인 것처럼.
경일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대가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광산으로 이동을 원하십니까? (Y / N)]
아직 알고 싶은 것이 많아 광산으로 보내는 것은 잠시 미뤄 두었다.
경일은 신화 길드와 대복 길드에 관한 필요한 정보를 몇 개 더 묻고는 허태윤을 던전의 광산으로 보내 버렸다.
그는 빠르게 산에서 내려갔다.
오늘 안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가 찾아간 곳은 신화 길드 본부였다.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4층짜리 신화 길드의 건물은 몇 개의 사무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경일은 건물의 옆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점프해 2층의 창문틀을 잡았다.
다행히 창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어두운 사무실로 몸을 집어넣었다.
복도로 나온 경일은 2층의 사무실 중 불이 켜져 있는 방문 앞으로 조용히 다가가 귀를 바짝 붙였다.
감각을 날카롭게 세운 경일은 사무실 안에서 작은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조용히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명의 남자가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남자의 뒤로 돌아간 경일이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칼을 남자의 목에 갖다 댔다.
남자는 숨이 막힘과 동시에 목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곧바로 눈을 떴다.
“소리치면 죽는다.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떡여.”
남자는 긴장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지금 이 건물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몇 명이지?”
경일이 입을 막고 있는 손에 힘을 풀면서 물었다.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돌아가는 게 그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이야.”
오히려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경일을 협박했다.
“제법인데, 그래.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군. 너 말고도 물을 사람이 많으니 이만 대화를 끝내도록 하지.”
그 순간, 남자가 재빠르게 단도를 들고 있는 경일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경일의 손을 밑으로 당기면서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 한 것이다.
그 순간, 입을 막고 있는 손이 뱀처럼 움직이며 남자의 목을 졸랐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