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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10화 (110/300)

[110화] 게이트는 옥탑방에 있다니까

“커억!”

순간, 엄청난 힘으로 자신의 목을 쪼아 오는 압력에 남자는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순간 놓칠 뻔했어. 이 정도로 강하면 제법 직책 있는 헌터라고 봐야겠지?”

경일은 남자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칭찬했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칭찬하는 듯한 말투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너,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경일이 뜬금없는 말에 남자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말에 놀란 것이다.

“내가 바로 너희가 잡으려는 사람이야.”

경일이 말을 듣고도 남자는 여전히 궁금해했다.

“하여간, 이것들은 한 번 말하면 알아듣지를 못하지. 내가 바로 너희가 괴롭히던 식당 주인이라고.”

경일의 말을 들은 남자의 눈이 커졌다.

“식당 주인은 일반인이라고 들었는데…….”

남자는 목이 졸린 상태로 힘겹게 얘기했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건 너희 생각이고. 이제 내가 궁금한 걸 묻지. 내가 성격이 급한 편이니 빠르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경일이 남자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남자는 그저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네 직책이 뭐지?”

남자가 잠시 머뭇거렸다.

“헉!”

그 순간, 남자의 입이 확 열렸다.

경일이 망설이지 않고 단도의 칼자루로 남자의 옆구리를 후려친 것이다.

남자는 순간 숨이 멎는 고통에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목을 감싸고 있는 경일의 팔에 남자의 모든 체중이 실렸다.

“다시 한번 묻지. 확실하게 말하는데, 이번에는 칼자루가 아닐 거야.”

숨 쉬기도 힘든 고통을 겪고 있던 남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경일에게서 나오는 끈적한 살기가 거대한 뱀이 먹이를 옭아매듯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씨발, 식당 주인이란 놈이 이런 농축된 살기를 뿌린다고? 이게 가능한 일이야? 이 정도면 수많은 사람의 죽인 킬러 같잖아. 분명 충분히 조사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우욱!”

남자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느껴지는 고통으로 인해 신음을 토해 내기 바빴기 때문이다.

경일이 같은 곳을 조금 더 센 강도로 때렸다.

얼마나 아픈지 눈앞에서 번개가 치고 옆구리의 살이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잔머리를 굴릴 만큼 아직 여유가 있다, 이거지? 꽤 아팠을 텐데, 제법이야. 하지만 나의 자비는 이번이 마지막이야. 네 직책이 뭐지? 아 참, 자신이 있으면 거짓말을 해도 괜찮아. 내가 또 감각이 예민해서 거짓말을 귀신같이 알아내거든. 참고로 네가 시험을 해 봤으면 좋겠어. 그래야 미련 없이 네놈의 배때기를 쑤실 수 있잖아.”

경일이 친구에게 대화하듯 아주 가볍게 이야기했다.

자신을 죽인다는 말을 일상 대화처럼 얘기하는 모습에 남자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소름이 돋았다.

조금 전의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공손해졌다.

“나는 1팀장 문태범이다.”

“오~ 처음부터 운 좋게 왕건이를 잡았네. 그동안 내가 운이 없어 너희 같은 쓰레기들에게 심하게 당했잖아. 이제부터 내 운이 트이는 거 보니, 악운이 너희 쪽으로 간 거 같네.”

경일이 아이처럼 싱글거렸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문태범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도 31레벨의 헌터로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정도의 강자였다.

아무리 습격이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제압당한 게 믿을 수가 없었다.

경일의 기척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마치 귀신이 입을 막고 목에 칼을 댄 듯한 기분이었다.

더 웃긴 건, 지금 느껴지는 기세로는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거 같은데, 고양이 앞의 쥐처럼 오금이 저리고 꼼짝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1팀장 정도쯤 되면 모든 걸 알고 있겠네. 그렇지?”

경일은 문태범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얼굴을 들어 올려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한 치의 움직임도 없는 경일의 눈동자가 문태범의 눈동자를 노려봤다.

경일의 단단한 눈동자가 부담스러운지 문태범의 눈동자는 겁을 먹고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진행하자고. 내가 던전을 가지고 있는 걸 아는 놈을 전부 말해 봐.”

문태범이 잠시 망설이는 기미를 보이자, 단도를 쥔 경일의 손이 움찔거렸다.

그 모습을 보자 빠르게 입을 열었다.

“던전? 난 모르는 사실이다. 단지 길드장님의 명령에 따라 일했을 뿐이야.”

경일은 문태범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지 면밀히 관찰했다.

표정이나, 심장박동이 순간적으로 높아진 거로 봐서는 거짓은 아닌 듯했다.

“정말이다. 난 아무것도 몰라. 단지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라고!”

경일이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자 겁을 먹은 문태범이 결백을 호소했다.

문태범은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를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경일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1팀장은 모른다라… 그럼 이 일을 전부 알 만한 사람은 부길드장밖에 없는 건가.”

“아니, 부길드장도 몰라. 그는 단지 직책만 부길드장이고, 길드장님 비서 같은 인물이야. 팀장급보다 더 대접을 못 받는 인물이지. 신화 길드의 넘버 투인 내가 모르면 길드장님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야. 정말이야, 이런 걸로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대단한 비밀도 아니고…….”

문태범은 경일이 묻지 않은 것까지 줄줄이 이야기했다.

“일단은 믿어 주지. 뭐, 어차피 나중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거든.”

경일의 말과 다르게 단도가 문태범의 목을 더 강하게 압박했다.

피부가 칼에 베였는지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피가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헉! 잠깐만 믿어 준다고 했잖아! 잠깐만! 살려 줘! 아는 걸 모두 말했잖아. 왜 이러는 거야!”

문태범은 점점 깊이 들어오는 단도의 느낌에 대경실색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일은 신화 길드의 간부를 살려 줄 생각이 없었다.

이들은 살려줘 봐야 사회에 해악만 끼칠 놈들이었다.

그때, 문태범의 목을 뚫으러 들어가던 칼이 멈췄다.

1㎜만 더 들어갔으면 경동맥이 잘렸을 것이다.

경일이 생각을 바꾼 건, 이곳에 시체를 남겨 두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듯해서였다.

흔적을 남겨 두었다가 또다시 곤란한 상황에 역일 수도 있었다.

[상대가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광산으로 이동을 원하십니까? (Y / N)]

칼끝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서 문태범은 죽음의 공포에 함몰됐다.

한 가지만 더 묻고 경일은 문태범을 던전의 광산으로 보내 버렸다.

오늘 밤에 할 일이 많았다.

문태범에게 마지막으로 물은 건, 건물에 남아 있는 인원과 길드장이 있는 곳의 위치였다.

경일은 혹시 모를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빠르게 길드장실로 향했다.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에 길드장실이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모두 퇴근하고 곽마권만 남아 있었다.

‘아마 내일이면 손에 들어올 던전에 희희낙락하면서 혼자서 축배라도 들고 있겠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떠들썩하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겠지만, 이 사실을 철저히 숨겨야 하는 지금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말이야.

경일은 발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으로 다가갔다.

문손잡이를 잡고 조용히 돌렸다.

비싼 문이라 그런지 문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어떤 새끼야?”

곽마권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크도 없이 자신에 방에 들어온 것에 화가 난 듯했다.

경일이 조용히 문을 닫으며 길드장실에 들어갔다.

“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경일의 모습을 확인한 곽마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아하~ 미리 투항하러 왔나? 그래, 잘 생각했어.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커지긴 하지. 그런데 이 새끼들은 이런 중요한 일을 보고도 하지 않고 진행을 하는 거야? 팀장들이 몇 명이나 현장에 나가 있으면서? 이번 일 마무리하고 제대로 한 따가리 해야겠어. 이것들이 갈수록 해이해지네.”

곽마권은 이제 아예 던전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뻔뻔할 수 있다니.

경일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 이왕 이렇게 왔으니 자리에 앉지.”

곽마권은 경일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자신은 상석에 편안히 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컵에서 위스키의 고급스러운 향이 풍겨 왔다.

“게이트의 위치는 어디에 있나?”

곽마권은 기대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그렇게나 원하던 던전이 드디어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는 사실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동안의 역경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모두 불쾌한 기억들이었는데, 이제는 하나하나가 자신의 훈장 같았다.

이런 어려운 일을 겪어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이 순간이 주는 희열에 온몸에서 짜릿한 전율이 올라왔다.

아마 생을 마칠 때쯤, 이 순간이 그의 인생에 몇 안 되는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되리라.

“게이트의 위치는 내가 사는 옥탑방에 있다.”

경일은 곽마권이 그렇게나 들고 싶어 하던 게이트의 위치를 말했다.

하지만 그의 들뜬 얼굴이 차갑게 식어 갔다.

그와 함께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힘든지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그, 다 쓰러져 가는 옥탑방에 있다고? 이 새끼가 지금 오냐오냐해 주니 감히 나랑 장난을 치려 들어? 이미 게이트가 없다고 조사가 끝난 곳인데? 하~ 씨발. 뭐, 이런 거지 같은 경우가 다 있어.”

곽마권은 길드원들과 겸상도 잘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만큼 권위적인 인간이 벌레보다 못하다 여긴 경일이 자신을 놀리자, 따뜻하던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갔다.

“지금까지 인간적으로 대해 줬더니 주제 파악도 못하고, 감히 벌레 새끼가 사람을 물어?”

곽마권의 몸을 둘러싼 공기가 일렁였다.

그는 경일을 강하게 노려보며 어제 분식점에서 그랬듯이 다시 한번 기세를 일으켜 쏘아 보냈다.

이제는 곽마권의 기세를 참고만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경일은 그의 기세를 받으며 여유롭게 소파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그의 얼굴엔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개새끼가! 설마 헌터였어? 지금까지 우리를 아주 감쪽같이 속였구나!”

곽마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몸을 날려 무기 보관함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그의 판단은 빨랐다.

이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변수였다.

그는 보통 이런 경우엔 몹시 나쁜 결과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상황이 무척이나 부자연스럽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러고 보니 부하들에게 아무런 보고가 없었는데, 헌터인 경일이 이곳에 있다는 건 너무 이상했다.

“제법 눈치가 빠른데? 아무리 개보다 못한 새끼라도 나름 한가락 한다는 건가? 하긴, 그러니 나를 찾을 수 있었겠지.”

“허~ 이런 미친 새끼가. 네가 헌터라고 해서 상황이 바뀔 거 같냐? 지금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나란 걸 잊은 모양이군.”

곽마권은 경일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으나, 크게 걱정을 하진 않았다.

조금 전 둘의 기세가 부딪쳤을 때, 그는 경일의 수준을 대충이나마 파악했다.

생각보다 강하긴 했지만, 저 정도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너 정도 실력으로는 그곳을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했을 건데?”

곽마권으로서는 이 점이 가장 궁금했다.

자신이라도 스무 명이나 되는 헌터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올 자신이 없었다.

그런 곳을 상처 하나 없이 빠져나왔다는 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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