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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11화 (111/300)

[111화] 강함의 척도

“큭큭큭, 궁금해? 나 같아도 궁금하긴 하겠다. 게이트 위치도 말해 줬는데, 숨길 일도 아니지. 사실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지 뭐야.”

“뭐? 동아줄?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해?”

곽마권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당장이라도 경일의 목을 베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동안 경일을 찾기 위해 한 고생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성질이 난다고 해도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며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하여간, 쓰레기 새끼들이 성질만 급해서는.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넌 그 정도의 기본 예의도 안 배웠어? 물론 인성이 똑바른 놈이었으면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경일은 곽마권의 분노의 찬 모습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어 댔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죽고 싶어?”

목을 긁으면서 나오는 목소리가 위협적이었다.

목소리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저런 목소리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안 듣고 싶어? 궁금할 건데? 내가 빠져나왔는데도 부하들이 보고도 안 했으니까. 궁금해 미치겠지? 크크크.”

경일의 곽마권은 부들부들 떨리는 입을 보고 웃었다.

그의 성질대로라면 경일은 벌써 열 번을 죽여도 벌써 죽였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게이트의 위치뿐만 아니라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네가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너를 잡아 고문하면서 물어볼 수도 있다. 단지 조금이라도 빨리 알고 싶어 기회를 주는 것뿐이지. 잘 생각해. 지금의 선택으로 남은 인생이 지옥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곽마권이 화려하게 장식된 칼집에서 검을 뽑았다.

미스릴이 전등 빛을 받아 빛이 났다.

“근데, 지금 정말 이상한 게 하나 있지 않아? 내가 올라오면서 봤는데 이 층은 아무도 없었지만, 3층에는 헌터 두어 명이 대기하는 거 같던데. 이 정도 소란이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자신의 노한 목소리가 작지 않았음에도 어느 누구도 올라오지 않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일반인도 아니고 헌터의 기감이 이렇게 약할 리가 없었다.

“설마 네놈이 모두 죽이고 온 거냐? 아니, 어떻게… 이 건물에 1팀장까지 있었는데. 절대 너 정도 헌터가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을 건데?”

곽마권의 태도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경일과 말을 섞을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글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아마 길드장이 좆같아서 이번 기회에 다들 쌩 까는 거 아닐까? 나 같아도 너 같은 놈 밑에 있기 싫겠다.”

“이 새끼가 감히 나를 놀려? 사지를 모두 끊어도 네놈이 계속 이죽거릴 수 있는지 한 번 보자.”

곽마권은 경일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이 분위기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몇 마디 섞지도 않았는데 마음의 동요가 성난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상대가 실력이 낮아도 이건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대화를 지금처럼 평등한 분위기에서 할 이유는 없었다.

좀 더 편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화를 할 방법이 있는데, 굳이 짜증이 나는 대화를 이어 갈 이유는 없었다.

곽마권은 우선 경일의 오른팔을 잘라 버릴 생각이었다.

분식점에서 경일이 오른손잡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조금이라도 더 고통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경일을 팔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서걱!

무언가가 깔끔하게 잘려 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곽마권의 분노로 불타오르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잘린 건 경일의 팔이 아니라 곽마권이 가장 아끼던 순수 미스릴로 만든 검이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레벨이 낮은 헌터가 고레벨 헌터의 검을 잘라 내다니.

상대의 무기가 최상급이고, 자신의 무기가 최하급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검은 미스릴로 만든 최상급의 무기였다.

만약 던전 금속 중에 아주 희귀하게 발견되는 오리하르콘이나, 아다만타이드로 만든 무기 정도라면 가능할까.

아니, 경일과 자신의 레벨 차를 짐작하면 이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자신의 무기에 상처를 주는 것은 가능해도 깨끗하게 절단을 하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곽마권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칼자루만 남은 검과 경일이 들고 있는 검을 번갈아 보며 침음을 흘렸다.

“너, 너 설마 인벤토리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거냐? 아니야, 아무리 인벤토리 스킬이라고 해도 그 짧은 순간에 검을 꺼낸다고?”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많은 길드원을 뚫고 이곳에 나타난 것부터, 헌터라는 사실도 그렇고, 이런 소란에도 이곳으로 아무도 오지 않는 것까지.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아무것도 없는 경일의 손에 나타난 검이 자신의 검을 수수깡 자르듯 잘라 버린 것이다.

경일을 벌레처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적의와 경계심으로 가득 찼다.

“역시 길드장이라 그런지 제법이네. 이번 공격은 제법 날카로웠어. 조금만 늦었어도 못 막을 뻔했어.”

“분명 네놈을 뒷조사한 내용을 보면 어디에도 헌터라고 의심이 되는 부분이 없었어. 헌터라는 놈이 그런 삶을 산다고? 몬스터 사체 조각이나 만지고, 거지 같은 놈들만 모여 사는 산동네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그런 동네에서 겨우 분식점이나 하는 새끼가 이 정도 수준의 헌터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곽마권은 거의 울부짖다시피 말했다.

“이 새끼야, 조용히 말해. 인성도 좆같은 놈이 잔머리도 졸라 굴려요. 조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새끼가 한순간에 이렇게 찌질하게 굴면 쪽팔리지 않냐?”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무슨 소리를 하긴, 네놈의 의도를 내가 모를 거 같냐?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건, 남아 있는 헌터들을 부르기 위한 수작이잖아. 잘난 척은 오지게 하더니 더럽게 비열하네. 병신 새끼야, 백날 소리쳐 봐라. 그런다고 누가 오겠냐?”

“설마 네놈이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인 거냐?”

곽마권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이 건물에 들어와서 만난 놈은 1팀장 한 놈밖에 없어. 그리고 1팀장은 아직 살아 있어. 내가 마음 같아서는 모두 죽이고 싶은데, 또 흔적을 남기면 너희 같은 하이에나 새끼들이 들러붙을까 봐 참았어.”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큭큭큭, 내가 이 방에 마나로 결계를 쳤거든. 네놈이 아무리 소리쳐도 소리는 이 방을 벗어나지 못해.”

“무슨 헛소리냐? 세상에 그런 기술이 어디 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래, 이 세상에는 없는 기술이 맞긴 하지. 하하하!”

경일은 시원스럽게 웃었다.

지금 그가 펼치는 기술은 마나를 깨닫고 의지를 실을 수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작은 기예였다.

마나를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만큼 작은 공간을 마나로 둘러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기술이었다.

“네놈이 나에게 한 거처럼 나도 시간을 들여 조금씩 오랫동안 잘근잘근 밟아 주고 싶은데, 더 이상 시간이 없어서. 이만 끝내자.”

곽마권은 얼굴에서 진한 땀을 흘렸다.

분명 기세로 봐서는 자신이 레벨이 더 높은데, 어떻게 된 건지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성적으로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외치지만, 마음에서 지고 들어갔다.

경일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은 몸을 움찔거렸다.

“씨발, 네가 이렇게 나를 옭아맸지? 괴로워 미치겠지? 막 도망가고 싶은데, 창도 없는 방에 막힌 기분도 들고. 암담해서 돌아버릴 거 같고, 그러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고.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다고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하고. 아~ 마지막은 말은 빼자. 너도 내가 한 나쁜 짓은 잘 알 테니.”

경일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세를 올렸다.

단전의 마나가 온몸으로 뻗어 나갈수록 그의 기세가 높아졌다.

그와 함께 곽마권의 얼굴은 더욱 핼쑥해져 갔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궁지로 몰아 서서히 목을 조르니 재밌디?”

경일은 곽마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시간이 있었으면 네놈처럼 팔다리를 잘라 충분히 즐겼을 텐데 아쉬워.”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냐? 무슨 괴이한 방법으로 내 칼을 잘랐는지 모르지만, 난 너보다 훨씬 강한 헌터다. 아직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어.”

곽마권은 지지 않으려 배에 힘을 주고 큰소리를 질렀다.

“킄킄킄, 그래. 분명 네놈이 나보다 레벨이 높은 헌터이긴 하지.”

경일이 검을 앞으로 내밀자 오러가 일렁거렸다.

“허억!”

그걸 본 곽마권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자신의 검이 왜 이렇게 허무하게 잘렸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강함의 척도가 레벨이 전부는 아니잖아. 나를 보니 충분히 이해되지?”

조금 전 곽마권의 검을 잘라 낸 건, 순간적으로 마나를 운영한 결과였다.

마나는 경일의 의지대로 빠르게 팔에 모였고, 순간적으로 더 빠르고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했다.

마나는 팔을 통해 미스릴 검에 깃들었고, 그 결과 곽마권의 검이 잘려 나간 것이었다.

마나를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헌터들은 절대 할 수 없는 비기였고, 레벨이 낮은 경일이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곽마권을 이길 수 있는 이유였다.

뒤로 물러서던 곽마원의 등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공간이 없었다.

그는 몸을 숙여 빠르게 하단 태클을 시도했다.

그와 동시에 경일은 검 자루를 망치로 내려치듯 내리찍었다.

“컥!”

곽마권이 입이 벌어지며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태클이 들어오자 경일이 빠르게 검 자루로 곽마권의 척추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찍은 것이다.

그가 반 박자 빠르게 태클을 시도했지만, 내려찍는 검 자루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곽마원은 어깨를 뒤로 젖혀 등 근육을 모아 조금이라도 이 끔찍한 고통을 줄여 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중간에 끊어졌다.

경일의 발이 활짝 열린 곽마원의 턱을 후려 쳤기 때문이다.

“커억!”

곽마원의 입에서 침과 함께 하얀 이빨이 튀어나왔다.

그는 몸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숨이 턱 하고 막혀 왔다.

순간, 머리가 핑 돌고 시야가 암전됐다.

턱이 어긋났는지 턱 근육이 찢어지는 아픔이 온 신경을 지배했다.

곽마원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승부는 싱겁게 끝이 났다.

권마권은 경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는데 반해 경일은 상대를 파악하고 만전의 상대로 싸움에 들어갔다.

거기에다 인벤토리와 마나 연공법이라는 비장의 수를 가지고 있었으니, 애초에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경일은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권마권을 잔인하게 밟았다.

목숨까지 포기하는 상황까지 몰고 간 상대를 쉽게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성질대로라면 곽마권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관대한 처분 같았다.

“아아아아악!”

곽마권이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야 이 새끼야. 너도 한 번 제대로 당해 봐야지.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악랄하게 괴롭히고, 남의 것을 약탈해 가려 했으니 너도 죗값을 치러야지. 이런 날이 오리란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겠지.”

“닥… 닥쳐, 이, 이 새끼야.”

곽마권은 아직 기가 죽지 않았는지 맞으면서도 분한 듯 경일을 노려봤다.

“그래. 이 정도는 버텨 줘야지. 겨우 이거 맞았다고 살려 달라고 빌까 봐 걱정했잖아. 그럼 내가 너무 억울하지 않겠냐? 난 당한 건 최소 열 배로 돌려줘야 성질이 풀리는 사람이야. 내가 목숨을 걸 생각까지 했으니, 넌 제발 죽여 달라고 빌 때까지 괴롭혀 주마.”

경일이 살기를 한껏 드러냈다.

그의 농축한 살기에 곽마권은 경일이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실행할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어느새 경일의 손에는 검이 사라지고 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니…기…미”

곽마권이 몽둥이를 확인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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