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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12화 (112/300)

[112화] 구타

자신에게 앞으로 펼쳐질 일이 명확하게 보였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다.

미스릴로 만든 몽둥이가 곽마권의 몸 이곳저곳을 때렸다.

너무도 아팠다.

맞을 때마다 뼛속 깊이 고통이 전달됐다.

곽마권은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벌레처럼 짓밟히면서 비명까지 지르는 건 그의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묵직한 미스릴 몽둥이는 그런 자신의 의지를 가볍게 깨뜨렸다.

어떻게 열 대까지는 버텨 봤지만, 그 뒤로는 조금씩 꽉 깨문 이 사이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열다섯 대가 넘어가자 이빨을 깨무는 힘이 약해지고 더 이상 비명을 가둬 둘 수가 없었다.

“악, 악, 악, 악, 악!”

경일의 몽둥이질과 함께 리드미컬한 곽마권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그만, 내…가 잘…못했어.”

매 앞에 장사 없다고 곽마권은 죽어도 하기 싫은 말을 하며 간절하게 빌었다.

“아니, 아직 멀었어. 너 같은 새끼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짓밟고 괴롭혔겠냐. 넌 그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즐겼겠지. 분식점에 와서 나를 핍박하면서 네놈이 짓던 미소가 잊히지가 않아. 그리고 말이야. 네가 먼데 내 것을 네 것처럼 말하는 거야? 언제부터 내 것이 네놈 것이 됐지? 내가 살다 살다 네놈처럼 얼굴 두꺼운 놈은 처음 봤어. 어떻게 살면 네놈처럼 뻔뻔해질 수 있는 거지?”

경일은 계속해서 몽둥이질을 이어 갔다.

그의 마음이 아직 안 풀린 것은 곽마권의 사과가 진심이 아닌 걸 알아서였다.

만약 정말 견디기 힘들었으면 광산에 대한 메시지가 떠올랐어야만 했다.

고로 곽마권은 아직 잔머리를 굴리는 중이라는 소리였다.

“그래, 계속 개겨 봐라. 응어리진 마음을 더 풀 수 있으니 나야 더 좋지. 네놈은 특별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광산에 처박아 주지. 성한 몸으로 가야 그나마 적응을 잘할 건데. 알아서 고생길을 택해 주니 나야 아주 좋지. 거기 인간들이 보통 인간 말종들이 아니거든. 그러니 넌 제대로 대접을 받을 거야. 이거 아주 기대가 되는데?”

“이… 이 미… 미친놈이 무… 무슨 헛… 헛소리를 하는 거야?”

곽마권은 경일이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하며 자신을 구타하자 오싹한 느낌과 함께 몸이 움츠러들었다.

구타는 멈추지 않았다.

경일은 일부러 때린 곳을 연달아 때렸다.

“살… 살… 살려 줘.”

효과는 확실했다.

곽마권이 조금 전과 다르게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드디어 항복 선언을 했다.

“제… 제발… 그… 그만 때려. 그냥 죽…여… 줘, 제…발…….”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사정했다.

[상대가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광산으로 이동을 원하십니까? (Y / N)]

그 순간, 경일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경일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부터 맞는 한 대는 영혼이 깎이는 것처럼 아플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이 맞아 근육이 모두 풀린 곽마권의 육체는 몽둥이를 더욱 찰지게 받아들였다.

몽둥이에 실린 경일의 마음이 고스란히 곽마권의 몸에 투영되었다.

“제…에…발, 그…냥… 죽…여…….”

곽마권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다.

이제야 조금 속이 풀린 경일은 그를 던전으로 보내 버렸다.

얼마나 잘 때렸는지 길드장실에는 이빨이 빠지면서 튄 약간의 핏자국밖에 없었다.

경일은 피부에는 상처가 남지 않게 깊숙하게 골병이 들도록 알뜰하게 때렸다.

이빨과 핏자국을 지우고 경일은 창문을 통해 건물을 빠져나왔다.

어둠을 틈탄 경일은 유유히 신화 길드 건물을 벗어났다.

곧바로 그가 향한 곳은 손필견의 집이었다.

이미 대복 길드 헌터로부터 집 주소를 들은 터라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의 집은 조용한 동네의 2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다.

높은 담벼락이 위압감을 뽐내며 정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경일은 CCTV를 피해 담을 넘었다.

정원으로 들어갔을 때, 그를 맞이한 건 향긋한 풀 냄새였다.

잘 정리된 잔디 위로 집으로 향하는 디딤돌이 놓아져 있었고, 군데군데 제각기 다른 모양의 소나무가 우아함을 뽐냈다.

‘듣기로는 무지막지한 놈이라는데, 이런 취미가 있을 줄은 몰랐네.’

경일은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잘 정돈된 정원은 가로질렀다.

그러고는 2층 창문을 향해 점프해 창틀에 매달렸다.

창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손필견은 자신이 고레벨 헌터라는 자만감에 빠져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사실 평범한 도둑이라면 침입하는 순간 헌터의 기감에 금방 잡힐 것이고, 헌터가 침입한다면 창문을 잠그는 것만으로는 방비할 수 없었다.

손필견이 혼자 산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2층의 한 방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혼자 산다고 했으니 손필견이 맞을 것이다.

경일은 천천히 방문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어둠을 틈타 숨어 있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이 경일의 귀를 때렸다.

하지만 검은 애꿎은 허공만 가로질렀을 뿐이다.

손필견은 경일의 기척을 눈치채고 방문 옆에 바짝 붙어 기습했지만, 지구의 어떤 헌터보다 기감이 발달한 경일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경일은 방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방문을 살짝 밀기만 했던 것이다.

손필견이 문을 박차고 나오며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경일은 오른쪽으로 스텝을 밟으며 가뿐히 피해 냈다.

흐릿한 형태만 보이는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하앗!”

손필견이 기합을 넣으면 검을 엑스자로 그었다.

챙챙!

그의 검은 또 다른 검에 막혀 전진을 멈추었다.

검과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는 짧은 순간,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손필견은 170㎝ 정도로 어깨가 떡 벌어진 장사 체형이었다.

잘 발달한 가슴 근육이 터져 나올 듯이 꿈틀거렸다.

굵은 목에 어울리는 각진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치켜뜬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손필견의 공격은 그의 성격대로 거침이 없었다.

듣던 대로 그는 일단 입을 굳게 다문 채 무조건적인 공격을 이어 나갔다.

챙챙챙챙!

자신감 있게 휘두른 검이 연신 막혔다.

분명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공격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막히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잡생각을 날려 버리고 적의 몸을 두 동강 내기 위해 더욱 강한 공격을 이어 나갔다.

2층 거실에 있던 물건들이 검에 쓸려 반토막이 났다.

손필견은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한 호흡에 거의 스무 번이 넘는 칼질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귀신이랑 싸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적은 그 빠른 공격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냈다.

조금씩 숨이 가빠 오기 시작했다.

숨을 쉴 타이밍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오히려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뛰어들며 체중을 실어 수직으로 내려친 칼을 상대가 큰 동작으로 피하는 순간, 재빨리 숨을 들이마셨다.

“컥!”

하지만 공기가 막 폐로 들어가려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 옆구리에 들어왔다.

적의 발끝이 정확하게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폐로 들어오려던 산소가 멈추며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가장 취약한 순간에 상대의 공격을 허용했다.

순간, 아찔함에 살짝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손필견이 어둠에서의 싸움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선공이었다.

싸움에서 선공은 아주 중요했다.

주도권을 자신의 쪽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아주 효과적인 수였다.

더군다나 그런 선공이 어둠 속의 기습적인 공격이라면 상대를 손쉽게 제압할 수가 있을 거라 여겼다.

비장의 한 수가 들어가지 않아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싸움에 이골이 난 헌터답게 곧바로 날카로운 찌르기로 연결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을 노리고 침입한 적이니 적은 자신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분명 자신보다 낮은 레벨의 헌터임에도 습격을 감행한 것을 봐서는 분명 자신을 제압할 스킬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둠이라는 의외의 상황을 만들어 적의 비장의 한 수를 봉쇄할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은 얼추 들어맞았다.

경일이 아닌 다른 헌터였으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상대는 경일이었다.

지구의 어떤 헌터보다 기감이 뛰어난 경일에게 어둠은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손필견이 어둠에 갇혀 자신이 가진 기량을 모두 발휘하지 못했다.

경일은 여유로웠다.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릴 정도였다.

만약 손필견이 경일의 표정을 확인했으면 어둠 속의 싸움은 곧바로 그만뒀을 것이다.

경일은 손필견의 수를 읽은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크게 피하는 척을 하며 발끝으로 정확히 갈비뼈가 끝나는 지점을 때렸다.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순간적으로 손필견의 행동이 멈춰졌다.

경일은 재빨리 팔을 뻗어 검을 들고 있는 손필견의 손을 잡아당겼다.

손필견의 몸이 끌려오자, 경일은 정확하게 그의 명치에 니킥을 꽂아 넣었다.

“헉!”

안 그래도 호흡이 불편한 상황에서 명치에 정확히 박힌 니킥은 그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으니 근육에 힘을 줄 수가 없어 말랑해진 근육에 니킥이 정확히 박혔다.

산소가 부족해진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땡그랑!

굵고 거친 손에 쥐어져 있던 검이 힘없이 거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경일은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손필견에게 곽마권의 척추를 내려친 것처럼 검 자루 끝을 척추에 박아 넣었다.

“컥컥컥!”

명치와 등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고통에 손필견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숨통이 막혀 버린 것이 더욱 그를 힘들게 했다.

고통으로 몸이 말리니 더욱 숨쉬기가 힘들었다.

“야, 아프냐?”

손필견은 숨이 막혀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데도 경일이 하는 장난스러운 말에 화가 났다.

‘아프냐니? 지가 때려 놓고 아프다니. 개새끼가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는 물을 뒤집어쓴 고양이처럼 약이 빠짝 올랐다.

“아프냐고.”

목소리 끝의 톤이 아주 약간 올라갔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치는 거냐?”

손필견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짜증을 냈다.

“어쭈? 이게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경일이 발끝으로 손필견의 턱을 돌려 버렸다.

침과 함께 이빨이 뽑혀 날아갔다.

“하여간, 이것들은 하나같이 이 모양이지. 워낙 갑질만 하고 산 놈들이라 그런지,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를 못하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너 누구야? 누가 보낸 놈이야?”

손필견은 턱의 충격에 온몸의 힘이 짝 빠져 버렸다.

뇌가 울려 그는 몸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앞으로 엎어진 그는 볼을 거실 바닥에 붙인 비참한 자세로 가장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나? 분식점 사장. 오늘 네놈 새끼가 날 잡아 오라고 했다면서?”

“너, 너, 그럼, 네놈이 미스릴 던전을 가진 놈?”

손필견의 눈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는 눈은 어느새 탐욕으로 덮여 있었다.

“끙!”

그는 충격이 어느 정도 가셨는지 힘을 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 들고는 경일과 거리를 벌리고 불을 켰다.

“하~ 내가 이런 좆만 한 새끼한테 당한 거야?”

적의 정체를 확인한 손필견은 어이가 없었다.

손필견은 빠르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잡았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텐데도 그는 빠르게 위기를 벗어났다.

놀라운 정신력과 체력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의 먹잇감에 당할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그에게 다시 용기를 주고 투지를 일깨운 것이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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