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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13화 (113/300)

[113화] 싸움

“대단하네. 많이 아팠을 덴데, 그걸 버티다니. 확실히 끝내주는 맷집이야.”

경일은 손필견의 두꺼운 목을 보며 칭찬했다.

“이 새끼야, 내가 당황해서 실수한 거야. 넌 죽었어! 아니지, 죽이면 안 되지. 저놈을 죽일 수가 없다니 좆같네. 아니지, 게이트의 위치만 확인하고 제대로 죽이면 되지.”

“뭐라는 거야? 하, 내가 이런 돌대가리 새끼한테 꼬리를 밟힌 거야? 넌 어떻게 나를 찾았냐?”

“큭큭큭, 내가 운이 좀 좋았지. 내가 이번에 창을 새로 제작하려고 미스릴을 사러 다녔거든. 나 같은 놈이 뭔가를 원하면 자연히 최상급의 물건이 오는 법이거든. 아랫것들이 알아서 챙겨 주니 말이야. 그리고 그게 바로 네놈이 시장에 판 미스릴이었지. 근데, 이걸 한 번 보고 나니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 그래서 여러 암시장을 수소문해서 최상급의 미스릴을 모았는데, 이게 전부 같더란 말이지.”

손필견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채집된 던전마다 색깔이나 순도, 이런 것이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이건 누가 봐도 똑같아서 한 던전에서 생산된 거라 확신했지. 이 정도 양의 미스릴을 채집한 던전이면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거든. 그런데 최근에 던전에서 미스릴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 그리고 이 정도의 양을 암시장에 내다 판다고? 길드나, 제대로 된 헌터라면 절대 팔 리가 없지. 이 정도로 순수한 미스릴은 자기 무기를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절대 팔지 않거든.”

“생각보다 감이 좋은 놈이었네.”

경일은 묵묵히 손필견의 말을 들어주었다.

“거기서 딱 느낌이 오더란 말이지. 이건 좆도 없는 새끼가 운 좋게 보물 같은 던전을 발견해서 돈을 벌려고 한 짓이라는 걸. 변장까지 하고 다닌 걸 봐서는 먼저 찾는 놈이 임자라는 걸. 자연스레 모든 걸 한사람이 은밀하게 판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말이야, 막상 수소문해 보니 미스릴을 판 사람이 여러 명인 거야. 포기하려고 했는데, 내가 워낙 감이 뛰어나잖아. 그래서 더 자세히 알아봤지. 그런데 판 사람의 말투, 키, 나이 이런 게 모두 같더라고. 아무리 변장해도 키나, 체형, 이런 건 못 숨기거든. 그래서 내가 딱 알아냈지. 판 놈도 한 명이란 걸.”

손필견을 천천히 경일이 궁금해하던 것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의 흉포한 성격으로는 절대 이렇게 친절히 설명해 줄 놈이 아니었다.

“설명 잘 들었다. 곰인지 알았더니 여우였네. 하~ 내가 헌터 생활을 해 보지 않아서 생각도 못 한 허점이 있었네. 어쨌든 넌 운이 좋았고, 난 운이 나빴던 거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걸릴 확률이 아주 낮은데, 용케도 알아냈어.”

경일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 다 쉰 거 같으니 2차전을 시작해야지.”

“크크크크, 그래. 덕분에 아주 잘 쉬었다. 호흡도 모두 돌아오고 몸이 아주 짱짱해졌다. 네놈의 자만심이 너를 지옥으로 이끌 거다!”

그의 말대로 충분히 회복된 듯 새파랗게 질려 있던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손필견이 검을 앞으로 길게 뻗었다.

키에 비해 팔이 긴 그가 칼을 앞으로 쭉 내밀자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제법이네. 참, 한 가지 더 물을 게 있는데, 내가 던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또 알고 있지?”

“내가 네 친구야? 한 번 운 좋게 기습에 성공했다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구나. 네놈 멱을 따기 직전에 내가 특별히 알려 주마.”

시간을 더 이상 끌 필요가 없어진 그는 경일의 질문을 무시했다.

손필견은 급한 성격대로 곧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뒷다리로 바닥을 밀면서 앞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며 경일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검을 찔러 넣었다.

굵은 몸과는 어울리지 않게 펜싱 선수가 공격하듯 간결하면서 빠른 공격이었다.

직선으로 뻗어진 그의 검이 창처럼 경일의 복부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경일은 급하게 스텝을 밟으며 옆으로 이동해 검을 피했다.

“이야얍!”

손필견이 짧은 기합과 함께 검의 궤적을 힘으로 틀었다.

그의 팔뚝에 지렁이 같은 핏줄이 솟아나더니 찔러 오던 칼이 경로를 바꿔 경일을 향해 다가왔다.

챙!

놀란 경일이 급하게 그의 검을 세워 막았다.

그러나 손필견은 장사였다.

그가 힘을 쓰자 버티지 못하고 몸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경일의 자세가 흐트러지자 손필견은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기회를 잡은 그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경일은 무슨 강한 본능을 가진 맹수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손필견의 본능적인 움직임은 그의 다음 공격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뒤로 빠지는 경일을 따라잡으며 빠르게 검을 사선으로 베었다.

경일이 급하게 상체를 옆으로 눕히며 검을 피해 냈다.

그의 눈앞에 잘린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번 승기를 잡은 그는 마치 태풍과도 같았다.

챙챙챙챙챙챙!

찰나에 수없이 많은 공격이 이어졌다.

손필견은 승기를 놓치지 않게 약간의 손해쯤은 몸으로 때웠다.

곽마권의 싸움과는 양상이 아주 달랐다.

그는 경일을 깔보다 당한 측면이 컸지만, 손필견을 처음부터 전력으로 부딪쳐 왔다.

확실히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헌터와의 싸움은 쉽지 않았다.

손필견의 신체 능력은 경일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 손필견의 공격을 막느라 경일의 몸속에 있는 마나는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경일의 모자란 힘과 스피드를 몸속의 마나가 채워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야. 상대가 체력을 소비하는 것보다 내가 훨씬 많은 마나를 소비하고 있어. 벌써 단전의 반이 비어 버린 느낌이야.’

무표정으로 싸움에 임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급했다.

손필견은 지치지도 않는지 힘을 기반으로 한 강맹한 공격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경일은 그 순간 검에 오러를 일으켰다.

그의 검이 은은한 오러로 넘실거렸다.

경일은 손필견을 검을 자르기 위해 휘둘렀다.

그 순간이었다.

손필견의 검을 베어 버리기 직전, 거짓말처럼 그의 검의 궤도가 바뀌었다.

경일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워워워, 이런 엉큼한 새끼. 레벨이 낮은 놈이 나를 노리길래 분명 숨겨 둔 한 수가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숨겨둔 한 수가 아니라 핵폭탄을 숨기고 있었네. 도대체 무슨 수를 쓰면 검에 그런 엄청난 마나를 응집시킬 수 있는 거지? 고위급 헌터나 가능하다고 알려진 기술을 너 같은 놈이 해내다니. 아주 놀라워.”

손필견이 경일과 거리를 벌리고 놀란 듯이 말했다.

‘이런, 단순 무식한 새끼인 줄 알았는데, 싸움에 천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구나. 아무리 대비를 했다고 해도 그 순간 검의 궤적을 바꾸어 피하다니. 이거… 어려운 싸움이 되겠는걸.’

경일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씨발, 이게 재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네. 길바닥에서 황금을 주웠다고 좋아했더니, 날카로운 가시가 수없이 박혀 있어. 조심히 만지려고 하니, 이게 또 가시에 독까지 발라져 있단 말이지.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게 황금이 아니고 다이아몬드야. 그럼 나는 포기를 못 하지.”

“미친놈. 뭐라는 거야?”

경일이 손필견을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너를 잡으면 던전뿐만 아니라 네놈이 쓰는 기술까지 가질 수 있다는 얘기잖아. 내가 고문은 아주 잘하거든. 아주 내 눈만 바라봐도 오줌을 지리게 만들어 주지.”

“병신 새끼. 이건 스킬이야. 세상에 이런 기술이 어디 있어?”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군. 스킬이든, 아니든 뭐, 특별히 상관은 없어. 난 미스릴이 있는 던전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거든. 그런데 내 감이 네 말이 거짓말이라고 말하네? 넌 포커 치면 안 되겠다.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거든. 내가 아주 지독하게 고문을 해서 거짓말인지 아닌지 밝혀 보지, 흐흐흐. 만약 거짓말이라도 내가 사실로 만들어 줄게. 난 널 절대 죽이지 않을 거야. 대신 매일 죽고 안달이 날 정도로 괴롭혀 주지. 그러니 죽기 위해서는 그 기술을 만들어서라도 알려 줘야 할 거야.”

손필견이 비릿하게 웃으며 경일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씨발, 뇌도 근육으로 되어 있을 거 같은 놈에게 충고를 다 받아 보네. 네가 방금 한 말을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내가 당한 것의 최소 열 배는 돌려주는 사람이거든. 그만 씨부렁거리고 덤벼!”

“하하하, 제법 패기 있네. 많이 지쳐 보이는데,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 아까 나를 기다려 준 보답을 하려고 했는데. 싫다면 뭐, 어쩔 수 없지. 이제 곧 비참한 네 인생의 2막이 열릴 테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열심히 발악하라고!”

손필견이 말을 끝내자마자 공격을 가해 왔다.

그의 칼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경일을 압박해 왔다.

챙, 챙, 챙, 챙!

손필견의 검은 날카로웠다.

길드장이 괜히 길드장이 아니었다.

무식해 보이는 그의 인상과 달리 그의 검은 여우였다.

중간마다 섞인 허초에 경일의 심장은 철렁대기 일쑤였다.

조급해진 경일이 오러를 일으켜 그의 검을 자르려 할 때마다 손필견은 그런 경일을 비웃듯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단전이 비어 갈 때마다 경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헌터로서의 경험이 없는 경일은 자신이 불리해지자 표정을 제대로 숨기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죽어도 인정하긴 싫었지만, 패색은 짙어져만 갔다.

“하하하하! 이거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아주 좋아. 내 인생의 2막은 너와 다르게 아주 화려한 삶이 될 거야. 극과 극의 삶이 뭔지 제대로 보여 주지.”

손필견은 이미 싸움이 끝난 거처럼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경일의 얼굴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경일은 이미 새파랗게 질려 검을 든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손필견은 경일이 너무 겁에 질려 자살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될 판이었다.

“이제 끝내자!”

손필견이 빠르게 경일을 검을 후려쳤고, 그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검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싸움은 끝이 났다.

경일의 패배였다.

손필견이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그를 잡기 위해 다가왔다.

무기도 없이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헌터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경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손필견에 얼굴에 주먹을 뻗었다.

퍽!

경일의 주먹의 손필견의 얼굴을 때리며 제법 큰 소리가 났다.

“씨발, 제법 독종이네.”

손필견은 입속이 터졌는지 이빨 사이가 피로 젖어 있었다.

“본 게임은 나중에 시작하려고 했는데, 넌 안 되겠다. 미리 기를 좀 꺾어 놔야겠어.”

손필견이 경일을 향해 강하게 주먹을 날렸다.

“커억!”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막상 비명을 지른 건 손필견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그의 복부에는 단검이 박혀 있었다.

“니기미, 포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뒷조사를 제대로 안 한 모양이네. 내가 여덟 살에 고아가 돼서 온갖 더러운 꼴은 다 보고 자랐는데, 그까짓 표정 관리 하나 못할까?”

“너, 너, 설마 인벤토리 스킬까지 가지고 있던 거냐?”

손필견은 경일에게 또 다른 비장의 한 수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나를 검에 두르는 기술만 해도 충분히 대단했다.

자신도 이야기만 들었지, 이번에 실제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일 정도였다.

그런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또 다른 스킬까지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 세계의 헌터를 통틀어서 경일과 같은 이가 몇 명이나 될까.

우주의 모든 복이 경일에게 향해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은 실력으로 지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나 분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편에는 맹렬한 질투심이 일었다.

경일은 손필견의 검을 저 멀리 차 버리고는 인벤토리에서 미스릴 몽둥이를 꺼냈다.

검을 만든다면 최소 다섯 개 이상은 만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몽둥이가 경일의 손에 쥐어졌다.

“내가 방금 말했지. 네가 한 말 평생 후회하게 해 준다고. 깨끗하게 죽여 버릴까하고 생각도 해 봤는데, 너 같은 새끼에게는 죽음도 사치야. 너의 인생 2막은 내가 책임져 주지. 평생 음식도 주고. 대신 그 음식을 가지려면 열심히 일해야 할 거야. 아 참, 그리고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미스릴을 평생 만질 수 있으니 아주 행복할 거다, 이 새끼야!”

말이 끝남과 동시의 몽둥이가 손필견의 몸을 후려쳤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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