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시작되는 음모
“감히 어떤 새끼가 내 얼굴에 물을 뿌리는 거야? 죽고 싶어?”
정신을 차린 루드웨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상대를 위협했다.
“병신 같은 새끼가 뭐라는 거야? 페이빈, 가서 물 한 동이 더 떠와.”
“알겠습니다.”
페이빈이라고 불린 남자가 물통에 손을 가져갔다.
“이 미친 새끼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루드웨어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네놈이 누군데?”
그런 루드웨어의 행동이 같잖은지 남자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를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이 동네에서 나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네놈들은 누구야?”
“네가 무슨 유명 인사나 되나?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니? 그 말, 책임 질 수 있어? 만약 너를 모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타나면 네 목을 꺾어 버린다.”
남자가 미소를 띠며 가볍게 말했지만, 말뜻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차가운 미소가 사라지고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은 살벌한 눈빛이었다.
루드웨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려 왔다.
‘이 새끼들은 누구지? 어디서 이런 놈들이 튀어나온 거지? 스탄다비아 치안대인가? 설마 나를 잡으러 온 건가? 지금까지 조용했는데, 왜 하필 오늘이지? 난 이곳에 와서 난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 혹시 나를 죽이러 온 암살자? 그래, 암살자다. 옷도 그렇고, 치안대라고 하기엔 하는 짓이 너무 거칠어. 이것들이 이제 살 만하니까 복수하기 위해 암살자를 불렀구나!’
루드웨어는 이들의 정체를 암살자라고 단정을 지었다.
그동안 자신이 괴롭히던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고용한 암살자가 틀림없었다.
자신의 목을 원하는 이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행해 온 일들을 떠올리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부하들은 대부분 등을 돌렸고, 이제 자신의 처지가 가슴에 확실히 와닿았다.
자신답지 않게 너무 무방비하게 지낸 온 것이 후회되었다.
쏴악!
루드웨어의 머리에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내렸다.
페이빈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루드웨어에게 다시 한번 물을 쏟아 부은 것이다.
“헉!”
루드웨어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껄껄껄!”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며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던 루드웨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떨어 대자, 그 모습을 본 랜튼이 웃었다.
자신이 놀림감이 됐다는 생각에 루드웨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이미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자신 따윈 저들에게 언제든 밟힐 수 있는 작은 벌레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모습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라 생각했더니, 진짜 쥐새끼였네. 나름 쓸 만한 놈인 줄 알았더니, 이거 안 되겠는걸.”
“랜튼 님, 그나마 이놈이 가능성 있는 놈입니다. 이놈이 아니면 이번 일을 할 만한 놈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죠.”
“그런가? 하긴, 이런 촌구석이면 이 정도 쥐새끼라도 쓸모가 있겠지.”
루드웨어는 자신을 두고 하는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설마 암살자가 아닌 건가? 일? 나에게 일을 시킨다고? 그럼 이들은 누구지?’
“정신 차려. 잔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잖아. 우리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본들 네놈이 알 수 있을 리 없잖아. 답답하네. 이런 멍청한 새끼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루드웨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넙죽 젖은 머리를 바닥에 갖다 대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시켜만 주시면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보시기에 제가 많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의 무지렁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습니다.”
“크크크크, 이놈이 나보고 어르신이래.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놈에게 별소리를 다 듣네. 아니지, 이런 하찮은 놈에겐 내가 어른일 수도 있겠네.”
루드웨어는 랜튼이 웃으며 말하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래, 제법 눈치는 있구나. 우리 정체의 정체가 궁금하지?”
랜튼이 칭찬하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분명 자신을 책망하는 목소리가 아닌데, 루드웨어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아닙니다. 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도구는 시키는 것을 행할 뿐, 머리는 없습니다.”
그는 재빨리 말했다.
루드웨어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랜튼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생각보다 영 멍청한 놈은 아니구나?”
랜튼은 결심을 한 듯 가슴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내 그의 발끝에 던졌다.
루드웨어는 주머니 속이 궁금했지만, 이마를 바닥에 붙인 채로 가만히 있었다.
지그시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랜튼이 입을 열었다.
“주머니를 열어 보거라.”
루드웨어가 그제야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헉!”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순간, 이들에 대한 공포가 희석될 만큼 주머니 속의 물건은 황홀했다.
골드였다.
최소 300골드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돈이 들어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액수에 그의 눈이 탐욕이 이글거렸다.
“이건 진행비다. 만약 네놈이 우리가 시킨 일을 해낸다면 이만큼의 돈을 더 주겠다.”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순간,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엄청난 기회가 생겼다.
그 정도 돈이면 왕국의 수도에 자리를 잡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이미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이런 지옥 같은 촌구석에서 자신을 건져 줄 소중한 동아줄이었다.
“혹시 도망갈 생각이면 도망가도 돼. 우리도 이 정도의 거금을 들이는 일인 만큼, 나름 철저히 준비해 놓았거든. 네놈이 도망을 가 주면 우리가 준비한 것을 시험할 수도 있으니, 그것도 괜찮지. 우리야 다른 놈을 찾으면 되니 별 상관은 없어. 대신, 네놈의 살을 한 점 한 점 포를 떠 주지. 절대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 먹는 것도 잘 먹이고. 매일매일 죽지 않게 잘 관리해서 내가 직접 네놈의 살로 포를 떠서 개의 먹이로 줄 거야. 우리 집 개가 죽기 전에는 네놈도 절대 죽지 않을 거야.”
랜튼의 퍼렇게 빛나는 눈에서 뻗어 나온 송곳 같은 살기가 루드웨어의 심장을 질러갔다.
심장을 찔러 오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절… 절대 도망하지 않고, 윽!”
억지로 입을 열던 루드웨어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튀어나왔다.
“랜튼 님, 자중을. 이러다가 일도 하기 전에 죽이겠습니다.”
페이빈이 재빨리 끼어들어 루드웨어의 등을 문질렀다.
그러자 심장을 찌르던 송곳 같은 살기가 자취를 감췄다.
“음~ 내가 흥분했군. 오래간만에 재미난 일이 생길 거 같아 나도 모르게 그만. 뭐, 어쨌든 자신이 있으면 도망가도 된다는 말이야.”
“아닙니다! 절대, 절대 도망가지 않고, 시키신 일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살기만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처음 보는 강자에 루드웨어의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갔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럼 네놈이 할 일을 알려 주지. 총 세 가지야. 첫 번째는 병사들이 쓰는 무기를 하나 구해 오면 돼. 두 번째는 그들이 익힌 마나 연공법을 알아 오고. 세 번째는 비누의 제조법을 알아 오면 돼.”
“알겠습니다.”
루드웨어는 이 일이 쉬운지 어려운지 가늠할 여유가 없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그는 무조건 대답부터 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랜튼은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간은 한 달을 주지.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알겠습니다.”
루드웨어는 이마를 바닥에 대고 대답했다.
엎드린 채 가만히 있던 루드웨어가 고개를 들었다.
한참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아 조심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그들은 언제 떠났는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바닥에 흥건한 물과 주머니가 조금 전의 일이 꿈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루드웨어는 조심히 가죽 주머니를 당겨 품에 안았다.
“흐흐흐흐흐.”
금의 묵직한 무게가 심장에 알싸한 고통이 남아 있음에도 절로 웃음을 만들었다.
스탄다비아에 상인의 거리가 형성됐다.
여러 물품을 실은 상인들의 수레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많은 상인이 들어오자 그들이 쉴 여관과 그들의 여정을 위로해 줄 술집이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이곳에 시장이 형성되고, 이제 많은 영지민들이 이용하는 장소가 됐다.
술집의 한구석을 루드웨어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인 션이 입을 열었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밖에서 만나면 되지, 여기 술집은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션이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그들의 탁자에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여러 가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앞에 놓인 잔에 담긴 빨간빛 술이 영롱하게 빛을 냈다.
“하~ 우리가 많이 쪼그라들긴 했구나. 술집에 오면서 술값 걱정이나 하고 말이야.”
루드웨어가 한탄을 하며 술을 들이켰다.
“캬~”
오래간만에 마시는 고급술이 입에 쩍쩍 달라붙었다.
특유의 향이 입안에 남아 긴 여운을 남겼다.
“뭐,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으니까 말입니다. 안 그래도 요즘 먹고 살기 위해 황무지를 개간한다고 온몸이 다 쑤십니다.”
연한 금발의 테이가 말했다.
그는 눈앞에 놓인 술과 음식이 식욕을 자극했으나, 혹시나 술값을 뒤집어쓸까 걱정이 되어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이 둘은 루드웨어의 부하였다.
루드웨어가 이 둘은 부른 건, 그의 부하 중 그나마 이 둘이 가장 똘똘했기 때문이다.
“넌 농사일이니 남들 눈치를 안 봐도 되잖아. 난 몬스터 지방을 채집하는 일을 하는데 죽겠다, 죽겠어. 사람들의 눈초리가 얼마나 매서운지. 조금만 쉬어도 아주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 이제는 처지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나를 괴롭혀. 지은 죄가 있으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견디는 게 쉽지가 않네. 그나저나 형님도 돈 떨어질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먹고 살려면 슬슬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션이 루드웨어를 걱정스럽게 보며 물었다.
“흥! 죽으면 죽었지, 난 흙이나 만지면서 살 수 없어. 만약 내가 일을 나가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나를 비웃겠어. 고귀한 피를 타고 난 나에게 그런 놈들에게 치욕을 받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돼.”
루드웨어가 비장한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션이 그런 루드웨어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루드웨어는 늘 자신은 고귀한 귀족의 피를 타고났음을 강조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다녔다.
알리사에서는 그의 그런 말이 어느 정도 통하였지만, 여긴 스탄다비아였다.
루드웨어는 알리사의 작은 마을에서나 통할 수준이었지, 몬스터와 매일 싸우며 살아가는 스탄다비아 사람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션은 스탄다비아에서 생활하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한 루드웨어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진 지 오래였다.
“너희는 알리사에서 생활하던 때가 그립지 않아? 내가 이번에 일을 하나 맡았는데, 이번 일만 잘되면 제대로 한몫 챙겨 주지.”
루드웨어는 굳이 직접 이 일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혼자 나설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은 자신을 벌레 보듯이 쳐다봤고, 복수를 위해 이를 갈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 그가 직접 나서면 자연히 주위의 눈길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일이 들통나는 순간 목이 날아갈 거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혼자 해내기엔 그들이 정해 준 기간이 너무 짧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일을 대신해 줄 똘똘한 부하들이 여기 있지 않은가.
굳이 자신이 힘들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은 편하게 앉아서 대부분의 돈을 삼킬 생각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