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작업
“무슨 일입니까?
테이가 연한 금발을 머리 뒤로 넘기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루드웨어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대단한 줄을 잡았어. 세 가지 일을 맡았는데, 그걸 해결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내가 다른 얘들을 제쳐 두고 너희를 부른 걸 고마워해야 할 거야.”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션과 테이가 눈을 반짝이며 루드웨어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일단 이 일은 알려지면 안 돼. 입조심은 기본이야. 알아듣겠어?”
“네.”
“제가 입 무거운 거 아시잖아요.”
그들은 재빠르게 대답했다.
“너희 스탄다비아 병사들의 무기가 특별한 건 알지?”
병사들의 무기 이야기가 나오자 션과 테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포리자는 강철에 대해 최대한 숨기고 싶었지만, 소문이 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도 당연히 병사들의 무기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것들이 기존의 무기에 비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설마 지금… 그 무기를 훔치자는 겁니까?”
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맞아. 대신 많이는 필요 없어. 한 개만 있으면 되지. 한 개만 구하는 건 어렵지 않잖아. 들킬 위험도 없고.”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병사들의 무기를 무슨 수로 훔칩니까? 그들이 무기 관리를 얼마나 철저히 하는지 모릅니까? 아~ 방에만 있다 보니 모를 수도 있겠군요.”
션이 콧방귀를 끼며 루드웨어를 무시했다.
그의 건방진 행동에 루드웨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알리사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행동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저도 병사들의 무기를 훔치는 그런 위험한 일에는 끼고 싶지 않습니다.”
테이까지 반대 의견을 냈다.
루드웨어가 이들보다 이곳의 사정에 어두운 건 사실이었다.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사회생활을 했던 반면, 루드웨어는 계속해서 방에 처박혀 술만 마셨다.
생각지도 못한 둘의 반대에 루드웨어는 당황했다.
션에게 화를 내려던 마음 또한 싹 사라졌다.
이미 말을 꺼낸 이상, 이들을 무조건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하나야, 하나. 그리고 내가 아직 말을 안 했는데, 이 일에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20골드를 주지.”
루드웨어는 진행비로 무려 300골드를 받았다.
더군다나 성공 보수도 300골드나 걸려 있었다.
그는 진행비를 최대한 아껴 골드를 보존할 생각이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으니까.
20골드면 그들이 이 일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다르게 션과 테이의 태도는 심드렁했다.
사실 루드웨어의 제안이 나쁘지는 않았다.
알리사에서 그런 제안을 했으면 이들은 당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스탄다비아였다.
일자리도 풍부하고 수로가 건설되어 편하게 넓은 땅에서 농사도 지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에 20골드라는 돈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루드웨어는 순간 당황했다.
이대로 자리를 파한다면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자신은 현재 정체불명의 집단에게서 감시를 받는 중이었다.
만약 일이 틀어지면 그들은 돈을 회수하고 자신의 목을 베고 사라질 것이었다.
“좋아. 그럼 특별히 성공 보수를 30골드로 올려 주지. 그리고 두 가지 임무가 더 있다고 했잖아. 그것들도 성공할 때마다 30골드씩 주지. 만약 세 가지다 성공한다면 90골드야. 어때? 이제 좀 마음이 동하지 않아?”
루드웨어의 말대로 션과 테이의 태도가 달라졌다.
90골드는 그들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남은 여생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다.
테이가 술집을 한 번 둘러봤다.
그는 이 술집에 들어오면서 한 가지 꿈을 꾸었다.
이런 술집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꿈을 실제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루드웨어가 션과 테이의 반응을 보고는 안심했다.
그들의 얼굴이 상기된 것을 보니, 이제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될 거 같았다.
“두 번째는 병사들이 알고 있는 마나 연공법을 알아 오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은, 비누를 만드는 방법만 알아 오면 돼. 어때, 간단하지? 겨우 이 정도 일로 90골드가 생기는 거야. 대단하지 않아?”
루드웨어는 마치 별거 아니라는 투로 빠르게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했다.
그의 말투를 듣고 있자면 정말 간단한 일로 보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병사들의 무기를 훔쳐 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마지막, 비누의 제조 방법이었다.
이건 애초에 시도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첫 번째랑 두 번째는 병사들이 많으니 어떻게 가능하다고 하지만, 비누의 제조 방법을 무슨 수로 알아냅니까? 비누 공장도 내성에 있고, 누가 일하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걸 어떻게 알아낸단 말입니까?”
션이 회의적으로 이야기했다.
루드웨어도 그 부분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들이 있을 때는 너무 겁이 나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떠나고 가슴이 진정되자 비누의 제조 방법을 알아낸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왜 그들이 600골드라는 엄청난 돈을 걸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진행비 300골드라면 이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으니, 막대한 돈을 쥐여 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루드웨어, 자신의 욕심이었다.
그는 최저의 투자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싶었다.
“그건 좀 더 연구해 보자고. 일이 쉬우면 누가 성공 보수로 90골드나 걸겠느냐 말이야.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활동비도 지급할 생각이다. 일하기 위해서는 돈이 좀 들어가지 않겠어? 일단 10골드를 주지. 어때, 이 정도면 가능할 거 같지 않아?”
테이의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것과 반대로 션의 눈동자는 짙은 의심이 묻어 있었다.
션은 스탄다비아로 넘어오면서 루드웨어에게 크게 실망했다.
루드웨어는 스탄다비아로 넘어오면서 부하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다 같이 모은 돈인데, 그는 대부분의 돈을 혼자 삼켰다.
그 덕에 루드웨어는 일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며 지금까지 지낼 수 있었지만, 자신들은 스탄다비아로 넘어옴과 동시에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션은 사람들의 환멸이 담긴 시선을 견뎌야 했고, 가끔 길을 가다 돌멩이를 맞기도 했다.
그런 자신에 비해 술이나 퍼마시면서 편하게 지내는 루드웨어가 꼴 보기 싫었다.
그런 루드웨어인데 그의 입에서 100골드가 넘는 돈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모르긴 몰라도 뒤에서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숨기고 있을 것이었다.
“활동비 10골드에 한 건당 성공 보수가 30골드라…….”
션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대단한 기회지 않냐?”
루드웨어는 션이 어떤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이미 다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는 작은 가죽 주머니를 하나씩 그들의 앞으로 던졌다.
테이블과 가죽 주머니가 부딪치며 쩔그럭하는 소리가 났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돈이 내는 소리였다.
주머니엔 10골드가 각각 담겨 있었다.
션과 테이는 각자의 앞에 놓인 주머니를 확인하고는 재빨리 품속 깊은 곳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속내는 숨긴 채 즐겁게 술을 즐겼다.
다음 날부터 그들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병사들에게 다가가 호감을 사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하하하, 역시 동생밖에 없어.”
“에이, 뭘요. 형님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고생하는데 당연한 거죠. 많이 드십시오.”
병사는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션이 병사의 옆에서 살살 비위를 맞췄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병사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그가 은밀하게 물었다.
“형님, 그런데 말입니다. 듣자 하니 병사들의 무기가 다른 영지의 웬만한 기사들 무기보다 좋다는 소문이 있던데 말입니다.”
“하하하! 좋지, 그것도 아주 좋지. 내가 영주님께 이걸 받고 나서는 그 무섭던 몬스터가 동네 개새끼처럼 보이더라고. 이런 대단한 무기를 우리 같은 평민에게까지 내려 주시고, 영주님은 정말 대단하시지 않나?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왕국의 어떤 영주들보다 우리 영주님이 제일 대단하신 분이야. 아, 자네는 알리사에서 이주해 왔으니 훨씬 더 잘 느끼고 있겠군.”
“당연하지요. 어휴, 알리사 영주는 인간쓰레기였죠. 자포리자 영주님에 비하면 발가락에 때만도 못한 새끼였습니다. 그놈만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니까요.”
션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이 쓰렸다.
그런 최악의 영주가 자신들에겐 최고의 영주였다.
오히려 자포리자가 다스리는 스탄다비아에 와서는 알리사 때보다 훨씬 각박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저기, 형님. 그렇게 대단한 무기를 저도 하나 구할 수 없을까요? 알리사에서는 그런 걱정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혹여나 몬스터를 만날까 봐 늘 가슴이 졸입니다. 그런 대단한 무기를 하나 가지고 다니면 저도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션은 병사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살짝 흐렸다.
“음…….”
병사는 션의 새까만 속도 모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이 마치 막냇동생을 걱정하는 큰 형님 같았다.
“아마 힘들 거 같다. 이게 워낙 귀한 거라 관리가 철저해. 우리도 자주 점검받고. 이런 대단한 무기가 생겨서 모든 게 좋긴 한데, 대신 그만큼 무기 관리는 철저해. 만약 무기가 망가지면 망가진 무기를 가지고 가야 새 무기로 교환할 수 있거든. 그만큼 귀한 거라 개인이 따로 구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션은 전혀 아쉽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병사를 잘 대접하고 집으로 보냈다.
대취해서 집으로 가는 병사와 달리 션의 정신은 아주 맑았다.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겠는걸. 무기 관리가 저토록 철저하다면, 병사들을 통해 구하는 건 불가능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
션은 병사에게서 무기를 구하는 것은 포기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마나 연공법의 구결을 빼 올 수 있으니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테이도 무기와 마나 연공법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었다.
루드웨어가 성공 보상을 내걸어 둘을 경쟁시켰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스탄다비아의 병사는 모두 기존의 주민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주민들은 아직 스탄다비아에서 적응 중이라 자포리자는 그들 중에서 병사를 뽑지 않았다.
아무런 연줄도 없이 병사와 친해지는 건 쉽지 않았다.
션과 달리 테이는 아직 병사와 친분을 쌓지 못했다.
활동비는 빠르게 줄어가는데, 아직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루드웨어에게 잔뜩 욕만 먹고 있는 중이었다.
션은 테이가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자 마음이 놓였다.
잘하면 루드웨어가 건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일은 자신이 다하는데 루드웨어는 가만히 앉아서 자신보다 몇 배의 돈을 받을 것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됐다.
션은 다음 날 대장간을 기웃거렸다.
무기를 구할 새로운 루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무기를 생산하는 대장간이었다.
션은 농기구를 사는 척 대장간의 물건을 구경했다.
대장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대장장이들이 웃통을 벗어 던지고 뜨거운 강철을 망치로 내려쳤다.
그들의 얼굴은 열로 벌겋게 달아올랐고, 내려치는 망치는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특유의 리듬으로 내려치는 망치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의 잡념이 사라지는 듯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