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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19화 (119/300)

[119화] 오크

이길호는 덩치들의 행패를 보자 적극적으로 경일의 편에 서 주었다.

혹시나 싸움이 붙어 이길호가 곤란한 일을 겪을까 봐 크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마 이길호는 돌봐야 할 가족이 없었다면 분명 직접 맞서 싸웠을 것이다.

그런 이길호의 마음에 힘든 와중에도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아이들은 덩치들이 겁이 나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서 경일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자신과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고, 눈이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고는 했다.

몬스터로 인해 사회가 각박해졌지만, 이곳 산동네에는 아직 따뜻한 사람들의 정이 남아 있었다.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 보니 동네는 더욱 살맛이 났다.

한바탕 난리가 끝나고, 동네 분식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외지 사람들이 오늘의 안주를 사러 왔다가 엄청나게 오른 가격을 본 사람들이 경일에게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경일은 상대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친절하던 경일과 상반되는 모습에 황당해했지만, 그들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주인이 안 판다고 하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일부 손님들이 행패를 부리면 경일은 지체 없이 경찰에 신고했다.

힘으로 밀고 윽박지르려는 손님에게는 은밀히 기세를 흘려 억눌렀다.

이제는 굳이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시비를 걸면 싸우면 그만이었다.

한동안 동네 분식의 앞으로 경찰차가 뻔질나게 찾아들었다.

2만 원짜리가 20만 원이 됐지만, 솔직히 이 가격도 재료나 맛을 생각하면 전혀 비싼 음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파격적으로 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2만 원으로 사 먹던 것을 20만 원을 주고 사서 먹으려고 하니 아까워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가방은 몇십, 몇백 만 원짜리지만, 그들의 뇌리에는 오늘의 안주는 2만 원이라고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포기하고 돌아갔지만, 몇몇 사람들은 끝까지 오늘의 안주를 주문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일은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만들어 주면서 말했다.

“이거, 다음번부터는 40만 원으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뭐라고요?”

경일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은 손님은 이내 삿대질까지 하며 화를 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건 아예 오지 말라는 뜻이었으니까.

대부분은 그대로 돌아갔고, 몇몇의 사람들이 20만 원이라는 가격에도 사 갔지만, 이윽고 정리가 되었다.

외지 사람들이 빠지자 분식점은 안정을 되찾았다.

동네 사람들이 아무 때나 와도 자리가 있었고, 다찌에서 술을 마시는 손님들이 늘어났다.

경일도 한결 여유가 생겨 손님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이미순도 언니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 겨우 집에서 쫓겨나는 것은 막았다.

한동안은 언니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러자 이미순은 이제 친구들을 불러 분식점에서 술을 마셨다.

“까르르!”

이미순과 친구들의 웃음이 분식점을 가득 채웠다.

친구들 또한 이미순의 수다에 밀리지 않았다.

이제야 경일이 원하는 분식점이 되었다.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분식점을 찾는 사람은 무조건 손님이고, 손님이 원하면 무조건 팔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에 박혀 있던 것 같았다.

던전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저녁은 밥 손님보다 술손님이 대부분이었다.

매운탕에 공깃밥을 먹으면 되니 굳이 다른 걸 주문할 필요가 없었다.

경일은 공깃밥을 주문하면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같이 내어 주었다.

“사장님, 저녁에는 전부 오늘의 안주 손님뿐인데, 이러다 망하는 거 아녜요? 가격을 현실적으로 올리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괜찮아. 절대 적자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참, 주아 씨도 일한 지 몇 달 됐으니 월급을 올려 줘야겠다. 그러고 보니 고생 많이 했어.”

“아니에요, 사장님.”

손주아는 손을 휘저으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경일이 자신이 고생한 걸 알아주는 것도 고마운데, 월급까지 인상해 준다고 하자 기분이 좋았다.

“보자, 얼마나 올려 주지… 음~ 장사도 잘되는데, 20퍼센트 인상해 줄게. 주아 씨 생각은 어때?”

“헉~ 20퍼센트나요? 그렇게 많이요? 괜찮은데…….”

“그럼 괜찮지. 네가 한 게 뭐가 있다고 20퍼센트나 월급을 올린다는 말이야. 그래도 얘가 양심은 있네. 알아서 사양도 할 줄 알고… 사장님, 본인이 거절했으니 절대 월급 올려 주면 안 돼요.”

어느새 나타난 이미순은 혀가 꼬여 있었다.

친구들과 한참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귀신처럼 나타나 훼방을 놓고 있었다.

“어머~ 미순이가 술이 많이 취했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집에 가서 자.”

“아얏!”

손주아가 이미순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꼬집었다.

“아파, 이 여시야. 어디서 내숭이야? 사장님, 월급은 절대 올려 주면 안 돼요. 만약 올려 주면 내일부터 1인 시위할 거예요. 제가 얘 소개해 준 거 아시죠? 그러니 저도 분명히 이 문제에 발언권이 있다고요. 이 기집애가 미자 언니에게 무당 이야기를 전부 찔러서 며칠을 들들 볶였어요. 사장님, 고소한 냄새 나죠? 내가 언니한테 얼마나 볶였으면 아직도 몸에서 고소한 냄새가 사라지지가 않아요. 내가 이 좋은 직장에 소개해 준 은혜도 모르고, 이제 이용 가치가 없다고 미자 언니에게 붙어서 말이야. 사장님, 이런 의리 없는 년은 당장 자르세요. 아, 물론 다음 직원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기 저 친구들 보이시죠. 저기서 고르시기만 하면 돼요. 아마 서로 한다고 난리를 칠걸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사장님 취향으로 한 명만 딱 고르세요.”

이미순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치 왕이 중전을 간택하는 상황이 된 듯했다.

“이왕이면 저를 고르셔도 돼요. 사장님이랑 저랑 둘이 같이 서 있기라도 하면 너무 잘 어울린다고 동네 사람들이 난리예요. 한 폭의 그림 같다나요, 호호호호호. 저처럼 이쁘고, 애교 많고, 생활력 강한 이런 여자 어디 없어요. 사장님이랑 딱 천생연분이네. 사장님은 분식점, 저는 미용실. 어머, 생각만 해도 짜릿해요.”

이미순은 술이 올랐는지 처음의 목적은 잊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야, 이 화상아!”

손주아가 참지 못하고 이미순의 통통한 볼을 잡아끌었다.

“호호호, 사장님, 술 취한 진상을 내쫓는 것도 제가 할 일이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 아얏!”

이미순은 손주아에게 힘없이 끌려 나갔다.

떠들썩한 분식점도 마칠 시간이 되니 조용해졌다.

분식점 문을 닫은 뒤에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경일의 집 바로 뒤는 산이었다.

이전에 집을 구할 때 가장 싼 집을 찾다 보니, 산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옥탑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경일이 사는 곳은 늘 조용했다.

빈집도 많았고, 사는 사람들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경일은 옥탑방이 있는 건물의 입구에 도착했지만, 계단을 올라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희미하게 공기를 따라 전해지는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신은 알고 있었다.

‘살기!’

경일이 긴장한 채 주위를 살폈다.

거리 대부분이 어둠 속에 잠겨 있어 눈에 특별히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못사는 동네다 보니 가로등도 몇 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저 멀리 서 있는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하며 경일은 산으로 올라갔다.

그의 손에 어느샌가 꺼낸 검이 들려 있었다.

어둠 속에 스며든 듯 칼날이 묵 빛으로 물들어 은밀하게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경일이 천천히 다가서자 그를 향해 강렬한 살기가 쏘아졌다.

‘정체가 뭐지? 사람이 이토록 강렬한 적의를 드러낼 수도 있는 것인가?’

살기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정체를 모르니 긴장이 배가 됐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어둠에 눈이 익자, 커다란 나무 뒤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물체가 보였다.

마치 스프링이 튀기 전 압축된 것처럼 거대한 몸을 낮춘 채 언제든지 달려들 것 같은 자세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크였다.

TV로만 본 오크와 실물의 오크가 주는 괴리감은 어마어마했다.

오크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주위의 공기가 파르르 떨었다.

커다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험악하게 생긴 얼굴은 상대를 기죽였다.

입 끝에 하늘을 향해 뻗어 나 있는 어금니는 인간의 몸을 광폭하게 씹어 삼킬 거란 걸 예고하는 듯 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히자 살기를 내뿜던 오크가 급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경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크답지 않게 자세를 낮추고, 낮게 나는 제비같이 공기의 결을 따라 재빨리 접근해 왔다.

경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오크와 너무 다른 모습에 순간 오싹했지만, 몸속의 마나를 일으켜 두려움을 날려 버렸다.

오크의 기세를 뚫고 경일도 마주 뛰어나갔다.

그때,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칼날이 경일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경일은 재빨리 검을 세워 오크의 거대한 칼을 막았다.

쩡!

무언가가 여러 갈래로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경일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오크의 체중이 실린 공격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마치 1톤 트럭에 부딪히면 이런 충격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승기를 잡은 오크가 재빨리 경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경일은 빠르게 자세를 다잡았다.

그의 머리를 향해 거대한 칼이 떨어져 내렸다.

쩡!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릎에 커다란 충격이 왔다.

경일의 발이 땅을 파고 들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오크의 힘을 한 번 겪은 경일이었기에 이번에는 별 무리 없이 안정적으로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런 경일과 반대로 조금 전까지 살기등등하던 오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히 이번 공격에 먹이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칼을 막아 내자 놀란 것이다.

경일이 그런 오크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차며 거리를 벌렸다.

“크르릉.”

먹잇감이라고 생각한 경일에게 한 방 얻어맞은 오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런데 녀석은 처음과 다르게 저돌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경일은 그런 오크의 행동에 의아했지만, 녀석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가면 됐다.

달려 나가며 힘을 실어 강하게 검을 내려쳤다.

쩡!

서로의 무기가 부딪친 순간, 오크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녀석은 갑자기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경일은 다급히 오크의 뒤를 쫓았다.

어느새 경일의 손에는 기존에 들고 있던 검이 사라지고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단검을 던졌다.

쏜살같이 날아간 단검은 정확하게 오크의 날갯죽지에 박혔다.

날카로운 미스릴 단검은 칼자루만 남기고 오크의 몸을 뚫고 들어갔다.

“크어엉!”

오크는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양어깨를 뒤로 젖히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경일은 망설이지 않고 계속해서 단검을 던졌다.

푹푹푹!

오크의 등에 단검이 계속해서 박히자, 오크는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오크의 거대한 칼이 바닥의 큰 돌과 부딪히며 깨져 나갔다.

“아하~ 이 녀석, 그래서 도망갔구나. 아까 무기가 부딪칠 때 나는 소리가 이상하다 했더니, 칼에 금이 가는 소리였네.”

오크는 반쯤 부러진 칼을 들어 올리며 위협했으나, 경일은 그다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등에 박힌 단검 때문에 제대로 된 자세를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놈이 뒷산에 숨어 있었다니… 이거 위험한데. 한번 날 잡아 산속을 돌아다녀 봐야겠는걸.”

경일은 인벤토리에서 다시 검을 꺼냈다.

오크는 아무것도 없던 경일의 손에 검이 나타나자, 순간 고통도 잊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손에 차가운 칼자루의 감촉이 전해졌다.

이미 무기를 잃고, 상처를 입은 오크를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검이 휘둘러지자 오크의 목이 반쯤 베어져 덜렁거렸다.

쿵.

소리와 함께 오크의 육중한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경일은 오크의 사체를 인벤토리에 넣어 스탄다비아로 보내 버렸다.

그곳이라면 사체를 활용할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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