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1)
다음 날, 분식점은 여전히 바빴다.
그런데 손님들의 시선이 대부분 TV에 가 있었다.
― 다음 뉴스입니다. 지금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류 몬스터의 습격에 농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 중인데, 그 대책은 없는지 김호수 기자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김호수 기자.
― 네, 현장에 나와 있는 김호수입니다.
― 지금 피해 상황이 어떻게 됩니까?
― 네, 이번 달에만 벌써 열 건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인명 피해 또한 다수 발생하였는데, 열두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이 중상을 입어 총 열다섯 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이번 사건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실제로 소비자물가가 꿈틀대고 있습니다. 농산물의 경우 저번 달에 비해 도매가가 10퍼센트 이상 상승했습니다.
― 안 그래도 어려운 살림이 이번 일로 더욱 힘들어지겠군요. 잔류 몬스터가 일으키는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데,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까?
― 정부는 매년 헌터 협회와 협력해 잔류 몬스터를 처리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 왜 그런 겁니까?
― 아무래도 예산과 인력의 부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정부가 헌터 협회에 지원하는 재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한 헌터들은 힘든 일에 비해 낮은 수당으로 인해 이 일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 그럼 정부가 헌터 협회에 지원하는 재정을 늘려 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 이미 올해의 예산이 정해졌고, 추가 예산의 투입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재정도 좋지 않은 만큼, 이 사태는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 정말 큰일이군요. 이상 김호수 기자였습니다.
“저런, 도시 생활이 힘들어서 시골로 내려가려고 했더니…….”
“요즘은 시골도 힘들어. 옛날처럼 부지런하기만 하면 먹고사는 세상이 아니야. 저 뉴스 좀 봐봐. 재수 없으면 몬스터 먹이로 죽잖아. 참, 김 사장.”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나이가 지긋한 동네 분이 경일을 불렀다.
“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니, 그게 아니고… 농산물 가격이 올랐다고 난린데, 김 사장도 음식 값을 올릴 건지 궁금해서 그래. 뭐, 지금도 워낙 싸서 가격을 올려도 할 말이 없긴 한데, 손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안 올리는 것이 좋지. 김 사장은 이해하지?”
“하하하, 그럼요. 아직은 버틸 만합니다. 한동안은 올릴 계획이 없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고마워, 김 사장. 요즘은 장 봐서 집에서 해 먹는 거랑 여기서 사서 먹는 거랑 별로 차이도 안 나더라고. 그럴 바에야 음식도 대신해 주고, 맛도 좋고, 설거지 거리도 나오지 않는 여기서 먹는 게 나로서는 훨씬 이득이지. 김 사장에게 우리가 항상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알지?”
“네, 그럼요. 맛있게 드세요”
대화를 마친 경일은 바쁜 듯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창 설거지 중이던 그의 머릿속에서 어제 쓰러뜨린 오크가 떠올랐다.
경일이 사는 산동네가 다른 곳에 비해 집값이 저렴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교통이 불편하고, 오르막길을 매일 왕복해야 하고, 생활 시설도 부족하다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산을 등지고 있어서였다.
산이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어제처럼 몬스터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헌터 협회의 게이트 관리부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발생할 게이트를 탐색한다고 해도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가장 많은 인원이 속해 있는 게이트 관리부라고 해도 인원은 늘 부족했다.
한 명이 하루에 탐색할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었고, 일정 주기마다 다시 조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많은 도시를 집중적으로 탐색할 수밖에 없었고, 사람이 없는 곳은 아무래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사람의 눈길을 벗어난 곳에서 게이트가 생기면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이런 이유에서 깊은 산속은 취약 구역일 수밖에 없었다.
더 넓은 구역을 탐색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 중이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이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몬스터는 광기를 드러내고 사람에게 달려들지만, 그중 몇몇 몬스터는 위험해지면 도주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런 몬스터들을 잔류 몬스터라고 불렀고, 현재 가장 큰 골칫덩이로 여겨졌다.
잔류 몬스터는 사람의 눈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었고,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물이나 식물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먹었고, 가끔 먹이가 떨어지거나 인간의 피가 그리울 때면 사람을 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뉴스에 나온 농촌의 습격 사건이나, 어제 경일이 오크를 만난 경우가 이러한 상황에 해당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몬스터들이 산속에 숨어 있으니, 게이트 탐색의 난이도가 더욱 올라간다는 점이다.
몬스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게이트 관리부 직원들은 산속에 들어가는 걸 꺼렸다.
헌터 협회에서 주기적으로 산을 돌아다니면서 잔류 몬스터를 처리한다고 하지만,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는 심심치 않게 일어났으며, 몬스터로 인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는 끝이 없었다.
일부 헌터들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활동했지만, 대부분의 헌터들은 자신의 배만 불리기에 바빴다.
그나마 좁은 국토에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는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넓은 땅덩어리에 인구가 적은 나라는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 * *
치안 대장 윌커슨이 부지런히 영지를 순찰했다.
그가 솔선수범하며 열심히 일을 하자, 그의 부하들 또한 영지의 치안에 더욱 신경을 썼다.
영지민들의 다툼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일을 해결했으며 불법적인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포리자의 뜻에 따라 엄한 벌을 내렸다.
그 덕에 영지민들은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윌커슨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모든 범죄를 예방할 수는 없었다.
그때, 테이와 션은 바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런데 션과 다르게 테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썩어 갔다.
세 가지 일 중 하나도 성공할 확률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다가간 병사들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철저했다.
그들의 분위기로 보아 검을 구한다는 이야기나, 마나 연공법을 알려 달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마찬가지로 비누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 또한 거의 불가능했다.
애초에 비누를 만드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비누를 만드는 공장은 내성 안에 있었고,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션 역시 비누의 제조법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다만, 테이는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지만, 션은 달랐다.
그는 최소한 비누 공장에 다니는 사람을 알아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션이 비누 공장에 다니는 사람을 알아낸 건 순전히 그의 빛나는 잔머리와 튼튼한 다리 덕이었다.
그는 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관찰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 사람이나 살피는 듯했지만,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가 찾는 이는 간단했다.
다른 사람들과 옷차림은 비슷하지만, 유난히 깨끗해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션은 계획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비누부터 하나 샀다.
스탄다비아에는 비누를 파는 상인들이 많아서 하나 정도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약간의 웃돈을 얹어 주고 비누를 구했다.
그날, 그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비누를 사용해서 몸을 씻자 찌든 때가 벗겨지고, 몸에서 나던 악취도 사라졌다.
기분이 상쾌해져서 몸이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그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가격이 비싼 비누이지만, 비누 공장에 다니는 이상 다른 사람들보다 사용할 기회가 많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확실히 더 깔끔한 외모를 가졌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운 것이었다.
대신, 비누 공장 노동자인 이상 옷은 일반 평민과 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종일 거리에 서서 이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았다.
다행히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누가 봐도 다른 사람들보다 얼굴이 뽀얀 사람이 길을 지나갔다.
그 사람은 사르미라는 여성이었다.
션은 며칠간 사르미를 미행해서 사는 곳과 가족 관계 등 많은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내성으로 출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면서 션은 사르미가 비누 공장에서 일한다고 확신했다.
아니, 무조건 맞아야 했다.
루드웨어가 준 기한이 며칠 남아 않았기에 다른 사람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제기랄,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저 여자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잖아. 시간이라도 넉넉하면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도 있겠지만, 이제 시간이 겨우 5일밖에 남지 않았어. 어떡하지?’
션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편, 루드웨어는 요즘 거의 반쯤 미쳐 있었다.
그는 랜튼과 약속한 날이 가까이 올수록 두려움에 떨었다.
그동안 랜튼은 한 번씩 루드웨어를 방문해 그에게 겁을 주었다.
그랬기에 그는 이제 돈보다 자신의 목숨을 걱정할 처지에 몰려 있었다.
“이 새끼야,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지금까지 네놈이 뜯어 간 활동비만 70골드야. 분명 성공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넌 지금까지 결과를 전혀 내놓고 있지 않잖아! 내가 나 혼자만 죽을 거 같아? 죽기 전에 네 목부터 분질러 주마!”
루드웨어는 이성을 잃었는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소리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일수록 션에게 목줄을 잡힌다는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가 아무리 살기를 피우고 협박해도 션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 새끼가 미쳐 날뛰는 것을 보니 엉덩이에 불이 붙었구나. 더 이상 자극하다가는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겠어. 이쯤에서 성과를 하나 던져 줘서 저 새끼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긴 한데… 문제는 얼마를 불러야 할까?’
션은 루드웨어가 약속한 일 하나당 30골드의 성공 보수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루드웨어의 밑바닥까지 이미 다 본 터라 돈을 더 뜯어낼 생각이었다.
다만, 그가 뒤로 얼마만큼의 돈을 감추고 있을지는 자신이라도 도저히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만약 루드웨어가 감당하지 못할 액수를 부른다면, 그는 일을 포기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작은 액수를 부르자니, 그건 또 자신이 곤란했다.
그 사이에서 적당한 선을 찾아야 하는데 정보가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결국 션은 성공 보수의 두 배를 부르기로 결정했다.
이 정도면 루드웨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액수였다.
루드웨어의 욕심으로 봐서는 자신들보다 돈을 적게 가져갈 리가 없으니 아주 합리적인 액수였다.
그리고 하나를 내준다고 해도 아직 패가 두 개나 더 남아 있었다.
이번에 루드웨어가 보여 주는 반응에 따라 다음번에는 더 많은 액수를 받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무기를 가져오겠습니다.”
션의 말에 미쳐 날뛰던 루드웨어가 멈칫했다.
이윽고 오래간만에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역시 네가 해낼 줄 알았어. 얼른 가져오라고.”
“그런데 말입니다.”
션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루드웨어는 낮게 깔린 션의 목소리를 듣자 뒷골이 당겨 왔다.
지금 션의 태도는 누가 봐도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야 이 새끼야, 또 뭐!”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한 루드웨어가 버럭 소리쳤다.
“성공 보수 말입니다.”
“아, 그거? 그거야 무기를 가지고 오면 바로 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는 별거 아닌 션의 요구에 금세 얼굴이 풀렸다.
하지만 션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무기를 빼내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션이 은근히 밑밥을 깔았다.
그의 속내를 짐작한 루드웨어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잠깐 사이에 그의 감정이 여러 번 널뛰었다.
루드웨어가 션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션은 그의 이런 모습을 많이 겪다 보니 이제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30골드는 제가 한 일에 비해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두 배는 받아야겠습니다.”
션의 말이 끝나자마자 루드웨어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