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2)
“이 새끼야, 네가 지금까지 가져간 돈이 얼만지 알고 그딴 소리를 해? 70골드라고, 70골드! 원래대로라면 넌 지금 오히려 나한테 미안해야하는 거야. 네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새끼면 이러면 안 되지!”
‘흥! 양심? 양심은 네놈 새끼가 더 없지. 가만히 앉아서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챙기려는 놈이 할 말은 아니지.’
루드웨어가 거칠게 화를 내며 날뛰었지만, 션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진정 네놈이 죽고 싶은가 보구나!”
루드웨어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핏발이 가득한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당장이라도 검을 내리칠 듯한 분위기를 피웠다.
션은 검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움찔거리기는 했으나, 금방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혔다.
그가 자신을 절대 해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이상, 루드웨어의 행동이 블러핑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션의 예상대로 루드웨어는 검을 쥐고 분한 듯 부들부들 떨고만 있지, 그다음 행동을 하지는 못했다.
루드웨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놈에게 모욕을 당하니 자존심이 상해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알리사였다면 그의 목을 베어도 열 번은 더 베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존심보다 더 소중한 게 자신의 목숨이었다.
루드웨어는 션에게 일을 맡긴 뒤, 마음속으로 그를 수십 번은 죽였다.
결국 참지 못하고 정말로 죽여 버리려고 한 적도 있었다.
션은 정말 줄다리기를 잘했다.
루드웨어가 이성을 잃기 바로 직전까지 그를 몰아붙이다가 멈췄다.
그는 결국 검을 내리고 힘없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항복의 표시였다.
핏발이 가득한 눈으로 션을 쏘아보던 루드웨어는 결국 60골드를 건넸다.
션은 기쁘게 골드를 챙기고 무기를 가져다주었다.
루드웨어는 여전히 분한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뾰족한 바늘로 찌르는 순간 ‘펑’ 하고 터질 것 같았다.
‘너무 약을 올렸나? 고귀한 피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온갖 잘난 척은 다 하더니, 남들보다 약간 강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놈이었네. 이런 놈을 그동안 무서워했다니… 나도 참 한심했군. 그나저나 내 예상보다 더 멍청한 놈이라 잘못하다가는 이 새끼 완전히 눈 돌아가겠는걸. 지금 자기가 화를 낼 때가 아닐 텐데…….’
션은 루드웨어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화가 나서 사라지면 어쩌려고 저러지? 벌써 130골드나 뜯어냈는데, 이대로 도망가 버릴까? 이 정도면 어디 가서도 자리 잡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아니지. 내 인생에 이런 기회가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는데, 이대로 떠나기엔 아쉬워. 마나 연공법까지는 일단 넘기고 생각하자. 최소 60골드 이상은 뜯어 낼 수 있으니까.’
션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루드웨어의 집을 나왔다.
시간은 흘러 루드웨어가 말한 기간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루드웨어는 테이를 통해 션을 계속 집으로 불렀다.
하지만 션은 일부러 가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션은 그동안 비누 제조법을 알아내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아니, 애초에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가정이 있었고, 그런 여자를 꾀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여자라서 접근하는 방법이 제한되는 점도 있었다.
병사처럼 남자라면 술이라도 먹여 볼 텐데, 여자인 이상 이 방법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비누 공장에 다니는 다른 사람을 찾을 여유도 없었다.
일단 션은 생각을 멈추고 루드웨어의 집으로 향했다.
‘크크크크, 병신 같은 놈. 일이 이렇게 흘러갈지 상상도 못 했을 거야.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돈을 삼킬 생각이었겠지. 너는 나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뭐,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일하기 더 좋았지만… 오늘도 왕창 뜯어내 주지.’
션이 오래간만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의외로 루드웨어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그의 눈치를 살폈다.
‘영~ 병신 같은 놈은 아니었네. 지금이라도 흘러가는 분위기를 눈치챈 걸 보니… 하지만 너무 늦었어.’
“여기로 앉지.”
루드웨어는 그답지 않은 짓을 하려니 말과 행동이 어색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션이 잠시 비웃긴 했지만, 얼른 정신을 집중했다.
오늘은 일생일대의 큰돈이 걸려 있었다.
“얼마를 원하지?”
루드웨어가 직접적으로 물었다.
머리로는 션을 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습이었다.
“저번에 받은 돈의 두 배를 원합니다.”
무기를 건네주고 받은 성공 보수가 60골드였다.
션은 지금 무려 그 두 배인 120골드를 말한 것이었다.
루드웨어의 볼이 푸들푸들 떨렸다.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서 화를 참았다.
“좋아. 주지.”
루드웨어의 대답은 120골드나 되는 돈을 순순히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션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20골드는 평생 먹고사는데 걱정이 없을 정도의 큰돈이었다.
단 한 번의 거래로 그는 평생 벌 수 있는 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번 것이었다.
“대신, 비누의 제조법까지 확실히 가져다준다고 약속을 해 줘야겠어. 그럼 120골드에 비누의 성공 보수까지 더해서 주지. 네놈이 이렇게 건방지게 나온다는 건 내 사정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는 거겠지.”
션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놀랍게도 루드웨어는 션의 제안을 받고 더 큰 거래를 제안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루드웨어와의 거래를 끝내려 했는데, 션의 가슴속에서 욕망이 들끓었다.
“비누 제조법을 알지 못하면 마나 연공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래, 이제 숨길 것이 없겠군. 이 일에 내 목숨이 걸려 있다. 약은 놈이니 이미 눈치채고 있겠지. 그러니 네놈이 원하는 돈을 모두 주지. 대신 비누 제조법까지 가져와야 한다. 300골드. 비누 제조법의 성공 수당은 300골드를 주지. 마나 연공법 성공 보수까지 합쳐서 420골드를 주겠다.”
“헉!”
엄청난 돈에 션은 입을 떡 벌린 채 루드웨어를 바라봤다.
그는 한동안 너무 놀라 숨만 색색대었다.
루드웨어가 많은 돈을 감추고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액수는 그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돈에 평정심이 흐트러졌다.
얼른 표정을 수습한다고 했지만, 이미 루드웨어가 보고 난 뒤였다.
한편, 루드웨어는 120골드를 뜯기고 난 뒤 너무나 분해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든 생각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을 번쩍 차렸다.
지금 자신의 감정에 빠져 날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미 테이는 방법이 없다고 이 일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자신의 목숨이 션에게 달려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가 이대로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자신에게 일을 준 랜튼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쳐 물귀신처럼 션의 목숨까지 끌고 갈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죽고 난 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일단 자신이 살고 봐야 했다.
그가 가진 무기는 단 하나, 바로 골드였다.
문제는 얼마의 골드를 베팅 하느냐였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어정쩡하게 베팅 하다 션이 판을 깨고 이대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션의 명석한 머리를 마비시킬 정도의 액수를 불러야 했다.
루드웨어는 자신에게 보장된 금액 모두를 베팅 했다.
일단 목숨이 먼저였고, 목숨이 붙어 있으면 션에게 복수할 길도 보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도박은 성공했다.
돈에 대한 욕심이 결국 션의 눈을 가렸다.
그는 이대로 사라질까 생각도 해 봤지만, 300골드의 유혹은 강렬했다.
션은 이미 돈에 눈이 뒤집혀 있었다.
이로써 최소한 그가 도망갈 걱정은 덜었다.
“일단 120골드를 먼저 주십시오.”
션이 아무리 300골드라는 거금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마나 연공법에 대한 대가는 잊지 않았다.
그러자 루드웨어가 작은 상자를 꺼내 열었다.
누런 골드가 션을 향해 미소 지었다.
션이 상자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루드웨어가 재빨리 그의 손을 향에 칼을 찍었다.
“허억!”
션의 입에서 놀란 비명이 튀어나왔다.
놀라서 감은 눈을 천천히 뜨고 손을 살폈다.
다행히 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손가락 바로 앞에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이 꽂혀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갑작스런 루드웨어의 돌발 행동에 놀란 션이 화를 냈다.
“흥, 네놈의 눈에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이 보였는지 알겠군. 내 조건을 듣고서도 이런 뻔한 수작을 벌이다니… 성공 보수는 한꺼번에 주지. 네놈과 나의 신의는 이미 끊어졌고, 너와 나를 잇는 건 돈뿐이야. 내가 돈이라도 쥐고 있어야 네놈이 헛짓거리하지 못하겠지, 안 그래? 총 420골드다. 이 돈을 가져갈지 말지는 네놈이 결정해.”
루드웨어의 반격에 션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미 420골드란 엄청난 돈을 들은 이상, 지금까지 뜯어낸 130골드가 하찮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마나 연공법은 지금 당장 줄 수 있으니, 120골드는 먼저 가져가겠습니다. 만약 지금 120골드를 주지 않으면 이 거래는 여기서 이만 끝내겠습니다.”
션도 지지 않고 배짱을 튕겼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내가 이대로 죽을지언정 이 이상 네놈이 잘되는 꼴은 못 보지. 그냥 꺼져.”
루드웨어가 션을 향해 광포하게 으르렁거렸다.
그 말을 들은 션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자꾸 눈앞의 120골드라는 엄청난 돈이 그를 잡아끌었다.
더군다나 300골드를 더 벌 수 있었다.
결국 션은 반쯤 일어선 무릎을 다시 주저앉혔다.
“좋습니다. 420골드, 한꺼번에 받죠. 하지만 지금 상자에 있는 돈은 아무리 봐도 420골드가 안 되어 보이는데, 어떻게 준다는 겁니까?”
“내가 네놈들에게 성공 보수를 걸었듯이 나도 세 가지 일을 모두 성공하면 그들에게 300골드를 받기로 되어 있지. 그러니 네놈이 마나 연공법과 비누 제조법만 알아 오면 그 즉시 돈을 받을 수 있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내가 지금 처지에 숨길 것이 뭐가 있겠나? 지금 여기 있는 돈과 네놈들이 지금까지 뜯어 간 돈은 모두 진행비로 받은 돈이야. 난 진행비로 300골드를 받았고, 성공 보수로 300골드를 더 받기로 했지. 물론 실패할 경우 당연히 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네놈이 더 잘 알고 있을 테고, 그들이 나에게 성공 보수까지 한꺼번에 줄 리가 있겠어? 그들에게 받을 성공 보수가 있다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
션은 루드웨어의 말이 사실이라 생각했다.
그가 이 정도의 수작을 꾸밀 정도로 똑똑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루드웨어의 말은 자신이 생각해도 충분히 타당했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진실일 확률이 높았다.
“형님이 중간에 돈을 가로채어 도망을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딨습니까?”
“그건 머리 좋은 네놈이 수를 생각해야지.”
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습니다. 그들과 만나는 약속 장소를 알려 주십시오.”
“이틀 뒤 해가 질 무렵, 바로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그날 내가 사람 한 명을 보낼 테니, 그에게 돈을 주면 됩니다. 그럼 그 사람이 마나 연공법과 비누 제조법이 적힌 종이가 있는 곳을 알려 줄 겁니다.”
“흥! 네놈이 돈만 가지고 도망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어차피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니 나를 믿어야지요. 600골드를 동원할 정도로 큰 세력인데, 그런 곳을 향해 사기 칠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방법이 형님 목숨을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무기와 마나 연공법, 비누 제조법을 받고 그 자리에서 형님을 죽여 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들로서는 칼질 한 번으로 300골드를 아끼는 일인데.”
루드웨어는 션의 말에 동의했다.
어쨌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기 때문이다.
‘너 같은 평민이 나에게 이따위 짓을 하다니… 이 일이 끝나면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다. 지금은 네놈이 이긴 거 같지? 누가 최후에 웃는지 한번 해보자고.’
루드웨어는 마음속으로 잔인한 복수를 다짐했다.
* * *
궂은 날씨였다.
어제보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저 멀리 검회색의 비구름이 한껏 그 위력을 뽐냈다.
“이거, 날씨가 험하겠는걸.”
경일은 매대의 음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비가 올 것 같으니까 어제보다는 양을 적게 하는 게 맞겠지?”
드르륵!
손주아가 분식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앗, 아닌가?”
말하는 도중 날씨가 생각난 듯했다.
“하하하하.”
경일이 웃었다.
“사장님, 안 추우세요? 아무 생각 없이 어제랑 비슷하게 옷을 입었는데 춥네요.”
손주아는 반팔 티만 입고 음식을 준비 중인 경일을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경일은 늘 반팔 차림이었다.
“몸에 열이 많아서 괜찮아.”
사실 마나를 운용하면서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몸이 되었다.
후두두둑!
분식점 입구에 쳐 둔 천막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샌가 비구름의 세력권에 들어간 듯했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많은 비에 거리를 다니던 사람들이 비 폭탄을 맞았다.
“에이, 이게 뭐야. 깨끗하게 빨아서 입고 나온 옷인데…….”
동네 단골 아저씨가 투덜거리면서 분식점으로 들어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