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민서
“어서 오세요.”
“김 사장, 잠시 비 좀 피하고 가도 되겠지?”
“그럼요. 앉으세요.”
경일은 따뜻한 차와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역시 이 동네에서 여기가 제일 편해. 그나저나 오늘은 공쳤네. 일기예보는 역시 믿을 게 못되는 거 같아.”
“얼른 머리부터 닦으세요. 요즘 감기가 독하대요.”
경일의 말에 아저씨는 대충 머리를 수건으로 훔쳤다.
아저씨는 거리에서 작은 행상을 했다.
그렇기에 오늘 같은 날씨에는 장사하기는 힘들 듯했다.
“비가 이리 오고 나면 내일은 추워지겠지. 어휴, 이제부터 또 힘들어지겠네.”
아저씨가 하는 장사의 특성상 날씨가 추워지면 아무래도 매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일은 비를 피하려고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대접했다.
“응?”
커피를 나누어 주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억수 같은 비를 쫄딱 맞고 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나이 드신 분이 고개를 땅에 떨군 채 힘없는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모습이 측은했다.
“감기 드실 텐데…….”
경일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깥을 바라보자, 손주아가 옆으로 왔다.
“어머.”
그녀 또한 할머니를 발견하더니 곧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할머니는 손주아의 손에 이끌려 분식점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비가 그칠 동안 잠시 쉬었다 가셔도 괜찮죠?”
“그럼, 물론이지.”
경일이 재빨리 수건과 따뜻한 차를 가지고 왔다.
손주아는 정성스럽게 할머니의 머리와 몸을 닦아 주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녀가 몸을 닦는데도 아무런 표정 없이 앉아만 있었다.
흐릿한 눈으로 그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할머니가 추우실까봐 분식점의 난방 온도를 높였다.
공기가 따뜻하게 데워졌다
“아시는 분이야?”
“동네 어르신이에요.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니고… 아, 참! 사장님, 민서 아시죠?”
“민서?”
경일은 익숙한 이름이긴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왜, 눈 땡그랗고 주근깨가 있는 아이 있잖아요. 소심해서 말을 잘 못하고, 자주는 아니고 가끔 왔는데… 걔가 사장님 야채튀김을 되게 좋아했잖아요.”
“아, 그 민서?”
경일은 야채튀김이란 말에 아이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부끄럼이 많아서 의사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여서 늘 신경이 쓰이곤 했다.
“그러고 보니 민서가 요즘 잘 안 보이던데?”
“그게 말이죠…….”
손주아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커다란 눈에 슬픔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런 손주아의 얼굴을 본 경일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죽었어요. 열흘 전에…….”
경일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많은 죽음을 겪었지만, 어린아이의 죽음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몬스터에게 당한 거 같아요. 산 입구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어서 아이들이 바닥에 떨어진 밤을 줍고 그랬나 봐요. 민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산에 밤을 주우러 갔다가 그렇게 됐대요… 민서가 할머니랑 둘이서 사는데, 할머니가 밤을 좋아했거든요. 보통은 산 입구까지 몬스터가 내려오는 경우가 없었는데, 하필 그때 몬스터가 나타나서는…….”
경일은 얼마 전에 집 뒷산에서 잡은 오크가 생각났다.
‘제기랄…….’
마음이 아프다 못해 쓰라렸다.
분명 세상의 모든 죽음은 예정된 것이긴 하지만, 아이의 죽음은 달랐다.
예정된 죽음이라고 해도 아이는 그 대상이 되어서는 안됐다.
경일은 가슴속에서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원통하고 안타까운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손주아의 목소리에 경일은 슬픈 감정에 매몰되어 가는 정신을 조금이나마 차렸다.
“어… 괜찮아.”
그는 적당히 얼버무리곤 다찌 뒤로 가서 앉았다.
손주아의 앞에서는 괜찮은 척 했지만, 경일은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다.
아니, 기억에서 지워진 듯했다.
몸에 밴 익숙함에 기대 그저 기계처럼 요리하고 손님을 맞이했다.
다른 손님들은 경일의 상태를 몰랐지만, 몇 개월간 같이 일한 손주아는 그가 얼마나 슬퍼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경일은 야채튀김을 볼 때마다 수줍게 웃으며 맛있게 먹던 민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도 모든 게 자기 잘못 같았다.
던전이라는 큰 혜택을 홀로 차지했고, 스탄다비아는 그를 강한 헌터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 그가 작고 여린 동네 아이 한 명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화가 났다.
오늘 같은 날은 날씨가 나쁜 게 다행이었다.
“주아 씨, 오늘은 날씨도 안 좋고 하니까, 평소보다 일찍 마치자.”
“네, 사장님.”
경일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하는 손주아는 조용히 대답했다.
분식점 간판의 불을 끄고 팻말을 Close로 돌려놓았다.
손주아는 경일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듯해서 조용히 퇴근했다.
불 꺼진 분식점 안에서 경일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한참을 어두운 분식점에 앉아 있던 그는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간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거센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도 없이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비는 금방 경일의 몸을 흠뻑 적셨다.
분식점을 하기 전에는 자신이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첫 손님인 수한이를 시작으로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자신에게 몰려들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어둠이 점점 옅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어둠은 사라지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방심하고 있었다.
아니, 과신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아이들의 웃음은 예전보다 더욱 탐내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쏟는 정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중 자신에게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손주아도 알고 있는 민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비록 사고는 막을 순 없었어도 아이의 이름은 곧바로 기억해야 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아이들의 웃음으로 자신이 살아났으면서 정작 아이의 이름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다니…….
경일의 등이 울고 있었다.
빗물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날씨는 화창했다.
던전에서 마음을 추스른 덕에 경일의 얼굴에 있던 그늘은 많이 줄어 있었다.
이럴 때는 던전과 지구의 시간이 다른 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손주아는 경일이 걱정됐는지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어, 주아 씨. 오늘은 출근이 빠르네?”
그녀는 평소와 같은 경일의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어제와 달리 날씨가 좋은 탓에 손님들은 아침부터 밀려들었다.
경일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서도 때때로 매대에 만들어 놓은 야채튀김에 눈길이 갔다.
혹시나 민서가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하곤 했다.
그때, 수한이가 아이들을 우르르 이끌고 나타났다.
아이들은 매대를 둘러싸며 경일에게 인사를 건넸다.
혹시나 이름을 모르는 아이가 있을까 봐, 얼른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각자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출석 체크에 대답하듯 경일의 말에 모두 씩씩하게 ‘네’라고 대답해 주었다.
모두 이름을 불러 주자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아이들 중 한 명이 엉뚱한 질문을 던져 경일을 곤란하게 했다.
어떤 아이는 떼를 쓰기도 하고, 또 그런 아이를 야무지게 혼내는 아이도 있었다.
경일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던전에서 보낸 삼 일보다 지금 이 순간이 훨씬 더 위로되었다.
배부르게 먹은 아이들이 가고 뒷정리를 하는데, 민서의 할머니가 저 멀리 지나가는 게 보였다.
할머니는 느린 걸음으로 힘없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경일은 다시 마음이 아파져 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할머니가 슬픔을 빨리 극복하기를 빌 뿐이었다.
경일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커다란 물통에 던전의 식물로 끓인 차를 한가득 담았다.
꿈에서라도 민서를 만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담아 할머니께 건넸다.
할머니는 몇 번이나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경일은 억지로 그녀의 손에 물통을 쥐여 주었다.
꼭 마시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할머니가 경일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 뒤로 간간이 어디론가 걸어가는 민서의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처음 봤을 때의 깨끗한 옷은 많이 더러워져 있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던 경일은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장사를 끝내고 손님이 뜸한 시간이었다.
잠시 앉아 쉬고 있던 경일을 누군가가 불렀다.
“저기…….”
매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경일이 매대로 다가가자 민서 할머니가 서 계셨다.
“저기…….”
“네, 할머니.”
소심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민서가 누구를 닮았는지 알 것 같았다.
“야채튀김 두 개만 포장해 주시구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경일은 썰어 놓은 채소를 두고 인벤토리에서 새 채소를 꺼내 썰었다.
그리고 썰어 놓은 것 중 가장 반듯하게 잘린 것만 골라 반죽 물에 넣어 튀김옷을 입혔다.
경일은 평소보다 많은 정성을 담아 야채튀김을 만들었다.
살짝 긴장이라도 한 듯, 그의 미간에 약간의 주름이 잡혀 있었다.
튀겨지는 채소를 집중해서 바라봤다.
튀김이 먹음직스러운 황금빛 색깔이 나오자 얼른 건져 튀김에 묻은 기름을 털었다.
정성껏 튀긴 야채튀김을 포장지에 예쁘게 담아 할머니께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하나를 내밀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지폐의 색이 바래 있었다.
경일은 괜스레 코끝이 찡해져 왔다.
그 뒤로 민서 할머니는 한 번씩 야채튀김을 사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옷은 점점 더 더러워졌다.
옷 끝이 새까맣게 변하고 얼굴 여기저기에 때가 묻어 있었다.
몸에서도 안 좋은 냄새가 났지만, 경일은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주문하는 튀김을 최선을 다해 정성껏 만들 뿐이었다.
“큰일이에요.”
손주아가 할머니에게 야채튀김을 주고 온 경일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
“민서 할머니요. 미순이한테 들었는데, 할머니가 집에 안 들어가신대요. 거리에서 생활하시는 거 같대요. 정신도 약간 흐릿해지시고…….”
경일은 민서 할머니의 옷을 보고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할머니의 말도 처음과 다르게 점점 어눌해졌다.
그런 그녀를 돕고 싶었지만, 경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저기…….”
손주아와 이야기하던 중에 민서 할머니가 다시 오셨다.
“네, 할머니. 어서 오세요. 혹시 뭐 놓고 가신 거 있으세요?”
“아니, 그게 말이죠…….”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경일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손녀가 튀김 중에서 탕수육을 제일 좋아했거든요. 내가 돈이 없어서 많이 사 주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어요. 저기, 미안한데… 지금 삼천 원밖에 없는데, 탕수육 삼천 원어치만 해 줄 수 없을까요?”
경일은 순간 당황했다.
민서 할머니의 삼천 원어치만 해 줄 수 없겠냐는 말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분식점 메뉴에는 탕수육이 없었다.
비록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돼지고기도 준비되어 있으니, 자신이 노력하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맛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경일은 먼저 돼지고기부터 준비했다.
기다란 모양으로 자른 돼지고기를 키친타월로 꼼꼼히 핏물을 닦아 내고 소금과 후추, 맛술로 밑간을 했다.
고기 준비를 끝냈으니, 다음으로는 소스에 들어갈 채소를 손질할 차례였다.
던전 사과의 껍질을 벗겨 알맞은 크기로 썰고, 이어서 오이, 당근, 양파, 피망, 그리고 버섯까지 잘라 소스에 들어갈 재료들의 준비를 끝냈다.
그러고 나서 감자 전분에 달걀 한 개와 돼지고기를 넣고 골고루 섞어 고기에 튀김옷을 입혔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깨끗한 식용유를 냄비에 따로 부어 적당한 온도가 되었을 때, 돼지고기를 넣어 튀겼다.
경일은 평소보다 더 최선을 다해 탕수육을 조리했다.
칼질 한 번에도, 손짓 한 번에도 정성을 담았다.
돼지고기가 튀겨지는 동안 냄비에 물과 함께 양조간장, 케첩, 설탕을 넣고 잘 섞어서 끓였다.
물이 끓어오르자 손질해 둔 채소와 사과를 넣고 중간 불로 끓였다.
채소가 절반 정도 익자 전분 물을 빙 두른 뒤 저어 주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주문한 걸쭉한 소스와 탕수육이 만들어졌다.
경일은 가장 좋은 접시에 탕수육을 담고 가장 좋은 그릇에 소스를 붓고 랩을 감았다.
그리고 새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싸서 할머니께 내밀었다.
민서 할머니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경일이 내미는 보자기를 받았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민서도 사장님이 만든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먹을 때마다 너무 행복하다고 늘 말하곤 했어요.”
할머니는 깊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많이 수척해 있었다.
인사를 하는 할머니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세속의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경일의 가슴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는 떠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깊숙이 절을 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