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23화 (123/300)

[123화] 제법인데

“사장님, 민서 할머니가 보이지가 않아요.”

할머니가 탕수육을 사 간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분식점에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손주아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아마 좋은 곳에 가셨을 거야.”

경일은 고개를 들지 않고 가스레인지 위에서 익어 가는 순두부찌개만 바라봤다.

사실 경일은 처음부터 할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 뒷산에서 몬스터를 잡은 이후로 경일은 꾸준히 산속을 정찰했다.

헌터 협회에 신고도 해 봤지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들도 인력에 한계가 있어서 그런 건지 별다른 조치가 취해진 건 없었다.

이 동네에서 몬스터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렇게 산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어느 날, 경일은 민서 할머니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작은 무덤 앞에 엎드려 계셨는데, 잠이 든 것으로 보였다.

무덤 앞에는 야채튀김이 담긴 그릇이 잔뜩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할머니를 돕기 위해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다.

혹시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쓰러지지는 않을지, 사고라도 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덤에서 잠든 할머니를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할머니에게서는 이미 삶에 대한 애착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할머니를 억지로 민서와 떼어 놓는 게 잘하는 일인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결국 경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음식을 더욱 정성껏 만들고 산속을 돌아다니며 잔류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는 할머니가 탕수육을 사 간 날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분식점을 닫고 민서의 무덤으로 가니 할머니가 무덤을 안고 엎드려 계셨다.

무덤 앞에는 오늘 만든 탕수육이 곱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경일의 눈에서 굵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민서 할머니는 편안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 웃음이 너무 애잔해 마음이 아팠다.

이제 손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할머니의 웃음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경일은 조용히 할머니의 옆에 앉았다.

마음속으로 민서와 할머니가 좋은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빌었다.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테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밀려드는 서글픔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곳에는 별들이 반짝이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경일의 눈에는 한없이 어둡고 적막하게만 느껴지는 밤하늘이었다.

그는 너무나 슬프고 애틋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경일은 미리 준비해 둔 수의를 할머니에게 입히고 입관했다.

민서의 바로 옆에 할머니를 묻은 뒤, 무덤을 만들고 음식을 차렸다.

“할머니, 그곳에서는 민서와 행복하게 사세요.”

절을 하는 경일의 등 뒤로 별똥별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 * *

션은 비누 제조 방법을 알아낼 마지막 방법을 실행했다.

최대한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받으면 이곳을 떠날 생각이기에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션은 루드웨어와 만나기 두 시간 전에 공장에 다니는 여자를 납치했다.

그 뒤는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위협만으로 여자는 비누 제조법을 모두 털어놓았다.

‘고블린 지방을 모아 어디에 쓰나 했는데, 비누의 재료였네. 복잡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간단하군… 간단한 공정으로 이런 대단한 물건을 만들다니… 정말 대단한 발명이야.’

션은 여자를 묶어 두고, 곧바로 루드웨어가 있는 집의 반대쪽 방향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려온 그는 커다란 나무의 바닥을 파서 마나 연공법과 비누 제조 방법을 적은 메모가 들어 있는 상자를 묻었다.

그리고 바람 같이 사라졌다.

약속 시간이 되자 랜튼과 페이빈이 루드웨어의 집에 나타났다.

“그래, 알아내라고 한 건 모두 알아냈어?”

랜튼이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루드웨어는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이번 한 달을 보냈는데, 랜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자, 마음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하지만 절대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네, 모두 알아냈습니다.”

“오호.”

랜튼의 눈이 커졌다.

별다른 기대를 안 했는데, 성공했다고 하자 매우 놀란 얼굴이었다.

‘개새끼, 나를 이렇게 무시해? 우리 집안만 망하지 않았어도 네놈은 내 발바닥을 핥아야 했을 것이다. 두고 보자… 언젠가는 이 굴욕스러운 관계를 뒤집을 날이 올 것이야.’

루드웨어는 증오스러운 마음으로 랜튼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자, 그럼 물건을 보자.”

랜튼은 기대에 찬 눈으로 루드웨어를 바라봤다.

그는 우선 션에게 받은 검부터 꺼냈다.

“음~”

랜튼은 칼을 이리저리 살피며 검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튕겨 보기도 했다.

“기존의 것에 비하면 확실히 단단하네. 이런 강도의 강철은 본 적이 없어. 대단하군. 다 쓰러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영지에서 이런 대단한 무기가 나오다니.”

랜튼은 검을 페이빈에게 넘겼다.

페이빈도 랜튼과 마찬가지로 흥미를 느끼며 검을 관찰했다.

“자, 다음 것도 내놓아야지.”

랜튼은 여전히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전에 돈부터 보고 싶습니다.”

“뭐?”

루드웨어의 갑작스러운 말에 랜튼의 웃는 얼굴에 금이 갔다.

“죽고 싶어?”

언제 뽑았는지 보이지도 않았는데, 검은 이미 루드웨어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헉!”

루드웨어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순간, 션의 말이 떠올랐다.

물건을 넘기면 그들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들은 물건을 받기 전에는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말도 되었다.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간 루드웨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돈을 확인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루드웨어의 말을 들은 랜튼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제법인데, 라고 그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좋아. 거래는 확실한 게 좋지. 만약 나를 실망시키기라도 한다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란 것을 단단히 명심해야할 거야.”

랜튼이 살벌한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가 눈짓을 하자, 페이빈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왔다.

이윽고 상자를 열자 골드의 화려한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자, 여기 돈이 있으니 물건을 가져와.”

“물건은 여기 없습니다.”

“뭐야, 지금 나를 가지고 논 건가? 죽고 싶어?”

“아, 아닙니다. 지금 물건이 있는 곳을 알려 줄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오호, 제법 머리를 굴렸군. 그러니까 돈을 먼저 받고 물건을 넘기겠다는 건데… 시궁창 쥐새낀 줄 알았는데 제법 머리를 썼네?”

그 순간, 방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 사람의 정체는 테이였다.

그를 본 루드웨어의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럴 수가, 둘이 한편이었어.’

이제야 션의 당당한 태도가 이해되었다.

루드웨어는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둘을 경쟁시켰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을 비웃듯이 편을 먹어 버렸다.

‘씨발…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이상했어. 테이가 션에 비해 머리가 떨어질 게 없었는데, 매번 헛발질에 엉뚱한 소리나 하고 말이야. 급기야 포기 선언까지… 이 새끼들, 처음부터 둘이 짜고 나를 엿 먹였구나. 개새끼들… 너희는 내가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루드웨어의 꽉 깨문 이빨 사이로 피가 보였다.

너무 분해서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테이의 심장에 꽂고 싶었지만, 그가 겨우 이성을 유지할 수 있던 건 랜튼의 존재 때문이었다.

“제법 준비를 많이 했구나. 좋아. 결과만 확실하다면 내가 돈을 안 줄 이유가 없지.”

랜튼은 웃으며 테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나 연공법과 비누 제조 방법을 달라는 이야기였다.

테이가 작은 쪽지를 랜튼의 손에 건넸다.

랜튼은 두 가지 비법이 적혀 있다고 하기에는 쪽지의 크기가 너무 작아 의아했지만,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게 뭐지?”

랜튼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기세가 터져 나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수틀리면 그냥 베어 버리겠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그 기세를 견디던 테이가 떨리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그 쪽지에 적힌 장소에 마나 연공법과 비누 제조법이 적힌 상자를 묻어 두었습니다. 저를 돈과 함께 보내 주시면 아무 이상 없이 두 가지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하~ 이런 쥐새끼들.”

랜튼이 일으킨 기세가 금세 가라앉았다.

“제법인데 그래. 시궁창의 쥐새끼가 세운 계획치고는 나름 괜찮았어. 그런데 말이야… 네놈들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라면? 내가 너희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지?”

“뭐,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는 믿어 달라는 말밖에 못하겠습니다. 루드웨어 형님을 인질로 잡아도 상관없습니다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겠지요.”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루드웨어가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큰소리를 쳤다.

둘에게 농락당한 것도 참을 수 없는데 자신을 인질로 잡으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니,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퍼억!

묵직한 소리가 남과 동시에 루드웨어의 허리가 새우처럼 꺾였다.

랜튼이 칼자루로 그의 명치를 때린 것이다.

“켁켁켁!”

루드웨어는 호흡이 힘든지 배를 잡고 바닥에 업어졌다.

테이는 그런 루드웨어를 비릿한 눈으로 한 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장난을 치겠습니까? 여러분들을 적으로 돌리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세운 작은 계략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세 가지 일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성공했습니다. 그러니 믿어 주십시오.”

테이가 랜튼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음~ 제법 똑똑한 놈이네. 시궁창 쥐새끼한테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성공했나 했더니 그 뒤에 이런 놈이 숨어 있었군. 어찌 된 까닭인지 이제야 알겠어. 그래, 좋아. 돈을 주지. 칼자루를 쥔 건 네놈이니까. 페이빈!”

“네.”

“이들에게 돈을 건네.”

“알겠습니다.”

랜튼의 명령을 들은 페이빈이 테이가 타고 온 마차에 돈을 실었다.

그사이 테이는 고통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루드웨어를 협박해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골드를 빼앗았다.

“이놈들, 대단한데? 보아하니 이 새끼까지 탈탈 털어먹은 거 같은데… 이러니 더 믿음이 가잖아.”

랜튼은 오히려 그 모습에 만족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테이가 떠나고 랜튼과 페이빈은 쪽지에 적힌 장소로 갔다.

그곳은 루드웨어의 집에서 거의 두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모두가 떠난 뒤에도 루드웨어는 명치를 맞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는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분한 듯이 악다구니를 썼다.

“감히 고귀한 혈통인 이 몸에게 이런 모욕을 주다니… 이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야. 이 개새끼들, 모두 죽여 버릴 테다! 내가 반드시 네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어! 으아아아악!”

그때, 누군가가 루드웨어가 발광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그의 앞머리를 움켜쥐고 인정사정없이 들어 올렸다.

“아아악!”

갑작스러운 습격에 루드웨어는 다시금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명치에 단단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랜튼에게 맞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얻어맞자, 숨이 막혀 오고 눈앞에 번개가 치더니 곧바로 암전이 밀려들었다.

루드웨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한 마리 벌레처럼 바닥을 기었다.

그때, 테이가 타고 있는 짐마차는 빠르게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차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온몸이 떨려 왔다.

‘됐다, 됐다고. 난 부자야! 이제 이 거지 같은 삶에서 탈출하는 거야. 도시로 나가 떵떵거리며 살 수 있어. 이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우선 목이 좋은 곳에 멋진 술집이 딸린 여관을 여는 거야. 요리를 할 사람을 구하고, 일할 사람도 구하는 거야. 장사는 고용인들이 알아서 할 테고. 그리고 난 여관에서 제일 높은 층의 가장 좋은 방에서 매일 아침 거리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하는 거지.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겠지? 난 그 모습을 보면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거야. 그때 마시는 차는 얼마나 맛있을까?’

테이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 모든 계획을 세운 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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