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성공하기 직전에…
션은 첫날부터 루드웨어의 얄팍한 수를 모두 눈치챘다.
보통의 경우라면 둘이 힘을 합쳐 일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 편이 성공 확률도 훨씬 높을 테니까.
하지만 루드웨어는 각자 따로 일을 시키고 성공 보수도 한 사람에게만 몰아주었다.
이건 자신들을 경쟁시키려는 뻔한 의도였다.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루드웨어의 인간성에 깊은 실망을 하고 있던 션이 그 계획에 동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거기다 루드웨어의 부하들 중 가장 똑똑한 두 사람 중 한 명인 테이이다 보니, 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그의 숨겨진 의도를 단번에 눈치채고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션이 무기를 획득하고, 마나 연공법까지 빠르게 구할 수 있던 건, 모두 테이와 힘을 합친 덕분이었다.
테이가 모는 마차가 나타나자 션이 크게 기뻐했다.
“성공했구나! 잘했어, 우린 이제 부자야!”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션과 테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제 떠나자. 여기에 오래 있어서 좋을 건 없어.”
션은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았다.
이제는 스칸다비아를 빠르게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한 마리의 말이 끄는 짐마차는 테이와 션을 태우고 움직였다.
그들이 지나간 길에는 골드의 무게에 눌린 기다란 바퀴 자국이 남았다.
“이놈들이 제법 머리를 잘 썼어. 일을 맡길 만한 놈이 루드웨어밖에 없었단 말이지. 그래서 난 분명히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면 세상일이란 게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저도 랜튼 님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놈의 목을 치고, 다시 돈을 회수할 생각만 했는데, 그런 멍청한 놈이 몇천, 아니 몇만 골드의 가치가 있는 것들을 모두 빼 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몇만 골드가 뭔가? 마나 연공법은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하지. 왕국에서 큰소리치는 귀족 집안은 모두 자신들의 마나 연공법을 따로 가지고 있어. 더군다나 비누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다 줄지 상상도 안 돼. 이거, 백작님이 우리에게 아주 커다란 상을 내리시겠는걸.”
랜튼과 페이빈은 기대감에 가득 차 테이가 가르쳐 준 장소로 빠르게 말을 몰아갔다.
한참을 달린 끝에 테이가 가르쳐 준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숲이었다.
그중 유독 한 나무가 하늘을 향해 크게 뻗어 있었다.
쪽지에 적혀 있던 장소가 분명했다.
“다 왔군.”
랜튼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무에 다가갔다.
나무 밑에 흙이 뒤집힌 걸로 봐서 누군가가 땅을 팠다가 다시 덮은 듯했다.
페이빈이 재빨리 땅을 파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상자가 보였다.
그들이 속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물건을 확인하려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랜튼이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자, 그 안에는 작은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그는 빠르게 책을 펼치고 내용을 읽었다.
“마나 연공법이 맞다. 비누 만드는 방법도 상세히 적혀 있구나. 푸하하하하하하!”
렌튼은 열광적으로 웃어 댔다.
그의 입꼬리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었다.
“자… 자작님…….”
이 상황과 맞지 않는 페이빈의 긴장된 목소리에 랜튼은 그를 바라봤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제야 랜튼은 웃음기를 거두고 주위를 살폈다.
“이럴 수가!”
랜튼과 페이빈은 어느새 포위되어 있었다.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것으로 보아 모두 정규 기사들로 보였다.
그 수가 적어도 서른 명은 넘어 보였다.
‘이놈들은 누구지? 설마, 그놈들이 우리를 속인 것인가? 아니야… 이미 돈을 받았는데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어. 더군다나 그런 촌놈들이 이 정도의 사람을 동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랜튼은 의아했다.
혹시 스탄다비아의 기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알기론 자포리자의 기사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이들은 제3의 세력이란 이야기였다.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거지? 혹시 칼르니르 놈이 내가 공을 세우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짓인가?’
그는 칼르니르 자작과 앙숙인 관계였다.
자신이 이번 일을 성공시키면 가장 곤란해질 이가 바로 그였다.
‘이런 미친놈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나? 겨우 나와의 악연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조금 전까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목숨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 감정의 갭이 너무 컸다.
마치 하늘을 날다가 그대로 수직으로 땅에 처박힌 기분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강하다…….’
랜튼은 남자를 보는 순간, 상대가 만만치 않은 인물인 걸 눈치챘다.
그의 손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는 강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 정도로 긴장시키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랜튼의 이름이 유명해진 건 다름 아닌 그의 뛰어난 검술 때문이었다.
타고난 재능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노력 또한 게을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을 이토록 긴장시키는 자를 이런 촌구석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칼르니르 자작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고 해도,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인물을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너희는 누구냐?”
랜튼은 바짝 긴장하며 자신의 검을 뽑았다.
늘 촐싹대며 남을 깔보는 듯한 목소리를 내던 것과 달리, 지금은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네놈이야말로 누구지? 누군데 감히 스탄다비아에서 분탕질을 치는 거지?”
남자의 정체는 자포리자였다.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내며 랜튼에게 다가갔다.
“설마… 당신은?”
랜튼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예감이 맞다면, 이 자리가 최악의 상황이 될 거라는 것은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차라리 칼르니르 자작이 보낸 사람들이기를 기원해야 할 판국이었다.
“난 이곳을 다스리는 자포리자 보일이다. 네놈은 누구지?”
“이럴 수가… 어떻게 이곳을 알고 온 거지? 우리의 정체가 드러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지자 랜튼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갔다.
랜튼의 말이 맞았다.
그는 매우 은밀하게 행동했으며, 자포리자가 그의 계획을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곳의 장소를 알아내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자신들도 테이에게 듣자마자 곧바로 이곳으로 오지 않았는가.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이상, 자포리자가 이 장소에 나타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말 그놈들이 배신한 것인가? 그럼 왜 굳이 마나 연공법과 비누 제조법을 넘긴 거지? 설마… 둘 다 가짜라는 건가? 비누 제조법은 이곳에서 진위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마나 연공법은 가짜가 아니야. 평생 마나를 수련한 내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어. 진짜를 주면서 이런 함정을 팔 이유가 있나? 그리고 만약 배신할 생각이었다면 그전에 더 많은 기회가 있었어. 그러니 이런 번거로운 일을 벌이면서까지 배신할 이유가 없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랜튼의 머리는 한없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은밀히 움직였고, 루드웨어조차 자신들의 정체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경일의 존재였다.
경일은 늘 스킬로 스탄다비아를 살폈다.
그는 힘든 표정을 짓던 영지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보는 걸 좋아했고, 스탄다비아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겼다.
지금까지 스탄다비아가 발전하는데 가장 큰 수훈자를 꼽는다면, 그건 바로 경일이었다.
그 사실이 기뻤고, 한편으로는 우쭐거리며 뽐내고 싶기도 했다.
경일이 요즘 가장 즐겨 살펴보는 곳은 상인의 거리였다.
상인의 거리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지금까지 농업만이 존재하던 곳에서 상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일의 눈에 션과 테이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들을 특별하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매일같이 가장 좋은 술집을 드나들었고, 많은 돈을 뿌리고 다녔다.
처음에는 상인이라고 생각했다.
상인이 아닌 이상, 이 정도의 돈을 쓰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스탄다비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관찰한 결과, 그들이 상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경일은 더 자세히 관찰했고, 곧 그들의 목적을 알아낼 수 있었다.
순간, 경일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건 지금으로 말하면 산업스파이였다.
아니, 간첩이었다.
스탄다비아의 기간산업과 무력의 근본을 통째로 유출하는 짓이었다.
그 피해가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을 이들은 오로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었다.
경일은 즉시 이 사실을 자포리자에게 알렸다.
자포리자는 곧바로 이들을 잡아들이려다 이내 생각을 바꿨다.
경일이 매일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이상, 빠져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취약한 부분을 확인하고 보완할 생각을 했다.
경일은 자포리자의 뜻을 존중했고, 매일 얼마나 일이 진행되었는지 알려 주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인 지금, 이들을 잡으러 온 것이었다.
한편, 루드웨어의 집에 나타난 남자는 치안 대장 윌커슨이었다.
그는 자포리자의 명을 받자마자 곧바로 그를 검거했다.
테이와 션도 꿈에 부풀어 스탄다비아를 벗어나려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병사들에게 체포되었다.
이제 이 일의 흑막인 랜튼과 페이빈만 잡으면 됐다.
600골드라는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 것으로 볼 때, 이들이 단독으로 벌인 일은 아닌 걸로 짐작되었다.
이들의 뒤에는 분명 큰 세력이 존재하고 있을 터.
그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자포리자는 롱소드를 뽑아 들고 랜튼에게 다가갔다.
그의 큰 덩치에 비하면 랜튼은 어린아이처럼 작았다.
하지만 그가 내뿜는 기세는 자포리자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 우세했다.
‘스탄다비아에 이렇다 할 정도의 실력자는 없다고 들었는데… 맹수가 한 마리 숨어 있었군. 그래도 다행히 이놈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강한 놈들은 보이지 않는군. 이놈만 제압한다면 충분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겠어.’
랜튼은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자들이 모두 플레이트 아머를 입긴 했지만, 전부 기사는 아니란 사실을 눈치챘다.
그들의 자세와 기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다.
기사는 기껏해야 한 자리 숫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강했지만, 페이빈도 기사 중에서 강자로 이름나 있었다.
가장 강해 보이는 자포리자만 빠르게 꺾을 수 있다면 위험한 상황이긴 하지만 충분히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랜튼은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자포리자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주 무기는 스피드였다.
작은 체격의 그가 다른 사람들을 이길 수 있던 원동력은 날랜 몸놀림과 빠른 검술 덕분이었다.
자포리자는 체격이 큰 만큼 자신의 속도에 반응이 늦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순식간에 자포리자의 품에 파고들었다.
‘됐다!’
유리한 거리를 잡은 이상, 이 싸움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끌고 갈 자신이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의 싸움은 롱소드를 쓰는 자포리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랜튼이 자포리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매서운 오러가 뻗어 나왔다.
그 순간, 자포리자의 롱소드 자루가 손바닥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에 따라 롱소드의 칼날이 크게 원을 그리며 랜튼의 검을 쳐 냈다.
챙!
두 개의 오러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이런!”
대단한 묘기였다.
자신도 검에 인생을 건 기사이기에 방금 동작으로 자포리자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랜튼은 실망했다.
상대가 자신의 스타일을 파악하기 전에 가장 즐겨 쓰던 기술이 막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