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우연히 만난 던전
“뭐야, 설마… 이 게이트를 탐지하지 못했다는 거야? 여기가 산속이긴 하지만, 이 산 입구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고. 그런데도 이렇게 허술하게 일한다는 건가? 하… 이거 산동네라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힘들게 직장을 다닐 때도 다른 건 몰라도 세금은 칼 같이 냈다고. 장사하면서 옛날보다 몇 배의 세금을 내는데도 이런단 말이지… 이것들이 진짜. 만약 부자 동네였으면 철저하게 수색했겠지…….”
씁쓸한 현실에 경일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동네에 따라 차별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게이트 관리부가 노력하고 있지만. 전국에서 생기는 모든 게이트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산과 인력의 부족이었다.
지금도 엄청난 예산을 쓰고 있지만, 게이트의 발생 빈도를 생각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내가 직접 신고를 해? 아냐, 그럼 분명히 나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을 텐데. 그냥 여기 게이트가 있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 버려? 아니야, 그것도 좋은 방법이 아냐. 분명 장난 전화인지 확인부터 한다고 한두 사람만 나오겠지.”
게이트가 등장한 이후로도 장난 전화는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사소한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건 한 통의 전화가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켰다.
장난 전화에 속은 인원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는 바람에 정작 탐지해야 할 장소를 놓쳐 큰 피해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 뒤로 신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원을 확실한 밝혀야 했다.
던전 브레이크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데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거야. 몬스터가 몇 마리 없는 던전이면 몰라도 혹시 규모가 크다면 난리가 나는 거잖아. 이거 참… 게이트 탐지 기계가 없으니 던전의 규모를 확인할 방법이 없네.”
경일이 고민하는 짧은 시간에도 게이트는 변하고 있었다.
파랗던 게이트는 점점 붉은색이 섞이고 있었다.
확실하게 등급을 알기 위해서는 게이트 탐지 기계를 사용해 봐야겠지만, 이럴 경우 F급 던전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던전의 등급이 낮을수록 게이트를 탐지하는 것이 더욱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등급의 던전일수록 게이트가 발산하는 특유의 에너지가 높았고, 반대일 경우에는 에너지가 매우 낮았다.
그러다 보니 일일이 아주 세밀하게 수색해야 했고, 던전 브레이크가 지금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을 때 나오는 몬스터의 수는 던전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보통의 경우 열 마리에서 백 마리 사이의 몬스터가 나오는 경우가 가장 흔했다.
지금 게이트의 상태를 보니 헌터 협회에 신고해서 해결하기엔 이미 늦은 듯했다.
점점 변하는 게이트를 바라보던 경일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네, 사장님.”
핸드폰에서 선호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저 갑자기 일이 생겨 2, 3일 정도 출근 못 할 거 같아요. 재료는 넉넉하게 가져다 놨는데, 혹시 다 떨어지면 그냥 분식점 문 닫고 퇴근하세요. 아뇨,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니고, 급한 볼일이 생겨서 그런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주아 씨한테도 이야기해 주시고… 네네.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경일은 핸드폰을 끊고 크게 심호흡했다.
막상 던전에 들어가려고 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몬스터가 존재하는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에 흥분이 되었다.
100퍼센트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낮은 등급의 던전이란 걸 알고 있으니 자신감이 넘쳤다.
게다가 인벤토리에 무기와 음식까지 모두 구비되어 있으니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경일은 게이트에 몸을 밀어 넣었다.
장롱의 게이트와 느낌이 좀 다를까 하고 생각했지만 똑같았다.
다른 것은 게이트를 통과하고 눈에 들어온 경치였다.
“이게 뭐야. 되게 초라하네.”
자신의 던전에 비하면 무척이나 볼품이 없었다.
사실 어떤 던전이든 자신의 던전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던전은 아름다웠다.
이곳도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땅에서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듯 바랜 듯한 잎의 색깔이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나무의 잎은 바싹 말라 있어 작은 충격에도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 황량한 경치를 보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목이 말라 왔다.
경일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물을 마시며 첫걸음을 떼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정면에서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말로만 전해 듣던 던전 핵이 틀림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보통의 헌터라면 주위를 정찰하며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겠지만, 경일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던전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압박감도 우스웠다.
“내가 확실히 강해지긴 했네.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에는 미지에 대한 공포라도 있었지. 막상 들어와 보니 별거 없네. 그나저나 신기하긴 하네. 던전이 나를 압박하다니…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잖아.”
경일은 자신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 정도로는 그의 행동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일반 헌터들이라면 어느 정도 지장을 받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중 그가 처음 마주친 몬스터는 고블린이었다.
익숙한 모습에 경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흉측하게 생긴 몬스터인데도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이미 스탄다비아에서 고블린은 비누의 재료로 취급된 지 오래였다.
그러다 보니 경일도 은연중에 그런 기분이 든 것이었다.
“크아악!”
고블린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경일에게 달려들었다.
퍽!
경일은 고블린의 칼을 피해 내며 첫인사로 턱에 카운터를 집어넣었다.
“케에엑!”
고블린은 바닥을 몇 바퀴 구르더니 일어섰다.
눈에 초점이 없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으로 보아 뇌에 제대로 충격이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세차게 몇 번 흔들더니 망설임 없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지. 이래야 몬스터지. 어휴~ 거지 같은 잔류 몬스터는 눈치가 빨라서 말이야.”
지금까지 경일이 상대한 몬스터는 전부 잔류 몬스터였다.
잔류 몬스터는 처음에는 덤벼들었다가 질 것 같으면 망설임 없이 도망갔다.
매번 도망가는 몬스터를 쫓아가서 죽이다 보니 경일도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그러다 보니 악의에 번들거리는 붉은 눈으로 노려보며, 오로지 야들야들한 살을 뜯겠다는 일념 하나로 덤벼드는 고블린이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너는 특별히 죽은 줄도 모르게 한 방에 보내 주지!”
찰나의 순간, 고블린의 목에 하얀색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번쩍임을 본 고블린의 눈에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하얀색의 빛을 따라 붉은 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툭!
고블린의 머리가 붉은 선을 따라 미끄러지더니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굴렀다.
경일은 굳이 마나석을 채취하지 않았다.
“요리사의 긍지가 있지. 손에 이런 더러운 몬스터의 피를 묻히면 안 되지.”
더군다나 몇 푼 하지도 않을 테니 더욱 피를 묻히기 싫었다.
“F급 던전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더 별거 없네.”
처음 만난 고블린을 가뿐하게 처리하자 그의 발걸음은 더욱 여유로워졌다.
경일의 걸음은 던전 핵을 향해 일직선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경일을 발견한 고블린이 달려들었지만, 몇 번의 칼질에 몸이 여러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
F급 던전에서 주로 나타나는 고블린은 그를 상대하기엔 너무 약했다.
마치 어린아이 팔목을 비틀듯 옷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착실하게 고블린을 잡아 갔다.
죽인 몬스터는 전부 인벤토리에 넣어 스탄다비아로 보냈다.
“이 던전은 고블린밖에 나오지 않는 건가? 이러면 너무 싱거운데… 규모로 보면 다른 던전보다 커 보이는데, 생각보다 몬스터는 별로 없네.”
다른 헌터들이 들었으면 재수 없다고 한마디 했을 것이다.
빠른 걸음으로 반나절을 걸어가다 보니 던전의 핵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거의 오십 마리 정도의 고블린을 죽인 듯했다.
“내 실력에 맞는 던전은 과연 몇 등급일까?”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만면에 그득한 미소에 그의 자신감이 드러났다.
뿌듯해하던 경일의 눈에 저 멀리 대기가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는 곳이 보였다.
던전의 핵이 내뿜는 빛이 공기에 스며든 듯한 모습이었다.
“다 왔네. 얼른 던전 폐쇄하고 동네 아이들이랑 놀아야겠어. 우리 귀요미들은 오늘도 즐겁게 놀고 있겠지?”
그 순간이었다.
공기가 떨려 오며 던전의 압박이 커졌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무형의 압박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어? 이게 뭐지?”
마치 던전이 크게 화를 내는 듯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무시한 경일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는 것만 같았다.
순간, 땅이 울리고 벽이 바닥에서 솟구쳤다.
경일이 놀라 자리를 벗어나려 했으나, 이미 그의 뒤에는 높고 두꺼운 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 어, 어…….”
경일이 당황한 사이 벽들이 하나씩 세워지면서 커다란 건물 안에 그를 가두어 버렸다.
어느새 진동이 가라앉았다.
시간이 지나자 시야를 가리던 자욱한 먼지도 사라졌다.
경일은 자신이 복도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런 건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경일은 일단 그대로 복도에 서 있었다.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상황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선, 거칠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복도의 끝을 바라보자, 유일한 출구인 듯한 문이 보였다.
하지만 그 문을 여는 것이 왠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이랄까.
현재 경일이 겪고 있는 일은 던전 체인지였다.
던전 체인지는 아주 낮은 확률로 하급 던전이 상급 던전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하지만 던전 체인지가 일어나는 조건이나, 바뀐 던전에서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등 알려진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레벨이 낮은 헌터가 상급 던전의 몬스터에게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던전 게이트가 일어나고 살아 나온 헌터는 없었다.
정부에서 개인이나, 길드가 던전을 소유하지 못하게 막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고 해도 하급 던전이 상급 던전으로 변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면 그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인이나, 기업이 몰래 소유한 던전은 모두 던전 협회의 눈을 피해 숨겨져 있었고, 대부분 던전 체인지가 일어나는 순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고 봐야 했다.
한편, 그렇다고 복도에 계속 서 있을 수도 없던 경일은 끝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육중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문은 너무 쉽게 열렸다.
마치 경일을 환영한다는 듯이…….
이왕 문을 연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곳은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농구장만 한 크기의 공간의 반대편에는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일을 본 몬스터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몬스터의 낮은 울음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러 그대로 경일의 귀에 꽂혔다.
트롤이었다.
“던전 체인지가 일어났구나. 그것도 D급 던전으로…….”
경일은 D급 던전에서나 나온다는 트롤을 본 순간, 이 사태를 모두 이해했다.
그가 던전으로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표정이 굳어졌다.
아직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기에 갑작스럽게 만난 트롤은 최악의 상대였기 때문이다.
D급 던전은 F급 던전보다 두 단계 위의 던전이지만, 실제로 난이도의 차이는 엄청났다.
F급 던전과 E급 던전의 몬스터의 강함이 한 단계 차이라면, E급 던전과 D급 던전은 최소 다섯 단계 이상의 차이가 벌어져 있었다.
그동안 걸어서 올라가던 계단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만큼 높아져 있는 것과 같았다.
“곤란한데.”
긴장으로 굳어진 몸을 풀어 보려 했지만, 경직된 몸은 그의 의도를 배신했다.
그의 눈이 가늘게 떨려 왔다.
더군다나 트롤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무려 세 마리의 거대한 트롤이 경일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