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35화 (135/300)

[135화] 바닥에 그려진 이것은……

트롤은 거의 3미터에 육박하는 키에 몸무게가 1톤은 나갈 것 같은 묵직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처진 눈 속의 검은 눈동자에는 가시 같은 강렬한 적의가 가득했다.

마치 여섯 개의 창 앞에 무방비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크아아아악!”

트롤이 피어를 쏘아 올리자 밀려난 공기의 압력이 느껴졌다.

피부가 쩌릿쩌릿했다.

쿵쿵쿵쿵!

순간, 트롤이 거대한 몽둥이를 치켜들고 경일을 향해 뛰어왔다.

세 마리의 거대한 트롤이 경일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자신을 덮치는 듯한 압박이 느껴졌다.

“제기랄!”

죽음의 공포가 경일을 향해 밀어닥쳤다.

눈앞에서 거대한 벽이 자신을 향해 돌진해 왔다.

아무리 봐도 피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경일의 호흡이 신경질적으로 가빠졌다.

그와 함께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거친 야생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순식간에 빠져나갈 공간이 줄어들었다.

포위가 되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이 상태로는 답이 없었다.

“으아아아아악!”

트롤의 기세를 극복하기 위해 경일은 허공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뻣뻣하게 굳어 있던 근육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뒤로 물러서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바닥을 박차며 트롤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세 개의 거대한 몽둥이가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경일은 슬라이딩하듯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머리가 있던 곳에 거대한 몽둥이가 순차적으로 지나갔다.

뒷머리에서 시작된 소름이 발끝까지 쫙 돋았다.

몸이 땅바닥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핏!

경일은 중간에 위치한 트롤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새하얀 오러가 트롤의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커엉!”

커다란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러를 잔뜩 머금은 미스릴 검이 트롤의 질긴 가죽을 뚫고 들어가 생살을 갈랐다.

오른쪽 발목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트롤이 자신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됐다!”

첫 공격이 성공하자 온몸을 칭칭 감고 있던 트롤에 대한 공포가 깨져 나갔다.

트롤의 비명이 클수록 경일의 심장이 더 힘차게 뛰었다.

조금 전까지 억지로 쥐어짜듯이 운용한 마나가 이제 자연스럽게 온몸을 타고 돌았다.

하얗게 질린 경일의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

지금 필요한 건 스피드였다.

트롤은 뛰어난 재생력을 가진 몬스터였다.

더 이상 시간이 흐르기 전에 한 마리라도 확실히 죽여야 했다.

나머지 두 마리의 트롤은 동료가 다친 것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공격이 실패하자 몸을 돌려 다시 한번 달려들 뿐이었다.

거대한 몽둥이 두 개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경일을 향해 날아들었다.

몽둥이에 실린 엄청난 힘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미스릴 검이라도 두 개의 몽둥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트롤과 힘 싸움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제 남은 수는 단 하나, 회피뿐이었다.

마나를 다리에 돌린 뒤, 강하게 땅을 밟았다.

경일이 서 있던 단단한 땅에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확실히 한 마리가 빠지니 공격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트롤의 공격을 피해 낸 경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뛰었다.

그가 목표로 삼은 건 바로 발목을 다쳐 앉아 있는 트롤이었다.

“크앙앙앙앙!”

잠시 주저앉아 있던 트롤은 경일에게 무시무시한 함성을 질러 댔다.

감히 자신을 목표로 삼은 것에 대한 찐득한 노여움이 섞여 있었다.

그 찌릿한 느낌을 무시한 채 경일은 높게 날아올랐다.

미스릴 검에 하얀색의 은은한 오러가 피어올랐다.

한쪽 손으로 발목의 출혈을 막고 있던 트롤은 불편한 자세 때문에 경일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었다.

경일은 달려가는 추진력에 자신의 모든 체중을 실어 트롤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트롤의 당황스러운 눈이 보였다.

텅!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트롤의 머리를 10㎝ 정도 남겨 두고 검이 공중에서 멈춰 섰다.

보이지 않는 막이 검의 전진을 막고 있었다.

경일은 검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에 튕기듯이 뒤로 날아갔다.

“크악!”

그와 동시에 남아 있던 두 마리의 트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경을을 향해 거대한 몽둥이를 야구 배트처럼 횡으로 힘차게 휘둘렀다.

“큭!”

급하게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켜 들고 있던 검으로 억지로 막아 냈다.

하지만 몽둥이에 실린 힘 때문에 경일의 몸이 야구 배트에 맞은 공처럼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1톤의 무게가 실린 몽둥이는 70킬로의 경일을 가볍게 날려 보냈다.

한참을 날던 경일은 바닥에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온몸의 뼈가 시큰거렸다.

마치 달려오는 트럭에 정면으로 부딪혀 튕겨 나간 느낌이었다.

반대편에서 경일을 날려 보낸 트롤이 세레모니를 하듯 두 팔을 들어 올리고 함성을 질렀다

“제기랄…….”

경일의 입술에서 한줄기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온몸의 내장이 진탕되고,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트롤은 기쁜 듯 더욱 소리치며 날뛰었다.

경일은 검을 지팡이 삼아 겨우 일어섰다.

“내가 이대로 죽을 거 같아!”

몸은 충격으로 인해 휘청거렸지만, 그의 눈빛만은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밟히면 최소 열 배를 돌려주는 악바리 정신이 깨어났다.

어느새 경일의 손에는 작은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재빨리 내용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손윤찬이 스탄다비아의 연구 마법사의 레시피로 만든 힐링 포션이었다.

아직 그의 스킬이 낮아 다른 연금술사들이 파는 힐링 포션만큼의 효능은 없었지만, 던전 식물의 약성이 워낙 뛰어나 실력에 비해 꽤 괜찮은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탕된 내장이 가라앉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약간의 핏기가 돌아왔다.

“제법 맵네.”

경일이 일어서자 트롤들이 다시 으르렁거렸다.

그런데 발목을 깊게 베인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저 새끼가 벌써 나았다고? 이럴 거면 아예 통으로 베어야겠네. 그나저나 내 검을 막은 그 막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생각지도 못한 현상에 경일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언제 어디서 그런 현상이 일어날지 모르니 공격을 하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조금 전처럼 자신의 힘에 대한 반탄력 때문에 날아갈 수도 있었다.

몬스터 중 최고의 재생력을 가진 트롤을 상대하면서 공격에 힘을 실지 못한다는 말은 그냥 죽으라는 것과 같았다.

그때, 트롤 두 마리가 경일을 노려보며 상체를 숙여 언제든 달려들 수 있는 자세로 조금씩 다가왔다.

처음에 무턱대고 덤비던 모습과 달랐다.

“몬스터 주제에 상대를 분석하고 행동을 바꾼다고? 상위 몬스터라 그런 건가? 아니면 본능적인 행동인 건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경일에게 좋을 건 없었다.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줄 뿐,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이대로 앞으로 달려가 싸우고 싶었지만, 아까 같이 자신의 검을 막는 막이 생긴다면 큰일이었다.

경일이 머뭇거리는 동안 다가온 트롤이 몽둥이를 수직으로 내려쳤다.

단지 스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은 위력이 느껴졌다.

경일은 빠르게 몸을 날려 몽둥이를 피했다.

꽝!

땅이 파이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거대한 트롤들은 쥐새끼를 잡듯 사정없이 바닥을 내려쳤다.

꽝! 꽝! 꽝! 꽝! 꽝!

트롤의 몽둥이에 맞은 바닥이 움푹 파였다.

“이런 제기랄!”

정신없이 피하던 와중 바닥에 튄 돌이 경일의 얼굴을 스쳐 가며 볼에 긴 생채기를 남겼다.

빨간 피가 무대 위의 커튼이 내려오듯이 얼굴을 덮었다.

한번 승기를 뺏기자 찾아올 방법이 없었다.

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발목을 다친 트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마리의 공격도 근근이 피하는 마당에 한 마리가 더 늘어난다면 이 싸움의 끝은 뻔했다.

‘제기랄, 어떡해야 하지?’

하지만 상황이 급박해질수록 생각은 더 떠오르지 않았다.

피하는 타이밍도 점점 느려지면서 몸에도 조금씩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다.

힐링 포션이 간절했지만, 먹을 틈조차 없었다.

트롤들은 경일을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친 트롤의 움직임 때문에 바닥에 깔려 있던 두툼한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바닥의 먼지가 트롤의 움직임에 쓸려 나가며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경일의 눈에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바닥 중의 일부분이 색깔이 달랐던 것이다.

회색의 돌바닥 중에 가로세로 1.5미터 정도의 구간이 은근한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려진 특이한 문양…….

경일은 분명 그 문양과 비슷한 것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건 바로 스탄다비아의 연구 마법사가 보는 책에 그려진 문양과 형식이 비슷했다.

고대의 글자와 문양의 특별한 배치로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그것.

“마법진이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냈다.

“마법진이 외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보호막을 생성했을 거야.”

다친 트롤이 앉아 있는 곳도 분명 마법진이 그려져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다치고 바로 주저앉지 않더니만… 다친 발목으로 기어이 몇 걸음을 움직인 이유가 있었네!”

경일은 답답한 마음이 풀어지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다친 트롤이 합류하기 전에 바닥을 구르기만 하는 이 상황을 반전시켜야 했다.

약간의 여유가 생긴 그는 트롤의 공격을 피하기 급급하던 때와 달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방향으로 꾸준히 피하자 한 마리의 트롤이 동료 트롤의 등을 보는 일직선의 그림이 만들어졌다.

그 순간, 경일과 트롤은 순간적으로 1대1의 상황이 되었다.

드디어 그가 계획했던 순간이 왔다.

경일은 트롤의 공격이 반으로 줄어들자 공격을 피하려 굳이 몸을 날릴 필요가 없어졌다.

스텝으로만 몽둥이를 피하며 반격을 시도했다.

경일은 재빨리 일어나 스텝으로만 몽둥이를 피하며 반격을 시도했다.

무섭게 날아오는 몽둥이를 가볍게 피한 경일은 트롤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리가 줄어들자, 트롤이 몽둥이를 쥔 반대쪽 손으로 경일을 후려쳤다.

“캬아아아악!”

트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녀석이 경일을 후려치려던 순간, 날아오는 손바닥에 깊숙이 검을 박은 것이었다.

검 끝이 손등을 뚫고 나왔다.

경일은 트롤의 손을 꿰뚫은 검을 굳이 뽑지 않았다.

그가 검에서 손을 뗀 순간, 어느새 경일의 손에는 날카로운 창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고통으로 울부짖는 트롤의 입속으로 창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트롤의 가죽은 쇠처럼 단단하고 질겼지만, 입속의 살까지 질길 순 없었다.

더군다나 오러가 은은하게 빛나는 창이었다.

부드럽게 느껴지는 살의 저항감을 뚫고 창은 점점 깊숙이 트롤의 입속으로 박혀 들었다.

트롤의 입에서 흘러내린 피가 창대를 타고 흘러 경일의 손을 적셨다.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마도 트롤의 머리뼈일 것이었다.

“이야압!”

경일이 기합과 함께 강하게 창을 밀어 넣자 트롤의 뒤통수를 뚫고 창날이 삐져나왔다.

거대한 트롤이 고목나무가 쓰러지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크르릉!”

남은 한 마리의 트롤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경일은 손에 묻은 피를 대충 옷에 문질러 닦았다.

위잉잉!

거대한 몽둥이가 공기를 가르며 경일의 머리를 노리고 다가왔다.

트롤은 전봇대만 한 몽둥이를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경일은 개구리처럼 바닥에 바짝 붙어 피하는 동시에 스프린터처럼 땅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고 나서 손에 쥔 창으로 단단한 트롤 가죽의 한 점을 쑤셨다.

창끝이 가죽에 미세한 구멍을 점점 크게 만들며 앞으로 전진했다.

오러가 깃든 창이 트롤의 내장을 뚫고 지나가 등 뒤로 삐져나왔다.

경일은 트롤의 몸을 관통시킨 창에서 그대로 손을 뗐다.

인벤토리에는 아직 많은 종류의 무기가 남아 있었다.

대장장이가 만든 것처럼 매끈하지 않고, 대부분 투박한 형태의 무기였다.

아직 무기를 만드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경일이 연습 삼아 만든 무기였다.

하지만 창끝과 칼날만은 신경 써서 날카롭게 날을 세워 놓았다.

대복 길드장 손필견을 잡을 때도 인벤토리에 있던 여유분의 무기가 큰 도움이 된 만큼, 경일은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손질해 놓았다.

경일은 트롤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빠르게 돌다가 트롤의 배에 또 하나의 창을 박아 넣었다.

안 그래도 빠른 경일이 몽둥이를 든 손과 반대 방향으로 돌자 트롤은 그를 공격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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