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36화 (136/300)

[136화] 싸움

트롤은 몽둥이로 공격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거대한 주먹을 말아 쥐고 경일을 향해 내리꽂았다.

그러자 경일은 재빨리 점프하듯 뒤로 물러나 주먹을 피했고, 트롤의 커다란 눈에 인벤토리에서 꺼낸 검을 던졌다.

푹!

소리와 함께 검이 트롤의 눈동자에 깊숙이 박히자, 귀청이 찢어질 듯 울부짖었다.

트롤은 다친 눈을 한 손으로 감싸며 오지 말라는 듯 나머지 손을 앞으로 내밀며 뒷걸음질 쳤다.

배에서 흐른 피가 창을 따라 흘러내리며 기다란 피의 길을 만들었다.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던 트롤은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

트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며 거칠게 몸부림쳤다.

"이거 대단하네. 배에 창이 두개나 박히고 눈에 검이 박혔는데도 죽지 않다니. 정말 질긴 생명력이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뛰어난 체력과 재생력이 오히려 너를 괴롭힐 뿐이야."

경일은 트롤에게 다가가 녀석의 머리에 창을 박아 넣었다.

그제야 한차례의 경련과 함께 트롤의 움직임 멈췄다.

발목을 다친 트롤이 상처가 다 나았는지 달려오다 쓰러지는 동료를 보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공교롭게도 마법진이 그려진 자리였다.

“하… 무슨 몬스터가 자꾸 분위기를 읽어, 피곤하게. 그냥 덤비면 되지.”

경일은 먼지투성이의 몸으로 천천히 트롤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여러 종류의 포션이 쥐어져 있었다.

힐링 포션과 체력 포션, 마나를 회복시켜 주는 마나 포션까지 쉼 없이 마셔 댔다.

그때, 트롤이 이빨을 세우고 포션을 마시는 경일을 향해 포효했다.

“시끄러워, 이 새끼야. 그나저나 몬스터 새끼가 어떻게 마법진의 효능을 알고 이용하는 거지? 이게 가능한 건가? 이런 건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꼭 누군가가 훈련시킨 개를 보는 것 같잖아.”

경일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F급 던전에서 던전 체인지를 겪은 것도 황당한데, 거기다 마법진까지.

그중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건 마법진을 이용하는 몬스터였다.

“에이, 말도 안 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우연이겠지. 그나저나 스탄다비아에서 본 거랑 비슷한 마법진이 왜 던전 안에 그려져 있지? 아무것도 없는 필드에 거대한 건물이 생긴 것도 이상하고… 다른 헌터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경일은 미스릴 몽둥이를 꺼냈다.

트롤이 마법진을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여 방어막을 후려칠 생각이었다.

마법진은 영원하지 않다는 건, 연구 마법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깨질 수밖에 없었다.

꽝! 꽝! 꽝! 꽝! 꽝!

미스릴 몽둥이가 거침없이 방어막을 후려쳤다.

몽둥이와 방어막이 부딪칠 때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금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러자 트롤이 당황한 듯 눈을 부릅떴다.

결국 충격을 버티지 못한 보호막은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흘러 내렸다.

보호막의 잔재를 경일이 밟고 지나가자 ‘까드득’하고 밟히는 소리가 났다.

당황한 트롤이 급하게 경일을 향해 몽둥이를 내려쳤다.

하지만 다리의 상처가 완벽하게 낫지는 않았는지 처음처럼 엄청난 힘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너 때문에 나도 제대로 한 방 맞았으니 그대로 돌려줄게!”

경일은 땅을 박차며 순식간에 트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를 만들고 곧바로 트롤의 정강이를 향해 오러가 서린 미스릴 몽둥이를 휘둘렀다.

쩡!

트롤의 다리 안쪽에서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캬아악!”

트롤이 비명을 질러 댔지만, 경일은 상관하지 않고 때린 곳을 또 때렸다.

금이 간 곳에 몽둥이를 맞은 정강이가 움푹 파였다.

트롤이 휘청하는 순간, 다시 한번 정강이를 후려쳤다.

빠지직!

뼈가 여러 조각으로 깨지는 나는 소리가 들렸다.

트롤이 급하게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며 거리를 벌려 보려 했지만, 경일이 몇 배는 더 빨랐다.

이번에는 반대쪽 정강이를 향해 미스릴 몽둥이를 휘둘렀다.

“캬악!”

트롤의 입에서 짧고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다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을 뒹굴었다.

“빌어먹을. 아까는 진짜 아찔했다, 이 새끼야.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바닥까지 내려앉은 기분이라니까. 어디서 이런 것들이 튀어나와서는…….”

경일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다가가자 트롤이 오지 말라는 듯 두 손을 내밀며 손바닥을 보였다.

“야, 네가 날 죽여서 먹는 건 괜찮고, 내가 널 죽이면 안 되냐?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딨어!”

어느새 손에 들린 기다란 창에 오러가 이글이글 끓어올랐다.

공기 중에 퍼져 나가는 오러의 기운에 트롤의 눈이 커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잘 가라, 이 새끼야.”

창은 정확하게 눈을 뚫고 들어갔다.

최후의 일격을 맞은 트롤이 힘없이 목을 옆으로 떨어뜨렸다.

활력 넘치던 트롤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휴… 정말 위험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정말 강하구나… 만약 저런 것들이 지구로 풀려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경일은 게이트 탐지부에서 오히려 이 던전을 찾지 못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F급 던전이라 판단하고 들어왔다면, 헌터들은 던전 체인지를 이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헌터가 모두 죽고 트롤이 한 마리라도 지구로 빠져나갔다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실제로 던전 체인지가 일어났을 때 대비가 늦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바뀐 던전이 고등급의 던전일수록 피해는 더욱 커졌다.

게이트의 색깔이 바뀐 것으로 던전 체인지가 일어난 것을 빠르게 파악할 수는 있어도 공략대를 모으는 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고등급의 던전일수록 고레벨의 헌터가 필요한데, 그런 헌터들을 약속도 없이 금방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겨우 안심한 경일은 체력 포션을 한 병 꺼내 마셨다.

“이거 이러다 약물중독되는 거 아닌가 몰라.”

온몸을 타고 돌며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무기랑 포션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게 신의 한 수였네.”

손윤찬의 연구에 대한 욕심은 엄청났다.

그런 사람이 고생 끝에 기회를 잡자, 그는 미친 듯이 포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경일의 인벤토리에는 그가 만든 포션이 가득 들어 있었다.

전투를 마친 경일은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의 옷은 이미 엉망이었다.

고블린을 사냥할 때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옷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군데군데 찢겨 피가 묻어 있었고, 흙을 뒤집어쓴 탓에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가 떨어졌다.

경일은 어느 정도 휴식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체력을 회복할 수는 있었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풀 방법이 없었다.

세 마리 트롤과의 싸움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트롤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만약 포션과 인벤토리를 이용할 수 없었다면 죽는 것은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순수하게 실력으로 싸웠다면, 한 마리면 몰라도 두 마리는 이기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D급 던전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했나?”

경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온 문과 마주 보고 있는 반대쪽 문을 향해 걸었다.

문을 열자 3미터 정도의 폭을 가진 복도가 나타났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은 광경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걸어가 문을 열었다.

조금 전처럼 농구장만한 방이었지만, 이번에는 두 마리의 트롤이 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또 아까의 트롤과는 다르게 체격이 날씬해 날렵하다는 느낌을 풍겼다.

“크르르르!”

두 마리의 트롤이 경계심 가득한 울음소리를 냈다.

느낌이 꼭 이전 방에서 트롤이 죽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저것들은 또 뭐야?”

경일은 척추를 따라 찌릿찌릿한 느낌이 드는 게, 마치 앞서 만난 세 마리의 트롤보다 더 강하다고 육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나 아무래도 똥 밟은 거 같은데… 처음 들어온 던전이 이 모양이라니! 고블린이랑 계속해서 놀고 싶었는데, 어디서 저런 것들이 나타나서는…….”

투덜대던 경일은 땅을 세차게 밟으며 트롤을 향해 뛰쳐나갔다.

거리의 이점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오른손엔 창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하기도 전에 트롤의 길고 거대한 몽둥이가 먼저 다가왔다.

경일도 얼른 공격을 시도했지만, 워낙 체격 차가 나서 쓸데없는 짓이 됐다.

“칫!”

경일은 재빨리 오른발로 땅을 강하게 밟으며 방향을 바꾸었다.

그와 동시에 트롤의 거대한 몽둥이가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몽둥이에서 이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 순간이었다.

또 다른 트롤의 몽둥이가 자세가 무너진 경일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게 뭐야?”

이건 분명 연계 공격이었다.

첫 번째 방에서 만난 트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세 마리의 트롤은 서로 협력하지 않고 경일을 마구잡이로 공격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두 마리는 달랐다.

한 마리가 먼저 공격하고, 또 다른 한 마리가 경일이 피하는 방향을 예상하고 공격을 퍼부었다.

퍼억!

몽둥이에 맞은 경일이 몸이 공처럼 날아갔다.

“씨발!”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느낌이 안 좋더라니…….”

첫 번째 방에 이어 두 번째 방에서도 트롤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허용했다.

다행히 곧바로 창으로 막아 직접적인 타격은 피했으나, 몸에서 느껴지는 충격은 작지 않았다.

“고레벨 헌터들은 이런 놈들과 싸워 왔다는 건가. 헌터들의 삶도 쉬운 게 아니었네. 이거, 목숨이 열 개라도 순식간에 사라지겠어.”

경일은 입에 고인 피를 내뱉고 재빨리 힐링 포션을 마셨다.

트롤은 공격에 성공하자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경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직 힐링 포션의 효과가 돌기 전이라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야아악!”

이판사판으로 경일이 이를 악물고 트롤을 향해 창을 던졌다.

설마 하나밖에 없는 창을 던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는지 트롤의 가슴은 환히 열려 있었다.

공기를 가르고 날아간 창이 달려오던 트롤의 가슴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강하게 회전이 걸린 창이 단단하고 질긴 트롤의 가죽을 스크루처럼 돌면서 뚫고 들어갔다.

“크어어어엉!”

트롤의 입에서 거대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머지 한 마리의 트롤이 놀라서 달려오던 발을 그대로 멈췄다.

그 모습을 본 경일이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그에게 지금 간절히 필요한 건 상처를 회복할 시간이었다.

얼굴에서는 굵은 식은땀이 계속해서 흘렀다.

만약 목숨이 걸린 상황이 아니었으면 한 발짝도 못 움직일 만큼 아팠다.

뇌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이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을 눌렀다.

털썩!

심장을 정확히 관통당한 트롤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천운이었다.

덩치가 커서 빗나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심장을 관통할 줄은 몰랐다.

“크아아아!”

남은 트롤이 잔뜩 화를 내며 쩌렁쩌렁한 피어를 뿜어냈다.

안 그래도 충격으로 흔들린 내장이 피어에 다시 한번 흔들렸다.

경일은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피를 도로 삼켰다.

트롤이 그런 경일의 상태를 세세하게 관찰했다.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죽는다.’

경일은 억지로 다리에 힘을 주며 허세를 부렸다.

그것을 도발로 받아들인 트롤이 달려들었다.

바닥이 울리고 그 진동이 그대로 경일에게 전달됐다.

그런데 달리던 트롤이 갑자기 멈춰 섰다.

경일의 손에 들린 창을 본 것이었다.

“아깝네.”

경일은 트롤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트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창을 꺼냈는데, 마음이 급했는지 타이밍이 조금 어긋났다.

그 짧은 순간을 캐치 한 트롤이 달리기를 멈춘 것이다.

“크르르…….”

트롤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이거, 내가 알던 몬스터랑 너무 다르잖아. 왜 지능이 있는 거처럼 보이지? 그래도 지능이 있어 봐야 몬스터는 몬스터일 뿐이지.”

경일은 트롤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인벤토리에서 힐링 포션을 또 하나 꺼내 마셨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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