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도대체 누가?
D급 던전을 공략하려면 최소 30~40레벨 헌터 열 명 이상이 필요했다.
자신과 같은 15레벨의 헌터 정도는 몬스터의 눈에 띄는 순간 죽었다고 봐야 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강렬한 의문이 떠올랐다.
게이트 탐지 기계가 가리키는 수치가 게이트의 모습과 달리 생각보다 낮은 것이 떠오른 것이다.
그는 질끈 감은 눈을 뜨고 게이트 탐지 기계에 적힌 수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수치는 아까와 달리 큰 폭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제야 김승수는 알아차렸다.
“이거… 공략된 던전이잖아.”
그가 눈을 감고 있던 사이, 게이트는 마지막 발악을 끝내고, 던전 폐쇄가 일어난 게이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파란색의 빛을 내뿜던 게이트에 검은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누가?”
김승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의문은 누가 던전을 공략했냐는 사실이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D급 게이트가 열렸다는 사실에 상부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게이트 탐지부 2부 주임 김승우입니다.”
[그래, 변동 사항이라도 있는가? 지금 바로 조사대가 출발하니 조금만 기다리게.]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상관의 목소리는 정신이 없는지 급박한 목소리였다.
“아… 저, 그게 말입니다. 던전 핵이 이미 파괴가 된 듯합니다.“
[뭐, 뭐, 뭐라고?]
조금 전과 전혀 다른 놀란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지금 뭐라고 했지? 던전 핵이 파괴되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잘못 들은 걸 거야. 너무 정신이 없어서 말이야.]
김승우의 상관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보고에 자신이 잘못 들은 것으로 여겼다.
[지금 최대한 빠르게 헌터들을 모집하고 있으니 무섭더라도 자리를 지키며 상황을 보고해 주게.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거 잊지 말고. 우리가 최대한 빨리 달려가겠네.]
“저… 부장님, 그게 아니라 이미 던전의 핵이 파괴된 거 같습니다.”
[뭐… 뭐라고?]
부장은 자신이 들은 말을 믿지 못했다.
“부장님, 게이트는 이미 열려 있습니다. 게이트에서 내뿜는 에너지 수치나, 게이트에 검은빛이 도는 걸로 봐서 이미 공략된 걸로 보입니다.”
김승우가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보고하자, 그제야 부장이 알아들었다.
[정말인가? 무려 D급 던전의 핵이 파괴되다니… 대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을 누가 폐쇄했다는 건가? 아니, 내가 지금 곧바로 갈 테니 기다리고 있게나.]
“네, 알겠습니다.”
정말 부장은 거의 날듯이 현장으로 왔다.
전화를 끊은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김승우가 있는 깊은 산속까지 온 것이었다.
파란빛을 내던 게이트는 이제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검은빛이 확실히 드러나 있었다.
“이럴 수가…….”
부장이 입을 떡 버리고 게이트를 바라봤다.
그는 김승우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이곳으로 왔다.
그런데 막상 사실로 확인이 되자 숨이 턱 막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무려 D급 게이트를 누군가가 소리 소문도 없이 공략했다.
‘도대체 누가 탐지도 안 된 게이트를 폐쇄한 거지?’
몇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으나, 그들이 이런 짓을 벌일 이유가 없는데다가 이건 불가능 일이었다.
일단 게이트를 탐지해야 던전 폐쇄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 탐지부의 눈을 속이고 게이트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단체가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헌터 협회에도 파악이 안 된 단체면 빌런일 확률이 높았다.
기존의 빌런들이 벌인 일들이 생각나자 암울함이 밀려들었다.
“부장님.”
김승우가 얼이 빠져 있는 부장을 불렀다.
“어, 그래.”
“부장님,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상한 점이라니?”
지금 상황도 매우 복잡한데, 이상한 점이 또 있다는 소리에 부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게 말입니다. 제가 기다리는 동안 게이트 주변을 살폈는데, 제 발자국을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뭐… 뭐라고?”
부장은 이미 머리가 복잡한 상태에서 또 다시 김승우의 충격적인 말을 듣자 생각을 제대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부장님도 아시다시피 D급 게이트면 최소 30~40레벨의 헌터가 열 명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게이트에 들어가고 나온 발자국은 하나뿐입니다.”
그제야 부장은 게이트 앞에 찍힌 발자국을 봤다.
그의 말대로 한 사람의 발자국만 찍혀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부장은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분명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게이트를 오간 발자국은 단 한 명이었다.
“김승우 씨, 이대로 조심히 게이트에서 멀어지게. 현장을 최대한 보존하고 조사에 들어가는 걸로 하지.”
부장은 게이트를 중심으로 10미터를 테이프로 둘러싸 라인을 쳤다.
이건 혼자서 고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게이트 관리부의 면밀한 조사를 통해 밝혀낼 사안이었다.
* * *
자포리자는 영지로 시찰을 나갔다.
경일이 준 식량도 나눠 주고, 자주 얼굴을 내보임으로써 사람들의 소속감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다.
“영주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사미르가 빠르게 달려와 자포리자를 수행했다.
“그래, 진행은 잘되고 있나? 어려운 점은 없고?”
“네, 다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전 영지에서 워낙 고생을 많이 한 터라, 이곳에 온 걸 잘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입니다. 솔직히 왕국 어디에도 이곳처럼 마음 편하게 지낼 곳이 없습니다. 강제 노역도 없지, 세금 싸지, 굶어 죽지 않게 식량까지 주지, 그리고 온돌 집이라는 새로운 집도 지어 주지 않았습니까? 여기야말로 천국이죠.”
“온돌 집은 반응이 어떤가?”
“다들 무척 좋아하고 있습니다. 영주님이 시범으로 한 집을 지어 주지 않았습니까? 다들 따뜻한 방에 누워 보더니 좋아하더군요. 오늘도 방에 누워 보겠다고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입니다. 하룻밤을 온돌 집에서 자 봤는데, 등이 뜨끈한 게 정말 좋았습니다. 춥지도 않고, 특히 나무 타는 연기가 방으로 들어오지 않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사미르는 온돌 집에 대한 예찬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개운한 게 정말 좋더군요. 따뜻하고 신선한 공기를 계속 마셔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묵직하던 증상도 사라졌고, 저로서는 상쾌한 머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게 제일 좋았습니다. 특히 적은 장작으로도 오랜 시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니 영지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요. 한겨울에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가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미르는 온돌이 주는 효능에 푹 빠져 있었다.
스탄다비아에서 평민이 사는 집은 전부 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나무 집은 아무리 잘 짓는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나무와 나무의 틈 사이로 찬바람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원래 집의 난방은 벽난로가 담당했는데, 벽난로는 온돌에 비해 난방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벽난로로 공기를 데우는 방식으로는 그 근처만 따뜻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따뜻해진 공기는 금방 식어 열기가 실내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특히 나무의 틈 사이로 들어온 찬 공기와 만나면 빠르게 식어 버렸다.
게다가 나무가 타면서 나는 연기와 재가 실내에 날렸고, 특히 화재에 취약했다.
이런 문제 대부분을 해결해 주는 온돌 집이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드는 건 당연했다.
“온돌 집을 짓는 데 어려움은 없고?”
“아, 참. 안 그래도 한 가지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영주님이 지은 온돌방은 전체적으로 따뜻한데, 다른 곳의 방은 어디는 뜨겁고, 어디는 찬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분명 똑같이 구들을 놓고 만들었는데 말이죠.”
“그건 방에 돌을 깔 때 평평하게하는 것만 신경을 써서 그런 거야. 아궁이에 가까운 아랫목은 두꺼운 돌을 깔고, 멀어질수록 얇은 돌을 깔아야 해. 아무래도 아랫목의 돌은 빨리 데워지고, 먼 곳은 천천히 데워질 수밖에 없지. 두꺼운 돌은 데우려면 얇은 돌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겠지? 돌의 두께를 달리하면 방바닥 전체가 골고루 따뜻해질 거야.”
“대단하십니다. 영주님이 이렇게 똑똑한 줄 몰랐습니다. 어릴 때는 오히려 좀 둔한 편이었는데…….”
어릴 때의 자포리자도 잘 알고 있는 사미르가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험험!”
자포리자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사람들을 살폈다.
다른 영지 출신이지만, 자신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라 책임감이 느껴졌다.
다들 여전히 알리사에 살 때처럼 마르고 팍팍해 보였지만, 분명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왕이면 다들 잘살면 좋지 않겠는가.
“사미르, 내성에 짓는 공장은 어떤가?”
“예정보다는 조금 느려질 거 같습니다. 예상보다 황토 벽돌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 급하게 황토 벽돌을 구워 내고 있습니다.”
“염색 재료들은 잘 모이고 있나?”
“구하기 쉬운 식물도 있지만, 몇 가지는 좀 귀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또 아직 날씨가 추워서 몇 가지 식물은 채집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미르가 자포리자를 바라보며 보고했다.
“제일 쉽게 만들 수 있는 색은 뭐지?”
“파란색을 내는 염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쉬워 보이고, 황금색을 내는 염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워 보입니다.”
“음…….”
이 시대의 귀족들은 화려한 디자인의 옷을 입었다.
여러 가지 색이 섞인 옷에 군데군데 자수를 놓아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그중에서도 자수의 색깔로 가장 인기 있는 게 황금색이었다.
황금색의 자수는 어떤 색의 옷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사미르는 재료를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색이 하필 황금색이란 게 아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포리자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황금색의 실이 시장에 많이 깔리면, 그 가치가 떨어질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귀하니까 가치가 높은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일이 알려 준 황금색은 이 시대의 황금색보다 훨씬 선명하고 진하며 색이 오래 갔다.
이제 부를 나타내는 황금색의 자수를 짤 때 스탄다비아에서 생산한 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만약 생산량이 적으면 그만큼 비싸게 팔면 됐다.
앞으로 스탄다비아에서 생산되는 염색된 천과 실은 왕국에 새로운 유행을 주도할 것이다.
문제는 보물을 지킬 수 있는 힘이었다.
마나 연공법과 비누는 영지에 무력과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새로운 적을 끌어들였다.
당장 프라인이라는 강대한 적이 나타났지 않은가.
아드리온과 동맹을 맺긴 했지만, 서로 필요에 의한 관계일 뿐이었다.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었다.
마나 연공법과 비누, 그리고 염색 기술까지, 보물이 늘어날수록 스탄다비아는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염색에 관한 것은 철저히 비밀히 부치고 있지만, 염색된 원단과 실이 팔리기 시작하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터.
사실 지금도 염색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차라리 힘들더라도 허리띠를 좀 더 졸라매는 것이 나을지, 염색한 원단과 실을 팔아 돈을 버는 게 나을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깊은 생각에 빠져 영지를 시찰하던 자포리자의 눈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영지민들과 다르게 흰색의 깨끗한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사미르, 저 사람들의 정체를 알고 있나?”
“아~ 네. 가우스 신을 모시는 사제들입니다.”
“그래? 사제들이 우리 영지에 무슨 일이지?”
“가우스 신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서랍니다. 이번에 이곳에 교단을 세울 예정이랍니다.”
스탄다비아에 종교가 들어왔다.
사실 스탄다비아에 종교가 없던 건 아니었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왕국의 모든 종교가 스탄다비아에 교단을 세우고 활동했다.
“하… 이거 좋지 않군.”
“네?”
사미르가 갑자기 어두워진 자포리자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