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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43화 (143/300)

[143화] 때로는 몬스터보다 무서운 게 인간이지 (2)

“씨발. 아저씨, 남의 거라니. 무슨 개소리야? 이 던전은 우리 대호 길드가 낙찰받았잖아. 던전 폐쇄도 내가 했고. 그럼 이 안에 있는 게 누구 거겠어? 전부 우리 대호 길드 거잖아, 이 새끼야. 지금 도둑질을 한 놈이 오히려 나를 도둑놈으로 만드네?”

문신은 바닥에 쓰러진 이길호의 얼굴을 축구공 차듯 걷어찼다.

퍼억!

이길호의 얼굴이 강한 충격에 의해 오른쪽으로 사정없이 돌아갔다.

“커억!”

입에서 피가 터지면서 몇 개의 이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는 눈앞이 번쩍이며 밀려오는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새끼야. 도둑은 너잖아. 남이 흘린 찌꺼기를 훔쳐 먹고사는 스캐빈저, 그게 바로 너잖아. 어디서 지금 멀쩡한 사람을 비웃고 강도로 몰아. 죽고 싶어? 아~ 이거 오늘 별 거지 같은 스캐빈저 새끼 하나 때문에 뚜껑 제대로 열리네.”

문신은 이길호를 인정사정없이 짓밟았다.

이길호는 뼛속까지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을 놓지 않게 그는 혀를 깨물었다.

찌릿한 고통이 뇌를 파고들었다.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절대 안 돼.’

이길호는 쏟아지는 폭력에도 어떻게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만약 여기서 기절이라도 한다면, 던전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는 가족을 생각하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퉤!”

문신은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이길호를 걷어차고서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떠나 버렸다.

이길호의 얼굴에 떨어진 누런 가래침이 그의 볼을 스치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진 폭력에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스캐빈저를 하면서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나고는 했다.

가끔은 던전에서 몬스터보다 위험한 게 사람이었다.

공략대가 철수할 때는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될 때면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눈을 피했다.

던전을 나와 신고해 본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경찰은 헌터들의 일에는 한발 물러서 있었고, 헌터 협회는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 않았다.

설령 고소해 본들 소용없었다.

심증으로는 스캐빈저가 피해자라는 것을 알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증거가 없다 보니 대부분 흐지부지 끝이 났다.

게다가 재수가 없으면 오히려 헌터들에게 보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스캐빈저 입장에서는 억울하더라도 속으로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이 지났지만, 이길호는 일어나지 못했다.

자신과 몇 레벨 차이가 나지 않는 헌터라도 신체 능력이 훨씬 강했고, 그런 헌터가 온 힘을 다해 가한 폭력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호 길드라고? 제기랄… 내가 왜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확인하지 않았지?’

이길호는 자신의 실수에 화가 났다.

스캐빈저라면 던전을 공략하는 이들의 길드를 확인하는 건 필수였다.

보통의 길드라면 상관없지만, 대호 길드 같이 소문이 안 좋은 길드를 만나면 평소보다 훨씬 조심해야 했다.

요즘 좋은 일만 계속해서 일어나다 보니 마음이 풀어진 결과였다.

‘내가 힘이 있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맞은 곳의 고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곳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욱신거렸다.

상처가 아파 올수록 그의 분한 마음이 끓어올랐다.

이길호는 열여덟 살에 각성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매우 빠른 나이에 각성했지만, 이미 성장이 멈춰 버린 자신의 잠재력이 원망스러웠다.

스캐빈저를 하면서 몇 번 억울한 일을 당하긴 했지만, 오늘처럼 고통스러운 경우는 처음이었다.

‘일어나야 해. 이대로 있다가는 진짜 큰일이 날 수도 있어.’

자신이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중간중간 살짝 정신을 놓은 듯했다.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빨리 나가야 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게이트와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다.

아픈 몸으로 게이트까지 걸어가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를 일이었다.

살짝만 움직여도 몸이 비명을 질렀다.

바늘에 찔리는 듯한 고통에 그는 일어서려다 다시 쓰러졌다.

생각보다 훨씬 심한 상처에 눈앞이 깜깜했다.

아무리 일어서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안 돼, 일어서. 이대로 가족과 이별할 거야? 이제야 겨우 행복을 되찾았는데… 아니, 절대 그럴 수 없어. 제발 일어서란 말이야!”

이길호는 자신에게 호통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지 일어섰을 뿐인데, 온몸이 비명을 질러 댔다.

그는 주위에 떨어진 나무 작대기에 몸을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몸은 사정없이 휘청거렸다.

몇 번을 쓰러지려 했는지 몰랐다.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급하게 다리를 뻗을 때마다 지옥의 고통을 맛보았다.

이대로 모조리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런 그를 마지막까지 지탱한 것은 가족이었다.

“헉!”

그는 크게 놀라며 눈을 떴다.

왕방울처럼 커진 눈은 무언가를 찾는 듯 연신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순간 기절한 것이었다.

이길호는 나무 작대기에 몸을 의지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강인한 의지를 이어받은 그의 몸은 기절한 상태에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정신이 돌아오자 그와 함께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빌어먹을 더럽게 아프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찌르는 듯한 화끈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호흡이 곤란해지며 숨조차 들이쉬시기가 힘들었다.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이제 한 번이라도 쓰러지면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그는 느리지만 최선을 다해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다.

마의 구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워낙 어린 나이에 각성해서 그런지 더욱 힘들었다.

그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만큼 우쭐거렸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의 구간을 넘지 못하고 성장이 멈춰 버렸다.

이길호는 절망했다.

그건 인생이라는 작대기가 부러진 것과 같았다.

덜 자란 청소년의 정신으로 이 사건을 극복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는 오랜 시간 방황하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런 미성숙한 자신을 꾸준히 믿어 준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낳아 인생의 행복을 어렵게 되찾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마의 구간에 꺾였을 때 느낀 분노가 다시금 되살아났다.

“대호 길드.”

이가 갈렸다.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길드였다.

워낙 소문이 좋지 않아 웬만한 스캐빈저들은 모두 알고 있는 길드였다.

워낙 지독한 놈들이라 대호 길드보다 규모가 큰 길드라도 웬만하면 얽히지 않으려 했다.

길드장부터 무식하고 다혈질이라 피해 다니는 게 답인 놈들이었다.

만약 시비가 붙으면 자신이 죽든 상대가 죽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악질이었다.

모두가 대호 길드가 망하길 바랐지만, 지금의 세상에서는 오히려 그런 놈들이 더 잘 먹고 잘살았다.

느려지던 발걸음이 대호 길드에 대한 분노로 인해 조금 빨라졌다.

절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고통이었는데도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금이 간 뼈가 고통으로 비명을 질러 댔지만, 그는 끝까지 걸었다.

그 노력에 보답하듯 드디어 저 멀리 게이트가 보였다.

멀리서도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이제 게이트가 닫히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그의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걷는 속도는 늘어나지 않았다.

“제발, 제발…….”

이길호는 빌었다.

게이트가 닫히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의 절실함이 통했는지 아슬아슬하게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헌터 협회 직원이 게이트가 닫히기 일보 직전에 나온 이길호를 보고 크게 놀랐다.

“괜찮으세요?”

직원이 급하게 달려와 그에게 말을 걸었으나, 이길호는 듣지 못했다.

게이트를 통과하고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곧바로 기절했기 때문이다.

* * *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던 선호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네,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 한 통에 선호연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사장님, 남편이 많이 다쳐서 지금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요. 죄송하지만 수한이가 오면 좀 봐주세요.”

“그럼요. 수한이 걱정 마시고 얼른 가 보세요. 아, 그리고 병원에 가시면 어딘지 문자 한 통 주세요.”

“네, 사장님.”

선호연은 앞치마만 벗어 놓고 급하게 분식점을 나섰다.

‘무슨 일이지?’

경일은 수한이 가족과 이미 정이 깊어진 상태라 크게 걱정이 되었다.

이길호와 선호연은 자신을 은인으로 깍듯하게 모셨다.

그러다 보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연락이 온 것은 선호연이 병원을 간지 두 시간 후였다.

수한이를 데리고 오지 말라는 문자에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경일은 평소보다 분식점을 일찍 닫았다.

수한이를 친구 집에 맡기고 병원에서 먹을 음식을 만들어 출발했다.

이길호의 상태는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거의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다.

한쪽 팔과 두 다리에는 깁스를 했고, 얼굴과 몸에는 꿰맨 자국이 가득했다.

이가 부러지고 얼굴은 멍투성이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경일이 놀라 물었다.

“흑흑흑…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저 상태로 던전에서 나왔다고 헌터 협회 직원이 알려 줬어요.”

선호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몸을 덜덜 떨었다.

이길호의 온몸에 난 상흔은 누가 봐도 구타로 생긴 것이었다.

‘제기랄, 어떤 새끼가… 죽여 버릴 테다!’

선호연의 앞이라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얼마나 화가 나는지 마음에서 치솟는 살심으로 경일은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으…….”

그때, 이길호의 신음이 들렸다.

“여보, 정신이 들어요?”

선호연이 이길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물, 물, 좀…….”

이길호는 한마디 꺼내기도 힘든지 거의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일이 얼른 가지고 온 물에 빨대를 꽂아 입에 갖다 댔다.

이길호는 힘겹게 몇 모금을 마시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흑흑흑…….”

선호연이 남편의 손을 꼭 쥔 채 서럽게 울었다.

“누나,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몸조리 잘하시고요. 아, 여기 죽을 좀 싸 왔으니까 꼭 먹이세요. 물도 잊지 마시고요.”

경일은 수한이 가족이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알기에 대놓고 죽과 물을 먹일 것을 종용했다.

그날 밤, 이길호는 깊은 꿈속에 빠져 있었다.

병원에서 넣어 준 진정제와 경일이 준 힐링 포션이 든 물을 먹고 생생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어둠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너무 답답했다.

손을 앞으로 내밀고 허우적거리며 걷다 보니 벽이 만져졌다.

벽을 따라 몇 발짝을 걸으니 90도로 꺾이면서 벽이 이어졌다.

탐험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가 있는 곳은 방이었다.

정사각형의 좁은 방.

깊은 어둠만이 존재하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에서 그의 심장 소리만 크게 울렸다.

처음에는 작게 들리던 심장 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사방이 자신을 압박해 오는 듯했다.

방이 갈수록 좁아졌다.

숨이 막혀 오고 심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아아아아악~"

이길호는 밀려드는 불안감과 공포에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질렀다.

가슴을 활짝 편 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모든 욕망을 담아 큰 소리를 질렀다.

퍽! 퍽!

주먹으로 벽을 때리고 발로 찼다.

힘껏 달려 벽에 몸을 부딪치기도 했다.

몸의 아픔 따위는 심리적 불안과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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