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응징
“뭐긴 뭐야, 너 같은 악인을 심판하는 몽둥이지. 지금까지 만난 놈들은 전부 주먹으로 처리했지만, 넌 워낙 악질이라 이렇게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겠어.”
“잠, 잠깐만. 말, 말로 하자고!”
“무슨 말? 넌 우리 형님 때릴 때 말로 했니? 그럼 나도 말로 상대해 주고.”
“아니, 그건 그 스캐빈저 새끼가… 커억!”
박재하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경일이 그가 말하는 도중 몽둥이로 사정없이 후려쳤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평소에 얼마나 스캐빈저들을 무시했으면 이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딴 소리가 나와? 너 레벨 몇이야?”
“헉, 헉, 헉…….”
박재하는 경일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경일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몸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때문에, 잘 쉬어지지 않은 숨을 쉬기도 바빴다.
딱 한 대 맞았을 뿐인데도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박재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을 절대 떠나고 싶지 않았다.
“잘… 잘못했습니다. 한… 한 번만 봐주세요.”
“이거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하라고!”
“네? 그게 무슨…….”
퍼억!
다시 한번 지옥 같은 고통이 밀려들었다.
묵직한 미스릴 몽둥이는 맞는 순간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이 아팠다.
박재하는 세상에 이런 고통이 존재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경일이 때린 곳만 계속해서 때리는 바람에 고통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몽둥이에 맞은 곳의 살이 터진 건 물론이고, 눈으로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퉁퉁 부어올랐다.
그나마 마나를 가진 헌터였기에 버틴 거지, 일반인이었다면 한 방에 죽었을 것이다.
헌터이기에 죽지는 않았지만, 대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맛봐야 했다.
“제발, 제발…….”
박재하는 바닥을 기어 경일의 바짓단을 잡고 빌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게 치솟아 있던 닭 벼슬 같은 그의 머리카락은 힘없이 고꾸라져 있었다.
“너, 몇 렙이냐고!”
“네, 네? 15레벨입니다.”
“허, 참. 어이가 없어서. 겨우 레벨 15짜리 헌터가 스캐빈저를 깔보고 인간 취급하지 않았단 거야?”
“아니, 그, 그게 아니고…….”
“네가 너보다 훨씬 더 레벨이 높으니 너를 완전히 개쓰레기로 대접해 주마. 별로 억울할 건 없지? 아 참, 중요한 걸 빠뜨릴 뻔했네. 너, 대호 길드원 아무한테나 전화해서 여기로 불러. 참고로 살려 달라느니,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면 네놈의 뼈란 뼈는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버릴 테니 알아서 해.”
“네, 네, 네.”
박재하는 벌벌 떨면서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경일이 매섭게 노려보자 그는 떨리는 숨을 한번 가다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형. 나야. 다름이 아니라 암시장에 거물이 나타났다네. 내 손으로 해결하기 힘들 거 같아서 말이지. 상인 말로는 거래 금액이 2억 가까이 된대. 어. 그래그래. 금방 암시장을 떠날 거 같으니까 빨리 와야 해.”
박재하가 필요 이상으로 경일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말했다.
경일은 그의 옆얼굴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굵은 땀방울을 놓치지 않았다.
하는 짓이 눈에 뻔히 보였으나 일단 침묵했다.
어떤 수작을 부리든 다 쳐부수면 그만이었다.
경일의 눈치를 보며 박재하가 전화를 끊자, 곧바로 미스릴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퍼억!
지금까지 맞았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소리가 컸다.
그와 함께 박재하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밀려드는 고통에 저절로 비명이 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투박한 손이 그의 입을 막은 것이다.
“읍, 읍, 읍, 읍…….”
박재하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뜨거운 눈물이 경일의 손을 타고 떨어졌다.
“너, 소리 지르면 더 맞는다.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덕여.”
박재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은 줄 끊어진 인형처럼 덜렁거렸다.
“이 새끼, 이거 보통 독종이 아니네. 이 상태에서도 잔머리를 굴리고… 방금 전화한 놈 누구야?”
“…….”
“어쭈, 대답 안 해?”
경일이 때릴 듯이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길드에 있는 형이에요.”
몽둥이가 두려운지 박재하는 얼른 대답했다.
“형?”
“네, 친형이요.”
“친형이라… 그래, 직책이 뭔데?”
“네?”
생각도 못 한 경일의 질문에 박재하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직책이 뭐냐고? 너 한 번만 더 잔머리 굴리면 절대 가만히 안 둔다. 이번에도 내 말 씹으면 너희 형이 보게 될 건 네놈 시체뿐일 거야.”
박재하는 경일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호 길드 길드장 박대호요.”
“아하~ 길드장이 친형이었어? 어쩐지, 겨우 레벨 15짜리가 하는 짓치고는 심하게 겁대가리를 상실한 거 같더니만… 형 믿고 큰소리친 거였어. 에라, 이 쓰레기 새끼야!”
“잠깐, 잠깐! 안 때리기로 했잖아!”
“내가 언제, 이 쓰레기 새끼야!”
퍽퍽퍽퍽!
연속된 몽둥이찜질 네 방에 박재하는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다.
박대호는 동생의 전화에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같은 싸가지 없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워낙 버릇없게 큰 놈이라 절대 이런 공손한 말투로 말할 놈이 아니었다.
짧은 통화였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혼자 가려던 생각을 버리고 곧바로 길드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전화를 받는 놈이 없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급한 마음에 혼자 가려다 겨우 세 명과 연락이 닿았다.
그중에는 부길드장도 있어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급하게 길드원들을 모으고 부랴부랴 공터로 가자, 박대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게거품을 문 채 기절한 동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똥오줌을 지린 채 그대로 뻗어 있었다.
“이런, 씨발!”
코를 찌르는 악취에 인상을 찡그리며 박재하를 깨웠다.
“재하야, 정신 차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깨를 쥐고 흔들자 박재하가 놀란 듯 ‘헉’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그는 곧바로 콩벌레처럼 몸을 웅크리더니 덜덜 떨었다.
“야, 이 새끼야. 너 왜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박재하는 형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땅에 박은 머리를 들어 박대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형… 살, 살려 줘! 여기에 악마 같은 놈이 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알아듣게 말을 해.”
“그놈이 대호 길드원들을 유인해서 한 명 한 명씩 구타한 후에 사라지게 만들어.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사람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을…….”
“이 새끼가 지금 미쳤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사실이라니까!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여기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어. 그놈이 없는 지금이 기회야.”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정신 차려. 널 이렇게 만든 놈이 누구인지나 말해.”
“난데.”
갑자기 공터의 어둠 속에서 경일이 귀신처럼 스윽 나타났다.
“너냐? 내 동생을 이렇게 만든 놈이?”
“그래.”
“너, 감히 대호 길드를 건드려? 죽고 싶어!”
“하~ 진짜 피곤한 새끼네. 그래, 건드렸다. 그것도 졸라 건드렸다. 어쩔래?”
경일이 길게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빈정거렸다.
“형! 그만하고 가자니까. 저놈은 악마야. 내 말대로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니까?”
박재하가 경일이 비꼬는 모습에 발끈해 소리를 지르려는 박대호의 팔을 급하게 잡고 흔들었다.
“닥쳐, 이 새끼야.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대호 길드를 건든 놈을 이대로 두고 그냥 가자고? 저런 놈을 가만히 두면 다른 놈들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어? 그리고 여기서 밀리면 지금까지 우리에게 눌려 있던 놈들이 들고 일어날 거란 생각은 안 해? 씨발! 네가 지금 길드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더 이상 헛소리하기만 해.”
박재하를 크게 질책한 박대호가 칼집에서 검을 꺼내 경일에게 겨누었다.
“이야~ 좋아, 좋아. 길드장이라 다르다 이거지. 지금까지 놈들은 전부 도망가기 바쁘던데 아주 좋아. 원래는 널 이놈의 두 배 정도는 더 팰 생각이었는데, 그냥 동생만큼만 때려 주지. 만약에 맞는 도중에 도망가려 한다면 원래대로 두 배를 맞을 거야.”
“이런 미친 새끼가…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옆에 있던 부길드장 천류수가 경일의 빈정거리는 말에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먼저 덤벼들었다.
“능동적인 모습이 아주 좋아. 넌 특별히 두 대 덜 때려 주지.”
경일의 이죽거리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천류수가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검날의 빛이 긴 꼬리를 남기며 경일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이상한데?'
천류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베었는데 손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경일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 잔상을 벤 것이었다.
“조심해!”
박대호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눈에 벼락이 떨어졌다.
눈에서 강렬한 빛이 번쩍이며 시야를 가리는 순간, 눈알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이 일었다.
천류수는 갑작스러운 격통과 함께 찾아온 암흑에 당황해하며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오른 주먹으로 천류수의 눈을 가격한 경일은 곧바로 왼 주먹을 그의 명치에 박아 넣었다.
순간적으로 경일의 주먹이 천류수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끄르륵…….”
딱 두 방이었다.
무기를 가지고 덤빈 상대를 너무도 가볍게 제압했다.
천류수는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복부를 감싸 안은 채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오늘 먹은 것을 게워 내고 있었다.
“저… 개, 개, 개새끼가!”
박대호의 눈빛이 일순 변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에서는 더 이상 경일을 무시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우야, 내가 숫자를 세면 한꺼번에 덤비는 거다. 네가 오른쪽, 내가 왼쪽으로 달려들게. 알겠지?”
“네, 길드장님!”
경일은 여유롭게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우와아아악!”
박대호가 숫자를 모두 세자 이단우는 고함을 지르며 경일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반대로 박대호는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런 쓰레기 새끼가!”
이단우의 검을 어깨 위로 흘리며 경일은 그의 턱에 짧은 주먹을 꽂아 넣었다.
한순간에 퓨즈가 끊긴 듯 눈빛이 멍해진 이단우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무정한 새끼. 친동생을 내버려 두고 도망이라니. 하여간, 앞에서는 온갖 큰소리를 치고 의리를 부르짖는 것들이 알고 보면 짐승 새끼보다 더 못하다니까.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친동생을 버리고 가냐. 에라이!”
경일은 망설이지 않고 단검을 던졌다.
단검은 빛처럼 빠른 속도로 박대호의 등을 노리고 날아갔다.
박대호는 단검이 등에 박히기 직전에 온 힘을 다해 몸을 틀었지만, 피하기에는 너무 속도가 빨랐다.
“아아아악!”
등에 단검이 박힌 박대호가 바닥을 굴렀다.
박대호는 등에 박힌 단검을 뽑아 보려 아무리 용을 써 보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불에 타는 듯이 따갑고 아픈 고통에 그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개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형이란 놈이 동생을 버리고 가냐? 엉엉엉엉. 내가 아무리 모자라지만 친동생이잖아!”
박재하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박대호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분명 도망가자고 했잖아. 저 새끼는 악마라고 내가 이야기했잖아. 이 병신아! 내 말 안 듣더니 꼴좋다.”
눈물을 흘리던 박재하는 금세 표정을 바꾸더니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그의 형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인데, 그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경일은 더 이상 꼴도 보기 싫어 네 명 모두 광산으로 보내 버렸다.
대호 길드라는 소형 길드를 없애는데 채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주위를 정리하고 떠나자, 공터에는 몇 개의 핏자국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 *
경일은 매일 병원에 가는 선호연에게 물과 죽을 챙겨 보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