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47화 (147/300)

[147화] 가우스 교 (1)

“신전을 짓는 데에만 무려 오백 골드가 들어갔습니다. 오백 골드면 두 개 지방에 신전을 세울 수 있는 돈입니다. 저번에 일을 잘했다고 대신관께서 특별히 지원하신 겁니다. 그런데 일을 이따위로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지금 나 혼자 잘되자고 이러는 겁니까? 아니잖습니까. 만약 이번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건 아니지요? 가우스 신의 신벌이 두렵지 않습니까? 불을 숭상하는 가우스 신의 신벌이 정녕 두렵지 않다는 겁니까!”

이곳의 종교는 알고 보면 모두 장사였다.

신화 속의 신을 앞에 내세우긴 했지만, 현생에서 실제 신처럼 행동하는 이들은 각 종교의 대신관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살아 있는 신이라 칭했고, 교인들은 그런 그들을 모셨다.

물론 실제로 대신관을 신이라고 믿는 사제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이 가진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대신관을 신으로 모셨다.

대신관을 부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대신관이 무너지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중 가우스 교는 베르아스 왕국에 있는 다른 종교들보다 먼저 스탄다비아에 들어왔다.

스탄다비아는 최근 급격하게 발전하긴 했지만, 종교가 들어와 활동하기에는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가능성을 봤고,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먼저 선점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일종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가우스 교는 이곳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많은 돈을 썼다.

스탄다비아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의 땅을 사들여 신전을 지었다.

종교에서 신전은 매우 중요했다.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압도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분위기로 끌고 가기 위해선 최대한 크고 웅장하며 고급스럽게 지어야 했다.

“저희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생기면 달려가 치료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가서 도왔습니다. 그동안 가우스 교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나 노력했는데도 막상 예배 날이 되면 오는 이들이 소수에 불과한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무작정 끌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감히, 변명을 하는 겁니까? 자신의 신심이 부족한 걸 반성하지 않고 그저 변명이나 줄줄 늘어놓다니… 정녕 교리에 따른 형벌을 받아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아니, 잘… 잘못했습니다.”

베니티 사제는 형벌이란 말에 급하게 태세를 전환하며 빌었다.

그들이 속한 가우스 교는 불을 숭상하는 만큼, 죄에 대한 형벌이 대부분 불과 관련이 있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고통 중의 하나가 불에 타는 고통인 작열통이었다.

그런 끔찍한 고통은 절대 겪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교리가 통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베니티 사제는 조금 전과 달리 입을 다물었다.

“변명은 그렇게도 열정적으로 하더니, 사태의 원인조차 모른단 말입니까?”

루터 봉역 사제가 사제들을 향해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으로 봐서 잘못하다가는 불의 길을 밟고 지나가는 형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 저기…….”

그때, 베니티 사제 옆에 있던 카르어스 사제가 형벌만은 꼭 피하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떠듬거렸다.

“뭡니까?”

루터 봉역 사제의 목소리는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다.

“저기, 그게… 우리의 선교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모두 이곳의 영주 때문인 거 같습니다.”

루터 봉역 사제의 화난 눈초리가 부담스러워 카르어스 사제는 눈을 내리깔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주?”

생각지도 못한 신선한 해석에 루터 봉역 사제가 화난 표정을 지우며 관심을 드러냈다.

“네. 선교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보면 그들이 얼마나 영주를 위하고 따르는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곳은 두 영지의 사람들이 함께 살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라면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곳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영주의 장악력이 크다는 방증이라 생각합니다. 루터 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사회가 혼란할수록 종교를 찾을 텐데, 여기는 먹고 사는 게 어렵기는 하나 희망에 찬 느낌이었습니다.”

카르어스 사제는 관심을 보이는 루터 봉역 사제의 모습에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희망을 채워 주는 것이 우리 같은 종교가 할 일인데, 이곳 사람들은 이미 영주에게 희망을 느끼고 있으니 굳이 우리를 찾을 필요가 없는 걸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아무리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일을 도와주고, 예배에 오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줘 봐야 영주가 하는 일에 비하면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격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알아보니까, 영지민들이 거의 세금을 안 내고 있다더군요. 오히려 영주가 정기적으로 식량을 나눠 준다고 합니다.”

“음…….”

카르어스 사제의 이야기를 들은 루터 봉역 사제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였다.

문제는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이미 자포리자가 종교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곳에 엄청난 자금이 투입됐는데, 아무 성과도 없이 철수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을 내놓는다는 말과 같았다.

분명 대신관은 이곳에 파견된 모든 사제에게 불의 형벌을 내릴 터였다.

불의 형벌은 종교의식을 가장한 최악의 형벌이었다.

가우스 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산 사람을 그대로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집어넣었다.

신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뿐, 사제들뿐만 아니라 신도들을 억압하는 용도로 사용될 뿐이었다.

가우스 교의 사제치고 불의 형벌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만큼 광범위하게 자주 행해졌다.

어느 누구라도 절대 산 채로 불에 타 죽고 싶지는 않으리라.

이들의 선교 방식은 특별한 것 없이 몇백 년 동안 내려온 그대로였다.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이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며, 조금씩 그들의 마음을 열려고 했다.

단지 그 방식 안에서 다양한 편법을 이용해 사람들이 마음을 여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신성력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척하며 희석한 힐링 포션을 먹이는가 하면, 신의 이적을 행한다면서 불 위를 걷는 모습을 보여 준다거나, 불꽃을 만들어 냈다.

사제들은 이 모든 게 가우스 신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기적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홀렸으나, 사실 전부 일종의 속임수였다.

불 위를 걷는 건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하나의 기예였고, 불꽃을 만드는 것도 오줌을 강한 불에 끓여 만든 인을 불에 던지면 일어나는 간단한 화학 작용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게 신의 힘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많은 신도를 모았지만, 스탄다비아에서는 이상하리만치 통하지가 않았었다.

루터 봉역 사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존의 선교 방식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라도 알았으니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돈이 들어갔다. 그런 만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간 돈의 두 배 이상을 벌어들여야 불의 징벌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루터 봉역 사제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사제들을 바라보며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케나베스를 푸는 걸로 하겠습니다.”

“네?”

사제들은 자신이 들은 것이 확실한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말이십니까?”

베니티 사제가 놀란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만약 케나베스까지 쓰고도 실패한다면, 우리의 목숨으로 끝날 문제가 아닌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가족들까지 끔찍한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정녕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베니티 사제가 다시 한번 루터 봉역 사제의 진의를 확인했다.

“그럼 이대로 물러나자는 이야기입니까? 그게 뭘 뜻하는지는 모두 잘 알겠지요? 불에 산 채로 타 죽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만약 도망이라도 가면 남은 가족들이 그 죗값을 대신 받아야 하는 것도 알 테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제 말은 케나베스 값이 비싼데, 이런 가난한 영지에서 그만큼의 수익을 뽑을 수 있겠냐는…….”

“이런 멍청한 놈!

그럼 이대로 죽자는 것이냐? 어차피 죽을 거 발악이라도 해야지!”

평소 온화한 모습을 보이던 루터 봉역 사제가 그답지 않게 역정을 버럭 냈다.

“네네, 맞습니다.”

베니티 사제가 고개를 떨구며 기가 죽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이들은 은밀하게 케나베스를 들여왔다.

케나베스는 대마초와 같은 일종의 마약 담배였다.

일반적인 담배와 다른 것은 대마초보다 훨씬 강한 환각 작용과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경일이 마나 포션을 만들 때 주재료로 쓰이는 커미네스를 아주 극소량 섞어 만들어졌다.

커미네스는 약효를 몸속에 빠르게 퍼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는데,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진 케나베스는 각성 효과와 함께 몸이 이완되고 행복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강한 중독성도 중독성이지만, 커미네스가 가진 마나가 케나베스와 만나 오염된 마나로 변질된다는 점이었다.

오염된 마나는 끔찍한 질병을 일으켰는데, 지구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던전병과 같은 증상을 일으켰다.

이들은 케나베스로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가우스 교의 노예로 만들 생각이었다.

한 번 노예가 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들에게 피를 빨려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단 결정이 내려지자 이들은 빠르게 일을 진행했다.

사제들은 요즘 왕국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담배라며 사람들에게 케나베스를 권했다.

그동안 사제들에게 여러 도움을 받은 터라 영지민들은 별 의심 없이 케나베스를 받아 폈다.

한 모금을 빨았을 뿐인데, 확실히 기존의 담배와는 느껴지는 게 달랐다.

몸이 살짝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아니, 몸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가벼워졌다.

“베니티 사제님, 이거 정말 좋은데요? 역시 수도에서 유행하는 거라 다르긴 다르네요.”

“하하, 자할리 신도님이 좋아하시니 우리도 기분이 좋은걸요.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가우스 신께 복종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느끼시는 행복은 가우스 신을 영접하는 순간, 천 배, 만 배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베니티 사제가 얼른 교리를 전파했다.

“흡흡.”

자할리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헛기침하며 케나베스를 쭉 빨아 당겼다.

어제 무리하게 일해서 그런지 온몸이 당기고 무거웠는데, 케나베스를 피우자 그런 느낌이 모두 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지고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베니티 사제님, 이거 좀 더 없습니까?”

자할리는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담배를 더 요구했다.

그동안 사제들이 선교를 위해 머리를 굽신거리고 다녀서인지, 사람들을 사제를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시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다.

‘건방진 새끼 같으니라고. 촌구석의 평민 주제에 감히! 그래, 내가 네놈의 뻣뻣한 모가지를 언젠가 제대로 한 번 꺾어 주마. 그때가 되면 네놈은 내 발바닥을 핥아야 할 것이다.’

베니티 사제는 속으로 뻗치는 화를 눌렀다.

자애로운 미소를 띄우며 자할리에게 선교를 하고 있지만 기저에 깔린 감정은 분명 멸시였다.

그에 눈빛엔 분명 섬찟함이 서려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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