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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48화 (148/300)

[148화] 가우스 교 (2)

베르아스 왕국의 종교인은 법적으로는 평민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은 귀족과 평민 사이의 대접을 받았다.

오히려 직위가 높은 종교인들은 귀족보다 더 높은 대접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베니티 사제가 화를 내는 건, 그들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스탄다비아에서는 종교가 사라진 지 100년이 넘었다.

그런 이유로 영지민은 종교인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제들은 어쩔 수 없이 선교하긴 하지만, 영지민들의 태도에 분노를 품고 있었다.

“하하하, 여기 있습니다. 혼자서만 피지 마시고 주위 분들도 나눠 주시고 하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베니티 사제는 가지고 온 케나베스를 모두 자할리에게 주고 자리를 떴다.

그는 영지민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이건 베니티 사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다른 영지에서는 어느 정도 대접을 받던 사제들이다 보니, 이곳 스탄다비아에서 평민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 화가 났다.

그들도 케나베스를 사람들에게 권하긴 했지만, 열심히 하지 않았다.

최대한 영지민들과의 접촉을 줄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베니티 사제처럼 처음 만난 영지민에게 가진 것을 모두 주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는 루터 봉역 사제의 닦달과 이 일에 실패하면 내려질 신벌이 두려워 화를 참으며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내팽개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신벌은 미래의 일이고, 기분이 나쁜 건 당장 지금의 일이니 더욱 참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케나베스의 효과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라 이 정도만 해도 알아서 퍼져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케나베스를 뿌린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루터 봉역 사제는 오늘 열릴 예배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얼마나 많은 영지민들이 올지 벌써부터 설렜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이면 많은 이들을 중독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단단히 화가 난 루터 봉역 사제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사제들을 노려봤다.

눈빛을 받은 사제들이 찔끔거리며 몸을 움츠려다.

지금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신전을 찾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양의 케나베스를 뿌렸는데도 찾아오는 영지민들은 소수였다.

“그게…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제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머리를 조아리기 바빴다.

“내가 이 정도의 양을 가져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줄 압니까? 이 정도면 결과가 나오고도 남아야 하는데, 이게 뭡니까? 혹시… 당신들이 나 몰래 뒷주머니를 찬 거 아닙니까?”

몇몇 사제들이 마음이 뜨끔했으나,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 모른 척했다.

“아닙니다. 할당받은 케나베스는 모두 영지민에게 뿌렸습니다.”

베니티 사제가 억울한 듯 대답했다.

그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케나베스를 골고루 나눠 주지 않고 몇 명의 사람들에게만 모두 주었을 뿐이었다.

베니티 사제는 케나베스를 주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 주라고 신신당부했으나, 케나베스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좋은 걸 나눌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주지 않고 자신들만 즐겼다.

베니티 사제 같은 이들과 실제로 케나베스를 뒤로 빼돌린 몇몇 사제들이 생기는 바람에 대량의 케나베스가 시중에 풀렸음에도 그 효과는 미비했다.

“왜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만 있습니까? 내 말이 우습나요? 정녕 가우스님의 신벌을 받아야 입을 열겠냐고!”

루터 봉역 사제가 말을 하다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거의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지금 반쯤 미쳐 있는 상태였다.

이미 많은 자금이 투입된 상태에서 자신의 모든 줄을 동원해 케나베스까지 지원받은 상황이었다.

이러다가는 자기 목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신벌을 받을 위기였다.

“이 새끼들아, 말을 하라고! 내가 우스워? 우습냐고? 모두 죽고 싶어!”

루터 봉역 사제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종교인답지 않게 시정잡배들이나 쓸 말을 입에 담았다.

“지금이라도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말하면 용서해 준다. 안 그럼 오늘 너희들은 전부 나한테 뒤졌어. 알겠어? 이 쓰레기 새끼들아!”

하얀 사제복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서로 대비되어 그가 얼마나 열에 받쳐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사제들이 각자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일부 눈치 빠른 사제는 이 사태의 원인을 눈치챘다.

그중 한 명이 베니티 사제였다.

그는 자신이 한 짓을 다른 사제들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이 사태가 일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 몇 사람에게 가진 케나베스 모두를 나눠 줬다는 게 알려지면 더 큰 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사제들은 입을 꽉 다문 조개처럼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사제들은 루터 봉역 사제에게 뭉둥이 찜질을 당해야 했다.

하얀 사제복의 엉덩이 부분이 피로 물들 때까지 맞았다.

사제들은 벌레같이 신전 바닥을 기었다.

루터 봉역 사제는 그만큼 때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악귀처럼 씩씩거렸다.

더 때리고 싶었지만,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터라 더는 몽둥이를 들 힘이 없었다.

머리가 산발한 채 핏발이 터진 눈을 부릅뜨고 사제들을 노려봤다.

“왜냐고! 이 새끼들아! 지금쯤 중독된 사람들로 넘쳐야 하는데, 멀쩡한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말을 해, 말을 하라고!”

목이 쉬어 컥컥거리면서도 루터 봉역 사제는 소리를 질러 댔다.

그의 이런 모습만 봐도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루터 봉역 사제는 지친 몸에서 억지로 힘을 짜냈다.

이대로 이유도 모르고 물러설 수 없었다.

퍽! 퍽! 퍽!

“말 하라고. 말을 해! 이유를 말하라고, 아아아악!”

하지만 그렇게 매질을 당하면서도 아무도 그가 원하는 답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매질은 루터 봉역 사제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가우스 교의 사제들을 본 사람이 없었다.

매타작을 당한 사제들은 몸이 아파 드러누웠고, 루터 봉역 사제 또한 몸살로 몸져누웠다.

일주일이 지나 정신을 차린 루터 봉역 사제는 다시 한번 케나베스의 지원을 요청했다.

혹시라도 거절당하는 순간, 자신과 사제들은 끝장이었다.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 결과를 기다렸다.

그동안 사제들은 루터 봉역 사제 앞에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마침내 수도의 교단에서 기다리던 편지가 도착했다.

루터 봉역 사제는 편지를 앞에 두고도 쉽게 열지 못했다.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의 목숨까지 이 편지에 달려 있었다.

사제들도 떨리는 마음을 뒤로 한 채 테이블 위의 편지만을 바라 봤다.

루터 봉역 사제가 떨리는 손으로 봉인된 편지 봉투를 들어 올렸다.

조심히 봉인을 뜯고 편지를 꺼내 읽었다.

“휴~”

루터 봉역 사제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됐습니다. 교단에서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루터 봉역 사제의 말에 모든 사제가 안도했다.

어찌 됐건 그들은 살아남았다.

“잘 들으세요.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회입니다. 물론 이번에는 내가 철저히 챙기겠지만, 여러분들도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만약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놈들이 있다면, 제 권한으로 가장 혹독한 신벌을 내리겠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사제들은 바짝 긴장한 체 루터 봉역 사제의 말을 들었다.

자포리자는 이 시대의 신이 얼마나 허망한 존재인지 경일이 보내 주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베르아스 왕국에는 실체도 없는 신을 모시는 종교가 난립했다.

이들이 말하는 신은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같은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들의 교리에는 하나같이 신에 대한 복종과 헌신이 들어있다.

자포리자는 이들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이미 지금의 종교는 썩은 걸 넘어 고약한 악취를 풍겼다.

이들은 다양한 명목으로 힘이 없는 평민들의 피를 빨았다.

과연 신을 믿는 자들이 하는 짓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들려오는 소문은 역겨웠다.

첩보장인 기사 블라도가 보내오는 여러 정세에는 종교에 관한 것도 있었다.

스탄다비아를 노리는 프라인 영지만 해도 이미 종교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영지민들에게 그들은 또 다른 약탈자일 뿐이었다.

패트래건 영주가 세금을 걷어 가고 나면, 그들이 하이에나처럼 남은 살점을 발라 먹었다.

세금과 종교에 살을 뜯긴 평민들은 바짝 말라 갔다.

자포리자는 그들을 몰아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의 손으로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가우스 교를 쫓아낸다면, 왕국의 모든 종교가 뭉쳐 자신들의 밥그릇을 건든 자포리자를 공격할 터였다.

이미 프라인이라는 거대한 적이 도사리고 있는 판국에 또 다른 적을 늘리는 건 매우 위험했다.

그는 속을 끓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사제들도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일했다.

당장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족의 목숨까지 걸려 있으니 소홀히 일할 리가 없었다.

사제들은 열심히 뛰어다녔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케나베스를 나누어 주었다.

베니티 사제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영지민들이 케나베스를 피는 걸 확인하기도 했다.

케나베스의 중독성은 강력했다.

순식간에 영지민들 사이에 케나베스가 파고들었다.

사람들이 가우스 신전으로 밀려들었다.

“됐다!”

루터 봉역 사제의 입에 찐한 웃음이 걸렸다.

사제들도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일한 만큼 예배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아직까지는 무료로 케나베스를 풀었다.

하지만 중독이 깊어질수록 이들은 가우스 신의 독실한 신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뒤로 두 달이 흘렀다.

가우스 신전에는 예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베니티 사제님, 제발 케나베스 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한 남자가 베니티 사제의 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흥! 너 같은 건방진 새끼에게 줄 건 없다.”

남자는 한 달 전 베니티 사제가 케나베스를 준 사람이었다.

베니티 사제는 그때 남자의 건방진 태도에 자존심이 상한 걸 곱씹고 있었다.

“제가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시골의 무지렁이라 사제님들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시고 케나베스를 조금만 나눠 주십시오!”

남자의 눈 주위가 시꺼멓고,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는 간절한 목소리로 베니티 사제에게 빌고 또 빌었다.

“내가 주고 싶어도 이제는 공짜로 줄 수가 없어. 그게 얼마나 비싼 물건인 줄 알고 있나? 너희 같은 것들은 양심이 없어. 가우스 교가 아무리 평민들을 위한다고 해도 너같이 양심 없는 새끼까지 보살피지는 않아. 알겠어?”

“얼마면 됩니까? 사제님, 얼마면 구할 수 있습니까?”

“어허, 이 새끼가 나를 뭘로 보고! 나 같은 독실한 사제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가우스 신을 모시는 내가 돈 따위를 탐하는 것으로 보이느냐? 넌 자격이 없다. 당장 여기서 꺼져라!”

“아이고, 제가 무식해서 헛소리를 했습니다. 사제님, 제발 이 무식한 저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눈물까지 흘려 가며 베니티 사제의 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흡흡, 그렇단 말이지. 내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네놈과 말도 섞기도 싫으나, 가우스 신의 사제로서 너에게 교리를 내려 주지. 이번 예배에서 네가 정성을 다해 헌금하면, 소망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거야. 만약 이렇게 기회를 줬는데도 정성이 부족하기라도 하면, 너에게 가우스 신의 신벌이 내릴 거야. 이 말 명심해!”

베니티 사제는 자신의 다리를 잡고 애원하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엔 더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과 함께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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