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날파리
요즘 동네 분식에는 날파리가 많이 꼬였다.
정확히는 경일이 나눠 주는 죽에 관심을 가진 불청객들이었다.
신비한 죽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벌 떼같이 모여들었다.
물론 아픈 가족을 위해 죽을 얻으러 오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할 때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일이 훨씬 커졌다.
오늘도 손님보다 불청객이 먼저 찾아왔다.
“아니, 왜 차별하는 거야? 난 사람 새끼가 아니라는 거야? 다른 사람은 죽을 달라고 하면 공짜로 주면서, 나는 왜 안 주는 거냐고! 뭐 이런 후레자식들이 다 있어. 나도 얼른 죽을 달라고!”
얼마나 머리를 안 감았는지 머리가 떡 져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때가 덕지덕지 붙은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가 매대 앞에서 행패를 부렸다.
경일이 그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얼른 매대에 차려 놓은 음식 뚜껑을 닫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그 남자의 입에서 튄 침 때문에 음식을 모두 버려야 할 뻔했다.
그가 이렇게 재빨리 반응할 수 있던 것은 그동안의 경험 덕분이었다.
부랑자들은 일부러 매대에 바짝 붙은 채로 떡볶이랑 어묵탕 앞에서 침을 튀기며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갑작스런 사태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매대의 음식을 모두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음식에 침이 들어간 걸 본 경일은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부랑자를 때릴 뻔했지만, 보는 눈이 많아 겨우 참을 수 있었다.
부랑자는 몰랐지만, 그는 남은 인생을 던전의 광산에서 살 뻔한 위기를 운 좋게 넘겼다.
음식을 공짜로 요구하는 인간들의 태도는 제각기 달랐다.
무작정 엎드려 애원하는 이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이렇게 무조건 크게 소리치며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은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분식점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일부러 동네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경일을 곤란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아주 악질적인 놈들이었다.
당연히 경일은 한 번도 저런 놈들에게 음식을 준 적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남자의 뒷덜미를 잡아끌고 저 멀리 버렸다.
부랑자는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소리를 꽥꽥 질렀다.
“사람 죽는다!”
“동네 사람들, 이 새끼가 사람을 죽이고 있어요!”
“개새끼야! 차라리 죽여라, 죽여!”
“이런 후레자식아. 넌 애미 애비도 없냐?”
이렇게 온갖 패악을 부렸지만, 경일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바쁜 경찰들은 부랑자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식당에서 행패를 부리는 부랑자를 외면하는 대신, 경일이 그놈을 끌고 가서 버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공평한 처사(?)라고 볼 수도 있었다.
이런 귀찮은 일에 경일을 대신해 나선 건 이길호였다.
경일이 곤란을 겪는 것을 본 그는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했다.
일주문을 지키는 사대천왕처럼 떡하니 매대 앞에 서서 분식점을 지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길호의 손에 끌려가는 부랑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이 자주 벌어지자, 동네 사람들은 어느 날부터는 그저 그런 자연스러운 풍경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부랑자 중에도 아주 악질적인 놈들도 있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온갖 행패는 물론 기물을 부수기까지 했다.
지치지도 않는지 쫓아내면 다시 오고, 아주 사람의 피를 말렸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질긴 놈들도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부랑자가 사라졌다고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행방은 오직 경일만 알았다.
부랑자보다 골치 아픈 부류는 인정에 호소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경일에게 통사정했다.
경일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 비후초가 든 죽을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인생을 책임져 줄 만큼 경일은 호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건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었다.
던전이 아무리 비옥해도 분명 한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이런 식으로 죽을 나눠 주다가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비후초를 재배하는데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경일은 이미 분식점의 손님을 동네 사람들만으로 확실히 선을 그은 상태였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부탁하러 오는 사람이 모두 공손한 건 아니었다.
그중 일부는 마치 맡겨 놨다는 듯이 죽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하나같이 ‘남은 주면서 나는 왜 안 주냐?’ 라는 거였다.
경일이 무슨 말을 해 본들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고아로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겪어 봤다고 자부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본 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었다.
다행히 이길호가 나서서 그런 이들을 쫓아내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노이로제에 걸려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귀찮은 일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길드가 끼어들었다.
저녁이 되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분식점으로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경일이 손님을 맞았다.
“손님, 여기 처음 오시죠? 여기는 동네 분들만 받는 곳입니다.”
남자는 경일의 말을 무시하고 자연스럽게 다찌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나서 남자는 황당해하는 경일을 불렀다.
“사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손님인 남자가 마치 집주인처럼 행동했다.
경일이 어이가 없었지만, 다시 한번 나가 달라고 말하기 위해 다찌로 들어가 남자의 앞에 섰다.
“일단 장삿집에 들어왔으니 뭐라도 하나 시켜야겠죠. 이 집에서 제일 비싼 걸로 하나 주세요.”
깔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기고 비싸 보이는 양복을 입은 남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여유가 깃들어 있었고, 말과 행동에서는 품위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사람을 아래로 깔아 보는 듯했고,말 속에는 우월감이 가득 차 있었다.
“외부인에게는 안 판다고 얘기한 거 같은데요. 바쁘니까 이만 나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경일이 남자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
“성격이 급한 분이시군요. 나도 성질 급한 걸로는 나름 유명한데, 이거 명함도 못 내밀겠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비릿하게 웃으며 경일을 쳐다봤다.
그의 무례한 행동에 경일도 지지 않고 남자를 노려봤다.
“뭐, 우리가 부탁하러 온 입장이니 맞춰 드려야죠. 나는 세보 길드 부길드장 김형성입니다. 한 번쯤은 들어 본 적 있으시죠?”
경일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말대로 한 번쯤 들어 본 적 있는 길드였다.
암시장을 자주 이용하다 보면 그 구역을 관리하는 길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경일도 몇 군데의 암시장을 이용하며 세보 길드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이번에 분식점을 찾아온 건 작은 날파리가 아닌 왕파리였다.
‘쳇, 귀찮게 됐네.’
경일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형성은 자기 할 말만 했다.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돌더군요. 산동네에 죽을 나눠 주는 묘한 분식점이 하나 있다고. 그곳에서 나누어 주는 죽을 먹으면 던전병이 낫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말이죠. 처음에는 당연히 안 믿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소문이 없어지지를 않더군요. 보통 헛소문의 경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확인을 해 보니, 정말로 사실이라 많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을 좀 했습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김형성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는 상대방이 보면 불편해 할 행동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죠. 대체 왜 이런 선행을 베푸는지, 사장님에 대해서 너무 궁금해지는 겁니다. 사실 요즘같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이런 산동네에서 옛날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착한 사람이 살고 있을지 몰랐거든요. 뭐,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하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 호기심을 강렬히 자극시켰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요즘 무료했는데 말이죠.”
무료하다고 말하는 김형성의 눈빛이 순간 섬뜩하게 빛났다.
“그래서 한동안 사장님을 좀 미행했습니다. 이거, 사장님이 워낙 조심성이 많아서 부하들이 미행을 매번 실패하더군요. 그 덕에 제가 일을 시킨 놈들을 좀 많이 팼습니다. 덕분에 스트레스는 제대로 풀기는 했지만.”
경일은 김형성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희열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차가운 손가락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아~ 이건 쓸데없는 이야기고. 하여간 미행 말입니다. 매번 실패한 건 아니고 한두 번은 성공했습니다. 보고받고 사장님의 행동을 분석해 봤는데, 이거 이해가 안 되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암시장에다가 귀한 물건을 많이 파시더군요. 던전병에 관련된 던전 고유 식물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더니, 커미네스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판 돈으로 쌀과 같은 식량을 사들이고… 뭐, 그 많은 쌀을 어디에 쓰는지 그런 건 제가 알 바는 아니고. 중요한 건 내가 사장님에게 거래를 제안하러 왔다는 겁니다.”
순간 짜증이 솟구친 경일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지만, 김형성은 단 1도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사장님이 다른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하는 거 같은데, 우리도 좀 도와주십시오. 이번에 우리 길드에서 포션 사업을 하나 계획 중인데, 재료가 모자라서 말입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면 대신 사장님의 귀찮은 심부름을 맡아서 하겠습니다. 쌀을 많이 사러 돌아다니시는 거 같은데, 사장님 같은 분이 직접 움직이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사장님의 뒷배가 되어 드리죠.”
김형성은 경일이 당연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는 듯이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지금 소문이 점점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보니까 별별 거지 같은 놈들이 죽을 얻으러 오는 거 같던데… 세보 길드에서 다 막아 드리죠. 이 근처에서 저희를 무시할 수 있는 세력은 없습니다. 세보 길드가 뒤에 있다는 소문만으로도 동네가 조용해질 겁니다. 저희 길드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정확히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해 드리자면, 소속된 헌터만 해도 200명이 넘습니다. 따로 운영하는 사업체도 많고요. 사장님은 그저 던전 고유 식물 전량을 공급해 주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긴 말을 마친 김형성은 여유롭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는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은 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참, 누군가 사장님이 던전 고유 식물을 암거래한 걸 신고한 모양입니다. 지금 암거래 집중 단속 기간이라 경찰서에 가면 귀찮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자칫하면 실형을 살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사장님이 저희와 손을 잡는다면 곧바로 해결될 문제입니다만…. 이 동네에서는 경찰이라고 해도 세보 길드를 무시하지 못하거든요. 아 참, 저희와 정 거래하기 싫으시면 외국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럼 우리도 포기하죠. 대신 앞으로 대한민국에 머물 생각은 하지 마세요.”
경일을 협박하는 김형성의 미소는 어느새 삐뚜름한 비웃음으로 변해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