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55화 (155/300)

[155화] 납치

“너, 분명히 내가 가만히 안 둔다고 했지? 너 같은 새끼는 한 몇 년 콩밥을 먹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는 험악한 얼굴로 경일을 몰아붙였다.

“너같이 전문적으로 암거래를 하는 놈은 사회의 악이라고. 자, 지금이라도 순순히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박영준 형사는 의도와 다르게 경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팔 뿐이었다.

“이 새끼가… 정말 죽고 싶어!”

박영준 형사의 협박에도 경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귀를 팠던 새끼손가락을 세워 ‘후’하고 그를 향해 불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죽여 버리겠어!”

자신을 무시하는 경일의 태도를 보고는 박영준 형사는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길길이 날뛰었다.

“죽여 보든지. 그런데, 나 죽이면 세보 길드가 싫어할 텐데, 괜찮겠어?”

경일이 그를 향해 이죽거렸다.

세보 길드라는 단어가 나오자 가슴이 뜨끔해진 박영준 형사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얼른 표정을 바꾸었으나, 헌터인 경일의 눈썰미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여기에 집중해.”

다급했는지 허상현 형사는 대신 딱 잡아떼고 서류철을 펼쳐 몇 개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진에는 쌀 도매상에서 쌀을 사는 경일과 그의 차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쌀 도매상의 장부에는 거래한 액수가 적혀 있었다.

아마 세보 길드가 제보한 내용으로 증거를 수집한 모양이었다.

“자, 보이지. 네놈이 암거래한 증거. 이렇게 증거가 다 있으니 순순히 인정하는 게 좋을 거야. 증거가 다 있는데도 버티면 너만 좆 되는 거야. 그러니 쉽게 가자고. 지금부터 네놈이 거래한 내역을 모두 말해. 우리가 조사한 거랑 하나라도 다르면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숨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럼 나도 최대한 조서를 잘 써 주도록 하지.”

허상현 형사가 마치 경일을 위해 준다는 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로 배드 캅, 굿 캅 연기를 실감 나게 하는 형사들을 보며 경일은 속으로 비웃었다.

형사들의 이런 같잖은 모습을 보자 절로 비웃음이 삐져나왔다.

허상현 형사는 그런 경일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노트북을 펼친 채 그의 말을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자도 치지 못했다.

경일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고 얼른 끝내자고. 이미 증거가 다 있는데 계속 잡아떼 봐야 너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어. 괜히 괘씸죄가 추가되어 죄만 더 무거워질 뿐이야. 내 막냇동생 같아서 해 주는 이야기니 얼른 협조하라고.”

허상현 형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경일은 담배를 권하는 그의 손을 한 번 쳐다보고는 크게 코웃음을 치고는 드러눕듯 의자에 몸을 맡겼다.

그 모습에 허상현 형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개새끼야, 죽고 싶어? 여기가 어딘지 몰라? 너 같은 고아 새끼 하나 죽어 나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감히 지금 날 가지고 놀아?”

지금까지 굿 캅 역할을 하던 허상현 형사가 화를 참지 못하고 경일을 향해 삿대질하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경일은 그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쿵’ 소리가 나게 다리를 테이블에 올렸다.

“나 참, 이런 것들이 경찰이라고. 착각하지 마. 너희는 아무것도 아냐. 너희가 등에 업은 권력은 너희 것이 아니라고. 경찰 딱지만 떼면 그냥 혐오스러운 벌레일 뿐이야. 사람들이 보는 순간 구둣발로 짓이기는 그런 벌레. 하여간 너희 같은 비리 경찰들 때문에 경찰 조직 전부가 욕을 먹는 거라고.”

“입 닥쳐, 이 새끼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그 입 찢어 버리기 전에 입 닥쳐!”

형사들은 경일의 신랄한 비난에 이를 뿌드득 갈아 대며 발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일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증거가 있으면 모두 꺼내. 형사는 증거로 말하는 거 아냐? 모두 다 알고 있다고 하니 내가 말할 필요도 없겠네. 내가 암거래했다는 증거를 꺼내 보라고”

경일이 형사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히려 그들을 심문했다.

모욕을 당한 형사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지만, 막상 새로운 증거는 꺼내지 못했다.

“이런데 사람을 몰아넣고 윽박지르면 내가 알아서 술술 불 줄 알았어? 하여간, 형사란 놈들이 제 발로 뛰어다니면서 사건을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말이야. 세보 길드에서 던져 주는 뒷돈이나 받아 처먹고, 죄 없는 시민한테 협박이나 하면 되겠어. 어디, 다른 증거 있으면 내놔 봐.”

경일은 허성현 형사가 내놓은 증거를 보는 순간,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내놓은 사진이 찍힌 곳은 가장 최근에 쌀을 산 곳이었다.

마지막 거래한 곳이 찍혀 있는 걸로 봐서는 그전 거래 증거를 잡았을 확률은 낮아 보였다.

처음 임의 동행을 원했던 거나, 자신의 자백을 유도하는 모습이나, 세보 길드가 굳이 자신을 감옥에 넣을 이유가 없는 이상, 이런 걸 모두 조합해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왔다.

“뭐, 한 군데는 확실히 증거를 내밀었으니 내가 인정하지. 그런데 이거 어쩌나,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거래였는데. 그리고 이건 던전 부산물 거래가 아니잖아. 단지 쌀을 무자료 거래했을 뿐인데? 설마 이런 거로 나를 구속할 건 아니지? 벌금이랑 나오는 세금은 내가 충실히 납부하기로 하지. 그럼 나는 이만 가도 되지?”

경일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도 형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 정도 범죄로는 그를 구속할 근거가 없었다.

기껏해야 벌금형이 다였다.

경일은 취조실에 문을 열고 나가며 형사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분식점에서 협박한 거랑 지금 나에게 욕하고 협박한 거, 다 녹음했거든? 나가는 대로 언론사랑 경찰 비리 신고 센터에 뿌릴 거야. 그 알량한 경찰 신분이 벗겨지고도 네놈들이 큰소리칠 수 있는지 한 번 두고 보자고.”

경일이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흔들었다.

“잠, 잠깐만!”

경일을 노려보던 박영준 형사의 얼굴이 급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허성현 형사는 손까지 휘저으며 다급하게 경일을 불렀으나, 경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찰서를 나갔다.

경일은 곧바로 분식점 CCTV 영상과 조금 전 취조실에서 녹음했던 대화를 신고했다.

언론에까지 알려지자 경찰은 내사를 시작했다.

내사를 시작한 후, 그들의 범죄는 속속들이 드러났다.

한참 뒤의 일이지만, 그들은 결국 경찰에서 해임되고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경일이 숙이고 들어오지 않자, 세보 길드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경찰을 동원해 겁을 주면 간단하게 넘어올 줄 알았는데, 경일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들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그들이 택한 건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고 자신 있어 하는 방법이었다.

그건 바로 납치와 폭력이었다.

그들은 아직 폭력 앞에서 버티는 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경일을 납치하는 곳은 옥탑방이 있는 건물 앞으로 정해졌다.

건물은 산의 입구에 있었고, 그가 퇴근하는 시간이면 거리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가장 납치하기 좋은 장소였다.

“응?”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일의 눈에 옥탑방이 있는 건물 입구에 몇 명의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기감이 뛰어난 경일이 먼저 남자들을 발견하고는 기쁜 듯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신이 난 모습이었다.

“하여튼 이 새끼들은 하는 짓이 똑같다니까. 하긴, 이 방법이 제일 간단하고 빠르긴 하지.”

경일은 남자들을 발견했지만 피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빠른 걸음으로 남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야. 온다.”

경일이 걸어오는 것을 본 정찬이 일행에게 말했다.

“빨리 해결하고 가자. 하여튼 부길드장님은 이런 간단한 일은 동네 양아치들한테 시켜도 되는데, 꼭 우리 같은 고급 인력을 보내더라.”

“푸하하하! 이제 겨우 10레벨을 넘은 놈이 고급 인력이래. 이거 참, 웃기지도 않아서.”

정찬의 말이 어이가 없었던지 김연호가 한심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뭘 또 제 얼굴에 침 뱉고 그래. 일반인 상대로는 우리가 고급 인력이 맞잖아.”

이효준이 정찬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나무 그늘에 숨어 경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들이 이미 경일에게 들켰다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다.

경일이 자신들이 숨은 곳을 지나가자 곧바로 그의 뒤를 잡았다.

“야!”

성질 급한 정찬이 먼저 경일을 불렀다.

“네? 저요?”

경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며 순진한 얼굴로 돌아서며 말했다

“그래, 너. 이리 와 봐.”

거만한 표정을 지은 정찬이 경일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경일은 당장 저 싸가지 없는 손가락을 꺾어 버리려다가 생각을 바꿔 겁을 먹은 듯한 얼굴로 몸을 잔뜩 웅크리며 정찬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세요?”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로 경일이 물었다.

“잠깐, 너 거기 서 있어 봐.”

정찬이 핸드폰에 찍힌 사진과 경일을 번갈아 보면서 한 번 더 확인했다.

“이 새끼가 확실하네. 야, 우리랑 어디 좀 가자. 참고로 순순히 따라가는 게 너한테도 좋을 거야. 거기에 가서도 실컷 맞을 건데, 여기서 미리 맞을 이유는 없잖아.”

“누구시죠?”

“하~ 너 우리가 누군지 몰라? 너 돌대가리냐?”

“설마 세보 길드?”

두려운 듯한 경일의 목소리에 남자들은 가슴을 앞으로 내보이며 우월감을 내보이며 웃었다.

“그래, 잘 아네. 네가 우리 부길드장님 성질을 건드렸다면서? 부길드장님이 좋게 이야기했으면 알아서 머리를 숙여야지, 왜 개기고 그래, 이 씨발아. 보니까 완전 좆밥이구만. 도대체 뭘 믿고 개긴 거야? 너 때문에 우리 같은 고급 인력이 이런 쓸데없는 일에 동원됐잖아. 그 사람이 보기에만 스마트해 보이지, 성질은 개차반이야. 완전 사이코패스라고.”

“야, 그런 얘기를 왜 해?”

정찬의 실언에 김연호가 핀잔을 주자, 그는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음, 음, 마지막 말은 못 들은 척하고, 일단 우리랑 같이 가자. 참고로 도망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 뭐, 우릴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우리 전부 헌터야. 그러니 괜히 힘 빼지 말고 가자고. 알아들었어? 개새끼야?”

마지막 말에 잔뜩 힘을 준 정찬이 경일을 노려보며 위압을 가했다.

제대로 겁을 주려는 듯 정찬이 기세를 일으켜 경일에게 쏘아 보냈다.

경일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숨을 멈추고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 정찬이 만족한 듯 웃음을 지었다.

세 명의 남자는 모두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경일과 적어도 다섯 살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어려 보였다.

헌터의 99퍼센트가 스물두 살 전에 각성하니, 레벨이 낮은 헌터라면 대부분 그보다 어리긴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을 먹은 ‘척’하고 있지만, 사실 경일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었다.

‘이런 새파란 새끼들이 입은 아주 걸레네. 이것들을 어떻게 하지? 광산으로 보내? 아니면 그대로 돌려보내? 이러든 저러든 이 새끼들은 계속해서 나를 압박하겠지? 그럼 광산으로 보내는 게 났겠다. 그냥 패는 것만으로는 내 화가 안 풀릴 거 같으니, 일단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끔만 패자. 이놈들의 미래를 생각해서 뼈가 제대로 사무치도록 인성 교육을 시키는 게 어른의 자세가 아니겠어? 흐흐흐.’

마음을 굳힌 경일이 겁먹은 표정을 풀고는 세보 길드 헌터들을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