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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56화 (156/300)

[156화] 발광

“어라~ 이 새끼기 미쳤나 봐. 갑자기 웃는데? 부길드장님이 웬만하면 멀쩡한 상태로 데리고 오라 했는데, 안 되겠다.”

“야, 적당히 표시 안 나게 몇 대 쥐어박고 빨리 가자. 나 오늘 클럽에서 여자애들이랑 놀기로 했거든.”

지금껏 별말 없이 심드렁하게 있던 이효준의 말에 정찬과 김연호가 움직였다.

“야, 너 이리 와 봐. 내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줄게.”

정찬이 경일의 뺨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쫘악!

뺨에 손바닥이 부딪치는 아주 찰진 소리가 났다.

소리만으로도 얼마나 아플지 짐작이 될 정도였다.

“허억!”

의외로 비명이 터져 나온 쪽은 경일의 뺨을 때리려고 한 정찬 쪽이었다.

그의 볼에는 경일의 손바닥 자국이 아주 찰지게 남아 있었다.

하얗던 그의 부드러운 뺨이 손바닥 모양으로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두 콧구멍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 지금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뺨을 제대로 맞은 정찬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픈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 씨발 놈이 미쳤나?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감히 우리를 건들여? 일반인 주제에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이효준이 발끈하며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경일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찔러 넣었다.

화가 많이 난 듯 묵직하게 날아오는 주먹에는 일반인이 맞으면 얼굴이 그대로 함몰될 듯한 파워가 실려 있었다.

경일은 머리를 가볍게 트는 동작만으로 주먹을 어깨 위로 흘려 버렸다.

그와 동시에 경일의 주먹이 이효준의 턱을 노리고 뻗어 나갔다.

퍼억!

어퍼컷이 정확히 턱에 꽂혔고, 순간 그는 합죽이가 되며 입안이 터져 피를 흘렸다.

턱을 맞은 순간 뇌가 흔들리자, 이효준은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헌··· 헌터!”

경일의 빠른 몸놀림과 힘을 본 정찬이 핼쑥해진 얼굴로 말했다.

“이런 개새끼가 지금까지 우리를 속인 거야?”

김연호가 경일을 향해 삿대질하며 비열한 인간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너희가 날 일반인이라고 굳게 믿은 거지, 내가 언제 또 속였다고 그러는 거야. 뭐, 정 억울하면 너희 말대로 내가 속였다고 치자.”

경일이 웃음을 실실 흘리다가 순간 무섭게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경일이 헌터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압박했다.

자신이 넘치는 경일의 모습에 그들은 몸을 움찔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야, 우리는 두 명이야. 2대 1이면 저런 놈에게 밀릴 게 하나도 없다고. 효준이는 방심해서 당한 거니 쫄지 마.”

뺨에 경일이 때린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던 정찬이 김연호를 향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쌍코피를 흘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으나, 그의 기세는 제법 매서웠다.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경일을 중심으로 두고 둘러쌌다.

제법 손발을 맞추며 싸워 본 티가 났다.

“이것들, 제법이네. 나름 유명한 길드 소속이라 제법 실력이 있다는 거겠지. 그럼 나도 진지하게 상대해 줘야지.”

경일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오른발로 바닥을 차며 빠르게 스텝을 밟았다.

자신의 왼쪽에 서 있는 정찬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자, 그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는지 경일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느려.”

경일은 가볍게 주먹을 피하며 정찬의 복부에 카운터를 먹였다.

“헉!”

입에서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정찬이 몸을 말며 쓰러졌다.

복부를 제대로 맞으면 상당한 고통을 수반한다.

신체의 여러 장기가 몰려 있는 곳이기 때문에 주먹 한 방에 무력화되는 것은 물론 호흡도 힘들어지고, 그 고통 또한 적지 않았다.

“우웩!”

정찬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구토를 시작했다.

조금 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불쌍한 표정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상대가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광산으로 이동을 원하십니까? (Y / N)]

단 한 방에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경일은 깔끔히 무시했다.

경일은 땅바닥에서 벌레처럼 기며 토하는 정찬을 무심한 눈빛으로 한 번 쳐다보고는 김연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

두 명의 동료가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한 방에 나가떨어진 모습에 이미 사기가 꺾인 상태였다.

김연호의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맹렬히 싸우고 있었다.

‘이런, 졸라 센 놈이잖아! 도망가야 해. 아, 아니야. 이대로 도망갔다가는 나중에 저 새끼들에게 무슨 말을 들으려고. 씨발, 그럼 이대로 저 무서운 새끼랑 싸워야 한다는 거잖아. 안 돼. 싸웠다가는 나도 저 꼴이 될지도 몰라.’

정찬은 얼마나 아픈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닥을 기면서 토를 하고 있고, 이효준은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덜컥 겁이 났다.

조금 전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씨발, 의리고 나발이고 나부터 살아야지.’

김연호은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경일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도망갈 기미가 보이자 경일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도망가다가 걸리면 다리뼈를 부러뜨려 주마. 한쪽이 아니라 두 쪽을 그대로 분질러 버릴 거야.”

작은 목소리였지만, 경일의 말은 김연호의 귀에는 천둥이 친 것처럼 크고 뚜렷하게 들렸다.

김연호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도망가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만약 도망가다 잡히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두 다리를 부술 거 같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경일과의 거리가 겨우 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자신보다 훨씬 레벨이 높아 보이는 헌터를 따돌리는 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싸울 것이냐 도망갈 것이냐, 에서 정찬이 선택한 건 제3의 방법인 비는 것이었다.

김연호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경일에게 빌었다.

“형님,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파리처럼 손바닥을 비비며 싹싹 비는 김연호의 모습에 경일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삐져나왔다.

“야, 태세 변환이 너무 빠른 거 아냐? 조금 전까지 나한테 쌍욕 하던 거 잊었냐?”

“잘못했습니다. 저희는 부길드장님의 명령을 따른 죄 밖에 없습니다. 우리 같은 저렙 헌터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그러니 한 번만 봐주세요. 그리고 제가 부길드장님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일을 깔보던 김연호은 더 이상 없었다.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던 경일은 갑자기 생각난 것을 물었다.

“아 참, 맞다. 부길드장 새끼가 왜 날 잡아 오라고 한 거야? 그리고 아까 싸이코패스라고 했지? 그 이야기도 자세히 해봐”

“그게··· 자세히는 모르고 잡아 오라는 장소로 봐서는 고문하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길드 소문으로는 부길드장님이 사람을 고문하는 걸 즐기는 은밀한 취미가 있다고··· 지금까지 말을 안 듣는 놈들은 전부 잡아다가 그곳에서 족쳤거든요. 이번에도 그리로 끌고 오라는 걸 보니 아마 맞는 거 같습니다.”

“하, 이런 개새끼가. 힘 좀 있다고 아주 막 나가는구나. 납치해서 나를 고문하려 했다 이거지? 너희는 그걸 뻔히 알면서 나를 잡아가려고 한 거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런데 마침 그의 분노를 달래줄 제물이 눈앞에 세 명이나 있었다.

“헉!”

경일의 바뀐 기세에 김연호는 놀라 신음을 뱉었다.

하지만 김연호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경일의 손을 보고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손에는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는 금속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인벤토리 능력자!”

김연호는 오늘 제대로 똥을 밟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일은 기절한 이효준을 깨우고 어른으로서의 교육을 시작했다.

“아, 악, 악, 악, 악악악악악!”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그들은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 경일을 향해 빌었다.

“조용히 해라. 지금부터 목소리가 제일 큰 새끼는 남들보다 두 배로 맞는다.”

경일의 서슬퍼런 말에 헌터들은 입을 닫았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신음을 내지 않으려 죽을힘을 다해 입술을 깨물었다.

“너희같이 어린놈들에게 세상 무서운 걸 알려주는 게 어른의 역할 아니겠냐. 너희 몸에서 나쁜 버릇을 이번 기회에 모두 빼 주마. 고맙다고? 그럼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너희는 오늘 삶에 커다란 위인을 만난 거야. 내가 인간 개조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거든. 앞으로 기대해.”

이들은 맞으면서 기분 나쁜 예감이 온몸을 감쌌다.

경일은 이들을 가차 없이 던전의 광산으로 보냈다.

* * *

황량한 바람이 불자 모래가 휘날리며 작은 회오리를 만들어 냈다.

그곳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길에 널브러진 종이는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5년 전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버려진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도 가끔 몬스터가 나오곤 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곳이었다.

이곳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고급 슈트와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한 사람이 보였다.

김형성이었다.

그는 이번처럼 은밀한 작업을 할 때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을 여기로 끌고 오면 이곳의 황량함에 미리 겁을 집어먹곤 했다.

“이 새끼들이 올 때가 넘었는데,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이것들이 지금 내 지시를 무시하고 엉뚱한 곳에서 자빠져 있는 거 아냐?”

버려진 창고의 중앙에 선 김형성이 거칠게 화를 냈다.

아무리 기다려도 경일을 잡아 오라고 보낸 부하들이 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한참 전부터 전화를 해 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곳은 도시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곳이라 길이라도 엇갈리면 바로잡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김형성은 사람을 고문하는 것을 즐겼다.

더 정확히는 고통을 주고 것이 좋았고, 그 고통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현재 그는 경일을 고문할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해 있었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 생활을 행하기엔 이곳이 제격이었다.

자신에게 고문당하는 사람이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곳은, 비명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다른 이의 비명은 그에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한 희열이었다.

그는 한동안 건수가 없어 취미 생활을 하지 못해 욕구불만인 채로 지내왔다.

이번 일은 굳이 부길드장인 자신이 나설 만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그동안 조사한 바로는 기꺼해야 던전 고유 식물이 든 죽 몇 그릇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암시장에 커미네스 식물 한두 번 판 게 다였다.

그 정도는 어느 정도 돈만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쓸데없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보고, 돈이 남아도는 것 같아 적당히 겁을 주고 용돈벌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경일을 괴롭히는 것은 덤이었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재미있게 돌아갔다.

기껏 보낸 형사가 제대로 엿을 먹은 것이다.

‘크크크크, 이러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잖아.’

오래간만의 건수에 그는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경일을 잡아 오라고 시킨 부하들이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자 짜증이 극에 달했다.

‘이게 곧 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 보자.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하다 그는 결국 먼지만이 자욱하게 깔린 창고에서 새벽의 이슬을 맞았다.

깔끔하게 입은 고급 양복의 깃이 습기를 먹어 눅눅해졌다.

“아아악~ 이 멍청한 새끼들이, 감히 나에게 물을 먹여!”

자존심에 금이 간 김형성은 머리에 뚜껑이 열려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우탕탕탕!

창고 안,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물건을 부수며 그는 한동안 발광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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