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제물
이 시대의 종교인들에겐 청렴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종교에서 만약 청렴을 요구한다고 했으면, 이들 중 그 누구도 사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종교에 귀의했다.
지금 시대에서 뼈 빠지게 일을 해 봐야 수입 대부분은 귀족들에 의해 수탈당했다.
자신의 노력이 보장되지 않는 신분의 상승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한 이 시대에 평민들의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종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 넘쳤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었다.
신을 믿는 충실한 마음?
애초에 그딴 건 전혀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돈만 있으면 가능했다.
돈으로 사제 자리를 사는 것이다.
평생 모은 돈을 교단의 높은 사람에게 받쳐야 겨우 말단 사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원하는 사제가 되었으니 투자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돈을 벌어야 했다.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사람들을 신도로 만들고 그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
전 재산을 투자한 만큼 그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의 재산을 갈취했다.
스탄다비아는 가우스 교에 의해 커다란 시련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 저녁, 많은 영지민들이 가우스 교의 신전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
마약에 찌든 그들의 눈은 휑했고,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신전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거의 200명이 넘는 사람이 신전의 마당에 빼곡히 들어섰다.
그들의 앞으로 루터 봉건 사제가 등장했다.
어젯밤 한 마리 개가 된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경건함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가우스 교의 신도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우스 신은 아직 낯설겠지요.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리죠.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귀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불입니다. 어둠을 밝혀 주고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고 음식을 익혀 주고. 불은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태워 희생하죠. 이런 위대한 불을 인간에게 내려 준 이가 바로 가우스 신입니다. 만약 불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불이 없던 시대의 인간은 단순한 동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루터 봉건 사제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른 동물을 사냥해 생고기를 씹고, 추위에 떨며 단지 본능에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동물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가우스 신이 불을 내려 줌으로써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던 인간이 말을 하게 되고, 동물과 다르게 옷을 입게 됐으며, 무리를 지어 외부의 위험에 맞섰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말을 하며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은 모두 가우스 신의 은혜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루터 봉건 사제는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는 듯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가우스 신을 잊었습니다. 불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신의 대한 공경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에 가우스 신이 노해 인간에게 신벌을 내리려 했습니다. 불을 거두어 가고 인간이란 종족을 모두 불태워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 순간, 가우스 신께 인간의 죄를 고하고 마지막 기회를 얻어 낸 이가 바로 가우스 교의 대신관 라이언 매버릭입니다. 라이언 대신관이 지금까지 지은 인간들의 모든 죄를 홀로 받으며 가우스 신께 단 한 번의 기회를 얻어 내셨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런 귀중한 기회를 헛되이 탕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우스님의 신벌을 받아 백 년 동안 꺼지지 않는 불 속에 갇혀 죽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싶습니까?”
루터 봉건 사제의 강렬하게 빛나는 눈이 사람들을 노려봤다.
그 눈빛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에 맞춰 사제들이 준비된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기름을 뿌려 놓은 장작에 옮겨붙은 불이 순식간에 커져 맹렬하게 타올랐다.
바짝 마른 장작이 활활 타오르면서 내는 뜨거움에 사람들의 피부가 따끔거렸다.
뒤로 물러나 불에서 멀어지고 싶었으나, 사방이 벽으로 막힌 마당이라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마치 불 속에 자신이 갇힌 듯한 느낌과 함께 엄숙했던 지금의 분위기에 공포와 두려움이 섞여 들었다.
루터 봉건 사제의 강렬한 눈빛과 맹렬한 불이 어울려 사람들을 압박했다.
그 순간, 루터 봉건 사제가 불을 향해 손을 휘젓자, 강렬한 불꽃이 튀어 올랐다.
타타타타탓!
“오오오오!”
불꽃이 튀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여러분, 이 불은 살아 있습니다. 지금의 불꽃이 바로 가우스 신이 내려온 증거입니다. 그리고 신이 어리석은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불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신을 모시지 않는 인간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묵직한 목소리로 경고라고 말하자, 사람들의 얼굴에서 공포가 피어올랐다.
분위기가 루터 봉건 사제의 의도대로 고조되었다.
그의 얼굴에 진한 광기가 떠올랐다.
조명을 받은 연극배우처럼 불빛을 받은 그의 작은 표정조차 사람들의 눈에 또렷이 보였다.
아주 작은 표정의 변화에도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초식동물만이 존재하던 우리에 맹수가 한 마리 뛰어들어 휘젓고 있었다.
다시 한번 그가 불을 향해 손을 휘젓자, 강렬한 불꽃이 튀어 올랐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케나베스에 찌들어 있었다.
정상적인 사고가 힘든 그들에게 일렁이는 불꽃은 마치 가우스 신이 현신한 듯 보였다.
“준비해.”
루터 봉역 사제의 말에 사제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사제들이 가져온 건 돼지였다.
다리를 묶은 줄에 나무를 끼워 돼지를 어깨에 메고 한창 의식이 진행 중인 루터 사제에게 다가갔다.
꽤애애애액!
뒤로 뒤집혀 인간에게 운반되어 오던 돼지가 연신 고개를 흔들며 비명을 질러 댔다.
자신의 운명을 짐작한 듯 불이 가까워져 올수록 돼지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목이 찢어지라 울어 젖히는 돼지의 비명이 사람들의 귀를 강하게 자극했다.
돼지에게서 느껴지는 불안과 공포의 감정에 안 그래도 움츠러든 사람들을 더욱 압박했다.
“던져.”
루터 봉역 사제에 말에 사제들이 다리를 묶어 움직일 수 없는 돼지를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인정사정없이 던져 버렸다.
꽤에에에에에엑!
산 채로 불 속에 던져진 돼지가 불에 타는 어마 무시한 고통에 죽을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돼지는 다리에 묶인 줄을 풀려고 미친 듯이 몸부림쳐보지만, 단단히 묶인 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육중한 돼지의 몸부림에 여기저기 불꽃이 튀어 날아다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돼지의 비명이 점점 줄어들었다.
불 속에서 죽어 가는 돼지의 구슬픈 마지막 비명이 사람들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돼지의 고통에 동요된 듯 겁먹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통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돼지의 구슬픈 비명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은 여전히 창백해진 얼굴로 귀를 막고 있었다.
“가우스 신이시여. 여기 귀한 제물을 바치니 화를 푸시고 부족한 저희에게 큰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고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신벌이 얼마나 무서운지 간접적이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
루터 봉건 사제가 경건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며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마치 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는 돼지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고 그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몸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한 명의 남자가 땅바닥에 엎드려 오열했다.
“가우스 신님, 제발 불쌍한 저에게 신벌을 내리지 마세요. 이렇게 빌겠습니다. 앞으로 가우스 신님을 섬기며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남자가 처절하게 오열하며 신에게 귀의할 것을 맹세하자,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땅바닥에 엎드려 맹세의 말을 했다.
“저도 맹세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가우스 신이시여, 우리 가족에게 은덕을 내려 주세요.”
“믿습니다!”
“엉엉엉엉!”
많은 이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부르짖으며 맹세했다.
일부 감정이 격해진 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루터 봉건 사제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듯 짙은 웃음이 걸렸다.
처음 땅바닥에 엎드려 오열한 이는 가우스 교가 섭외한 인물이었다.
분위기가 최고조로 올랐을 때, 그의 연기가 사람들에게 신의 믿음을 이끌어 냈다.
마중물과 같은 역할이었다.
어느새 사람들은 가우스 신을 모시는 광신도로 변해 갔다.
사제들이 재빨리 사람들에게 케나베스를 뿌렸다.
케나베스를 본 사람들의 눈이 뒤집혔다.
사람들은 케나베스를 내려 준 가우스 신을 찬양했다.
활활 타던 불도 시간이 지나자 그 힘을 잃어 갔다.
나무들은 재로 변했고, 군데군데 불씨가 남아 있었다.
“여러분께 신의 은총을 받은 나를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비장한 얼굴을 한 루터 봉건 사제가 불 앞으로 나와 섰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는 천천히 불 앞에 섰다.
루터 봉건 사제의 의도를 눈치챈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불이 꺼지기는 했지만, 아직 군데군데 잔불은 남아 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숯은 보기만 해도 뜨거워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 루터 봉건 사제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천천히 신발과 양말을 벗고 불 앞에 섰다.
“헉!”
“설마?”
“안 됩니다, 봉건 사제님!”
“가우스 신이 루터 봉건 사제에게 헌신하였다!”
“루터, 루터, 루터!”
사람들의 우려 섞인 비명과 기대에 찬 목소리에 의한 소란을 뒤로하고, 그가 망설임 없이 재를 밟고 올라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불 위를 걸었다.
루터 봉역 사제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
“우와!”
“루터, 루터, 루터!”
“믿습니다, 가우스 신이시여!”
“저에게도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사람들은 불 위를 걷는 루터 봉건 사제를 보면서 가우스 신을 더욱 믿고 갈망했다.
“경배하라. 이것이 가우스 신 모시는 진정한 신도의 모습이다.”
사제들이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믿습니까?”
한 명의 사제가 큰 소리로 말하자.
“믿습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뜨거웠던 예배가 끝이 나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바쳤다.
그 모습을 사제들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많은 이적을 보여 줬던 예배는 빠르게 스탄다비아에 퍼져 나갔다.
처음에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힘들었지, 어느 정도의 선을 지나자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덩치를 키우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우스 교를 찾았다.
그리고 케나베스는 더 빠르게 퍼져 나갔다.
사제들은 케나베스를 신도들에게 팔면서 큰돈을 벌었다.
대부분의 돈이 가우스 교의 교단으로 들어갔다.
힘들게 모은 스탄다비아의 돈이 영지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결과, 스탄다비아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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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큰일이군.”
근심이 가득한 얼굴의 자포리자가 성벽에 서서 영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탄다비아의 앞에서는 샤벨 타이거가 버티고 있었고, 뒤에는 프라인과 아드리온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스탄다비아 내부에는 가우스 교라는 암 덩어리로 인해 곪아 가는 중이었다.
경일의 도움으로 근근이 현 상황을 유지하고 있지만, 밑 빠진 독의 물 붓기였다.
그만큼 케나베스의 중독성은 엄청났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