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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59화 (159/300)

[159화] 침몰하는 스탄다비아

마음 같아서는 케나베스를 금지하고 싶었으나, 그럴 경우 베르아스 왕국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거센 저항을 받을 것이었다.

스탄다비아처럼 작은 영지의 힘으로는 종교란 거대한 힘 앞에서 바람 앞의 촛불일 뿐이었다.

애초 대적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버린 종교는 베르아스 왕국의 어떤 영지도 대적할 수 없었다.

귀족들과 종교는 불가근의 관계를 유지하고, 일정한 선을 넘지 않고 공존했다.

가우스 교가 처음 스탄다비아로 들어왔을 때는 걱정이 컸지만, 영지민들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안심했다.

지금까지 영지민들에게 쏟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가우스 교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에는 스탄다비아를 떠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건 성급한 판단이었다.

케나베스가 이 모든 정세를 한 방에 바꾸어 버렸다.

영지민들은 처음 맛보는 케나베스의 매력에 깊이 빠져 버렸다.

애초에 케나베스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인식조차 없었던 터라, 순진한 영지민들을 중독시키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결과, 영지민들은 케나베스를 구하기 위해 전 재산을 가우스 교에 받쳤고, 자포리자가 경일을 만나기 전처럼 굶주리기 시작했다.

마약에 찌든 영지민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스탄다비아의 젖줄과 같은 수로에 물이 말라 갔다.

하지만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결과, 수로의 중간중간에 부산물이 쌓였고, 결국 힘들게 만든 물길이 막혔다.

망가진 건 수로뿐만이 아니었다.

다 같이 노력해서 새롭게 개간한 땅이 다시 잡초가 가득한 황무지로 변해 갔다.

열심히 비료를 뿌려 높인 땅의 지력이 결국 잡초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늘 활기차게 돌아갔던 농작지엔 허망함만이 감돌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에 자포리자의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케나베스가 많은 폐해를 끼쳤지만,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건 그로 인해 생긴 병이었다.

케나베스를 꾸준히 피운 많은 사람에게 지구의 던전병과 같은 병이 발병했다.

그 덕에 경일이 바빠졌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던전 고유 식물을 재배해야 했다.

던전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긴 했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잠도 줄여 가며 던전 고유 식물을 재배하는 족족 자포리자에게 보내긴 했지만, 병에 걸린 모든 사람을 치료하긴 부족했다.

병에 걸린 가족을 치료하라고 나누어 준 던전 고유 식물을 가우스 교에 바치고 케나베스를 받아 오는 패륜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이도 있었다.

모든 것을 희생해 살리려고 노력했던 스탄다비아가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자포리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우스 교단으로 달려가 그들을 깡그리 베어 버리고 싶었다.

카스만 원로가 그런 자포리자를 매일 말렸다.

자포리자는 케나베스에 중독된 영지민들이 미웠지만, 어찌 보면 그들도 엄연한 피해자였다.

경일에게 오는 식량을 일일이 영지민들을 찾아다니며 나누어 주었다.

“영주님, 감사합니다.”

케나베스로 인해 피골만 남은 영지민이 깊이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시했다.

“더 이상 케나베스를 피우지 말게. 순간의 쾌락을 좇아가다가는 결국 죽게 될 거야.”

“죄송합니다, 영주님.”

영지민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아니, 나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 지금 너의 몸을 봐라. 몬스터에 맞서 늠름하게 싸우던 너의 몸은 이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이런 너의 몸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서 죽게 될 거야. 이제야 살 만해졌는데, 이대로 죽기엔 억울하지 않겠나? 스탄다비아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대로 죽고 싶은가?”

“아닙니다, 영주님. 지금부터라도 케나베스를 끊겠습니다.”

영지민은 눈물을 흘리며 자포리자에게 다짐했다.

자포리자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영지민들을 돌아다니며 진실한 마음으로 케나베스를 끊을 것을 권했다.

그들의 손에 식량을 쥐어 주고 다시 한번 잘살아 보자고 간절하게 설득했다.

그의 설득에 많은 이들이 케나베스를 끊으려 노력했다.

이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우스 교의 사제들에게 들어갔다.

“뭐라? 감히 영주란 놈이 우리의 행사를 방해한다고?”

“네. 영지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케나베스를 끊을 것을 권하고 있답니다. 실제 많은 이들이 케나베스를 끊었습니다.”

“허~ 대단하군. 중독성이 엄청난 케나베스를 끊게 할 정도라니. 초창기 설교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게 영주 때문인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인물인 줄은 몰랐는걸. 이런 촌구석에 있기엔 아깝군 그래. 하지만 운이 없군. 우리를 만났으니. 그는 우리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야. 그쪽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당장 신심이 가장 두터운 신도들을 모아라.”

루터 봉역 사제는 사제들과 많은 신도들을 데리고 자포리자가 있는 성으로 몰려갔다.

“영주 님, 가우스 교의 루터 봉건 사제가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집사가 공손하게 자포리자에게 보고했다.

자포리자는 그들이 온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소란을 일으키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지시했다.

“기다리라고 해라.”

“네, 영주님.”

집사는 곧바로 루터 봉역 사제에게 가서 영주의 말을 전했다.

“영주님이 바쁘신 관계로 기다려야겠습니다.”

“뭐라고 했느냐? 우리더러 기다리라고? 분명 가우스 교에서 찾아온 걸 말했는데도 기다리라고 말했다는 것이냐?”

어처구니없어 하던 루터 봉역 사제는 황당한 얼굴을 하며 집사에게 되물었다.

작은 영지의 영주가 그것도 고작해야 자작밖에 되지 않는 인물이 감히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다니.

그는 지금까지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다시 가서 똑똑히 전해라. 백만 신도를 둔 가우스 교의 봉역 사제인 내가 찾아왔다고.”

루터 봉역 사제의 시퍼런 서슬에 놀란 집사는 곧 자리를 떴다.

집사는 곤란한 얼굴로 다시 한번 자포리자에게 알렸으나, 그의 말은 똑같았다.

집사는 다시 한번 자포리자의 뜻을 정확히 전했다.

루터 봉건 사제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집사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이런 건방진 놈이!”

화를 참지 못하고 쾅쾅거리며 발을 굴렀다.

루터 봉건 사제는 당장이라도 영주의 집무실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위험해 보이는 그에게서 사람들은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으아아아악!”

한 번씩 분을 이기지 못한 루터 봉건 사제가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터진 그의 고함 소리에 사제들이 움찔움찔 놀라곤 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으나, 아직 자포리자가 자신을 만나겠다는 기별은 오지 않았다.

“루터 님, 이대로 돌아가시죠. 영주란 놈이 아예 우리를 무시하려고 작정을 한 듯한데, 우리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니티 사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루터 봉건 사제에게 말했다.

“음…….”

루터 봉건 사제는 그의 말대로 돌아가려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잘난 자포리자의 얼굴을 꼭 보고 싶던 것이다.

“아니다. 오늘 마음먹은 김에 그놈의 면상을 꼭 봐야겠다. 감히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만들다니. 어떤 놈인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것이야.”

서슬 퍼런 루터 봉건 사제의 기세에 다른 사제들은 고개를 숙였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꼬르륵!

루터 봉건 사제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험!”

그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한번 내뱉었다.

‘이런 미친 새끼. 나를 얼마나 기다리게 하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베니티 사제가 말할 때 돌아갈 걸 그랬어.’

기다림에 지치다 보니 그의 분노도 어느덧 희석되어 갔다.

루터 봉건 사제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온 지 여섯 시간만이었다.

“영주님이 대표자 한 사람만 들어오시랍니다.”

“이런 무례한 놈이, 감히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렇게 핍박하느냐?”

집사의 말에 화를 참지 못한 베니티 사제가 집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이에 집사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는 베니티 사제의 기세에 기죽지 않고 오히려 한 발짝 다가가서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까지 공손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냉담하고 준열한 얼굴로 베니티 사제를 압박했다.

그의 앞에서 감히 하늘같은 성주님을 놈이라 말한 것에 분노한 것이다.

“지금 감히 영주님께 놈이라고 했나?”

집사의 목소리와 다른 굵고 힘 있는 목소리가 베니스 사제의 귀에 들렸다.

목소리는 집사의 뒤에서 나왔다.

기사장 칼튼이었다.

집사가 험악한 분위기를 대비해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칼튼이 성큼성큼 걸어 앞으로 나섰다.

사제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기사가 기세를 뿌리며 다가오자 사제들은 얼어붙었다.

입으로만 먹고사는 사제가 몸에서 강맹한 기운을 풍기는 기사에게 웬만한 강심장이 아닌 이상 당당하게 나설 수는 없었다.

칼튼이 커다란 손을 뻗어 자신의 시선을 회피하는 베니티 사제의 얼굴을 잡았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놀란 베니티 사제가 뒷걸음질하며 애원하듯 소리치며 칼튼의 손에서 벗어나려 하자, 칼튼은 더욱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하나하나의 손가락이 베니티 사제의 얼굴을 강하게 눌렀다.

“아아아악!”

고통을 참지 못한 베니티 사제가 비명을 질렀다.

“감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루터 봉역 사제가 참지 못하고 엄한 목소리로 칼튼 기사를 나무랐다.

“지금 감히, 라고 했나?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나? 영주님이 계시는 성에서 일개 사제 놈이 놈이라고 하질 않나, 봉역 사제란 놈은 스탄다비아의 기사장인 나에게 함부로 말하다니, 죽고 싶으냐?”

칼튼이 베니티 사제의 얼굴을 손으로 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몸이 떠오를수록 얼굴에 가해지는 압박감이 늘어났다.

발이 완전히 바닥에서 떨어지자 얼굴에 엄청난 고통이 일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칼튼이 힘으로 베니티 사제를 들어 올리자, 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몸이 바닥에서 들려 버둥거렸다.

자신의 체중만큼 칼튼의 손가락에 힘이 실리자, 그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겪지 못한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꼈다.

얼굴뼈가 그대로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살… 살려 주세요… 잘… 잘못했습니다.”

칼튼의 손가락에 볼이 눌려 잘 움직이지 않는 혀로 그는 필사적으로 빌었다.

조금 전의 건방지게 말하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흥!”

칼튼이 코웃음을 치며 베니스 사제를 던져 버렸다.

우당당탕탕!

그는 복도를 따라 몇 바퀴 구르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이, 이, 이놈이!”

생각지도 못한 봉변에 루터 봉역 사제의 입이 덜덜 떨렸다.

그런 루터 봉역 사제를 향해 칼튼을 고개를 돌려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칼튼의 단단한 눈과 마주치자, 루터의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그의 떨림은 처음과 달랐다.

처음에는 분노를 참지 못해 떨렸지만, 칼튼의 눈과 마주치자 밀려드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떨어 댔다.

한순간에 자신의 몸을 두 동강 내 버릴 것 같은 칼튼의 기세에 그는 겁을 집어먹었다.

미칠 것 같이 분한데, 온갖 욕과 함께 협박을 해 주고 싶은데,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칼튼을 보니 차마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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