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눈에 띈 것이 죄?
“팀장님, 제가 추천했습니다.”
“종성이 너야? 어떻게 이런 거지 같은 새끼들을 추천할 수가 있어?”
“그놈들이 그럴 놈들이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냐? 살다 살다 이렇게 개념을 밥 말아 먹은 핏덩이들은 처음 보네. 이 새끼들이 부길드장님 말씀도 씹더니, 이제는 팀장인 내 말도 씹어? 하~ 나, 이거 어처구니가 없어서. 부길드장님이 심정이 이해되긴 또 이번이 처음이네. 그건 그렇고, 이 새끼들 오늘 안으로 잡아야 하는데. 종성이 네가 책임지고 그 새끼들 잡아 와. 오늘 안으로 부길드장님에게 보내기로 했으니 무조건 잡아 와. 만약 못 잡아 오면 네놈을 부길드장님한테 보낼 거니 알아서 해.”
“헉!”
김종성은 3팀장의 마지막 말에 놀라 신음을 내뱉었다.
그도 부길드장과 함께 오랜 기간 생활을 해 봐서 저 말이 무슨 뜻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절대 죽어도 김형성의 취미 생활의 제물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돌겠네! 진짜! 이럴 놈들이 아닌데… 단체로 약 빨고 뻗은 거 아냐? 잡히기만 해 봐라. 부길드장님에게 보내기 전에 내가 먼저 곡소리 나게 해 주지.’
김종성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리고 그놈들 일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해. 누가 할래?”
3팀장의 말에 팀원들은 모두 그의 눈을 피했다.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닌데 괜히 이런 일에 잘못 끼어들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이 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나 때는 말이야. 상급자 눈빛만 보면 알아서 기었다고. 요즘 내가 편하게 해 주니 눈에 보이는 게 없지? 옛날로 한 번 돌아가 볼까? 부길드장님이 팀을 이끌던 그때로 가고 싶다 이거지?”
3팀장이 팀원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팀원들도 3팀장의 눈을 피해 서로에게 눈치를 보내기 바빴다.
이럴 경우 팀에서 레벨이 가장 낮은 헌터가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팀에서 가장 낮은 레벨의 헌터라고 해도 정식 팀원인 만큼, 처음 경일을 잡으러 갔던 헌터들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박민우는 23레벨의 헌터였다.
“이것들이 끝까지 개긴다 이거지? 내 말이 우습다 이거지! 오늘 일 중요하다고 했어! 안 했어? 그런데도 팀원 중에 제일 막내가 나서?”
“팀장님, 겨우 일반인 한 명 잡으러 가는 일이라면서요. 웬만한 일이면 제가 나서려 했는데, 솔직히 민우도 이 일에 비하면 과하죠.”
부팀장이 3팀장을 말리며 말했다.
3팀장의 옆에 바짝 붙어 계속해서 그를 달랬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 3팀장은 결국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어쨌든 부길드장님이 지금 뚜껑이 열린 상태야. 다들 알지? 부길드장님 성질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별거 아닌 일에 괜히 날벼락 맞으면 더 억울한 거 아냐. 그러니 알아서 잘하자. 특히 종성이, 너 명심해라. 그 새끼들 오늘 안으로 잡아 와라. 아니면 네가 그 새끼들 대신해야 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김종성은 화도 나고, 어이도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기분이 엉망이 됐다.
하여간 확실한 건,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김형성이 고문하는 현장에 우연히 있던 적이 있었다.
길드 간의 전쟁에서 잡혀 온 상대 헌터였는데, 그날 그는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참혹한 모습을 봐야 했다.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에게 저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저 새끼는 인간이 아냐.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새끼가 틀림없어.’
그날의 공포로 그는 한동안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도 가끔씩 자신이 그날 본 헌터가 되어 김형성에 고문을 당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김종성은 곧바로 전화부터 했다.
당연히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던전의 광산으로 끌려갔는데 전화가 연결될 리가 없었다.
“뭐야? 이 새끼들 전화는 왜 안 받는 거야?”
세 명에게 각각 거의 30통이 넘는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자 울화통이 터졌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찾아 직접 나섰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집이었다.
집은 모두 잠겨 있었다.
“혹시… 헌터 마약을 하고 뻗어 있는 거 아냐?”
문을 부수고 들어갔지만, 세 명의 집은 모두 비어 있었다.
이곳저곳 수소문해 보고 갈 만한 곳을 모두 뒤졌지만 아무 곳에도 없었다.
김종성에게 고난의 밤이 시작되었다.
경일은 퇴근 후, 옥탑방으로 향했다.
혹시나 오늘도 자신을 납치하러 누군가 오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세보 길드는 그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달이 참 밝네. 광산에 사람 보내기 아주 좋은 날씨야.”
언젠가 본 영화 대사를 읊조리며 그는 집으로 향해 걸었다.
“이놈은 조심성이 아예 없구나. 사람을 납치하러 왔으면 어디 숨어 있기라도 해야지, 당당하게 건물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고 서 있다니. 도대체 무슨 배짱이야? 하여간 나쁜 놈들이 더 뻔뻔하다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쯧쯧쯧.”
박민우는 경일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미 경일의 얼굴을 사진으로 확인한 터라 그는 경일을 알고 있었다.
“이런 일에 내가 할 줄 몰랐네. 어휴~ 무슨 헌터가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별걸 다 한다니까. 쪽팔리게 말이야.”
짜증이 난다는 듯이 미간을 한 번 찡그리고는 자신을 지나가려는 경일을 막아 세우며 입을 열었다.
“김경일 씨죠?”
경일이 걸음을 멈추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박민우 역시 어제 본 헌터들과 같이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170 정도의 키에 마른 체구의 소유자였다.
흔한 인상인 그는 길 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묘하게 경일의 눈길을 끌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단정하게 가른 2대8 가르마였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흐트러진 걸 용납하지 못한다는 듯이 반듯한 가르마를 따라 갈라진 머리카락이 머리에 착 달라붙어 정돈되어 있었다.
자신 딴에는 단정하게 연출하고 싶은 모양인데, 나이에 비해 노티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그의 옷차림.
단정하게 입긴 했는데 무언가가 어색하다.
어색함의 정체는 멜빵이었다.
통 넓은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멜빵이 잡고 있었다.
멜빵의 탄력에 바지가 살짝 치켜 올라가자, 바지의 중심에 한쪽 쌍방울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60년대 영화에 나오는 찐따 같은 모습이었다.
‘저번에는 쌩 양아치 같은 것들을 보내더니, 덜 떨어져 보이는 이놈은 또 뭐야? 중형 길드라고 하더니, 덩치를 키우려고 가리지 않고 아무나 다 받는 모양이네. 나이도 어려 보이는 놈이 뭔 옷을 저리 구리게 입은 거야. 하여간 별 특이한 놈이 다 있네?’
경일은 한심한 눈초리로 박민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박민우는 눈치가 없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건지 그는 자기 말만 했다.
“뭐, 유감은 없습니다. 나도 시키는 일을 하는 거라. 운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일단 나랑 갑시다. 오늘 밤 꽤 고생할 건데, 괜히 여기서 개기다 나한테까지 맞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갑시다.”
“싫은데.”
경일이 짧게 대답했다.
“휴~ 물론 싫겠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러게 미리 조심을 좀 하시지. 힘도 없으면서 어쩌다가 부길드장님의 눈에 띄어서.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할 겁니다. 그러니 얼른 갑시다.”
경일은 자신을 생각해 주는 척 말하면서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 웃겼다.
“김형성의 눈에 띈 게 잘못이라고?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놈이 뭔데? 무슨 신이냐? 내가 보기엔 미친 싸이코 새끼 같던데?”
“하~ 꼭 매를 벌어요. 이건 모두 그쪽 잘못이니 나를 탓하지 말아요. 하여간 사람들은 정중하게 이야기하면 꼭 한 번씩 개긴단 말이야. 이해가 안 되네. 서로 말로 끝내면 얼마나 좋아.”
경일은 느릿하면서 헛소리를 진지하게 말하는 박민우가 같잖았다.
“야, 너 친구 없지? 남의 말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구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말은 큰 실례입니다.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 데, 그렇게 입을 함부로 놀리다간 곤란한 일을 겪게 될 겁니다.”
“나쁜 짓을 하러 와 놓고 이렇게 고상 떠는 놈은 또 처음 보네. 그리고 고상을 떨려면 말 중간에 '입을 함부로 놀리네', 이런 단어를 쓰지를 말던지. 희한하게 재수 없는 놈이네. 하여간 너랑 계속 이야기하다간 내 머리가 이상해질 거 같다. 이제 말은 그만하고 덤벼라.”
경일이 주먹을 올리고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복싱 자세를 취했다.
다른 헌터들이 봤으면 경일의 어이없는 도발에 웃었을 덴데, 그는 웃지 않았다.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겁니까? 안 웃기니 그만하고 갑시다. 계속 그렇게 나오면 나도 이제 더는 못 참습니다.”
“참지 마.”
경일이 가볍게 오른발을 앞으로 뻗으며 잽을 날렸다.
박민우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저 한심한 눈초리로 경일을 보고만 있었다.
설마 일반인이 헌터인 자신을 때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의 눈에 경일의 주먹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일반인의 주먹 스피드는 주먹에 파리가 앉을 듯이 느렸다.
박민우는 이 상황이 웃겨 자신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었다.
설마 주먹을 끝까지 뻗을 용기가 있겠나 싶어 피하지도 않고 그가 하는 요량을 지켜만 봤다.
느린 주먹이 그의 턱에 닿았다.
그 순간.
퍼억!
느린 주먹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소리가 났다.
턱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박민우의 얼굴이 오른쪽으로 휙 돌아갔다.
“허억!”
박민우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는 걸 오른쪽 다리를 재빠르게 뻗어 겨우 버텼다.
맞은 턱을 손으로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경일을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분노, 아픔, 당황, 불신.
그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감정은 당황이었다.
일반인이 23레벨 헌터인 자신의 정신을 순간 보낼 뻔한 힘이 담긴 주먹을 가진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거어, 어떠케 되언 거어죠?”
턱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박민우는 어눌한 발음으로 경일에게 물었다.
“답답한 타입이네.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이 세상 살아갈 수 있겠어?”
“그건 저에 대한 모욕입니다. 취소하시죠?”
턱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박민우의 발음이 한결 나아졌다.
“넌 지금 그게 할 소리냐? 무슨 애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해? 너, 사람들이 너랑 대화하면 힘들어하지? 다른 사람들은 막 웃는데, 왜 웃는지 이해가 막 안 가고 그러지?”
박민우의 볼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의 얼굴만 봐도 경일은 자신의 말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하~ 이상한 사람을 만나 궤변에 넘어갈 뻔했네. 말이 안 통하니 이제부터 힘을 쓰겠습니다. 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뜨릴 생각이니 나를 원망하지 마세요. 아니, 하나 정도는 약하나? 손가락 세 개도 같이 부러뜨리겠습니다. 방금 제 턱을 제대로 한 방 갈겼으니 그리 억울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단하다. 눈치가 없는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두 개 다 같은 뜻인가? 하여간 너, 내가 아직 만만해 보이냐?”
경일은 다시 한번 복싱 자세를 취했다.
박민우는 방금 맞은 펀치가 생각났는지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퍼억!
주먹은 방금 맞은 곳을 다시 한번 정확하게 가격했다.
박민우는 분명 방심하지 않았는데도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무지막지한 파워에 순간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