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헌터의 세계는 힘이 정의죠
“허억!”
박민우가 눈을 번쩍 떴다.
‘이게 무슨 일이지?’
눈을 뜬 그에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시멘트 바닥이었다.
그리고 입에서 흙 맛이 났다.
그는 즉시 바닥에 붙어 있는 입술을 뗐다.
“야, 일어나. 살살 때렸는데 엄살 피우지 말고. 내 다리랑 손가락을 부러뜨린다면서. 멍청해 보여도 그런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 보니 독하네. 하긴, 그러니 세보 길드 같은 곳에 있는 거겠지. 아직 한참 더 맞아야 하니 얼른 일어나라고.”
박민우는 경일에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번 주먹은 그가 방심한 탓에 맞은 것이 아니었다.
주먹을 피하고 카운터를 날릴 생각이었기 때문에 경일의 주먹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
“설마 헌터?”
“하~ 진짜 느리네. 처음 한 대 맞고 이상하지 않았어? 이런 답답한 놈은 살다 살다 첨 본다. 하긴, 이런 놈들이 잘못된 믿음으로 고집을 세우면 더 무섭기는 하지.”
경일은 박민우를 보니 스탄다비아를 침공한 가우스 교의 사제들이 떠올랐다.
잘못된 신념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한지 그들을 보고 철저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가서 쓸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스탄다비아로 갈 방법이 없으니 애만 태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길, 아니 헌터가 이런 산동네에서 무슨 분식점을 하는 겁니까?”
박민우는 도리어 경일에게 화를 내며 물었다.
“그거야 내 마음이지.”
경일의 어이없는 대답에 박민우는 순간 멍해져 대꾸도 못 하고 눈알만 굴렸다.
“좋아요. 헌터든 뭐든,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 난 명령만 수행하면 되는 거야.”
박민우는 얼른 당황스러운 마음을 수습했다.
단순한 만큼 빠르게 당황했던 모습을 지우고 기세를 올렸다.
“이야, 너도 어떻게 보면 인물이다, 인물.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경일을 공격하기 위해 한참 기세를 올리는데, 갑작스러운 적의 칭찬에 박민우는 혼란스러워졌다.
그 모습에 경일이 혀를 찼다.
“쯧쯧, 너랑 정상적인 대화는 힘들겠다. 우리 동네 얘들도 너랑 대화하다가는 복장 터져 죽을 수도 있겠어. 그럼 남은 건 몸의 대화뿐이네? 뭐하냐? 덤벼. 나 잡으러 온 거 아냐?”
경일이 박민우를 조롱하자 그는 그제야 자신이 놀림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신, 내가 가만 안 둬.”
멍청해 보였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눈매에서 살기가 느껴지고, 고집스러운 얼굴이 드러났다.
가볍게 발을 놀리며 날린 펀치는 그의 나사 빠진 듯한 머리와 달리 꽤 매서웠다.
시퍼렇게 뜬 눈에서 박민우의 분노가 느껴졌다.
퍽!
묵직한 타격 음이 울렸다.
경일은 가드를 올려 그의 주먹을 막았다.
팔뚝에 꽂힌 주먹이 제법 아팠다.
“확실히 어제 온 양아치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네. 너 다음에는 또 얼마나 센 놈이 올지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야. 이렇게 한두 명씩 꾸준히 찾아오면 내가 두 손 들고 환영할 텐데,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박민우는 재차 공격을 날리려다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섰다.
“설마, 당신에게 모두 당한 겁니까? 길드에서 그놈들을 찾는다고 난리가 났는데… 오늘 당신을 잡아가면 제법 칭찬을 많이 받겠는걸요.”
“너 설마 아직도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냐? 조금 전에 내 주먹에 맞고 잠깐 기절한 걸 그새 잊어 먹었냐?”
“그건 당신이 헌터인지 몰라서 방심하다 당한 거고.”
“아닐 건데? 첫 번째 주먹은 몰라도 두 번째 주먹은 최선을 다하는 걸 내가 분명 봤는데.”
경일이 그를 향해 이죽거리자, 박민우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씨발, 아니라니까. 방심하다 맞은 거라니까요. 아니라는 데 왜 자꾸 그러는 거야?”
박민우가 네 살짜리 아이처럼 떼를 썼다.
“그래, 그래. 방심하다 맞은 걸로 하자. 그런다고 다음에 네가 안 맞을 것도 아니고.”
말을 끝나자마자 경일은 앞으로 스텝을 밟으며 주먹을 길게 뻗었다.
경일의 주먹을 피한다고 박민우는 상체를 움직여 보지만, 그의 주먹이 훨씬 빨랐다.
퍼억!
묵직한 잽이 그의 코에 정확하게 꽂히자, 박민우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젖혀졌다 돌아온 얼굴에선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번에도 방심했네. 쯧쯧, 집중해야지. 집중을 안 하니 코피가 터지지. 너 코가 빨간 게, 많이 아프겠다? 그러니 다음에는 꼭 집중해야 해.”
“씨발, 아니야. 실수야, 실수라니까! 내가 오늘 당신을 꼭 죽여 버릴 거야!”
박민우는 계속 놀림을 받자 독이 오른 독사처럼 약이 바짝 올랐다.
그런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코가 찡하게 울리자 자연스레 눈물이 고인 것이다.
“이얍!”
박민우가 거칠게 달려들며 주먹을 날렸다.
양 주먹이 X자를 그리며 빠르게 교차했다.
경일은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흔들어 그의 주먹을 흘렸다.
그는 뒤로 물러나는 경일을 쫓으며 계속해서 주먹을 뻗었다.
20대 레벨의 헌터가 한 호흡에 여러 번의 주먹을 휘두르자, 그 위력이 만만치 않았다.
찰나의 순간에 수십 개의 주먹이 경일을 노리고 날아왔다.
“잘하네. 몬스터랑 싸울 때는 주먹을 쓸 일이 거의 없을 텐데, 보아하니 이건 사람 패려고 따로 익힌 거지?”
경일이 주먹의 일부는 가드로 막고, 나머지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피해 냈다.
박민우는 호흡이 딸려 오자, 뻗은 주먹을 회수하면서 숨을 쉬었다.
경일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며 박민우의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그가 숨을 들이키는 순간에 옆구리에 묵직한 주먹을 박아 넣었다.
“헉!”
일명 복싱에서 간장 치기라는 기술로 박민우는 맞는 순간 고통과 함께 몸이 일자로 굳었다.
더군다나 숨을 들이키는 순간에 맞은 거라 고통이 배가 되었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충격의 여파로 호흡이 막히고 자신의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퍼억!
경일의 주먹이 다시 한번 박민우의 몸에 닿았다.
그의 주먹은 잔인하게도 같은 자리에 꽂혔다.
“커억!”
두 번째 간장 치기에 입이 떡 벌어지고 눈이 튀어나올 듯이 치켜떠졌다.
얼마나 아픈지 오만 인상을 찡그린 채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렀다.
“우욱!”
박민우는 위가 뒤집혔는지 곧이어 구토를 시작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깔끔한 2대8 가르마는 이미 흐트러져 형체를 찾을 수 없었다.
“아프냐?
경일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욱~ 장난합니까? 당연히 아프지. 그렇게 세게 때렸는데 안 아프겠습니까?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박민우는 간장 치기 두 방에 거의 울듯이 대답했다.
“지금도 나를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박민우는 경일의 질문에 지진이 난 것처럼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제 말이 좀 통하겠네. 지금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아니면 힘을 앞세우고 와서 당연한 듯이 남을 핍박하는 너희가 잘못한 거 같아?”
“당연히 그쪽 잘못이 크죠. 헌터들의 세계에선 힘이 정의라는 걸 모릅니까? 약하면 물어뜯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 다들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길드에도 들어가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박민우의 당당한 말에 경일이 오히려 할 말이 없어졌다.
“어휴, 모르겠다. 고집불통인 너랑 내가 무슨 대화를 한다고. 네 말대로 힘의 논리를 보여 주마.”
경일의 눈빛이 단단하게 변하자 박민우가 지레 겁을 먹었다.
“잠깐만, 잠깐만!”
급하게 뒤로 물러서며 오지 말라는 듯이 손을 앞으로 뻗으며 휘저었다.
간장 치기 두 방에 그는 경일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확실히 깨달은 모습이었다.
그 순간, 경일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대가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광산으로 이동을 원하십니까? (Y / N)]
“그래, 네가 좋아하는 힘의 세계로 보내 주마. 그곳은 레벨이 안 통하는,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싸우는 곳이니까 잘해 봐. 아마 네 맘에 쏙 들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른 순간, 박민우는 다른 세계로 떠나갔다.
“이틀 연속으로 오는 걸 보면 이것들이 보통 질긴 놈이 아닌 거 같은데, 앞으로 스트레스 좀 받겠는걸.”
경일은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 * *
김형성은 잔뜩 기대하며 경일과 헌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먹이가 세 명이나 늘어나서 기분이 좋았다.
경일은 일반인이라 아무래도 자신의 기분대로 다루기가 힘들었다.
힘 조절을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었다.
아직 레벨이 낮긴 하지만, 헌터가 세 명이나 자신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오래간만에 마음껏 즐길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자신이 준 고통에 괴로워하는 모습.
그런 자신에게 살려 달라고 비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이 된 듯한 짜릿한 희열이 느껴졌다.
한때, 헌터 마약에도 손을 대 봤지만, 마약도 이런 희열을 주진 못했다.
잔뜩 기대한 채로 오늘의 먹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대감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온 덕에 아직 날이 밝았다.
쥐새끼 한 마리 다니지 않는 동네를 산책하며 오늘 할 고문을 생각했다.
“음, 이건 아닌가? 리액션이 약해서 이건 패스하고. 좀 새로운 거 없나? 그래, 오늘은 헌터가 세 명이나 되니 상상만 했던 모든 걸 실험해 보자. 실험하다가 죽어도 두 명이나 남아 있으니 다 해 볼 수 있을 거야. 이거, 오래간만에 이런 기회가 오니 기분이 무척 좋은걸? 헌터 중에 여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금상첨환데. 이건 살짝 아쉽네.”
아쉬운 마음에 김형성은 혀를 찼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지, 이런 기회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지. 헌터 세 명이 어디야. 어제 그 새끼들이 안 온 게 오히려 다행이구나. 이제 봤더니 분식점 사장 놈이 아주 복덩이였어. 그놈이 미끼가 되어 아주 월척을 낚았구나.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조금만 괴롭히고 재산만 털어 가는 것으로 봐주지. 하하하하하! 아~ 기분 좋다!”
아무도 없는 마을의 창고에 서서 김형성은 입술을 축였다.
얇고 유난히 빨간 입술이 침에 묻어 번들거렸다.
“올 때가 되지 않았나?”
김형성은 시계를 한 번 보고는 마을 입구를 쳐다봤다.
이미 해가 떨어진, 인적이 없는 마을에 어둠이 자욱하게 깔렸다.
전기가 끊긴 마을이라 어둠은 더욱 빠르게 활개를 펼쳤다.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스산했다.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올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자 불안해진 것이다.
“어제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오늘도 그런 일이 생기겠어? 내 성질을 잘 아는 3팀장이 알아서 잘할 거야. 만약 오늘도 어제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앞으로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 3팀장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
그는 애써 마음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불안감을 눌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발밑에는 꽁초만이 쌓여 갔다.
어느 순간부터 담배를 입에서 떼지 못하고 계속해서 줄담배를 피워 댔다.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마을에 불빛이라고는 그가 피우고 있는 담뱃불밖에 없었다.
어느새 필터까지 타 버린 담배를 버리고 새로운 담배를 꺼내려 했다.
꾸깃!
“제기랄, 이제 담배까지 떨어진 거야? 이 새끼들은 뭘 한다고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전화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으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충전을 하러 차로 향하는 걸음을 멈춰 세웠다.
차에 있는 핸드폰 충전기가 고장이 난 게 생각난 것이다.
3팀장이 오늘 헌터 세 명도 같이 보내 준다는 말에 설레어 핸드폰 충전기를 교체한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