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64화 (164/300)

[164화] 인신 공양 (1)

“아, 씨발. 별게 다 사람 신경을 긁네. 짜증나게시리. 이거, 핸드폰 충전기를 사러 가 봐야 하나? 한참을 가야 살 수 있을 건데. 이거 어쩌지, 충전기 사러 간 사이에 이 새끼들이 왔다 가는 거 아냐? 내 모습이 보이지 않고 연락이 안 되면 분명 그대로 철수할 건데…….”

차를 몰고 나가 핸드폰을 충전해 연락해 봐야 할지 고민이 됐다.

김형성은 오랜 생각 끝에 이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은 확실히 올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창고는 엉망이었다.

어젯밤 얼마나 발광을 했는지 멀쩡한 물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괜히 공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기도 하고, 오래된 난간에 매달려 보기도 했다.

언제 버려졌는지 누렇게 변한 종이를 주워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는 종이의 글을 모두 읽었는데도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후다닥!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이제야 왔구나!”

기다림에 지쳐 가던 김형성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래 기다린 만큼 반가움은 더 크게 다가왔다.

얼굴 가득 함박웃음이 떠올랐지만, 그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곧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지. 내가 웃으면 안 되지. 내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이 새끼들이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만들다니, 오늘 제대로 아작을 내버려야겠어. 한동안 푸닥거리를 안 했더니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내일은 소속 헌터들 전부 소집해서 정신교육을 한 번 실시해야겠어. 오늘 분식점 사장 놈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만져 주고, 날 물 먹인 헌터 세 놈에겐 나의 상상력을 모두 발휘하는 거야.”

김형성은 엄한 얼굴을 한 채 창고의 입구로 걸어 나갔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고라니였다.

고라니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김형성을 한 번 쳐다보더니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이런 제길!”

절로 어금니가 앙다물어졌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위로 쏘아봤지만, 어둠만이 존재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약이 바짝 오른 그는 이대로 떠날 수가 없었다.

“씨발, 분명히 올 거야. 아니, 와야 할 거야. 나를 이렇게 우습게 만들 수는 없어. 난 끝까지 기다릴 거야. 만약에 이대로 오지 않는다면 맹세하는데, 내가 모두 뼈를 발라 버릴 거야.”

김형성의 눈빛은 살벌했다.

한 달은 굶주린 듯한 맹수의 눈빛이었다.

그는 그렇게 어젯밤과 같이 새벽이슬에 그의 양복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 갈 때까지 기다렸다.

해가 떠오르고 햇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진 김형성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 * *

가우스 교는 자포리자를 더욱 궁지로 몰기 위한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베니티 사제의 아이디어에 루터 봉역 사제는 크게 만족했고, 당장 그 계획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큰 예배가 열리는 날이었다.

가장 많은 신도가 예배를 참석하는 날로, 이날은 가우스 신께 특별한 공양을 바치는 날이었다.

루터 사제는 평소와 다름없이 신도들 앞에서 가우스 교의 교리를 풀어서 이야기했다.

마당의 한중간에 설치한 장작에서 빨간빛의 불이 넘실거렸다.

가로세로 5미터 정도의 공간에 장작을 넣고 태우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뜨거운 열기를 피해 사람들은 최대한 불과 떨어져 앉았다.

“가우스 신이 강림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우스 신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이번 생이 이렇게 힘든 것은 여러분이 전생에 지은 죄의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가우스 신을 믿는 자만이 전생의 카르마를 끊어 낼 수 있습니다. 다음 생에도 이렇게 힘들게 살고 싶습니까?”

루터 봉역 사제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크게 ‘아니요!’라고 화답했다.

그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루터 봉역 사제는 옷깃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불에 뿌렸다.

탓탓탓탓탓!

불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오오오오오오오오!”

그에 맞춰 사제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미 케나베스에 중독된 사람들의 몸은 해골처럼 말랐지만, 장작이 타며 내는 불빛을 바라보는 눈에는 왠지 모를 빛이 번뜩였다.

뜨거운 열기에 노출된 공기가 뜨거워지며 분위기가 순식간에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뜨거운 공기를 마신 사람들은 식도가 화끈거리고 몸이 뜨거워지며 뇌가 녹는 듯한 몽롱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가우스 신께서 화답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아주 만족스럽다고 미천한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대로 계속 믿음을 유지한 신도에게는 전생의 죄를 사하여 내세에는 이번 생에서 누리지 못했던 것까지 보상해서 더욱 행복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더 열렬히 믿는 자에게는 더 큰 행복이 간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루터 봉역 사제가 신도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생의 믿음으로 내세의 당신이 이룰 가족까지 모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건 커다란 특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떠한 신도 가우스 신처럼 인간을 사랑하고 위하는 신은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이미 최고의 행운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말에 바짝 힘을 준 루터 봉역 사제가 눈을 매섭게 뜨고 사람들을 노려봤다.

인자했던 그의 얼굴이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이글거렸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누군가가 가우스 신을 부정하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 지금까지 가우스 신의 많은 은덕을 입은 그가 감히 가우스 신을 배신하고 자포리자 영주를 섬길 것을 맹세했습니다. 이건 배덕입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감히 신을 배반하고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의 말을 따른다는 것은 절대로 범하지 말아야 할 엄청난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우스 신께서 이번 일로 크게 노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우스 신의 충실한 신도로서 이런 이단은 절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루터 봉역 사제의 말이 끝나자, 여러 명의 사제가 한 남자를 끌고 들어왔다.

“이거 놔! 놓으라고!”

도웰은 사제들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소리치며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끌려가지 않으려 몸을 뒤로 눕다시피 해서 발로 땅바닥을 강하게 밀며 버텨 보지만, 바짝 마른 그의 몸으로는 사제들의 단단한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도웰의 눈동자에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불이 가득 들어찼다.

“이 새끼들아, 이거 놔! 이거 놓지 못해!”

눈물과 땀, 그리고 피로 범벅이 된 도웰이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산발이 된 도웰의 눈 한쪽엔 멍이 들어 있었고, 광대뼈 부분의 살은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가 입은 낡은 옷은 여기저기가 뜯겨 그 사이로 맨살이 보였으며, 몇 군데에는 심한 상처도 보였다.

도웰은 이곳에 끌려오기 전부터 이미 심한 구타를 당한 듯했다.

그가 처절하게 소리치는 모습에 일부 사람들은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앞으로 나서서 말리는 이는 없었다.

사제들은 루터 봉건 사제의 옆에 도웰을 강제로 무릎 꿇렸다.

“왜 나를 잡아 온 거야? 너희가 뭔데 나를 강제로 끌고 오느냐고! 난 이제 케나베스가 필요 없다고!”

점점 격해지는 어조로 도웰은 루터 봉건 사제를 향해 울부짖었다.

도웰은 케나베스를 피우다 병에 걸렸다.

수한이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온몸의 피부와 장기까지 굳어지는 끔찍한 병이었다.

가진 것을 케나베스를 얻기 위해 가우스 교에 모두 바친 터라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 지독한 고통을 끝내 줄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자포리자 영주는 경일에게 배운 처방으로 도웰의 병을 낫게 해 주었다.

죽음보다 아픈 고통을 겪어 본 도웰은 병이 낫자 케나베스는 이제 꼴도 보기 싫었다.

쾌락에 비해 고통은 몇십 배, 몇백 배 심했다.

그 후로 도웰은 케나베스를 끊고 가우스 교의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도웰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한 루터 봉건 사제는 하찮은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향해 격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여러분, 이자가 바로 조금 전에 말한 이단자입니다. 이자는 배교라는, 인간으로서 절대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절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가우스 신이 무척이나 분노하셨습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가우스 신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부정하는 이런 오만 방자한 행위는 절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가우스 신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쌓은 모든 공덕이 헛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우스 교의 사제로서 가우스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오늘의 공양은 저 남자의 영혼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루터 봉건 사제의 단호한 말에 사람들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들의 귀에 돼지가 불에 타 죽으며 몸부림치며 지르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지금, 돼지가 아닌 사람을 제물로 바치려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진저리를 칠만큼 무서웠고, 불쾌했다.

지신도 모르게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뒷걸음질을 쳐 보지만, 몇 걸음을 걷지도 못하고 벽에 가로막혔다.

분명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여 조금 전까지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알 수 없는 한기가 불어와 몸이 차갑게 식어 갔다.

바로 그때였다.

“죽여라. 가우스 신께 불충한 자를 받쳐 신의 분노를 잠재워라.”

사람들이 공포에 얼어붙어 입도 벙긋거리지 못하는 와중에 한 명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배덕자를 죽여 벌을 내려라!”

“죽여, 죽여!”

“죽여라, 죽여라.”

“가우스 신이시여, 제물을 받으시고 우리를 가엽게 여기소서.”

“와아아아아! 죽여, 죽여!”

그러자 동조한다는 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러 댔다.

지금 소리치는 이들은 모두 사제들의 명령을 받고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던 자들이었다.

처음에 당황했던 사람들이 급속도로 지금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이성은 마비되고 광기 속으로 침습 되어 갔다.

분위기가 급격하게 뜨거워졌다.

사제들이 돌아다니며 열과 성의를 다해 사람들의 함성을 끌어냈다.

조금 전과 확실히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불 속에서 끔찍하게 타 죽어 간다는 사실이 사라지고, 이 행위는 당연히 해야 할 신성한 의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케나베스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미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만큼 피폐해져 있었다.

가우스 교에 대해 그 어떤 비판도 없이 그저 사제들이 연출한 분위기에 빠져들어 그들이 정의라고 맹신했다.

루터 봉역 사제는 모든 것이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자, 마음속에 커다란 희열이 차올랐다.

“저 배교자를 끌고 오라!”

루터 봉역 사제의 명령에 사제들이 남자의 양팔에 팔짱을 끼고 끌고 가려 했다.

“살…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남자는 자신이 재물이라는 사실을 듣고 거의 혼이 나간 상태였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빨간 피가 더욱 선명해 보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루터 봉건 사제의 다리를 잡고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루터 봉건 사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남자의 얼굴을 반대편 발로 걷어차 버렸다.

“커억!”

남자의 입에서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루터 봉건 사제는 땅바닥에 피를 흘리며 뒹구는 남자를 만족스러운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타오르는 불에 크고 두꺼운 장작을 집어넣었다.

바짝 마른 장작이 불에 들어가자 불이 더 크게 활활 타올랐다.

타오르는 불이 모든 것을 삼킬 듯이 넘실거렸다.

남자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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