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67화 (167/300)

[167화] 네가 신을 증명할 차례야 (1)

“가우스 신의 대변자 대신관께서도 여러분이 보인 독실한 믿음에 크게 만족하셨습니다. 이에 여러분께 엄청난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칭칭 감고 있던 질기디 질긴 여러 개의 카르마 중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무려 백 년의 공덕을 쌓아야 끊을 수 있는 카르마를, 여러분의 신앙심에 크게 만족하신 대신관님이 특별히 식음을 전폐하고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잠도 자지 않고 가우스 신께 기도하신 결과, 여러분의 카르마를 하나 끊어 낼 수 있었습니다.”

루터 수석 사제는 엄청난 성과라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로써 여러분은 다음 생에 축생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가우스님 은총을 받으려면 여러분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됩니다. 이런 적은 노력으로, 이런 대단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은 진정한 행운아입니다. 더 많은 식량을 바치세요. 그럼 내세에 여러분은 더 나은 삶을…….”

그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사람들은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어떻게든 집중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이미 케나베스에 쩔어 있는 신도들은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분위기에 압도되어 기계적으로 가우스 신을 외칠 뿐이었다.

이들을 깨우려면 케나베스보다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루터 수석 사제는 대충 설교를 끝내고 베니스 사제에게 눈짓을 보냈다.

작게 고개를 끄떡인 그는 재물을 바칠 준비를 했다.

인신 공양을 통해 신도들에게 더 커다란 공포를 심어 주고, 가우스 교를 더욱 맹신하게 될 것이었다.

“여러분이 열심히 해 줬지만, 안타깝게도 몇몇 배교자가 있었다. 가우스 신이 행한 이적을 보고서도 아직도 이런 어리석은 인간이 있다는 것에 너무 마음이 아플 뿐이다. 이들은 감히 가우스 신의 은혜를 입고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가우스 신일지라도 배교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신의 은혜를 하찮게 여긴 죄인을 바로 오늘 여기서 단죄하겠다!”

루터 수석 사제는 소매 속에 숨겨둔 인을 재빨리 불에 뿌렸다.

인과 만난 불이 강렬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오오오오오!”

마치 불꽃이 살아 숨쉬는 듯한 광경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사제들이 먼저 바닥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가우스 신을 외치자, 이곳에 모인 모든 이가 따라 했다.

유일하게 서 있는 이는 루터 수석 사제뿐이었다.

오만한 눈초리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그의 달뜬 얼굴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루터 수석 사제는 이 시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마치 자신이 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걸 잘 느낄 수 있었다.

사제들이 일어나 오늘 첫 번째 제물이 될 남자를 끌고 왔다.

“안 돼! 안 돼! 이거 놔! 이 미친 새끼들아, 이거 놓으라고!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야!”

남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허억!”

그런 남자의 배에 베니스 사제의 무거운 주먹이 꽂혔다.

남자는 순식간에 축 늘어졌고, 사제들은 그런 남자를 부축해 질질 끌고 제단으로 올라갔다.

“죽여라! 죽여라!”

“가우스 신을 배신한 놈을 죽여라!”

“죽여, 죽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사제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험악한 말을 쏟아 냈다.

이미 케나베스에 취한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았다.

파도에 휩쓸려 가듯 이들이 이끄는 분위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한 명, 두 명 동조되기 시작하더니,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재물을 향해 진득한 악의를 쏟아 냈다.

“죽여라!”

“배덕자는 불 속에 집어넣어라.”

“가우스 신이시여, 저자에게 죽어서도 잊히지 않을 고통을 내리서소.”

“죽여! 죽여 버려! 아아아아악!”

비이성적인 광기와 분노가 이곳을 뒤덮었다.

남자가 제단 위 불 앞으로 끌려오자, 루터 수석 사제가 남자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죄가 없다고? 좋다. 네놈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공명정대하신 가우스 신께서 판단해 줄 것이다.”

루터 수석 사제는 옷소매에 손을 넣어다 빼면서 다시 한번 불 위에 인을 뿌렸다.

불꽃이 그에 맞춰 퍼렇게 일며 강렬한 빛을 냈다.

“불의 신 가우스 신께서 이곳에 현신하셨다. 네놈이 진정 죄가 없다면, 가우스 신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 불에서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다. 저놈을 불에 던져라.”

루터 수석 사제의 명령이 떨어지자 남자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잠깐!”

검은 로브 속에 온몸을 숨긴 한 남자가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왔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다니! 네놈도 제물이 되고 싶은 것이냐?”

루터 수석 사제가 짜증이 깃든 목소리로 나무라며 매서운 눈초리로 남자를 노려봤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분위기가 달아올랐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의 출현으로 분위기가 확 식어 버렸다.

남자는 루터 수석 사제의 협박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아주 천천히 로브를 벗었다.

“헉!”

로브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그의 얼굴이 드러나자, 가장 놀란 건 바로 루터 수석 사제였다.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자포리자였다.

“네놈이 여기에 무슨 일이지? 감히 가우스 교의 행사를 방해할 목적이냐? 정녕 모든 종교의 적이 되고 싶은 것이냐?”

루터 수석 사제가 화를 참지 못하고 자포리자 향해 삿대질하며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난 종교의 적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나섰을 뿐이야.”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포리자에게로 집중되었다.

절대 이곳에 나타날 리가 없는 영주의 등장에 그들의 이성이 순간적으로 돌아올 정도로 매우 놀랐다.

아무리 케나베스에 취해 있어도, 가우스 교가 자신의 등 뒤에 있어도 자포리자의 존재감은 절대 작지 않았다.

하나같이 궁금한 얼굴로 자포리자를 바라봤다.

“조금 전 너의 설교 중에 지금 제단 위, 저 불에 가우스 신이 현신했다고 했지?”

“흥, 감히 나의 말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루터 수석 사제는 콧김을 한번 내뱉고는 소매 안에서 인을 꺼내 불에 던졌다.

‘타탓탓’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어 올랐다.

“봤느냐? 이것이 바로 가우스 신이 헌신한 증거이니라.”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루터 수석 사제는 자신이 있게 말했다.

“그래? 그럼 네놈이 직접 그 불 안에 들어가 보거라. 분명 가우스 신을 믿는 이는 불 속에서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들어갈 수 있겠지?”

자포리자의 의외의 말에 루터 수석 사제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말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자포리자의 말에는 도저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가 자신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등 뒤로 한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감히 신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네놈은 가우스 신을 모독했다! 여봐라, 저놈을 이곳에서 내쫓아라!”

루터 수석 사제는 더듬거리며 사제들을 향해 명령했다.

사제들이 험악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자포리자를 에워쌌다.

“어허~ 종교인이라는 것들이 살기가 저리 짙다니.”

사제들이 흉흉한 기세를 띠고 자신에게 다가오는데도 그는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가벼운 산책을 하듯 그는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서 있었다.

사제들의 걸음을 막은 건, 그의 충직한 기사들이었다.

신도들 사이에 로브를 쓴 이들이 재빠르게 달려 나와 사제들의 목에 검을 갖다 댔다.

사제들이 아무리 사나워도 마나를 다루는 기사에 비하면 고양이 앞의 쥐였다.

루터 수석 사제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아니야, 아닐 거야. 난 가우스 교의 수석 사제라고. 아무리 저놈이 화가 났어도 감히 나를 건들지는 못할 거야. 절대 나를 건들일 수는 없어. 이건 모두 나를 궁지로 몰기 위한 하나의 쇼야. 이럴수록 내가 더 대담하게 나가야 해.’

현실적으로 자포리자가 자신을 건들지 못할 걸 알면서도 혹시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까 하는 숨 막히는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에게 해를 가하는 순간, 베르아스의 모든 종교가 스탄다비아를 공격한다. 그러니 절대 저놈은 나를 건들 수 없어.’

루터 수석 사제는 막상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순간이 오자, 그토록 열렬히 부르짖던 가우스 신을 찾지 않았다.

자신이 독실한 신자인 걸 자랑스러워하며 가우스 신을 믿으라고 누구보다 목청 높여 소리 질렀으면서도.

자포리자가 자신을 향해 걸음을 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움찔움찔 몸이 떨렸다.

도망가고 싶었으나 자신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명예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섭지만 사람들 앞에서 기죽은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물러서지 않으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어떻게든 버티고 서서 자포리자를 노려봤다.

“나는 가우스 교의 수석 사제다. 나를 건드는 것은 베르아스의 모든 종교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스탄다비아는 왕국에서 사라질 것이다. 네놈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영지민들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죄를 물을 수 있을 터. 하지만 지금 물러난다면 이번 한 번만은 용서해 주마.”

루터 수석 사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포리자에게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그의 협박을 듣고도 자포리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다시 말하지만 난 종교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내가 가우스 교에 관심이 생겨서 말이야. 나는 오늘 가우스 교에 입교하러 온 거야. 그럼 너도 좋지 않겠어? 듣자 하니 내가 준 농작물을 교단의 높으신 분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내 덕에 수석 사제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나를 신도를 만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농작물을 보낼 수 있을 테고. 네 입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지겠지. 그래서 말이야, 네 말대로 가우스 신이 저 불에 진짜 현신한 것이라면 나도 가우스 교를 믿으려고 말이지. 이제 네 말을 직접 증명하면 돼. 네가 매번 하는 말이니 별로 어려울 것도 없잖아.”

“잠… 잠…깐만.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감히 신의 사제인 나를 시험하겠다는 것이냐?”

“아냐. 난 네가 말한 것을 확인하는 것뿐이야. 이곳의 있는 모든 사람이 네 말을 들었잖아. 가우스 신이 불에 현신했고, 신을 믿으면 불 속에서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말을 네 입으로 똑똑히 말했잖아. 이 자리에서 너보다 독실하게 가우스 신을 믿는 자는 없을 테니, 너한테는 너무나 쉬운 일이잖아. 안 그래?”

루터 수석 사제는 그대로 굳어져 입만 벙긋거렸다.

뭐라고 받아쳐야 하는데 아무런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밑의 사제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들은 이미 기사들에게 잡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포리자가 가우스 교에 무릎을 꿇어서 신도들에게 농작물을 나누어 준 게 아니었다.

그는 가우스 교에 복수하기 위한 최고의 순간을 기다려 왔다.

곧바로 달려 나가 그들의 목을 베는 것으로는 그의 울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영지민들이 종교에 휘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가우스 교의 가르침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 줘야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자포리자는 이를 악물며 수많은 모욕을 참아 냈다.

루터 수석 사제에게 그의 확고한 의지가 분명히 전달되었다.

몸부림칠수록 더욱 몸을 조여 오는 덫에 걸린 것 같았다.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가 그 누구보다 확실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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