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70화 (170/300)

[170화] 대련

“알겠습니다.”

자포리자는 경일에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둘이 위치한 곳은 연무장이었다.

아무도 없는 연무장에 자포리자와 경일이 마주했다.

자포리자는 천생 무인이었다.

연무장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그의 기세가 변했다.

이 시대의 진정한 기사다운 모습이었다.

경일은 그 모습에 흥분과 긴장감이 같이 밀려들었다.

그의 성격상 이번 대련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도 자포리자와의 대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이었다.

경일이 마음껏 자신의 기세를 드러내며 연병장의 중심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나! 처음 봤을 때는 분명 마나를 깨우치지 못했는데, 벌써 이런 경지라니.’

경일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단지 걸음을 걷는 것뿐인데,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앞으로 걸어 나올수록 그를 둘러싼 공기의 파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몸속의 마나를 돌릴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경일의 기운이 넓은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자포리자도 기세를 일으켜 경일의 기운을 밀어내며 자신의 공간을 확보했다.

서로의 기세가 부딪치자, 연병장이 약한 지진이 일어난 듯 떨려 왔다.

아직 무기를 맞대지 않았지만, 대련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둘의 단단한 눈이 허공에서 서로 얽혔다.

자포리자가 천천히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와 함께 오러거 롱소드를 타고 오르며 파란색으로 일렁였다.

경일도 지지 않고 검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둘의 오러의 느낌과 색깔은 매우 흡사했다.

이건 둘 다 같은 오러 연공법으로 단련을 했기 때문이다.

서로 가진 성향의 차이로 인해 완벽히 똑같은 색깔은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같은 뿌리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대결 중인데도 서로의 오러를 보자 친밀감이 생겨났다.

그들의 마음에 작은 훈풍이 불어왔다.

쿵, 쿵, 쿵, 쿵!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자포리자의 발소리가 들렸다.

힘 있는 발걸음으로 연무장의 바닥을 박차며 그는 앞으로 달려 나왔다.

경일과의 일정한 거리에 다다르자, 그는 땅을 거칠게 박차고 날아올랐다.

크게 뒤로 젖힌 롱소드가 순간 자포리자의 등 뒤로 사라졌다 모습을 드러냈다.

자포리자의 체중과 힘, 그리고 달려오는 속도까지, 모든 것이 담긴 롱소드가 경일의 정수리를 향해 인정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럼에도 경일은 피하지 않았다.

“흡!”

아랫배에 단단히 힘을 주고 자포리자의 롱소드를 맞을 준비를 했다.

경일의 절대 지지 않겠다는 다짐이 그의 눈동자에 강인하게 담겨 있었다.

이번 공격은 기선제압을 위한 자포리자의 노림수였다.

자신보다 체격이 작은 경일에게 힘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 주기 위한 한 수였던 것이다.

낙하하는 롱소드와 위로 올려 친 경일의 검이 허공에서 억세게 부딪쳤다.

꽈앙!

연병장에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두 개의 던전 금속이 부딪치며 공기의 파동이 일어났다.

공기의 파동이 번져 나가 연병장의 벽을 때리자, 작은 먼지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걸리는 것은 모든 것을 베어 버리겠다는 강맹한 의지가 담긴 롱소드가 일정한 선을 넘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묵직한 충격이 서로의 손에 전해졌다.

끼긱, 끼기기긱익!

검날이 부딪치며 파란 불꽃이 튀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힘겨루기가 이루어졌다.

자세로는 내리누르는 자포리자가 훨씬 유리했으나, 경일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그들의 몸에서 마나의 파란빛이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이럴 수가!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 정도로 강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평생을 수련한 자포리자였다.

더군다나 그 누구보다 좋은 체력에 신력을 타고난 장사였다.

그런 그에게 경일은 불리한 자세에서의 힘겨루기에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자포리자는 자신의 롱소드가 살짝 들리는 느낌을 느꼈다.

내려치는 속도로 증가한 힘이 사라지고, 순수한 힘과 힘의 대결이 되자 오히려 자신이 밀린 것이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자포리자는 찬사의 말을 보냈다.

이대로 밀려 자세가 흐트러지면 자신이 불리하단 걸 깨닫고, 곧바로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자세를 잡았다.

평생 검술을 익힌 검사답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순간, 검에 걸린 저항이 사라지자 경일은 살짝 휘청였으나, 민첩 스탯이 높은 만큼 살짝 발을 뻗어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경일이 물러서는 자포리자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며 검을 휘둘렀다.

아무런 기교가 들어가지 않은, 그 무엇보다 정직한 기초 기술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던전에서 같은 자세와 힘으로 하루 천 번씩 연습한 베기가 자포리자를 향해 펼쳐졌다.

검도 교본의 1장에 실릴 것 같은 평범한 베기였지만, 그 위력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순간, 자포리자의 눈동자가 커지면서 살짝 떨렸다.

하지만 그 위력이 적지 않다고 해도 검의 궤적은 무척이나 솔직했다.

자포리자는 곧바로 궤적을 읽고 급하게 경일의 공격을 피했다.

‘이런!’

분명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볼에서 작은 고통이 일었다.

상처를 입은 것이다.

칼날이 분명 닿지 않았는데, 검의 예기가 자포리자의 볼을 살짝 베고 지나간 것이다.

작은 상처에 당황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경일의 검이 빠르게 찔러 왔다.

직선으로 뻗어 오는 검을 자포리자는 부드러운 원을 그린 롱소드로 검면을 가볍게 타격하여 옆으로 흘렸다.

‘헉!’

경일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자포리자가 너무나 쉽게 자신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것이었다.

그와 함께 자세가 흐트러진 경일에게 공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공수가 역전되었다.

경일이 가지지 못한 검의 기술이었다.

자포리자는 경일과 첫 번째 부딪침에서 자신의 힘이 밀린다는 것을 실감했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자신도 한 사람의 기사로서 쉽게 승부를 내줄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했다.

경일에게는 없고 자포리자에게 있는 건, 실전의 경험과 오랜 시간 갈고 닦아 온 검의 기술이었다.

자포리자는 경일이 자세를 회복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는 큰 덩치와 길이가 긴 롱소드 같지 않은 작고 빠른 공격을 이어 갔다.

“이런!”

순간적으로 경일의 눈동자가 커졌다.

기회를 잡은 자포리자는 빠르게 경일의 복부를 노리고 롱소드를 찔러 갔다.

긴 길이의 롱소드가 마치 한 손 검처럼 빠르고 매끄럽게 움직였다.

경일이 급히 몸을 회전시키며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포리자의 화려한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겨일은 공격과 공격 사이의 틈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자포리자의 육체보다 더 뛰어나도 없는 틈을 뚫고 반격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경일보다 긴 팔과 무기의 길이를 이용해 자포리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를 확실히 잡았다.

경일이 다가가면 뒤로 빠졌고, 경일이 뒤로 빠지면 자포리자가 앞으로 나아갔다.

‘이런, 곤란한데.’

경일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거리가 아니었다.

자포리자가 점유한 거리가 분명 위협적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빠른 자신이 무리한다면 좁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의 불리한 구도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경일은 억지로라도 여러 번 공격을 시도했다.

분명 자포리자보다 빠른 몸놀림을 구사하며 거리를 좁히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때마다 자포리자의 신묘한 검술에 계속 막혔다.

자포리자의 첫 공격은 충분히 막고 피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다음 공격들은 점점 더 막기가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포리자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경일의 공격 패턴을 모두 읽은 그는 한 번 잡은 승기를 절대 놓지 않았다.

‘대단하구나. 이것이 진정한 기사와의 싸움이구나.’

곽마권과 손필견의 싸움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몬스터와의 싸움과도 분명 달랐다.

그들과의 싸움이 순수하게 신체 능력을 겨누는 자리라면, 지금의 싸움은 그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싸움이었다.

연병장의 단단한 바닥이 어느덧 질퍽한 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몸이지만,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이 밀리고 있긴 하지만, 알 수 없는 희열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차올랐다.

‘또 속았어.’

경일은 자포리자의 속임 동작에 번번이 넘어갔다.

오른쪽으로 예상했던 공격이 엉뚱한 방향으로 치고 들어온다든지, 롱소드의 공격을 예상했는데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발차기가 날아온다든지.

가끔은 주먹까지 동원해 자신을 몰아치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진검 승부에서 주먹으로 맞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눈에서 번쩍하고 번개가 쳤다.

자포리자의 커다란 주먹이 경일의 눈을 정확하게 때렸다.

허둥지둥하는 사이, 롱소드가 경일의 복부를 베고 지나갔다.

경일은 갑옷에 생긴 자국을 봤다.

갑옷이 없었거나, 자포리자의 공격이 조금만 더 깊었으면 분명 크게 다쳤을 것이다.

‘기술의 차이는 내가 지금 당장 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난 나의 장점을 극대화시키자.’

큰 공격을 허용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는 답이 없었다.

경일이 선택한 건 역시 힘과 스피드였다.

상대의 공격에 맞추어 효율적인 공격과 방어를 하는 것이 아닌, 어찌 보면 막무가내와 같은 공격이었다.

쩡!

자포리자가 가볍게 휘두른 롱소드를 경일이 강한 힘으로 후려쳤다.

경일의 칼에 실린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자포리자의 롱소드가 튕기듯이 뒤로 확 밀려났다.

“헉!”

처음으로 자포리자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꽝!

단전의 마나가 빠르게 경일의 온몸을 빠르게 질주했고, 자포리자의 다음 공격도 무지막지한 힘으로 받아쳤다.

검을 쥔 손의 피부가 터져 나갔으나, 경일은 멈추지 않았다.

자포리자는 진정한 전사였다.

경일의 정면 승부에 피가 끓어오른 듯, 지금의 공격 패턴을 버리고 그도 두 다리를 단단히 땅에 붙이고 온 힘을 다해 경일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왠지 모르게 자포리자의 얼굴이 시원해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터.

하지만 이런 무식한 싸움의 승자는 경일이었다.

자포리자의 롱소드가 튕겨 나가며 오른쪽 가슴이 활짝 열려 버렸다.

경일은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품으로 뛰어들어 어깨로 자포리자의 몸을 받아 버렸다.

강한 힘이 실린 검을 회수해 다시 공격하기에는 늦을 거 같아 본능적으로 선택한 공격이었다.

자포리자가 충격에 뒤로 크게 밀려났다.

밀려나는 발걸음이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자포리자는 넘어지지 않았다.

크게 휘청거렸지만, 아슬아슬하게 왼발을 크게 벌리며 중심을 잡았다.

‘이런.’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큰일 날 뻔했다. 생각도 못 한 공격이었어. 검에 실린 힘이나, 몸통 박치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자포리자가 다시 자세를 잡는데, 왼발의 감각이 살짝 부자연스러웠다.

순간, 강하게 힘을 쓴 탓에 발목 근육이 살짝 놀란 듯했다.

그는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으나, 신체의 밸런스가 미묘하게 틀어져 있어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특히 자신보다 강자와의 싸움이라 작은 실수 하나에도 급격하게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쿵!

경일이 한 발짝 내디딘 발에 실린 힘이 얼마나 컸는지 바닥이 울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와 함께 거대한 기운이 담긴 검이 자포리자를 향해 사선으로 내리그어졌다.

화려한 기교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단순한 공격.

지금까지와 분명 같은 공격이지만, 이번에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이 짧은 순간, 경일은 확실히 발전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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