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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72화 (172/300)

[172화] 사냥 (1)

경일은 샤벨 타이거의 영역에 들어온 걸 눈보다 감각으로 먼저 느꼈다.

녀석의 외형을 보고도 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리라.

“크아아아아앙~”

거대한 덩치의 샤벨 타이거가 달려오며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쿵, 쿵, 쿵!

땅을 밟을 때마다 나는 육중한 소리에 비해 움직임은 매우 날렵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샤벨 타이거는 자리에 서서 불쾌하다는 듯이 사람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존재 자체로도 반칙일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냈다.

긴장으로 더워졌던 몸이 빠르게 식는 느낌이었다.

갑옷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실제로 마주한 샤벨 타이거는 생각보다 더 거대했다.

거의 7미터에 육박하는 덩치에, 발이 성인 남자의 상체보다도 컸다.

입을 뚫고 나온 거대한 두 개의 어금니는 무엇이든 뚫을 수 있다는 듯이 존재감을 과시하며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샤벨 타이거가 천천히 한 발자국 움직였다.

발이 사라진 자리에 녀석의 육중한 무게에 눌려 땅이 움푹 파인 것이 보였다.

“대단하네.”

경일은 자신도 모르게 샤벨 타이거를 보고 감탄했다.

몬스터는 무조건 흉악하고, 더럽고, 추하다는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샤벨 타이거는 용맹하고, 아름답고, 고고한 느낌이었다.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은 오만했고, 강자의 여유와 존재감을 맘껏 흩뿌렸다.

녀석의 압도적인 기세가 주변을 잠식해 나갔다.

무섭도록 소름끼치고 몸을 사정없이 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몸에서 닭살이 일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들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강렬한 적의가 담긴 샤벨 타이거의 압도적인 기세를 반항하며 밀어냈다.

분명 자신보다 강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이들에게 겁을 주기엔 부족했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기사의 명예였다.

적이 강하다고 해서 싸우기도 전에 마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건 기사의 수치였다.

자포리자와 기사들은 기사의 명예를 드높이며 샤벨 타이거의 강렬한 눈빛에도 기죽지 않고 마주 서서 노려보았다.

그런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단의 의연한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 자리에 화가가 있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금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으리라.

분명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인데,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사람 간의 계급이 존재하는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사회였지만, 그런 악조건을 뛰어넘는 끈끈한 신의가 이들을 이어 주었다.

자포리자와 이들은 한 몸이었다.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욱 깊은 결속력을 보여 주었다.

‘이런 사람들의 존중을 받는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경일은 자신 있는 걸음으로 샤벨 타이거와 마주 섰다.

샤벨 타이거가 그런 경일을 약간의 흥미와 함께 가소롭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경일의 검을 뽑아 천천히 샤벨 타이거를 가리켰다.

시퍼런 마나가 그의 검을 타고 올라와 검날을 감싸 안았다.

그와 동시에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들이 샤벨 타이거를 포위하며 진형을 갖추었다.

“영주님, 제가 먼저 샤벨 타이거와 정면에서 상대하겠습니다. 영주님은 기사들과 함께 샤벨 타이거를 공격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경일이 검을 거머쥐고 천천히 샤벨 타이거에게 다가갔다.

“크르르르르르!”

샤벨 타이거가 경일을 보고 곧바로 반응했고, 경일이 샤벨 타이거의 정면에 서서 가슴을 활짝 열며 소리쳤다.

“이 새끼야, 덤벼!”

기죽지 않으려고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막상 샤벨 타이거와 마주 서니 온몸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 의식도 하지 못했던 공기에 무게가 실려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그때, 경일의 눈에 샤벨 타이거를 둘러싼 기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는 한 치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단한 치켜뜬 눈에서 강한 의지가 보였다.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명예롭지 않은 죽음을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기사들의 기백에 경일도 물들어 갔다.

기사들의 의지가 전달되자,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공기의 무거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격앙되었던 마음이 진정되고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가볍게 목을 옆으로 꺾어 긴장됐던 근육을 풀었다.

선공은 샤벨 타이거였다.

극단적인 호전성을 가진 몬스터답게 먼저 공격에 나섰다.

거대한 발이 공기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경일을 향해 날아왔다.

덩치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에 경일은 급하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터엉!

엄청난 힘이었다.

밀려 나지 않으려 한 손으로 방패를 잡고, 몸을 비스듬히 돌려 왼쪽 어깨로 방패를 지지해 샤벨 타이거의 발을 막아 냈다.

“윽!”

몸에 전달되는 충격에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온몸에 마나를 돌려 폭발적인 힘을 끌어내 봤지만, 거대한 샤벨 타이거의 힘에 대항하는 건 무리였다.

경일은 뒤로 밀리면서도 오른손에 쥔 검으로 샤벨 타이거의 발을 노리고 찔렀다.

“커엉!”

경일에 검에 발을 찔린 샤벨 타이거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와 함께 자포리자와 기사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샤벨 타이거를 둘러싼 기사들이 거대한 미스릴 장창으로 샤벨 타이거의 몸을 찔렀다.

“피해!”

그 순간, 경일의 날카로운 소리가 기사들의 귀에 박혔다.

기사들은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샤벨 타이거의 앞발에서 날카롭게 튀어나온 네 개의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경고가 조금만 느렸어도 큰일이 벌어졌으리라.

샤벨 타이거의 발바닥은 낙엽 밟은 소리도 내지 않을 만큼 예민했고, 근육으로 무장된 뒷다리는 마치 보조 추진 로켓처럼 빠른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다.

경일이 샤벨 타이거의 앞발에 공격을 성공시켰지만, 입힌 타격은 크지 않았다.

샤벨 타이거의 단단한 가죽은 경일의 검을 어렵지 않게 방어해 냈고, 그 정도의 상처는 가시에 찔린 수준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의 몬스터인 샤벨 타이거의 움직임에 방해하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경일이 앞장서서 샤벨 타이거의 시선을 끄는 게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경일의 검이 샤벨 타이거의 앞발을 찔러 들어갈 때, 자포리자의 롱소드 역시 샤벨 타이거의 반대편 발을 베었다.

샤벨 타이거의 발을 막으면서 하는 공격이라 불편한 자세일 수밖에 없던 경일과 달리 완벽한 자세로 공격을 한 자포리자가 샤벨 타이거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크아아아앙!”

고통을 참고서 한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샤벨 타이거가 분한 듯 고개를 치켜들고 소리를 질렀다.

한껏 치솟은 눈꼬리에서 강렬한 살기를 담은 눈빛이 번뜩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한 지역의 패자답게 엄청난 압박이 기사들의 몸을 옭아맸다.

그 순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에겐 선인이 계신다!”

자포리자의 사기를 북돋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용기를 얻은 기사들이 곧바로 샤벨 타이거의 기세를 털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어린 기사가 자신의 검을 미련 없이 투척했다.

샤벨 타이거의 몸으로 일직선으로 날아간 검이 녀석의 몸을 맞추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이게 신호인 듯 그 순간, 나머지 기사들도 자신의 무기를 샤벨 타이거를 향해 던졌다.

이건 모두 경일이 준비한 한 수였다.

장창으로 최대한 거리를 두고 공격하고, 또 다른 공격으로 준비한 것이 투척이었다.

무기를 이용하는 오크와 같은 2족 보행 몬스터가 아닌 4족 보행하는 샤벨 타이거가 기사들이 던진 무기를 이용할 리도 없으니 문제 될 게 없었다.

인벤토리가 있으니 많은 무기를 옮기는 것 또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사들의 근처에는 투척에 필요한 무기들이 널려 있었다.

스무 개가 넘는 무기가 한꺼번에 샤벨 타이거의 몸을 때렸다.

기사들의 공격에는 모두 일격 필살의 힘이 실려 있었다.

경일이 이들에게 나누어 준 포션이 있는 이상, 체력 안배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사들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담아 공격했다.

“크아아아아앙앙앙!”

샤벨 타이거의 울음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가죽에 상처를 주는 수준이라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으나, 녀석의 약을 올리기에는 충분했다.

샤벨 타이거는 참지 못하고 자신을 가장 아프게 한 기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 순간, 녀석의 정면에 있던 경일과 자포리자는 샤벨 타이거의 시선에서 벗어났고, 가장 강한 두 명이 온몸에 힘을 실어 샤벨 타이거를 공격했다.

푹!

경일은 자신의 검이 샤벨 타이거의 어깨를 뚫고 들어가 어깨뼈에 닿은 것이 느껴졌다.

검끝에 뼈가 닿자 사정없이 검을 휘저어 버렸다.

샤벨 타이거의 몸이 크게 움찔하는 것이 그대로 검을 타고 전해졌다.

경일과 동시에 공격한 자포리자는 온 힘을 실어 녀석의 몸을 베었다.

검이 지나간 자리의 가죽이 갈라지며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베어진 속살에서 검붉은 피가 스멀스멀 배어 나오듯이 가죽을 타고 흘러내렸다.

“커엉엉엉엉엉엉!”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비명이 샤벨 타이거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오면서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으리라.

샤벨 타이거는 기사를 공격하려다 말고 곧바로 몸을 돌려 자신에게 가장 강한 고통을 준 경일과 마주 섰다.

그 순간이었다.

퍽!

샤벨 타이거가 뒤를 보지도 않고 뒷발을 뒤로 길게 뻗어 찼다.

조금 전의 움직임으로 기사의 위치를 파악한 놈이 시도한 비장의 한 수였다.

방심하고 있던 기사의 가슴을 뒷발이 정확하게 때렸다.

“아아아악!”

기사는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가 나무에 등을 강하게 부딪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입고 있던 갑옷의 가슴이 움푹 들어가고 기사는 검붉은 피를 연신 토해 냈다.

단 한 번의 공격에 기사는 사경을 헤맸다.

“단 한 순간도 방심하지 마라. 모두 싸움에 집중해.”

자포리자가 엄중한 목소리로 기사들에게 경고했다.

이제부터는 샤벨 타이거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어도 기사들은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대단하구나. 그 짧은 순간에 기사의 위치를 읽고 보지도 않고 정확히 공격하다니.”

샤벨 타이거가 다시 한번 뒷발을 뻗어 공격했지만, 이미 한 번 한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경일이 자포리자와 눈을 맞췄다.

“모두 공격을 준비하라. 선인님이 먼저 공격하면 곧바로 우리도 따라 공격에 들어간다.”

“충!”

샤벨 타이거의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놈의 뻣뻣하고 거친 털을 물들였다.

경일에게 찔린 어깨의 상처가 신경이 쓰였는지 녀석의 눈길이 잠시 돌아간 순간, 경일이 총알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캬아아아앙!”

샤벨 타이거가 크게 포효하며 경일을 향해 앞발을 후려쳤다.

거대한 트럭이 자신을 덮쳐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강한 위력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공격!”

자포리자의 함성과 함께 기사들의 공격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샤벨 타이거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고통에 경일을 향해 날리던 앞발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경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샤벨 타이거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옆에서 자포리자 역시 달려들고 있었다.

대단한 용기였다.

자포리자는 샤벨 타이거에게 자신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정면에서 달려들었다.

텅!

샤벨 타이거의 앞발이 경일이 들고 있는 방패를 쳤다.

방패는 순간, 배트에 맞은 야구공처럼 멀리 날아가 버렸다.

경일이 재빨리 방패를 놓아 버린 것이다.

샤벨 타이거는 앞발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에 의아했다.

그 순간, 경일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창을 샤벨 타이거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질긴 가죽의 단단한 저항감이 경일의 창을 막으려 했다.

“이야압!”

경일은 기껏 잡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단전에서 빠르게 뿜어져 나온 마나가 경일의 육체에 힘을 주었고, 창은 가죽의 저항감을 이겨 내고 조금씩 뚫고 들어갔다.

“흐아아얍!”

경일의 바로 옆에서 자포리자의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마나를 받아들여 파랗게 빛나는 롱소드가 샤벨 타이거의 가죽을 가르며 지나갔다.

“크어엉엉엉엉!”

샤벨 타이거가 불에 타는 듯한 고통에 순간적으로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분한 듯 커진 눈엔 독기가 서려 있었다.

“피해!”

경일이 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로 빼자마자 상처를 입은 샤벨 타이거가 광분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팽이처럼 돌며 사방으로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거대한 덩치의 샤벨 타이거가 땅을 박찰 때마다 돌 파편이 튀었다.

땅땅땅땅땅!

기사들의 갑옷에 잔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샤벨 타이거는 도는 것을 멈추며 강하게 땅을 박차고 날았다.

튼튼한 뒷다리의 허벅지 근육은 샤벨 타이거의 거대한 몸에 로켓 같은 추진력을 제공했다.

정확히 경일을 향해 몸을 날린 샤벨 타이거가 입을 크게 벌렸다.

쩍, 하고 벌어진 입에서 피비린내가 먼저 경일을 향해 덮쳐 왔다.

거대한 어금니가 정확하게 경일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위턱에 달린 날카로운 어금니가 머리 위에서 내리꽂혔다.

터엉!

아무것도 없던 경일의 손에 방패가 나타나 어금니를 막아 냈다.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방패에 놀란 샤벨 타이거가 놀라 움찔거렸다.

그 순간, 자포리가가 놈의 얼굴을 노리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샤벨 타이거는 만만치 않았다.

순식간에 얼굴을 뒤로 젖혀 자포리자의 공격을 피하고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조심해!”

경일의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순간, 네 개의 갈고리 같은 발톱이 앞발에서 튀어나와 자포리자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고, 그의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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