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사냥 (2)
“컥!”
가슴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충격에 자포리자가 뒤로 날아갔다.
경일이 재빨리 몸을 날려 공중에서 그를 낚아챘고, 둘은 거의 5미터를 날아간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일은 재빨리 자포리자의 상태를 살폈다.
자포리자의 갑옷 가슴 부분이 발톱에 찢기고 움푹 들어가 있었다.
다행히도 갑옷이 샤벨 타이거의 공격에 찢어발기긴 했으나, 자포리자의 몸을 발톱에서 분명하게 지켜 주었다.
미스릴이 아무리 대단한 금속이라고 해도 샤벨 타이거의 발톱을 버텨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자포리자의 갑옷은 미스릴이, 아닌, 그 위의 금속인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갑옷이었기 때문이다.
오리하르콘은 모든 것이 풍족한 던전에서도 거의 채굴이 되지 않았다.
아주 소량으로만 생산이 되었는데, 경일은 그것을 모아 자신을 위한 갑옷이 아니라 자포리자를 위해 사용했다.
“휴~ 다행이네. 미스릴보다 한 단계 위라더니, 대단하긴 하네.”
경일이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자포리자에게 입에 조금씩 흘려 넣어 주었다.
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었다.
경일과 자포리자가 빠진 이 짧은 사이에도 샤벨 타이거는 기사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거대한 앞발에서 튀어나온 1미터에 이르는 날카로운 발톱이 거침없이 앞에 걸리는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기사들은 최선을 다해 보지만, 샤벨 타이거의 발톱은 조금의 자비도 없이 앞에 걸리는 모든 것을 가르며 지나갔다.
“아아아악!”
“피해!”
“장창으로 찌르고 거리를 벌려라!”
“조심해!”
“커억!”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기사들의 비명이 경일의 귀를 여실히 때렸다.
“이런, 제기랄!”
경일과 자포리자가 전장에서 이탈하자, 녀석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날뛰었다.
기사들의 비명을 들은 경일이 자포리자를 안전한 곳에 두고 재빨리 전장에 복귀했다.
360도 열린 귀로 경일의 기척을 읽은 샤벨 타이거가 곧바로 몸을 돌려 경일과 마주 섰다.
녀석도 이 중에서 경일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던 것이다.
경일이 약간의 시간을 벌어 주는 사이, 기사들이 빠르게 힐링 포션을 들이마셨다.
얼마나 급했는지 먹는 양보다 목을 타고 흐르는 양이 더 많았다.
“뭐가 이리 센 거야. 이렇게 센 몬스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만약 저 녀석이 지구에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재앙이 벌어지겠지.”
샤벨 타이거의 강함에 진저리가 쳐질 지경이다.
이 정도 급의 몬스터를 사냥하려면 고레벨의 헌터가 몇 명이나 필요할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이미 중소 길드의 길드장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경일이었다.
그들은 사회에서 강하다고 인식되고 있을 정도의 헌터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샤벨 타이거를 상대해 본 결과, 놈을 사냥하려면 그들이 최소 몇 명이 필요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샤벨 타이거가 나타난다면 중형 길드의 길드장급 이상의 헌터들이 모여 사냥해야 할 것인데, 그 정도의 헌터를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모으는 게 쉬워 보이지 않았다.
만약 샤벨 타이거가 존재하는 몇 개의 던전이 동시에 생겨난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볼 것이 자명했다.
“제길, 방심했나? 아니야, 방심하지 않았어. 생각 이상으로 놈이 강할 뿐이야. 이미 싸움은 벌어졌어. 약한 마음을 먹으면 안 돼. 내가 무너지면 여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탄다비아도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되겠지. 절대 질 수 없어!”
경일이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샤벨 타이거의 갑작스런 등장에 경일은 늘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
안 그래도 힘든 스탄다비아에 샤벨 타이거의 등장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과 다름없었다.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비누의 생산이 막힘으로써 작게나마 트여 있던 숨통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
그 순간부터 경일은 놈을 어떻게 사냥할지 많은 상상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탄다비아의 현황을 관찰할 때, 샤벨 타이거에 관한 이야기에 신경이 쏠렸다.
자연히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 샤벨 타이거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스탄다비아에 올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경일은 자포리자와의 대결을 통해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고, 그의 기사단과 같이한다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자포리자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경일이 원하는 싸움이라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경일의 목숨을 걸려 있으니 그만큼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들이 알고 있는 샤벨 타이거보다 훨씬 강한 놈이었다.
그들에게는 운이 없게도, 이곳에 자리 잡은 샤벨 타이거는 같은 종족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기사들과 경일, 자포리자가 힘들게 만들어 낸 상처에선 어느새 피가 멈추고 살이 아물고 있었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회복력이었다.
“이건 숫제 괴물이잖아! 트롤도 아닌데, 무슨 상처가 벌써 낫는 거야.”
경일이 어이가 없어 한탄을 하는 사이, 샤벨 타이거가 왼쪽 발을 땅에 단단히 고정하고는 그대로 오른쪽 발을 경일을 향해 휘둘렀다.
휘둘러지는 발에서 튀어나온 네 개의 발톱이 경일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줄이고는 몸을 갈라 버리겠다는 기세를 여실히 드러냈다.
“제기랄!”
샤벨 타이거의 크고 긴 다리는 사람과 싸울 때처럼 작은 움직임으로 피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발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1미터 길이의 발톱까지.
경일은 거의 슬라이딩하듯이 몸을 날렸다.
샤벨 타이거의 발톱이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며 일으킨 바람에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제길!”
제대로 중심을 잡지도 못했는데 발톱이 되돌아왔다.
샤벨 타이거가 경일이 공격을 피하자, 힘으로 발의 진행 방향을 바꿔 그대로 후려친 것이다.
“읔!”
급하게 방패를 꺼내 막아 보지만, 충격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사벨 타이거에 공격에 경일은 방패 째로 날아가 그대로 나무에 등을 부딪쳤다.
등을 파고드는 쩌릿한 고통에 몸이 마비된 듯했으나, 경일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 녀석과 맞섰다.
경일이 악전고투하는 사이, 기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선인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포기하지 마라!”
기사들 중 선임으로 보이는 이가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공격!”
“으아아악! 죽어라!”
“창을 찔러 넣어!”
이에 화답하듯 기사들이 저마다 고함을 치며 샤벨 타이거에게 달려들었다.
기사들은 동료가 다치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자포리자의 기사단다운 대단한 투지였다.
만약 이들이 조금이나마 겁을 먹거나, 한 사람이라도 싸움을 포기했다면, 승부는 벌써 끝이 나도 진즉에 났을 것이다.
기사들은 약간의 틈이라도 생기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샤벨 타이거에게 공격을 가했다.
“캬아아아아아악!”
생전 느껴 보지 못한 고통과 짜증에 샤벨 타이거가 화를 내며 울부짖었다.
아무리 쫓아내도 모기처럼 계속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기사들에게 열이 받은 것이다.
화를 참지 못하고 기사들을 확실히 짓밟으려 몸을 돌리면 그 순간 경일이 뛰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공격의 방향을 경일 쪽으로 돌리면, 기사들은 또다시 몸을 사리지 않고 공격해 왔다.
가랑비에 몸이 젖어 가는 거처럼 아무리 질긴 가죽이라 해도 계속되는 공격에 상처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동안 흘러내린 피였다.
아무리 빨리 상처가 아문다고 해도 피는 계속해서 날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흘러내린 피를 합치면 절대 적은 양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샤벨 타이거의 체력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와 반대로 기사들과 경일에겐 포션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과 같은 체력으로 계속해서 공격할 수 있었다.
생각 외로 강한 샤벨 타이거에 고전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손발이 맞아 가며 마음속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크어어엉!”
샤벨 타이거가 울부짖었다.
기사들 쪽으로 몸을 돌리려던 순간, 경일이 찌른 창이 상처 입은 가죽을 헤집으며 놈의 어깨를 정확히 뚫고 들어간 탓이다.
창이 급소를 제대로 찌른 탓에 비명은 지금까지 들어 본 놈의 목소리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샤벨 타이거는 기사들을 향해 휘두르려던 앞발을 경일에게로 돌렸다.
이에 경일은 놈을 찔렀던 창을 버리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손에 들린 무기가 없으니 피하는 동작이 훨씬 빨라졌다.
그 순간, 기사들이 장창을 찔렀다.
진형이 점점 완벽해졌다.
이들의 유동적인 움직임에 갇힌 샤벨 타이거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어 갔다.
덫에 걸린 야수는 빠져나오려 최선을 다해 몸부림쳐 보지만, 그럴수록 덫은 더욱더 견고하게 조여 왔다.
공격할 땐 공격하고, 빠질 땐 확실히 빠져 가며 톱니가 맞물리며 돌아가듯 유기적인 공격을 이어 갔다.
드디어 샤벨 타이거의 싸움에서 우위를 잡았다.
놈의 감정이 요동칠수록 허점은 커졌고, 싸움의 기세는 점점 경일 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확실히 무기가 많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아도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장점이었다.
그리고 힐링, 체력, 마나 포션은 몸의 컨디션을 최고로 유지시켜 주었다.
그에 반해 시간이 갈수록 샤벨 타이거는 지쳐 가는 게 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다.
처음 봤을 때의 절대자와 같던 압도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물에 젖은 고양이처럼 날카롭고, 단단히 화가 난 상처 입은 한 마리 몬스터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샤벨 타이거의 체력은 떨어지고, 상처 회복도 눈에 띄게 더뎌졌다.
움직임이 느려지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녀석이 느려졌다! 조금만 더 힘내라!”
기사들이 투지를 다시금 다지는 사이, 자포리자가 상처 입은 몸으로 전장에 복귀했다.
움직일 때마다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고통이 꽤나 심한 듯했다.
‘갑옷 덕에 직접적인 상처는 없겠지만, 갑옷이 움푹 들어간 걸로 봐서는 갈비뼈가 최소 몇 대가 나갔을 텐데도 움직이다니… 힐링 포션이 아무리 좋아도 이 짧은 시간에 뼈가 붙을 리도 없고. 엄청난 투지구나…….’
경일은 자포리자가 전장에 합류하자, 그를 힐끔 보고는 샤벨 타이거를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다.
혹시나 자포리자에게 어그로가 끌려 크게 다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샤벨 타이거는 기사들을 공격하는 것을 포기한 듯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녀석이 이 싸움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분명 기사들이 내지르는 장창에 찔릴 때마다 움찔거리며 눈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으나, 놈은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하는 경일을 향한 시선은 절대 떼지 않았다.
경일만 잡으면 불리해진 지금의 상황을 한 방에 뒤집을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푹푹푹푹!
샤벨 타이거의 몸에 창이 꽂히는 소리가 났다.
“와아아아아아아!”
녀석의 방어가 약해지고 기사들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자,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샤벨 타이거가 처음과는 다르게 장창에 찔릴 때마다 움찔거리는 게 너무 티가 났기 때문이다.
이에 기사들은 흥분해서 방어는 무시한 채 오로지 공격에만 집중했다.
그때, 샤벨 타이거와 대치하고 있던 경일이 움직였다.
혹시나 놈이 마음을 바꿔 다시 기사들을 공격하면 큰일이었으니까.
애써 잡은 승기가 한순간에 샤벨 타이거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
워낙 영악한 놈이라 아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