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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76화 (176/300)

[176화] 밝혀지는 세계의 진실

[뭐 해? 빨리 가져오라고.]

“이거 신기하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리다니.”

처음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으나, 몇 번 듣고 나니 신기한 마음이 앞섰다.

“무협지에 나오는 전음 같은 건가? 던전을 발견한 뒤로 신기한 일을 참 많이 겪네.”

경일은 혼잣말을 하며 잘 익은 물고기를 접시에 담아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고양이는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물고기를 뼈만 남긴 채 깨끗이 다 먹었다.

그 모습이 살짝 질릴 정도였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른지 고양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서는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이런…….”

물어볼 게 산더미였는데, 곧바로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경일은 당황했다.

“깨워 볼까? 아니야. 무척 피곤해 보이는데 이대로 놔두자. 일어나면 그때 물어봐도 늦지 않을 거야.”

고양이를 내버려 두고 집 밖으로 나왔다.

경일은 발걸음을 농사일하며 쉬려고 만들어 놓은 정자로 옮겼다.

정자에 누우니 샤벨 타이거와의 치열했던 싸움이 떠올랐다.

하지만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고양이의 등장에 놀라 잊었지만, 그도 샤벨 타이거 싸우느라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그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눈을 떠 보니 아침이었다.

“체력 포션을 먹은 덕에 몸은 그렇게 피곤하진 않은데, 정신이 좀 피곤하네. 그래도 오래간만에 푹 잤더니 개운하긴 하네.”

경일은 조심히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고양이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그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정체가 뭘까? 생긴 건 고양이인데, 설마 진짜 고양이는 아니겠지? 어디서 온 존재일까? 내 눈에만 보이는 게이트가 고양이 눈에도 보이는 건가? 그건 아닐 거야. 분식점에서 게이트를 열어 곧바로 던전으로 왔는데, 잠겨 있는 분식점 안으로 고양이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어. 그럼, 던전의 생물체란 이야기인데… 던전 고유 식물이 늘어났듯이 이번에는 말하는 동물이 생겨난 건가? 그랬으면 메시지가 보여야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잖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 보지만, 맞아떨어지는 건 없었다.

전부 다 어느 한 곳이 허술한 부분이 존재했다.

결국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자는 고양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경일은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

그편이 시간도 잘 가고, 답도 나오지 않는 생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한동안 샤벨 타이거의 사냥에 신경을 쓰느라 밀린 일이 산더미였다.

작물들은 여전히 잘 자라고 있었다.

잘 자란 작물을 수확하고 모두 인벤토리에 넣었다.

수확이 끝난 밭의 흙을 한 번 뒤집은 뒤, 씨를 뿌리고 흙을 적당히 덮었다.

잘 자라기를 기원하며 물을 듬뿍 뿌렸다.

개울가에 쳐 둔 통발을 건져 잡힌 물고기를 연못에 옮기고, 던전 고유 식물이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로 향했다.

밭의 작물들과 달리, 조금이라도 더 잘 자랄 수 있게 잡초를 뽑아 주었다.

일하면서 샤벨 타이거의 싸움을 처음부터 천천히 복기했다.

이번에 훈련을 하긴 했지만, 일단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실전이었다.

자포리자의 대련 때도 그렇고, 사벨 타이거와의 싸움에서도 기술적으로 미숙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였다.

자신이 가진 것 중 반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거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스탄다비아에서 훈련을 해야겠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해. 스탄다비아의 일뿐만 아니라 나를 노리는 세력을 또다시 만날 수도 있으니까. 아니, 분명 나타날 거야. 죽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이미 소문이 퍼졌을 거야. 저번에는 솔직히 운이 좋아 살았지만, 운이 계속 이어질 리가 없어. 무조건 강해져야 해. 마나 포션 생산도 늘려야 하고. 샤벨 타이거를 잡은 건 임시방편일 뿐이야. 조만간 진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역시 마나 포션이었다.

이미 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누구보다 노력하고 당당하게 맞서 싸우고 있는 전사들이었다.

그들에게 부족한 건 딱 하나, 몸속의 마나였다.

힘의 근원이 되는 마나가 늘어나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터.

문제는…….

“하…….”

마나 포션의 재료인 커미네스가 자라는 모습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커미네스는 잘 자라지 않았다.

처음 재배를 시도할 때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던전의 땅이 워낙 비옥해 커미네스도 심기만 하면 알아서 번식하고, 잘 자랄 거라 생각했다.

주변 환경까지 최대한 비슷하게 꾸며 주었으니 더욱 잘 자랄 것이라 생각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커미네스의 재배에 성공해야 자신은 물론이고,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텐데…….

[쯧쯧쯧, 그래도 아예 멍청이는 아니구나.]

난데없이 들려오는 말에 경일의 고개가 돌아갔다.

언제 왔는지 모를 고양이가 그의 왼쪽 발 뒤에 있었다.

순간, 소름이 쫘악 돋았다.

이제 어디 가서도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가 고양이의 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쫄지 마. 널 어떻게 할 건 아니니까. 내가 지금 이 모습이라 해도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야.]

“저기, 근데… 정체가 뭡니까?”

경일은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나? 이 던전의 수호신.]

“헉!”

고양이의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진짜요?”

[그럼 진짜지. 내가 너 같이 어린아이와 농담 따먹기나 하겠냐?]

“혹시 샤벨 타이거와 싸울 때의 목소리도…….”

[이런 멍청한 놈. 그걸 이제야 알았냐? 그것 때문에 아직 깨어날 시간이 멀었는데 강제로 일어나야 했잖아.]

수호신은 매우 언짢은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경일은 언짢아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되었다.

[네놈이 죽을 거 같아서 그동안 모아온 힘을 무리하게 썼어. 지금 내 모습이 이런 미성숙한 모습인 것도 그 이유이기도 하고. 그리고 내가 미숙한 상태로 깨어나는 바람에 내 능력이 온전치가 않아.]

“능력요?”

[그래. 앞으로 한동안 던전은 정체 상태일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던전 고유 식물도 나타나고, 오리하르콘도 모습을 드러냈잖아. 그런데 내가 이번에 힘을 쓰는 바람에 던전의 발전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

수호신의 얼굴이 무척 어두웠다.

눈살을 찌푸리는 게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저기… 제가 이해가 잘 안 되어서 그런데, 지금만 해도 던전이 이렇게 풍요로운데 굳이 발전할 필요가 있을까요?”

경일이 생각하기에 필요한 것은 모두 다 있었다.

필요한 모든 던전 고유 식물도 모두 있었고, 미스릴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었다.

농사도 풍년이었고, 부족한 건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자포리자의 목숨을 구해 준 오리하르콘도 아주 소량이지만 생산되고 있었고.

더 필요한 게 생각나지 않았다.

[쯧쯧쯧.]

수호신이 한심한 눈초리로 경일을 보며 혀를 찼다.

[너 만약 샤벨 타이거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어떡할래? 미스릴로 만든 무기로 이길 수 있을까? 강해지는 적에 따라 무장도 더 강해져야 하지 않겠어?]

“그럼 스탄다비아에 더 강한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샤벨 타이거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존재하고 있으니 당연히 나타나겠지.]

그랬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샤벨 타이거를 잡았기에 이제 사람과의 전쟁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수호신의 말을 들어 보니 아주 좁은 생각이었다.

[사실 이건 간단히 예를 든 거고. 혹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 이 던전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던전이 있으면, 그 반대의 던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네?”

경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그래. 이 던전과 반대의 던전도 존재해. 끝이 있으면 반대쪽 끝이 있는 것이 우주의 진리야. 예를 들어 지구에 몬스터가 나타나자 각성한 사람들이 나타났잖아. 그거랑 같은 거지.]

“그럼 저와 반대되는 던전의 주인이 있다는 겁니까?”

[그럼, 그쪽에도 던전과 이어진 인간이 존재하는 거지. 그래야 공평하니까. 반대쪽 던전을 암던이라고 불러. 뭐, 그쪽 입장에서는 우리가 암던이 되겠지. 그런데 시작부터 꼬여 버렸어. 이미 불리한 상황인데, 네가 위험해지는 바람에 그동안 모은 힘을 거의 다 써 버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네가 죽으면 싸울 기회조차 없어지는 거라 어쩔 수 없었지만.]

“죄, 죄송합니다.”

수호신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 때문에 힘들어졌다는 건 알아들었다.

경일은 인류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먼저 물었다.

“그럼 몬스터가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거야 당연히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서지.]

“누가 지구를 원하는 거죠?”

[그건 나도 몰라. 나의 권한을 넘어서는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야. 짐작하기론 우주의 어떤 신이라는 것밖에. 지금까지 이런 일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일어났어. 정복하길 원하는 신이 자신의 목적을 좀 더 빠르게 하려고 암던을 만들었고, 그걸 원치 않는 신이 만든 것이 이 던전이지.]

놀라운 이야기에 경일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언가를 묻고 싶은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입만 벌릴 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수호신이 먼저 말했다.

[네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알아 둬야 할 건, 이런 일은 지구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는 거야. 전 우주적으로 보면 흔한 일상일 뿐이지.]

“…….”

경일은 수호신의 놀라운 말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수호신은 별거 아닌 거처럼 말을 툭툭 내뱉었지만, 경일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야기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다가 아니란 얘기, 그리고 그 세계에서 일어나고 일들.

너무나 놀랍고 경이롭고 머릿속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역할에 대해 말해 주지. 난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곳의 던전과 암던에 관한 일에 대한 정보, 그리고 약간의 조언 정도야. 이건 암던의 수호신도 마찬가지고. 모든 싸움의 결정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인간의 결정으로 이루어질 거야. 사실 지구는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냐. 아마 암던의 주인은 지구에 몬스터가 나타날 때부터 이미 활동을 시작했을 테니까.]

경일은 수호신의 이야기에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암던이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면, 이곳도 이미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야 공평했다.

이건 수호신이 말한 우주의 법칙에 맞지 않은 일이었다.

경일의 의문을 당연하다는 듯이 수호신이 말을 이었다.

[내가 암던의 수호신보다 늦게 나타나서 의아한 모양이군. 그래, 당연한 의문이지. 그건 이전의 싸움에서 내가 계속 졌기 때문에 받은 페널티 같은 거야. 정확히는 내가 진 게 아니라, 행성의 주인이 침략자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봐야겠지. 몇백 년 동안의 싸움에서 내가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나랑 연결된 이는 결국 암던의 주인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는 가수면 상태로 다시 잠들고, 던전은 그 세계와 연결이 끊어져 우주를 방황했어. 그리고 가수면 상태에서 힘을 모아 겨우 너와 연결이 된 거지.]

“저랑 연결이 된 이유가 있습니까?”

경일은 수호신의 이야기에 곧바로 떠오른 질문을 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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