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77화 (177/300)

[177화] 마의 구간

[없어. 그냥 우연일 뿐이야.]

놀라웠다.

우연이라곤 하지만 지구의 그 많은 사람 중 자신과 연결된 것이.

경일은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어떤 질문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구의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구에 던전과 암던은 단 하나씩만 존재하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몰라.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고. 일단 여기까지 하고 밥부터 먹자. 내가 지금 배가 너무 고프거든? 그리고 음식은 웬만하면 지구의 음식이 좋겠어. 던전의 음식은 이미 많이 먹어 봤으니까.]

경일은 질문하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지만, 일단 한발 물러섰다.

수호신은 아직 무척 피곤해 보였다.

움직임도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음식부터 만들었다.

수호신이 힘들어하는 건 모두 자신의 탓이었으니까.

메뉴를 딱히 떠오르지 않아도 몸은 자연스럽게 손에 가장 익은 음식부터 만들었다.

음식을 하는 동안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머리가 복잡해도 조리가 몸에 익어 있어 음식은 금방 만들어졌다.

푸짐한 음식을 보고 만족한 듯 수호신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그래, 이거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너는 상상조차 못 할 거야.]

수호신은 정말 신답지 않게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이건 내가 상상한 것보다 몇십 배는 맛있는 거 같아.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세계는 지구와 같이 문명이 발전한 곳이 없었거든. 그리고 너를 통해 보는 지구는 정말 재미있었어.]

수호신은 탕수육을 먹으면서도 잘도 말했다.

경일은 수호신의 말을 듣다 보니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럼, 설마? 지금까지 절묘한 순간에 스킬이 생긴 거랑 광산을 관리한 것 모두 수호신님이 하신 겁니까?”

[그래.]

경일은 등 뒤로 소름이 쫙 올라왔다.

던전이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고 그때마다 필요한 스킬을 주는 건지 늘 궁금했는데, 그것이 전부 수호신이 한 것이라니.

“그럼 스탄다비아와 연결된 것도 이유가 있는 겁니까?”

[이제 좀 똑똑한 소리를 하는구나? 스탄다비아가 존재하는 세상은 일종의 몬스터 공장이야. 지구에 나타나는 몬스터가 어디서 왔겠어. 네가 연결된 스탄다비아를 발전시키는 건, 현대식으로 말하면 전초기지를 박살을 내는 것과 같은 거야.]

“그럴 수가…….”

경일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멍한 시선으로 수호신을 바라봤다.

그러다 언뜻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샤벨 타이거는 아직 지구에 나타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 아직 나타난 적은 없지. 하지만 미래에도 과연 그럴까?]

샤벨 타이거와 싸움에서 들었던 불안한 예감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크게 불안해졌다.

[스탄다비아에 몬스터 숲이 있는 건 알지? 반대쪽 신의 명령을 받은 누군가가 문명이 낮은 세계에 침입해 일종의 몬스터 공장을 만들었어. 그쪽 세계의 지도를 본 적이 없어 넌 잘 모르겠지만, 생긴 모양이 간단하게 말해 계란 후라이처럼 생겼어. 노른자 부분이 모든 몬스터의 숲이고, 흰자 부분이 인간이 사는 곳이지. 노른자의 중심에는 던전이 있고. 그 세계와 지구가 이어지는 게이트를 가진 일종의 양방향 터널이라고나 할까?]

경일은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수호신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데 그 게이트가 아직 샤벨 타이거 같은 강한 몬스터를 통과시킬 만큼 완벽하진 않아. 하지만 몬스터의 세력이 빠르게 커질수록 게이트의 힘이 강해질 거고, 그러면 지구에 샤벨 타이거 같은 고등급의 몬스터도 등장할 거야.]

“그건 말이 되지 않는 게, 스탄다비아의 몬스터는 마나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구에 나타나는 몬스터는 마나석이 있지 않습니까?”

경일은 비누를 만들려고 고블린을 해체하는 과정을 수없이 봤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마나석을 가진 고블린을 본 적이 없었다.

[오, 제법 날카로운 반론인데? 맞아, 그 세계의 몬스터는 마나석이 없지. 마나석이 에너지 덩어리인 것은 알지?]

“네.”

지구에서는 마나석이 가진 에너지를 이용하는 산업이 더 이상 드물지 않았다.

이미 화석연료의 대체재가 된 지 오래였다.

[그건 사실 차원 에너지로 보면 돼. 몬스터가 차원을 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도 차원을 넘을 때 받는 에너지의 압력에 온몸이 으스러질 수밖에 없어. 그래서 반대쪽 신은 일종의 편법 같은 것을 만들었어. 바로 몬스터가 차원을 넘어가면서 받는 에너지의 압력을 뭉쳐서 몬스터의 몸 안에 넣은 거야. 그것이 뭉쳐져 만들어진 게 마나석이지. 그런데 인간들이 이 마나석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거든. 아 참, 넌 이미 스탄다비아의 몬스터가 지구로 온 것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어.]

수호신이 무언가가 생각난 듯 빠르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너 저번에 던전 체인지가 일어난 던전에 들어간 적이 있었잖아.]

“네.”

경일은 대답과 동시에 그가 겪었던 어떤 사건이 떠올랐다.

“설마… 그때 본 마법진이?”

[그래. 그 당시 너도 알았잖아. 스탄다비아에서 본 마법진이라는 것을.]

경일은 뒷산에서 생겨난 게이트에 들어갔던 일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F급 던전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던전 체인지가 일어나면서 트롤을 만나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그때, 그를 위기로 내몬 것이 바로 외부의 공격을 막아 주는 보호막을 생성하는 마법진 때문이었다.

스탄다비아에서 본 적이 있는 마법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자신은 아마 트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경일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샤벨 타이거가 지구에 나타날 수도 있다니…….’

인류는 지금도 몬스터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거란 사실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경일은 외면하고 싶던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꽤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지구에 나타나고 있는 몬스터가 모두 스탄다비아가 있는 세계에서 온 거란 말씀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수호신의 애매한 대답에 경일은 곧바로 반문했다.

[그건 나도 정확히 몰라. 스탄다비아가 있는 세계의 던전을 폐쇄하면 정확히 알 수 있을 거야. 던전을 폐쇄하고, 더 이상 지구에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곳하고만 연결된 거고.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이 세계의 몬스터 공장이랑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게 무슨…….”

산 넘어 산이었다.

이건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수호신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일에게 보며 말했다.

[일단 한 가지 칭찬하고 싶은 게, 네가 스탄다비아를 위해 헌신하는 덕에 너뿐만 아니라 스탄다비아도, 지구도 찬스를 잡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야. 던전이 발전하는 건, 모두 네 의지가 반영된 결과거든. 던전 고유 식물이 나타난 거나, 광산이 나타난 것도 다 네 덕이라고 할 수 있어. 너 전에 연결된 인간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빠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암던의 주인에게 너무나 허무하게 살해당했지.]

경일은 자신을 칭찬한 수호신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지독하게 강한 샤벨 타이거가 지구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정보만으로도 그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는데, 샤벨 타이거의 이야기까지…….

경일이 가진 뇌의 허용 용량을 넘어 버렸다.

머릿속이 '펑' 하고 터져 버린 듯한 경일을 내버려 두고 수호신은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안쓰러워 보였지만 던전의 주인이 된 이상 경일이 겪어야 할 숙명 같은 일이었다.

[어휴, 잘 먹었다. 그래도 눈치는 있어. 이번에도 음식을 적게 해 오면 어쩌나 했는데, 양도 푸짐하고 맛도 좋았어. 개인적으로 이런 멋진 세계는 계속해서 유지됐으면 좋겠지만, 상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활동해 온 터라… 그 부분은 내가 좀 미안해.]

사실 이건 수호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싸움의 결과는 모두 몬스터에게 진 종족의 책임이었으니.

수호신도 가수면 상태로 몇십 년, 아니, 몇백 년을 갇혀 있는 벌을 받았으니, 분명 피해자였다.

아마 신이 아니었으면 미쳐도 벌써 미쳤을 정도의 가혹한 형벌이었으리라.

“아닙니다. 수호신은 단지 도움을 주시러 온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제 목숨까지 구해 주셨고요. 원망하려면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진 쪽을 원망하는 게 맞는 거겠죠.”

어느 정도 머릿속의 정리가 끝난 경일이 말했다.

[오~ 너 의외로 멋진 구석이 있구나?]

경일은 수호신의 칭찬에 왠지 부끄러워 시선을 피했다.

“암던이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한 겁니까?”

식곤증에 잠이 들려는 수호신을 향해 경일은 방금 생각난 것을 급하게 물었다.

눈이 반쯤 감긴 수호신이 졸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표적으로 마의 구간이 그가 한 것이지. 그로 인해 인간의 전력에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럴 수가…….”

경일도 마의 구간에 잘 알고 있었다.

이길호 때문이라서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도 했고.

몬스터가 처음 나타나고 10년 동안은 마의 구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10년을 기점으로 한두 명 나타나기 시작해, 이제는 많은 헌터들이 마의 구간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마의 구간은 개인의 잠재력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그게 아니라니 놀라운 이야기였다.

마의 구간을 깰 수 있는 영인초가 잠재력을 늘려 주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치료제였던 것이다.

수호신은 피곤한 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경일은 수호신을 들어 가장 깨끗한 이불 위에 눕혔다.

오늘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개울가였다.

만들어 둔 벤치에 앉아 멍한 채로 그저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늘 보던 던전이었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혼자서 소유하기엔 너무나 큰 던전에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탄다비아와 연결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뜻이 숨어 있었다니…….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밀려드는 책임감에 온몸이 뻣뻣해질 지경이었다.

자신이 암던의 주인에게 죽으면 지구가 몬스터에게 정복당할 수도 있다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나의 행동이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니… 이런 커다란 책임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자신을 던전과 연결해 준 운명을 원망해 봤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현실이 달라질 리 없었다.

이건 외면하고 싶다고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은 너무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들, 그리고 수만의 영지민들, 그리고 이길호의 가족, 손주아의 가족, 보육원과 동네 아이들.

그리고 살면서 보아 온 수많은 사람, 뉴스에서 들은 전 세계의 인구.

자신의 행동에 따라 이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질지도 아니,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너무나 큰 책임에 압도되어 눈물이 나려 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울음을 참기 위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던전을 만난 것이 엄청난 행운으로 생각했는데… 역시 모든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절실하게 실감이 되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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