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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79화 (179/300)

[179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손주아의 모든 관심은 온통 네로에게 쏠렸다.

일하는 도중 조금의 틈이 있으면 그를 보러 나갈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고양이 사료부터 간식, 장난감까지 엄청난 애정을 쏟았다.

매대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네로의 집도 어느새 그녀의 취향이 100퍼센트 반영된 공주의 집처럼 이쁘게 꾸며져 있었다.

네로는 당연히 그녀의 간식, 장난감, 애정 모두 거부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손주아의 애정은 깊어 갔고, 네로는 더욱 힘들어했다.

[어휴, 이거 체면상 확 물어 버릴 수도 없고 죽겠네!]

잠시 작은 이빨을 세웠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특히 츄르를 가져온 날이 가장 힘들었다.

고양이 사료는 입을 앙다물어 먹지 않고 버틸 수가 있지만, 츄르는 그게 되지 않았다.

츄르를 먹지 않고 버티자, 손주아는 곧바로 코에 발랐다.

낼름!

네로는 자신도 모르게 코에 묻은 츄르를 핥아먹었다.

[읔!]

그의 눈꼬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호호호호, 맛있지! 언니가 특별히 준비한 츄르란다.”

그런 네로의 화난 얼굴이 너무 귀여워 손주아는 손뼉을 치며 더 좋아했다.

“네로야, 언니가 어떤 고양이도 환장한다는 캣잎을 구해 왔잖아. 좋다고? 그럴 줄 알았어.”

절대 아니라며 잔뜩 미간을 찌푸린 네로가 손주아를 매섭게 째려봤다.

하지만 그럴수록 손주아는 더욱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를 볼 뿐이었다.

“어머, 언니 말에 응답한 거야? 우리 네로는 이렇게 예쁘게 생겼는데, 똑똑하기까지 하네? 넌 신이 내린 완벽한 고양이야!”

손주아가 네로의 집에 캣잎을 깔았다.

당연히 던전의 수호신인 그가 캣잎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캣잎의 냄새는 최악이었다.

반민초파에게 민트초코를 듬뿍 주는 꼴이었다.

차라리 츄르를 먹는 게 백배 나을 정도였다.

네로는 소중한 보금자리에 캣잎을 잔뜩 넣어 두고 분식점으로 들어가는 손주아를 황망한 눈으로 바라봤다.

울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 네로의 눈망울에 살짝 물기가 밴 거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그사이, 경일이 얼른 나와 캣잎을 치웠다.

하지만 이미 냄새가 배어 숨을 쉴 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왔고, 몇천 년을 살아온 네로의 얼굴엔 고뇌가 서렸다.

[우웩, 우웩!]

네로가 토하는 소리가 경일의 뇌를 울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최대한 말려 본다고 하지만 통하지 않아서요.”

경일이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했다.

[쟤 당장 짤라.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네로님, 그건 좀…….”

지구로 와 생각지도 못한 괴로움을 겪는 던전 수호신 네로였다.

퇴근길, 네로가 뛰어올라 경일의 어깨에 앉았다.

살짝 무게감이 느껴지더니 곧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다.

놀라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네로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 네로님, 네로님!”

놀란 경일이 급하게 네로를 찾았다.

[왜?]

“갑자기 안 보여서 사라진 줄 알았어요. 혹시나 절 두고 사라진 줄 알고 놀랐잖아요.”

그의 얼굴은 짧은 순간 핏기가 사라져 있었다.

[난 본질적으로 영체야. 오히려 그 오랜 시간 몸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그럼, 실제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건 뭐예요?”

[뭐, 그건 작은 능력이라고 해 두지. 명색이 수호신인데, 그 정도도 못 하겠어? 던전이랑 분식점 말고는 영체로 있을 거니 앞으로 너무 놀라지 마.]

“네.”

[그리고 너무 불안해하는 거 같아서 말인데.]

네로는 경일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말을 이었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너는 내가 나타나기 전부터 잘하고 있었다고 했잖아. 요 전에 만난 놈보다 훨씬 났다고. 전에도 말했지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객관적으로 늦게 활동한 우리가 불리하기는 하지만, 누가 승리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아무것도 안 하고 이대로 있으면 무조건 지겠지.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서 생기는 좋은 기운이 점점 커져 어느 순간 승리의 추를 움직이게 할 수도 있어. 그러니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경일의 마음을 어루만지듯이 네로는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싸우기도 전에 먼저 무너지면 그것처럼 허무한 게 없어. 상대가 먼저 활동을 시작한 건 사실이지만, 너도 그동안 열심히 해 왔잖아. 스탄다비아가 아직 안 무너진 것도 따지고 보면 네 덕이고. 그리고 네가 싸울 상대도 결국은 같은 인간이야. 내가 겪어 본 바로는 악당들은 대부분 노력을 잘 하지 않더라고. 신을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좀 대범해져 봐.]

“싸움에 걸린 게 너무 커서 그렇잖아요. 만약 싸움에서 지면 지구의 주인이 바뀐다면서요.”

[무슨 간이 그리 작아. 너에게 이 세계는 아주 커 보일지 몰라도 전 우주로 보면 아주 티끌 같은 거야. 이런 경우는 너 말고도 수없이 많은 이들이 겪은 일이니 가볍게 생각해.]

“아니,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 마음에는 하나도 와닿지 않은 이야기잖아요.”

네로의 이야기는 한낱 인간이 이해하기엔 너무 큰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게 꼭 너의 책임만은 아니야. 지금까지 너의 도움 없이도 인간들은 몬스터의 침입을 잘 막아 왔잖아. 혹시 알아? 네가 싸움에 져도 남은 인간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헤쳐 나갈 수도 있는 거잖아.]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긴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너무 힘듭니다.”

[처음에 던전의 주인이 되고 그렇게 좋아하더니, 이제는 던전을 만난 게 후회돼?]

“아니, 그게…….”

경일은 네로의 질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던전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바뀌고, 많은 사람을 만나 행복할 수 있었다.

자포리자라는 인물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만약 던전을 만나지 않고 원래의 삶을 그대로 살았다면… 아니, 절대 그런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던전의 주인이 된다는 것에 이런 무거운 책임이 있는 줄 알았다면, 과연 던전의 주인이 되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야. 내가 이야기했지. 네가 던전의 주인이 된 것은 너의 선택이 아니고, 그냥 우연이었다고. 지구의 누군가와 이어질 운명이었다고. 그게 네가 된 거뿐이야. 이미 넌 던전의 주인이 됐고, 이제는 앞으로 걸어 나가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머리도 안 좋아 보이는데, 적당히 고민해. 백날 그 머리를 굴려 봐야 답도 안 나와.]

네로는 경일의 무슨 생각을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자신의 무거운 고민을 아무것도 아닌 거처럼 이야기해 주니 한편으론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있었다.

그나마 이런 무거운 책임에 함몰되지 않은 이유는 네로가 해 준 말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은 것과 자포리자 덕분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도 절대 꺾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포리자의 모습을 보고 경일은 반했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어깨에 이고서도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며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경일은 늘 자포리자와 같은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싶었고, 그를 닮고 싶었고, 지금은 약간이나마 닮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틀리지 않다고 했으니 이대로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

자포리자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진 경일은 던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 * *

부아아아아앙!

이른 아침부터 거친 배기음을 내뿜으며 한 대의 차가 거리를 질주했다.

순간순간 과속 카메라가 번쩍였지만, 차는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달릴수록 차의 속도가 빨라졌다.

빵앙~ 빵빵빵빵!

“이 새끼야, 비켜! 비키라고! 빨리 비키라고!”

앞차를 향해 연신 클랙슨을 울리고 욕을 뱉어 내는 이는 김형성이었다.

그의 단정했던 머리는 손으로 쥐어뜯은 듯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거칠게 운전하는 김형성에게 한마디 하려 차창을 내리던 옆 차선의 운전자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서는 조용히 차창을 올리고는 속도를 늦추어 뒤로 빠졌다.

끼이익!

세보 길드 건물 입구 도로에 김형서의 차가 급정거했다.

꽝!

뒤따라오든 차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의 차를 박았다.

“이런, 썅!”

뒤차의 운전자가 손으로 목뒤를 감싸며 김형성의 차로 걸어갔다.

“차를 그렇게 갑자기 세우면 어쩌자는 거야?”

화가 난 운전자가 차 문을 두들겨 보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김형성은 사고를 무시하고 이미 건물로 들어간 상태였다.

“염도훈, 이 개새끼야! 어디 있어! 당장 나오지 못해?”

조용했던 세보 길드의 복도가 김형성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가득 찼다.

“어떤 미친 새끼가 지금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 아주 간이 부어 배 밖에 나온 놈이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란 3팀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서 소리를 지르는 이가 김형성을 확인한 순간, 기분 나쁜 예감이 밀려들었다.

거칠게 쥐어뜯은 듯 단추가 떨어져 나간 셔츠를 입고 봉두난발을 한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벌어진 앞섶 사이로 보이는 그의 가슴이 쉴 새 없이 꿀렁거렸다.

3팀장은 얼른 표정을 풀고 김형성에게 달려갔다.

“부길드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야~ 이 개새끼야! 지금 나랑 장난쳐? 죽고 싶어?”

김형성이 목이 찢어지라 소리친 날카로운 목소리가 3팀장의 고막을 찔렀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감히 부길드장님에게 장난을 치다니요. 다짜고짜 욕만 하지 마시고,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3팀장은 자신을 원수 대하듯 욕을 뱉어 내는 모습에 큰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싸이코 새끼 같은 김형성과는 절대 얽히면 안 됐다.

“분명 분식점 사장 놈이랑 얘들 잡아다가 데려온다고 했지? 그런데 어제도 한 놈도 나타나지 않았어. 내가 요즘 한동안 조용했더니 만만하지? 씨발놈이 이런 식으로 엿을 먹여? 그래, 오늘 한 번 죽어 보자. 뒤지고 나서도 그럴 수 있는지 한 번 두고 보자고.”

김형성은 거칠게 셔츠를 벌렸다.

몇 개 남지 않은 단추가 뜯겨 날아가고, 그의 단단한 근육질 몸이 드러났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도 안 오다니요. 그럴 리가 없는데…….”

얼굴이 핼쑥해진 3팀장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뒷걸음질 쳤다.

“그럴 일이 없다니. 이게 지금 장난 같아? 어제 분명 네놈이 책임지고 그놈들을 보낸다고 했지? 그런데 어떻게 한 놈도 안 올 수가 있는 거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네놈이 나를 고의로 엿 먹인 게 아닌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어. 어디 한 번 말해 봐. 네놈이 무슨 꿍꿍이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아마 나를 재낄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좋아! 오늘 여기서 끝장을 보자.”

김형성의 발밑으로 살기가 뭉게뭉게 피어나 3팀장을 향해 뻗어 갔다.

음울한 성격답게 살기도 뱀처럼 음산하게 나아가 3팀장을 천천히 옭아맸다.

이에 3팀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 갔다.

김형성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서서히 자신을 옭아매는 살기는 감히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동안 많이 노력한 만큼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넘사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김형성의 기세에 불알이 쫄아 붙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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