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내가 안 그랬다고
“잠깐만요, 부길드장님.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맹세코 제가 지시한 일이 닙니다. 잠시만, 잠시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형성을 향해 오지 말라는 듯이 손바닥을 앞으로 뻗으며 급하게 뒷걸음질 쳤다.
“어제 일을 시킨 헌, 헌터들에게 아직 보, 보고를 못, 못 받았습니다. 그러니 저, 저에게 확인할 수 있는 시, 시간을 좀 주, 주십시오.”
마음이 급해지니 턱 선을 따라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은 김형성과 거리를 두려 했지만, 오히려 거리가 줄어들었다.
그가 뒷걸음질 치는 것보다 김형성이 더 빠르게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3팀장의 애원은 이미 눈이 뒤집힌 김형성에게 통하지 않았다.
퍼억!
“아아악!”
빠르게 뻗어진 짧은 주먹에 3팀장의 턱이 돌아갔다.
뇌에 흐르는 전류가 순간 몸과 연결된 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잠, 잠깐만! 잠, 잠깐만, 오햅니다. 오, 오해라고요.”
휘청이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 뒤로 물러서면서 사정했다.
“제, 제발 흥분을 좀 가라앉히세요.”
오른손으로 아픈 턱을 잡고 다가오지 말라는 듯 왼손을 뻗어 보지만, 김형성은 멈추지 않았다.
핏잇!
다시 한번 김형성의 짧은 주먹이 3팀장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헉!”
3팀장이 급하게 몸을 뒤로 제끼며 가까스로 그의 주먹을 피해 냈다.
“피해? 이제 보니 발톱을 감추고 있었구나? 옛날보다 실력이 늘었다 이거지. 그래, 오늘 끝장을 보자.”
김형성은 주먹이 빗나가자 더욱 흥분하며 날뛰었다.
눈이 돌아간 그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기세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3팀장은 순간 몇백 개의 바늘이 자신을 향해 오는 느낌을 받았다.
‘씨발,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야!’
크게 당황한 3팀장은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도 지금의 자리를 고스톱 쳐서 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김형성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스피드를 살린 공격이 최단 거리로 들어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의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김형성의 손에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면, 자신은 이미 크게 다쳤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3팀장은 빠르게 가드를 올려 급소를 보호했다.
퍽퍽퍽퍽퍽퍽퍽퍽!
짧은 시간 몇 대를 맞았는지 셀 수가 없었다.
묵직한 한 방이 아니라 송곳같이 찌르는 그의 연속 공격이 3팀장의 가드에 박혔다.
뼛속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가드를 내릴 뻔했다.
하지만 절대 가드를 내릴 수 없었다.
내리는 순간 뼈를 찌르는 듯한 고통이 그의 얼굴을 유린할 테니까.
“그만 좀 해! 내가 안 그랬다고! 씨발 새끼야, 내가 안 그랬다고!”
3팀장이 참지 못하고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런 개새끼가! 아직도 거짓말을 한다, 이거지? 어디 한 번 끝까지 가 보자.”
“그게 아니라고! 사람 잡는 변태 새끼야! 사람 말을 좀 믿으라고!”
3팀장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김형성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꺼냈다.
그건 큰 실수였다.
그 말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그의 이성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너, 이 개새끼야! 오늘 내가 반드시 죽여 버린다.”
김형성의 살기등등한 목소리에 놀란 길드원들이 이들이 싸우는 곳으로 몰렸다.
길드원들의 모습을 보자 3팀장이 급하게 소리쳤다.
“이 새끼들아,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말려 봐! 나 죽어, 나 죽는다고!”
3팀장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움직이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은 최대한 떨어져 구경만 할 뿐이었다.
‘미쳤냐?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어떤 봉변을 당하라고. 너 대신에 부길드장에게 고문당할 일 있냐?’
김형성의 악랄한 취미를 알고 있는 이들은 싸움에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퍽퍽퍽퍽퍽!
“악악악악악!”
타격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3팀장의 비명이 미묘하게 어울렸다.
김형성의 공격 패턴은 그의 성격과도 큰 관련이 있었다.
그는 절대 큰 공격을 하지 않았다.
한 방에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보다 최대한 오랫동안 고통을 주고 싶어 했다.
최단 거리로 짧게 치는 공격으로 3팀장을 괴롭혔다.
그렇게 이틀 동안 가득 찬 욕구불만을 조금이나마 해결해 나갔다.
물론 3팀장으로서는 수지가 맞지 않았다.
자신은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럽고 힘든데, 김형성의 욕구는 아주 조금씩 해소되고 있었으니까.
“씨발!”
이대로는 곤란했다.
잔비에 옷 젖는다고 이대로 가다간 뼈가 가루가 될 거 같았다.
김형성은 절대 한번 시작된 공격을 멈출 인간이 아니었다.
상대가 처참하게 망가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폭력을 행사할 인간이었다.
“아아악!”
3팀장은 김형성의 주먹을 수없이 맞아 시퍼렇게 부어오른 팔을 앞장세우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박살이 날 지경이었다.
김형성과의 주먹을 맞으며 자신의 거리에 도달했을 때, 강력한 오버핸드 훅을 날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온 힘을 다해 던진 공격이 김형성의 턱을 치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김형성의 주먹도 3팀장의 턱에 꽂혔다.
“헉!”
“악!”
동시에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둘은 복도의 바닥에 뒹굴었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건, 김형성이었다.
3팀장이 온 힘을 다해 때린 공격이라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빨리 충격을 해소한 이도 김형성이었다.
3팀장이 맞은 곳은 조금 전에 맞아 턱에 금이 가 있는 곳이었다.
김형성은 잔인하게도 똑같은 곳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턱이 어긋난 3팀장이 침을 질질 흘리고 팔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많은 공격을 허용한 팔은 시커멓게 멍이 들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이번 공격으로 3팀장의 억울한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는 몰라도, 김형성의 성질은 제대로 건드렸다.
입가에 한 줄기 피를 흘리며 먼저 일어난 김형성이 눈은 이미 돌아가 휘번덕거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번에 그의 취미 생활을 위해 준비한 물건이었다.
손에 끼운 그것은 강철로 된 너클이었다.
양손에 끼워진 너클이 빛을 받아 소름 돋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와 동시에 김형성은 넘어져 있는 3팀장의 몸을 깔고 앉았다.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싸움을 말릴 수 없었다.
아니, 말릴 자신이 없었다.
잘못하다가 김형성에게 깔린 3팀장이 자신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들은 그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며 얼굴을 찌푸린 채 이들을 싸움을 바라만 봤다.
“헉!”
턱이 돌아가 다물어지지 않는 3팀장의 입에서 탄식이 나옴과 동시에 두 눈이 커졌다.
파르르 떨리는 3팀장의 눈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김형성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벌어진 3팀장의 입에 너클을 낀 주먹을 박아 넣었다.
“아아아아악!”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너클에 맞는 순간, 이빨이 부러지고 입술과 입안이 모두 터졌다.
그와 함께 피가 확 튀었다.
김형성은 얼굴의 튄 3팀장의 진득한 피를 손으로 훔치더니, 그대로 혀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
혓바닥 위에 올려놓은 피의 맛이 침으로 희석되지 않게 공기 중에 혀를 내밀어 음미하는 모습이다.
광기에 젖은 그의 두 눈에서 알 수 없는 광채가 번뜩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길드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렸다.
3팀장은 끔찍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번 타격은 지금까지 맞은 것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입술이 터져 나가고, 혀가 찢어지고, 앞니의 반이 사라졌다.
부러진 앞니가 목구멍에 걸려 제대로 호흡이 되지 않았다.
“컥컥컥컥!”
목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3팀장이 괴로워할수록 김형성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져 갔다.
퍽!
다음 주먹이 또다시 3팀장의 입을 때렸다.
남은 이빨이 모두 날아갔다.
어느 정도 화가 풀렸는지 뒤로 돌아갔던 눈이 제자리를 되찾았다.
눈에서 기묘한 빛이 일렁였다.
이상하게 그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돋았다.
“잡았다.”
이번 사냥감은 제법 거칠게 반항을 했다.
뭐, 그것도 그리 나쁜지는 않았다.
잡는데 고생을 했지만, 질긴 고기를 야들하게 만드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으니.
이제 고기를 씹기 좋게 연하게 만들기만 하면 됐다.
지금부터는 그의 시간이었다.
머리가 돌아가 버릴 정도로 쌓여 있던 욕구불만을 모두 쏟아 낼 것이다.
3팀장의 입은 피로 덮여 그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형성은 오히려 그 모습을 마음껏 즐겼다.
다음 그의 목표는 코였다.
입의 기능이 사라졌으니, 그 다음은 코를 망가뜨릴 시간이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숨 쉬지도 못하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생각만으로 흥분돼 마치 영화 속 조커처럼 입가가 찢어질 판이었다.
김형성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너클을 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뭐하는 짓이야?”
사자후와 같은 거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복도의 공기가 한 남자의 목소리로 떨렸다.
남자는 세보 길드 길드장 문근철이었다.
부리부리한 눈에 굵고 짙은 눈썹을 가진 덩치 큰 남자가 강렬한 눈초리로 김형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문근철의 목소리에 김형성이 내리꽂으려는 주먹을 멈췄다.
그는 세보 길드에서 유일하게 김형성의 컨트롤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김형성은 문근철의 화난 목소리에 깔고 앉은 3팀장의 몸에서 엉덩이를 떼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많은 미련이 남은 행동이었다.
문근철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와 3팀장의 얼굴을 봤다.
선 굵은 그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일주문의 사대천왕의 화난 얼굴처럼 안 그래도 부리부리한 눈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의 등장으로 웅성거리던 길드원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이 개새끼야, 너 내가 길드원 건들지 말라고 했지.”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저놈이 나를 엿 먹여서…….”
조금 전까지 미친놈처럼 살기를 피워 대던 김형성은 이미 없었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말고 문근철 앞에서 머리를 푹 숙였다.
“욱욱욱욱!”
길드장이 나타나자 3팀장은 잘 벌어지는 않는 입으로 억울함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그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만 봐도 그가 얼마나 억울해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 개새끼야, 너 조금 있다가 보자. 새끼들아, 다들 뭐 하고 있어. 3팀장 힐링 포션 먹이고 얼른 병원으로 보내. 같은 길드원이 맞고 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보고 있는 게 말이 돼? 이게 길드야? 콩가루지? 조만간 모두 제대로 정신교육 한 번 받자.”
문근철의 엄포에 길드원 중 한 명이 재빨리 뛰어나와 3팀장에 입에 힐링 포션을 부었다.
입에 고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그가 소리를 질렀다.
“내강 아닝라공, 씨방새끼앙!”
3팀장은 부축을 받고 나가면서도 억울한 듯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새는 발음으로 소리쳤다.
길드장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소란이 가라앉았다.
“이 새끼야, 이게 무슨 일이야? 너 내가 분명히 경고했지. 길드원 건들지 말라고. 네놈이 분명 약속해서 부길드장으로까지 올렸는데, 감히 네가 내 뒤통수를 쳐? 이럴 거면 길드에서 나가. 너 같은 새끼 하나 없어도 길드는 잘 돌아가니까.”
“형, 형…님…….”
몸을 잔뜩 움츠러든 김형성이 잘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길드장을 불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