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82화 (182/300)

[182화] 헌터로 선택받는 조건

“네, 사실 저도 상황이 조금 어렵기는 합니다.”

“그럼 광산을 같이 개발하는 것이 어떤가? 이대로 한쪽이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보다는 같이 투자해서 이익을 반씩 나누는 걸세. 솔직히 금이 우리가 나누고도 남을 만큼 묻혀 있을 수도 있잖은가.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광산을 같이 개발함으로써 서로가 싸울 이유가 없어지니, 그것만으로도 큰 이익이 아니겠나? 당장 눈앞에 돈이 될 것이 있는데, 한쪽이 다 먹으려고 시간을 보내다가는 우리만 어려워질 뿐이야. 어떤가?”

게렉스는 패드래건의 제의를 신중하게 생각했다.

분명 나쁜 제의는 아니었지만, 워낙 음흉한 작자라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패드래건의 제안을 거부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반반씩 투자해서 광산을 개발하죠.”

무려 20년간 반목했던 두 영지가 극적으로 합의를 했다.

스탄다비아의 입장에서는 이건 매우 나쁜 소식이었다.

만남의 성과는 자포리자에게도 전해졌다.

집무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광산의 공동 개발이 스탄다비아에 끼칠 영향에 대해 성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의논 중이었다.

“광산을 조사한 결과는 언제 나올 거 같은가?”

자포리자의 질문에 첩보장 블라도가 보고를 했다.

“지금 광산 기술자를 수소문 중이라고 합니다. 알아본 바로는 광산에 대한 조사는 평균 3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자의 이동 시간까지 생각하면 4개월 이상 소요될 거라 보고 있습니다.”

“4개월이라…….”

사람들은 블라도의 보고를 듣고 각자 생각에 잠겼다.

“일단 아드리온은 우리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카스만 재상이 상황을 분석했다.

“광산으로 인해 앙숙으로 지낸 지 20년이 넘은 두 영지가 손을 잡았다는 건, 아주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동안의 골이 깊은 만큼 쉽게 마음을 열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물꼬가 트였으니 그들이 함께할 일이 늘어날 겁니다. 분명 그들의 눈이 빠른 시기 안에 스탄다비아로 향하게 되겠지요.”

좌중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자포리자는 커다란 돌이 가슴을 누르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 거 같은가?”

자포리자의 질문에 블라도가 대답했다.

“일단 광산으로 국한해서 말씀드리면, 두 가지 상황이 존재합니다. 금광의 개발이 성공하든가, 실패하든가. 이 두 가지 경우를 놓고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좋은 의견이군.”

“우리 입장에서는 광산의 개발이 성공하는 게, 그나마 유리할 듯합니다.”

기사장 칼튼이 의견을 냈다.

“이유는?”

자포리자가 짧게 물었다.

“일단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산에서 금이 채굴된다면, 두 영지는 당장의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확실한 수입이 생기니 한동안은 스탄다비아의 관심이 낮아 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프라인 영주의 집요한 성격으로 봐서는 언제가 되든 영지전을 걸게 확실해 보이지만, 광산 개발이 성공하면 그 시기가 한참 늦춰지겠지요.

칼튼이 좌중을 둘러보면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는… 광산 개발에 실패했을 경우입니다. 아시다시피 두 영지의 상황은 매우 안 좋습니다. 만약 광산이 실패한다면 새로운 돈줄을 찾아야 할 텐데, 그게 우리가 될 확률이 높겠죠. 그렇게 되면 프라인과 아드리온이 손을 잡고 영지전을 걸어 올 확률이 높습니다. 광산의 공동 개발에 합의했듯이 스탄다비아를 치는 것에도 합의를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됩니다.”

“영주님, 저도 칼튼 기사의 말에 동의합니다. 두 영지 다 우리와 싸워서 충분히 이길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주님도 아시다시피 스탄다비아가 아직 안전한 건, 한쪽이 스탄다비아를 흡수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로 손을 잡는다면, 뼈아프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카스만은 이 사실이 분한 듯 목에 핏대가 설 정도였다.

벌게진 얼굴만 봐도 그가 얼마나 노여워하는지 보일 정도였다.

자포리자가 침음을 흘렸다.

이건 도저히 벗어날 길이 안 보였다.

스탄다비아는 두 이리 사이에 낀 살이 통통한 토끼 신세였다.

“선인이 그렇게나 도와주었는데도 겨우 이것밖에 안 되나?”

모든 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 같았다.

지금의 회의 주제에서 빠져 있지만, 이들에게 또 다른 거대한 적이 존재했다.

바로 베르아스 왕국의 모든 종교였다.

스탄다비아의 현재 역량으로는 가우스 교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가까운 두 영지의 첩보를 수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상대는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일이니, 절대 이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본보기로 확실히 스탄다비아를 잔인하게 짓밟아 버릴 것이다.

어쩌면 가우스 교가 모집한 대군이 스탄다비아를 향해 진격을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군대를 모집하기 위해서는 여러 종교와의 합의를 거쳐야 해서 실질적으로 아직 시간이 있었지만, 언제든지 종교의 연합군이 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포리자는 숨이 턱턱 막혀 오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비누 다음으로 염색이라는 엄청난 기술을 전수받았는데도 힘이 없어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었다.

선인이 직접 와서 목숨을 걸고 샤벨 타이거를 잡아 주었건만, 현실은 암담하기 그지 없었다.

자포리자의 탄식이 깊어만 갔다.

* * *

네로가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동네의 슈퍼스타가 됐다.

은근히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걸로 봐서 네로는 분명 관종이었다.

아마 오랜 시간 가수면 상태로 보냈기 때문인 듯했다.

던전이 수호신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진중하거나 근엄한 이미지를 연상했는데, 같이 생활을 해 본 결과, 전혀 아니었다.

먹는 걸 밝히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아이들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동네 분식의 앞 도로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네로야, 이거 봐라. 엄마가 나 먹으라고 준 건데, 네로 주려고 안 먹고 가지고 왔어.”

아이가 네로에게 쥐포를 내밀었다.

“이야옹!”

그런 아이를 향해 네로가 잘했다는 듯이 한 번 울어 주었다.

네로는 그동안 아이들을 은밀하게 교육했다.

고양이 사료는 절대 안 먹는다는 걸 인식시켰다.

그 뒤로 아이들은 맛있는 것이 생기면 아껴 두었다가 네로에게 먼저 가져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네로가 기분 듯이 울어 주었고, 아이들은 그 모습에 상을 받은 듯이 좋아했다.

네로가 막 쥐포를 먹으려는 순간, 빌런이 등장했다.

손주아였다.

“안 돼. 고양이에게 사람 먹는 음식을 주는 거 아냐. 이런 거 먹으면 네로가 아파해요.”

손주아는 네로가 맛있게 먹으려는 쥐포를 뺏어 갔다.

이에 네로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화가 많이 났는지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나름 열심히 하악질을 해 보지만, 오히려 그 모습을 본 손주아의 눈에선 하트가 나왔다.

“어머, 너무 귀여워. 이렇게 어린데 어떻게 저런 표정이 나오지? 언니가 네로 먹으라고 츄르 가지고 왔거든? 몸에 나쁜 쥐포 말고 맛있는 츄르 먹자.”

손주아가 네로를 번쩍 안아 들었다.

네로가 열심히 짧은 다리를 움직여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 보지만, 작은 고양이의 몸으론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네로는 안 먹으려고 입을 꼭 다물고 버텼다.

그러자 그녀는 네로의 코에 츄르를 발랐다.

네로는 자신도 모르게 코를 핥았다.

그 모습에 손주아는 기분 좋게 웃었다.

[난 고양이가 아니라고. 이런 거 싫다고. 제발 얘 좀 치워 줘!]

한창 재료 준비를 하던 경일에게 뇌를 강타하는 네로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는 바람에 다리가 풀려 주방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에휴~”

경일은 네로가 생긴 것만 고양이지, 사실 고양이가 아니라고 손주아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고양이처럼 생겼는데, 통할 이야기도 아니기에 한숨만 나왔다.

손주아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네로는 온갖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먹어야만 했다.

퇴근길 경일의 어깨에 네로가 올라가 앉았다.

네로는 손주아에게 시달려 피곤했는지, 영체로 돌아가지도 않고 경일의 어깨에서 졸고 있었다.

산의 입구에 있는 경일의 옥탑방으로 가는 길엔 가로등도 없었다.

어두운 길을 따라 옥탑방이 있는 건물에 거의 도착했을 때, 그를 반겨 주는 이가 있었다.

“어서 와. 한참 기다렸잖아.”

“씨발, 뒤질래? 왜 이리 늦게 와. 넌 내가 기다린 시간만큼 맞자. 1초에 한 대씩이다.”

경일은 순간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생긴 건 똑같은데, 입에서 나온 말은 극과 극이었다.

한 명은 상냥하고, 한 명은 쌍욕을 했다.

요쯤 유행하는 캐주얼 명품을 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작은 키에 큰 얼굴, 임산부처럼 튀어나온 배는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였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지?’

이들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왔다.

“이 씨발놈이 지금 날 보고 웃은 거야? 너 그 입 내가 찢어 줄 테니까, 오늘 제대로 각오해라.”

“사람을 보고 비웃으면 실례잖아. 내가 웬만하면 화를 안 내는데, 지금은 화가 나려고 그러네.”

이들은 세보 길드에서 유명한 쌍둥이 형제였다.

20대 중반의 나이로 이름은 박현수, 박현준이었다.

세보 길드에서 주로 해결사로 활동하는 악명 높은 쌍둥이 형제였다.

길드장은 강렬한 의구심에 이번에는 아예 쌍둥이 형제를 보냈다.

이들은 20대 후반 레벨의 헌터로, 지금까지 세보 길드의 불법적인 일을 주로 담당했다.

강하기도 강했지만, 일 처리 역시 깔끔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헌터를 보내 경일을 확실히 잡아 올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 새끼야, 일단 좀 맞자.”

성질 급한 박현수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경일을 불렀다.

시끄러운 소리에 네로가 잠에서 깨어났다.

“저 덜떨어진 놈들은 뭐야?”

“어, 사람들 앞에서 말해도 되는 거예요?”

“뭐, 보니까 광산으로 끌려갈 거 같은데 무슨 상관이야. 딱 보니 앞으로 내가 관리할 얘들 같은데.”

“참, 그러고 보니 광산으로 간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어찌 되긴,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지. 일을 하지 않으면 밥을 못 먹는데 열심히 해야지. 쟤들은 덩치를 보니 남들보다 더 굴려도 되겠다. 내가 6개월 안에 저 똥배에 임금 왕 자를 새겨 주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먹는 거로 장난치면 안 되죠. 광산에서 일하면서 몸까지 만들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잖아요.”

“괜찮아. 저런 부류의 얘들은 어느 세계에서나 있거든. 정신을 차리려면 확실히 굴려 줘야 해.”

“저런 류가 어떤 타입인데요?”

“딱 보면 모르겠냐? 아무것도 아닌 찐따가 운 좋게 힘을 얻었다고 설치는 타입.”

“헌터가 된 게 운이 좋은 거예요? 무슨 특별한 걸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요?”

경일은 네로의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 세계의 상식으로는 헌터로 각성하는 것은 남들과 다른 재능을 타고난 사람, 즉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되었었다.

“특별하긴 개뿔. 그냥 뺑뺑이 굴려서 걸린 거야. 네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던전과 연결된 거처럼. 신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누구는 재능이 있어 헌터로 각성하고, 누구는 재능이 없으니 안 되고 그러고 있겠냐? 그냥 자기 능력으로 각성시킬 수 있는 숫자만큼 뺑뺑이 돌린 거야. 그냥 남들보다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그래서 저런 덜떨어진 것들도 헌터가 될 수 있었던 거고. 하여간 몬스터랑 싸우라고 준 힘을 이런 엉뚱한 곳에 쓰고 있고 말이야. 저것들은 내가 특별히 교육해야겠어.”

인간이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 네로의 입장에선 저런 쌍둥이 형제들을 보고 짜증이 나는 건 당연해 보였다.

그나저나 놀라운 이야기였다.

헌터로 각성하는 게 단지 약간의 운이 좋아서라니.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