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쌍둥이
자신이 선택받은 인간이라 그에 맞게 사회가 개편되어야 한다는 삐뚤어진 생각을 맹종하는 종교까지 생긴 판국이었다.
그네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경일은 궁금해졌다.
아마 진실을 앞에 두고도 아니라고 무조건 우길 것이었다.
경일과 네로가 한참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쌍둥이 형제는 얼이 빠졌다.
“현준 형… 지금 봤어? 고양이가 말을 했어.”
“맞지? 고양이가 말을 한 거… 나 지금 순간 꿈속인 줄 알았다.”
“우와, 이거 미쳤네. 고양이 새끼가 말도 하고? 저거 잡아다가 팔면 떼돈 벌겠다. 생긴 것도 엿같이 생긴 게, 좋아하는 사람 많겠어.”
그들은 경일과 네로의 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우주의 숨겨진 진실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네로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듯했다.
“길드장님이 겨우 이런 일에 움직이라고 해서 짜증 났는데, 이거 대박인데? 말하는 고양이는 영화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뒤에 뭐가 있을 줄 모르는 음흉한 새끼라고 조심하라고 하더니, 말하는 고양이를 숨기고 있었네. 하여간 길드장님은 촉도 좋아.”
문근철이 말한 의도는 저게 아니었을 텐데, 박현수는 네로를 보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그 모습이 한심해 보여 경일은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박현수가 네로를 보던 시선을 옮겨 경일을 바라봤다.
그리고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경일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야, 이리 와 봐.”
“하…….”
경일은 짜증이 난 듯 작은 탄식과 함께 박현수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씨발 새끼야, 빨리빨리 안 와?”
그 순간이었다.
경일은 말끝마다 욕을 하는 박현수의 입에 짧게 주먹을 뻗었다.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박현수의 입에 닿지 않았다.
박현준이 재빨리 박현수의 옷을 잡아 뒤로 당겼기 때문이다.
“뭔가 숨기고 있다고 길드장님이 조심하라고 하더니, 역시 헌터였네.”
일단 형제들은 경일과 거리를 벌렸다.
“현수야, 형이 조심하라고 했잖아.”
“무슨 개소리야, 형이라니. 겨우 몇 분 빨리 태어난 거로 헛소리하지 마.”
잔뜩 굳은 얼굴로 박현수가 씩씩거렸다.
만만해 보이던 경일에게 주먹을 허용할 뻔했고, 쌍둥이 형에게 도움을 받아서 자존심이 상한 것이었다.
“이 개새끼가 사람 뒤통수를 치고 말이야. 넌 오늘 나한테 죽었어. 부길드장님이 직접 손본다고 상처 없이 잡아 오라고 해서 봐주려고 했는데, 넌 뒤졌어.”
박현수가 경일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에 경일은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박현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곧 표정을 바꿔 박현수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약을 올렸다.
“나도 웬만하면 상처 없이 광산으로 보내고 싶었는데, 네 말을 듣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어. 넌 내가 특별히 교육해 주지.”
“이런 개씨팔 놈이!”
박현수가 화가 난 듯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제대로 자세를 잡고 경일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왼손을 경일의 얼굴을 향해 뻗었다.
날카로운 왼손 잽이었다.
경일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려 가볍게 피했다.
아니, 피했다고 생각했다.
“헉!”
경일은 순간 당황했다.
이 정도 거리면 박현수의 주먹이 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의 리치가 길었던 것이다.
박현수의 주먹이 경일의 턱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어쭈, 제법인데’
스친 주먹이라 고통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턱을 맞아 뇌가 살짝 흔들렸다.
다리에 순간 힘이 빠지는 걸 버티며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마음속에 서서히 열이 차올랐다.
“씨발, 이게 뭐야? 거지 같은 동네에 왜 이런 놈이 숨어 있는 거야.”
박현수은 박현수대로 자신의 주먹을 피한 경일의 실력에 놀란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집중해. 만만한 놈이 아니야.”
박현준이 동생을 향해 경고를 보냈다.
쌍둥이 형의 경고에 박현수의 눈빛이 싸하게 가라앉았다.
조금 전 사소한 것으로 싸우던 형제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제법인데? 충분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주먹이 생각보다 더 앞으로 뻗어 왔어. 지금까지 어중이떠중이만 보내더니, 이번에는 칼을 좀 갈았나 봐?”
쌍둥이 형제는 전투 스위치가 눌러졌는지 조금 전과 확실히 다른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긴 한데, 우리한테 걸린 이상 너도 끝이야.”
박현준이 경일을 향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보 길드의 숨겨진 칼인 만큼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글쎄다. 누가 이길지는 싸워 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
경일의 앞으로 걸어 나가자 네로가 영체화 되며 사라졌다.
“헉, 저게 뭐야? 고양이가 사라졌어?”
놀란 박현수의 두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집중해. 지금 고양이가 문제가 아니야. 조심해. 생각보다 더 강한 놈일 수도 있어.”
박현준이 집중력이 흐트러지려는 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형, 걱정 마. 우리가 쉽게 당할 사람이야? 저 새끼 뼈마디를 모두 분질러 주자.”
어느새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더 이상 쌍둥이 형제에게서 경일을 무시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젠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눈을 빛내며 경일을 향해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일도 이 분위기가 싫지 않은지, 여유롭게 웃으며 쌍둥이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피잇!
첫 공격은 박현준이 날렸다.
조금 전에 자신의 턱을 스친 박현수의 공격보다 훨씬 더 날카로웠다.
“오호!”
경일이 가볍게 감탄하며 고개를 숙여 공격을 머리 위로 흘렸다.
이미 한 번 겪어 본 터라 공격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공격을 흘리며 박현준에게 바짝 붙어 카운터를 날리려는데, 왼쪽 뺨이 화끈거렸다.
경일이 순간 동작을 멈추고 급하게 왼손 가드를 올렸다.
퍼억!
가드 위로 강렬한 충격이 들어왔다.
박현수가 날린 묵직한 펀치였다.
경일은 펀치를 방어하고 다시 한번 박현준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린 지 오래였다.
절묘한 타이밍에 박현수의 개입으로 공격이 무산되었다.
“제법인데?”
경일은 그들의 연계 공격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개새끼야,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우리가 만만해 보여?”
박현수의 고조된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놈이 입만 열면 욕이네. 넌 내가 오늘 제대로 교육해 준다고 했지. 나중에 지금 이 상황을 생각할 때마다 바닥을 치며 후회하게 될 거다.”
“병신, 네놈 걱정이나 해. 오늘 네 면상을 갈아 줄 테니까.”
경일이 몸을 숙이는 동시에 한 걸음 크게 앞으로 뻗으며 박현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폭발력 있는 스텝은 순식간에 박현수와의 거리를 좁혔다.
“뭐, 뭐야?”
놀란 박현수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조금 전에 느껴 봤던 감각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험 신호.
“이런.”
경일은 공격을 멈추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 그의 턱이 있는 자리에 주먹이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며 지나갔다.
박현준의 주먹이었다.
이 뒤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른 한 명의 방해를 받아 공격에 성공하지 못했다.
퍼억!
경일의 복부에 박현준의 주먹이 꽂혔다.
박현수를 노리고 달려들었는데, 절묘한 순간에 박현준이 공격해 왔고, 결국 막아 내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내장이 진탕되는 고통을 참으며 박현준에게 반격을 시도해 보지만, 이번에는 박현수의 날카로운 주먹이 들어왔다.
계속해서 같은 패턴으로 싸움이 진행되었다.
‘아무리 합이 좋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손발이 잘 맞을 수가 없는데, 확실히 쌍둥이라서 그런지 아주 찰떡이네.’
마치 한 몸에 네 개의 팔과 다리를 가진 이와 싸우는 느낌이었다.
분명 이 중에서 가장 강한 건 자신이었다.
몇 번 공방을 끝낸 뒤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자신이 이들을 압도하고 남을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손해를 본 건 자신이었다.
경일은 이상했다.
끈적한 기분 나쁜 무언가가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었다.
공격을 시도할 때마다 꼭 스스로 함정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경일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킥킥킥, 병신. 내가 오늘 제대로 조져 준다고 했지? 딱 기대해!”
당황해하는 경일을 향해 박현수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양손으로 훅을 날리며 접근해 들어왔는데, 그의 주먹은 분명 뻔히 보였다.
뒤로 빠져 피하려는 순간, 절묘하게 두 개의 주먹이 날아와 경일이피하려는 공간을 점령했다.
이대로는 두 개의 주먹에 그대로 몸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
경일은 무리한 동작으로 바닥을 차며 몸을 뒤로 뺐다.
흐트러진 몸의 중심을 잡다 보니 이에 놀란 근육이 욱신거렸다.
“쳇!”
박현준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지?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이게 가능해?’
경일의 얼굴에 진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거, 쟤네 스킬이야. 쌍둥이라 그런지 스킬도 특이하네. 본능적으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거지. 재밌는 놈들이야.]
네로의 목소리가 뇌로 전달됐다.
‘신기하네.’
스킬이 있는 상대와 싸우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나도 스킬이 있으니 이상할 건 없지만. 막상 겪어 보니 신기하긴 하다.’
헌터가 스킬을 가질 확률은 100분의 1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이 수치도 정확한 건 아니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스킬을 스스로 밝히는 헌터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충 저렇다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문제는 스킬이라는 것이 워낙 방대해서 헌터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었다.
쌍둥이처럼 헌터로서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되는 스킬을 가질 확률은 아주 낮았다.
보통은 이전의 신화 길드장처럼 미각이 발전한다든가, 손재주가 남들보다 뛰어난다든지,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다는 등 일상생활에서만 쓰일 만한 스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헌터로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스킬을 가진 헌터는 어디 가서도 대접을 받았다.
‘헉! 지금 네로님이 내 생각을 읽은 거야?’
마음속으로 했던 생각을 알아차린 듯한 네로의 대답에 경일은 순간 깜짝 놀랐다.
자신도 사람인지라 앞이 암담하고 힘들 때면 마음속으로나마 네로 욕을 한 적이 많았다.
‘혹시, 이 모든 걸 알고 모른 척한 거라면…….’
그의 동공이 지진이 난 거처럼 떨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인다. 내가 던전의 수호신이지, 진짜 신은 아니잖아.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싸움에나 집중해. 지금 네 얼굴만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여. 그러니 저 쌍둥이가 갈수록 여유 만만해 하는 거야.]
‘휴…….’
경일은 안심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속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푸하하하하하! 저 새끼 졸았어! 지금 겁을 먹고 당황해하는 표정 봤어? 하긴, 우리의 합이 신기할 정도로 잘 맞으니 쫄리긴 할 거야.”
네로와의 대화로 일어난 감정 변화를 박현수는 자신들 때문에 일어난 걸로 착각했다.
“현수야, 입 함부로 놀리지 마.”
박현준은 혹시나 자신들이 가진 스킬을 경일이 눈치라도 챌까 봐 박현수에게 경고했다.
“미안, 형.”
박현수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평상시에는 형이라고 인정하기 싫어하더니, 막상 싸움이 시작되고 나니 형의 말을 잘 따랐다.
그런 것을 보면 싸울 때 지시하는 쪽은 형인, 박현준인 듯했다.
“보통 쌍둥이는 친구처럼 지내던데, 너희는 아니네? 욕 잘하는 너를 애 취급하는 걸 보니, 같은 날에 태어났어도 좋은 유전자는 한쪽으로 쏠렸나 보다.”
“뭐라는 거야? 지금 나를 욕했어?”
경일이 유들거리며 웃자, 박현준이 발끈했다.
이미 조금 전의 당황해하던 경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