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게이트가 왜 고정된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경일을 잡으러 간 헌터들이 사라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저기, 길드장님? 분식점 사장 새끼를 잡는 일은 어떻게 할까요?”
“음…….”
김형성의 질문에 문근철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세 번이나 헌터들이 사라졌는데, 무턱대고 또다시 보낼 수는 없었다.
길드장의 반응에 김형성의 마음이 급해졌다.
이 일을 추진한 것이 자신이다 보니 이대로 일이 꼬여 가는 걸 보고만 있기 답답했다.
길드장의 분노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움직여서라도 이 일을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다.
“일단, 그놈을 잡는 건 보류하지.”
“저기…….”
미친개처럼 날뛰던 김형성도 길드장 앞에서는 한 마리 순한 양처럼 눈치를 봤다.
“왜? 뭐, 할 말 있으면 해 봐.”
똥 마른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모습에 문근철이 말했다.
“분식점 사장 놈의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소문?”
“그놈이 던전 고유 식물뿐만 아니라 미스릴도 거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야? 진짜야?”
“네. 처음 놈의 정보를 전해 준 이의 정보라 확실한 듯합니다.”
“도대체 그 새끼 정체가 뭐야?”
“지금 정체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앞에 사라진 놈들이야 별 볼 일 없으니 상관이 없지만, 쌍둥이까지 사라진 마당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길드 분위기도 뒤숭숭한데, 이 사실까지 알려지면 길드원들이 동요할 수도 있습니다.”
문근철은 김형성을 한 번 노려봤다.
길드 분위기가 안 좋은 건 모두 김형성이 3팀장이라 싸우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다니.
화가 치솟았지만, 당장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서 일단 참았다.
“만약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는 다른 곳에서 채 갈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뭐?”
문근철이 버럭 화를 냈다.
“안되지. 우리 애들이 몇 명이나 사라졌는데. 이대로 다른 놈에게 뺏기는 꼴은 절대 안 되지. 음, 그럼 어떻게 한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이 일을 물어 온 것도 저니까, 제가 확실히 해결하겠습니다.”
“그것도 나쁘진 않군. 수상한 점이 많은 놈이니 만만하게 보지 말고. 너도 쌍둥이 실력 잘 알지? 그러니 조심하라고. 그리고 잡으면 바로 여기로 와. 네 스트레스 푼다고 쓸데없는 짓을 하면 이번에 절대 안 참는다. 알아들었지?”
문근철이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네.”
김형성은 대답과 동시에 길드장실을 나갔다.
길드장이 자신에게 바로 데리고 오라곤 했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경일을 기다린다고 이틀 연속 밤새 기다린데다가 알 수 없는 사건으로 헌터들이 사라져 버려 그는 며칠째 욕구가 터지지 일보 직전이었다.
“어차피 그 새끼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 그 새끼가 그 물건들을 어디서 가져오는지가 중요하지. 내가 그걸 알아 가면 길드장님도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그는 나름 길드장의 명령을 자기식대로 합리화하며 경일의 집 앞으로 향했다.
드디어 그놈을 씹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별것도 아닌 놈 때문에 애꿎은 3팀장만 반병신으로 만들고 길드에서 쫓겨날 뻔했잖아. 한동안 길드장님 눈치도 봐야 하. 이건 모두 그놈 때문이야.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아주 확실히 풀어야겠어.”
피부가 붉게 상기된 김형성은 혀를 날름거리며 자주 입술을 핥았다.
그동안 그토록 기다리던 놈을 오늘 드디어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아주 곡소리가 날 만큼 고통스럽게 해 주지. 내 먹이를 네놈이 가로챘으니, 이자까지 톡톡히 받아 내 주지.”
오늘 밤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늘 무게를 잡던 그의 얼굴에서 억제되지 않는 웃음이 계속해서 삐져나왔다.
그렇게 언제 올지 모르는 경일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 왔다.
안 그래도 다혈질에 급한 성격인데, 요 며칠 계속해서 기다리지 않았는가.
기다리는 일분일초가 고역이었다.
“당장 분식점으로 쳐들어가서 잡아 오고 싶어 미치겠네. 사람들의 눈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뛰어갈 건데. 별것도 없는 분식점이 무슨 장사가 그리 잘되는 거야? 한두 명이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손님이 너무 많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이거, 그 새끼가 장사를 마칠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겠네.”
김형성은 쌍둥이가 기다리던 나무 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시간을 보냈다.
이날따라 재수 없게 비가 내렸다.
그의 비싼 양복의 어깨가 조금씩 젖어 갔다.
“이건 또 뭐야? 왜 하필 이런 날에 비가 오고 지랄이야.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니미, 찝찝하게시리.”
비를 피할 곳을 찾아봤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경일이 사는 건물의 입구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무 밑에서 비를 맞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뭇잎이 비를 막아 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옷이 젖어 갈수록 짜증이 늘어갔다.
비에 젖은 옷이 피부에 달라붙는 축축한 느낌이 싫었다.
깔끔하게 빗은 머리카락이 물을 먹어 착 달라붙은 지 오래였고, 머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계속해서 시야를 방해했다.
산을 타고 불어오는 찬바람에 몸이 오들오들 떨려 왔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지 않았나?”
김형성은 거의 소형차 한 대 값의 시계를 초조하게 바라봤다.
이제 겨우 일곱 시였다.
동네 분식은 여덟 시에 문을 닫으니, 최소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마음이 급해서 제대로 시간을 확인하지도 않고 너무 빨리 온 게 실수였다.
비를 맞은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팬티까지 젖어 비 맞은 생쥐 꼴이었다.
양말이 젖어 걸을 때마다 질퍽거렸다.
“조금만 기다리면 올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참자.”
김형성은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며 경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여덟 시가 넘었다.
“이제 한 10분만 기다리면 오겠군.”
김형성은 물에 젖어 피부에 달라붙은 옷을 떼 가며 기다렸다.
눈을 크게 뜨고 경일이 오는 길을 바라봤다.
기대감에 몸이 붉게 물들어 갔다.
시간은 계속해서 지났다.
하지만 10분이 훨씬 넘은 듯한데, 아직 경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대감에 붉게 달아올라 있던 얼굴이 화를 참지 못하고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몸 전체에 열꽃이 피어나며 물에 젖은 양복에서 김이 일었다.
“이 새끼,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경일이 나타나지 않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설마 오늘 약속이 있어서 다른 곳에 들렀다 오는 건 아니겠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김형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애꿎은 나무를 걷어찼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발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건 옷을 입고 샤워기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하, 돌겠군. 오늘만 날이 아닌데, 내일 다시 올까? 비가 와서 그냥 철수했다고 하면… 휴, 안 되지. 길드장님한테 그렇게 큰소리를 쳤는데 무슨 욕을 들으려고.”
지금 좀 화가 나고 짜증이 치솟더라도 지금 버티는 게 훨씬 나았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약속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약속이 있다면 최소 두세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씨팔, 엿 같네. 하필 내가 오는 날에 약속이 있고 지랄이야.”
김형성은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씩씩거렸다.
쏴아아아악!
하늘에 구멍이 난 거 같았다.
근래 들어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가끔 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나뭇잎에 고여 있던 빗방울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다.
“앗, 차가.”
나무 밑에 서 있던 김형성은 말 그대로 물벼락을 맞았다.
양복을 입고 비를 맞고 있는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경일을 고문할 희열로 가득 찼던 모습은 언젠가부터 사라지고 눈꼬리가 축 처져 있었다.
흐르는 시간만큼 그의 화도 깊어 갔다.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거리에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경일의 옥탑방이 워낙 변두리에 비까지 내리고 있어 그런지, 지금까지 사람 그림자 하나 보질 못했다.
얼굴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물에 젖은 손가락 끝은 어느새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비는 여전히 그칠 생각이 없는지 계속해서 퍼부었다.
‘조금만 지나면 오겠지.’
‘이제 곧 올 거야.’
‘분명 올 거야.’
‘이만 갈까? 아니야, 지금까지 기다린 게 있는데 조금 더 기다리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고. 씨발, 깡이라면 나도 절대 지지 않는다고.’
‘개새끼야 제발 좀 와라. 오라고! 비가 오는데 어딜 처 돌아다니는 거야.’
‘지금이라도 오면 두 대 때릴 걸 한 대만 때릴게. 그러고 제발 좀 오라고.’
김형성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니, 이건 희망이 아니라 오기였다.
‘씨발, 보자마자 양쪽 귀부터 잘라 버릴 테다. 상처는 불로 지져 버리고. 손가락 끝은 구두 굽으로 밟아 뭉개 버리고. 내장을 피해 쇠꼬챙이를 꽂아 주지. 넌 절대 쉽게 죽지는 못 할 거다.’
그는 바짝 독이 올라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날짜가 바뀌지만, 경일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으나, 비까지 맞으며 기다린 게 너무 억울했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몇 번이나 발길을 돌렸다.
이제는 악에 받쳐 눈이 돌아가 버렸다.
“이 개새끼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김형성의 어조가 그의 화난 목소리만큼 격렬해졌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누르며 거센 비를 맞으며 그는 끝까지 기다렸다.
이 시각 경일은 지금 던전에 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던전 고유 식물을 돌보고 있었다.
“어, 누가 내 욕을 하나? 귓속이 왜 이리 간지럽지? 아니, 얼마나 욕을 하길래 긁어도, 긁어도 귓속이 가려운 거야?”
경일은 일하다 말고 손가락으로 귓속을 후벼 팠다.
“그러게 평소에 잘했어야지. 널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그래. 너 그러다 귀에서 피 나오겠다.”
“어휴, 또 왜 그러세요. 제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분식점에서 못 보셨어요? 아이들이 제 말 한마디에 끔뻑 죽는 거?”
“못 봤는데? 날 보고 즐거워하는 건 봤어도.”
“쩝.”
네로가 경일의 옆에서 즐거운 듯 약을 올렸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김형성이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집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경일이 던전에 있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의 눈을 피해 옥탑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일은 쌍둥이를 만난 날에 일어났다.
한참 쌍둥이에게 제대로 된 참교육을 내려 주고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경일을 보고 네로가 말했다.
“참 이상하네.”
“뭐가 말입니까?”
네로의 말에 경일이 물었다.
“옥탑방에서 지내는 것도 아닌데, 굳이 여기까지 오는 이유가 궁금해서.”
“네? 여기에 오는 게 궁금하다니요? 게이트가 여기 있으니, 당연히 오는 거지요.”
“하하하하, 너 바보구나?”
“네?”
“너, 게이트가 네 눈에만 보이는 건 알고 있지?”
경일은 예전에 신화 길드에게 포위당해 던전을 뺏길 뻔한 기억이 생각났다.
그때 신화 길드 헌터들이 옥탑방을 모두 뒤지고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때 게이트가 자신의 눈에만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네,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건 던전이 너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거야. 주인인 네가 원할 때는 어디든지 당연히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지. 왜 게이트가 고정이라고 생각했어? 처음부터 장롱에 게이트가 있던 것도 아니잖아.”
듣고 보니 그랬다.
어느 날 아무것도 없는 장롱에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전에 던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만 취할 때, 게이트가 사라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게이트는 고정이 아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