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던전의 전 주인들이 남긴 비법?
농사짓는 도중 쉬려고 만든 정자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경일이 네로를 위해 준비한 돼지갈비가 숯불 위에서 맛있게 익어 가고 있었다.
“이건 뭔데 이렇게 맛있어?”
“돼지갈비라고 외국인도 좋아하는 한국 전통 음식이에요. 한국에 오면 꼭 먹고 가는 음식 중에 하납니다. 요즘 똥파리 때문에 신경을 못 쓴 거 같아, 제가 네로님을 위해 신경 좀 썼어요. 최고급 돼지고기에 각종 과일을 갈아 만든 특제 소스에 숯도 좋은 걸 썼어요. 잘 드셔야 회복도 빨라지신다면서요.”
“오호~ 이거 경일이가 이제 좀 철이 드는 거 같네.”
“아이, 참! 제 나이가 몇 살인데 철은 좀…….”
경일은 말하는 도중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 네로를 떠올리곤 말꼬리를 흐렸다.
그 모습에 네로가 다 안다는 듯이 한 번 웃고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나저나 사람이 아주 진국이던데? 옛날에 태어났으면 제대로 충신 소리를 들었을 인물이야.”
네로가 경일이 구워 준 돼지갈비를 맛있게 뜯으며 말했다.
“누구 말하는 겁니까?”
“이길호.”
“아, 네. 그 형님이 사람이 참 좋죠. 가족을 자신의 목숨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멋진 아버지에 멋진 남편이죠.”
“아까 차에서 말할 때, 신기해서 내가 자세히 살폈거든? 너를 위해서 목숨을 내줄 수 있다는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안 느껴지더군. 옛날이라면 몰라도 이런 현대 사회에서 저런 인물이 있다니, 조금 놀랐어.”
“하하하, 네로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다 뿌듯합니다.”
“뭐, 하여간 이것도 다 네가 잘해서 그런 거니까, 충분히 칭찬받을 만해. 그나저나 이번 일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야? 옛날처럼 한 놈씩 습격해서 광산으로 보낼 생각이야?”
“생각 중입니다. 이미 쌍둥이 형제까지 여러 명의 헌터가 사라진 걸 알고 있으니, 또다시 길드원이 한 명이라도 사라진다면 곧바로 대응해 올 확률이 높을 겁니다.”
“그럼 해결책이 없네.”
“길드장이라도 먼저 노릴까 생각 중인데, 이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아직 그들의 실력을 확실히 모르니 무작정 덤비는 게 좀 망설여지네요. 뭐, 제가 질 거란 생각을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옛날 같았으면 곧바로 달려갔을 건데, 지금은 저도 짊어진 게 많아서 그런지 쉽게 움직여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 위치면 주위에 늘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을 테니, 기회를 잡기도 힘들 거 같고.”
“그래, 애매하긴 하네. 너 하나 잘못되면 스탄다비아도 그렇고, 지구도 위험해질 확률이 크긴 하지.”
“윽! 돼지갈비 잘 드시다가 왜 부담을 주시고 그럽니까?”
경일이 네로에 말에 뜯던 돼지갈비를 내려놓으며 볼멘소리를 했다.
“무슨 부담을 느끼고 그래. 남자가 그리 마음이 약해서 어디다가 쓸래. 내가 오늘 소갈비를 못 먹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절대 아니야.”
“그건 오늘 그놈들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시장을 못 가서 그런 거 아닙니까.”
“응? 누가 뭐라고 했어? 왜 밥을 먹다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안 그래도 누구 때문에 강제로 일어나는 바람에 하루하루가 힘든데. 아이고, 이거 삭신이 안 쑤시는 데가 없어.”
네로가 깨끗이 발라먹은 돼지갈비 뼈를 내려놓으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모든 게 다 제 잘못입니다. 다음에는 소갈비로 왕창 준비해 놓겠습니다.”
말로 이길 자신이 없어 경일이 꼬리를 말았다.
“아 참! 이번 일 정리되면 주아 씨 보너스를 좀 줘야겠어요.”
“밥 먹는데 갑자기 그 애 이야기는 왜 또 꺼내고 그래?”
맛있게 먹던 돼지갈비에서 츄르 맛이 나는 것 같아 네로가 돼지갈비에서 입을 떼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보자 조금 전에 당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아니, 요즘 일도 열심히 하고 그래서 그렇죠. 네로님이 봐도 일은 참 열심히 하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
네로가 빤히 보이는 수작에도 눈을 내리깔고 마지못해 경일에 말에 대꾸했다.
그만큼 손주아의 애정 공세는 집요했다.
“아마 주아 씨는 마음이 착해서 보너스가 생기면 맛있는 고양이 간식부터 사 올 거 같은데.”
“에잇, 진짜 걔는 왜 그러는 거야? 내가 그렇게 인상을 쓰는데도 왜 계속 맛도 없는 걸 먹이는지. 제발 걔 좀 자르면 안 돼?”
“거참, 곤란한 말씀을. 주아 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요. 단지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고 자를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도 내 위 크기가 작아 먹고 싶은 걸 다 못 먹어서 억울한 판국에, 고양이 사료라니… 이게 말이 돼? 제기랄!”
“작은 거치고는 너무 많이 먹던데요?”
“뭐라고?”
“아니에요. 혼잣말입니다.”
네로가 인상을 쓰며 돼지갈비를 뜯는 모습을 보며 경일은 미소를 지었다.
“돼지갈비가 정말 맛있어. 이 시대 사람들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큰 축복이야.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일찍 깨어난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네. 어쨌든 암던은 지금도 아마 쭉쭉 발전해 갈 건데, 여기 발전이 정체됐다고 너무 스트레스는 받지 마. 마음 편하게 가져. 네가 기를 쓴다고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니, 또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러갑니까?”
손주아의 이야기로 한 방 먹여 고소해하던 경일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네로가 경일이 짊어진 책임을 상기시키자 밥맛이 싹 달아났다.
결국 마지막 승자는 네로였다.
“그런 의미로 다음에는 신선로를 먹자. TV에서 보니, 그거 참 맛있어 보이더라.”
네로가 돼지갈비를 얄밉게 뜯으며 승자의 표정을 지으며 경일에게 말했다.
“궁중 음식은 아직 제 실력이 미천해서 다음에 배워서 해 드릴게요.”
경일은 결국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소곳이 이야기했다.
“그래.”
네로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어쩔 수 없이 세보 길드 덕에(?) 강제 휴가를 받아서 기분이 안 좋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던전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경일은 오래간만에 던전 탐험을 떠났다.
네로가 새롭게 가르쳐 준 던전 고유 식물을 찾으러 떠났다.
오래간만에 산악 오토바이를 타고 마음껏 산과 들을 달렸다.
“이야, 죽이는데? 이거 완전 재밌다. 오랫동안 살아서 더 이상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세계는 정말 새롭고 짜릿한 게 많아. 하루하루가 정말 신나!”
경일의 어깨에 앉은 네로가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더 빨리 밟아 봐! 내가 바람이 된 거 같잖아.”
부아아아아앙!
네로의 요청에 경일이 오토바이의 속도를 올렸다.
“저기로 가 봐.”
한창 달리던 중에 네로가 한 지점을 가리켰다.
경일은 방향을 바꾸어 네로가 말한 곳에 도착했다.
“여기 있네.”
네로가 어디서나 있을 법한 식물을 가리켰고, 그곳엔 원통형의 작은 꽃이 애처롭게 피어 있었다.
얇은 줄기는 직립해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아랫부분에는 가시 모양의 털이 나 있었다.
전체적으로 빈약해 보이는 것이 별 기대가 되진 않았다.
“이게 생긴 게 좀 그렇지? 사마귀 다리같이 가는 줄기를 보면 그렇기는 할 거야. 하지만 이게 또 생긴 거랑은 좀 아주 다르거든. 뭐니 뭐니 해도 효능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어? 효능을 확인하려면 먹어 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 일단 꽃을 한 번 먹어 봐. 아마 깜짝 놀랄 거야.”
네로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경일은 작은 꽃을 따서 입에 넣었다.
[던전 식물을 먹었습니다. 식물 속의 마나가 몸속에 축적됩니다.]
“대에~박!”
경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작고 보잘것없이 생긴 식물이 마나를 공급하다니.
이건 대단한 발견이었다.
“이건 또 다른 커미네스네요?”
“비슷하긴 한데, 이게 훨씬 효과가 뛰어나지. 커미네스보다 효능이 두 배 정도 더 뛰어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건 재배가 쉬워. 마음먹고 키우면 단기간에 꽤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을 거야.”
“식물의 이름이 뭐예요?”
“키아노티라고 부르긴 했는데, 이 세계에서는 네 마음대로 붙여도 되지. 너로 인해서 이 세상에 알려질 테니.”
“음~ 그냥 키아노티라고 부를게요. 얘도 이름이 두 개면 헷갈릴 테니.”
경일은 키아노티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 조심스럽게 채취했다.
조금 전까지는 별 볼 일 없는 잡초로 보였는데, 이제는 금보다 귀하게 보였다.
밤이 오면 경치 좋은 곳에서 네로와 야영을 했다.
텐트를 치고 바라본 하늘에서는 아름답게 빛나는 별들을 쏘아져 내렸다.
“저기 보이는 별들은 지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걸까요?”
“아마 일부는 그럴걸?”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감상에 젖어 물어본 질문인데, 돌아온 답에 경일은 깜짝 놀랐다.
지금 있는 곳이 지구와 같은 우주에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던전이라고 불리는 세계에 대해 인류가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은 어떤 건가요?”
“음~ 던전은 아주 작은 세계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우주에는 워낙 다양한 세계가 존재하니까.”
“이건 옛날부터 궁금했는데, 던전의 핵을 깨면 게이트가 닫히잖아요. 그럼 게이트와 연결된 던전도 사라지는 건가요?”
“아니, 던전은 하나의 세계라서 사라지지는 않아. 단지 게이트가 사라지면서 지구와의 연결이 끊어질 뿐이지. 나중에 던전이 힘을 회복하면, 다시 지구와 연결되든 아니면 또 다른 행성에 연결되는 거야.”
“그럼 던전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사람은 우주 미아가 되는 거네요.”
“뭐, 던전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으면 그렇겠지.”
우주는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우주의 신비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에 어깨가 으쓱거렸다.
“아 참, 던전병은 왜 생기는 건가요?”
오늘 이길호를 봐서 그런지 문득 떠오를 질문이었다.
“지구에 생기는 던전병은 마의 구간과 관련이 있어. 헌터들이 마의 구간을 겪는다면, 헌터로 선택되지 못한 사람 중 일부는 던전병에 걸리는 거지.”
“마의 구간이 암던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래.”
“암던이 어떤 방법을 쓴 건가요?”
“그건 나도 몰라. 그들이 만든 하나의 공격 방법이라는 것밖에. 대충 예상해 보자면, 순수 마나에 뭔가를 섞어 지구의 대기에 뿌리지 않았나 싶어.”
“그럼, 마의 구간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마의 구간을 없애 주는 식물이 있잖아. 이곳에서는 영인초라고 부르는 것. 그걸 꾸준히 먹으면 돼.”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경일은 자신도 아는 답이 나오자 실망했다.
“암던과 같이 광범위하게 헌터들에게 전염시킨 것처럼 마의 구간을 그런 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글쎄? 네가 한 번 만들어 봐. 암던에서 만든 방법도 수호신이 만든 게 아니야. 암던의 주인이었던 누군가가 만든 거지. 그 지식이 수호신을 통해 다음 암던의 주인에게 전수가 된 거지.”
“그럼 이 던전의 전 주인들이 남긴 비법은 없습니까?”
“내가 이야기했잖아.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고. 그 정도로 노력했던 누군가가 있었으면, 적어도 한 번은 이기지 않았겠어?”
경일은 네로의 대답에 크게 실망했다.
던전 활동을 늦게 시작한 것만 해도 이미 불리한 상황인데, 상대는 전 주인들의 지식까지 물려받아 자유롭게 쓰고 있는 형국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던전의 발전이 멈춰져 있는 상황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