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188화 (188/300)

[188화] 무너진 그들의 꿈

“뭘 그리 고민해? 내가 이야기했잖아.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생기는 거라고. 그러니 미리 고민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거에나 집중해. 오늘도 봐, 키아노티를 발견했잖아. 이걸로 스탄다비아는 더 강해질 거고, 그럼 너도 강해질 거고. 그러다 보면 암던의 주인을 이길 수 있는 날도 오지 않겠어?”

“네…….”

대답하는 경일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경일의 마음도 모른 채 모닥불에 직화로 구워진 꼬지가 맛있게 익어 갔다.

머리가 아픈 건 아픈 거고, 먹을 건 먹어야 했다.

경일이 네로가 먹기 편하게 다 익은 꼬지를 접시에 덜어 주었다.

“음~ 맛있네. 세계는 정말 다양한 맛들이 있구나. 이건 맛이 너무 다채로워서 모두 표현을 못 할 정도야. 이 소스는 뭐야?”

“데리야끼 소스에요.”

“노란색 이건?”

“머스타드 소스입니다.”

“좋구나.”

소스 몇 가지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네로를 보고 경일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네로도 이런 소박한 행복에 만족하며 기쁨을 누리는데, 그에 비해 한참이나 열등한 인간이란 종족은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 온갖 해악을 부리지 않는가.

이번 네로와의 던전 탐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의 크기가 성장했다.

거기다 며칠간 이어진 던전 탐험에서 많은 수확이 있었다.

인류에게 알려진 기존의 던전 고유 식물보다 더욱 효과가 뛰어난 여러 식물들을 채집할 수 있었다.

기존의 포션을 뛰어넘는 더욱 뛰어난 포션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건 앞으로 스탄다비아는 물론 헌터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탐험을 마치고 온 경일은 새롭게 발견한 던전 고유 식물이 자랄 비닐하우스부터 만들었다.

새로운 땅을 개간하고, 거대한 크기의 비닐하우스가 하나둘씩 세워졌다.

멀리서 보면 일렁이는 강물처럼 보였다.

비닐하우스 안에 채집한 던전 고유 식물을 조심히 심었다.

그리고 네로의 지시 아래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일부 비닐하우스는 마치 정글과 같은 모습이 되기도 했고, 일부는 황량한 사막 같기도 했다.

서로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다르다 보니, 비닐하우스마다 각기 다른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환경이 맞춰지자 던전 고유 식물은 정말 잘 자랐다.

굳이 씨앗을 받지 않아도 알아서 번식해 비닐하우스 안을 가득 채웠다.

경일은 네로에게 마의 구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많았다.

마의 구간을 해결할 뚜렷한 방법이 아직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건 영인초 재배였다.

영인초로 마의 구간을 벗어날 수 있으니 최대한 많이 확보해 놔야 했다.

마의 구간에 빠져 허우적대는 헌터가 많다 보니 그들에게 영인초를 공급하려면 웬만한 수량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에 따라 거점 근처 넓은 평야에 영인초 전용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평야가 큰 만큼 엄청난 수의 비닐하우스가 생겨났다.

일은 힘들었으나, 앞으로 이 모든 게 자신의 든든한 뒷배가 될 터였다.

영인초가 좋아하는 부엽토를 잔뜩 깔아 주자, 비닐하우스 온도가 올라가며 자연히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넌 진짜 한 마리 소 같구나?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네.”

“제가 일한 만큼 던전은 보답해 주니까요. 일하는 보람이 불근불근 솟아올라요. 그리고 스탄다비아의 상황이 안 좋아서 지원을 늘려야 하는 것도 있고요.”

“어렵지?”

네로의 질문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경일은 처음 낙후된 스탄다비아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어린 나이에 몬스터와 싸우다 고통스럽게 죽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시체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몬스터의 이빨에 찢겨 배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다.

그러다 고물상에서 쓸모없는 고철을 사서 보낸 것뿐인데, 스탄다비아 영지민들은 몬스터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약간의 수고를 했을 뿐인데, 그들에겐 큰 도움이 되는 모습에 정말이지 마음이 뿌듯했다.

그 뒤로 꾸준히 스탄다비아를 지원했고, 자신의 적은 노력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스탄다비아를 보고 행복해했다.

늘 팍팍하던 스탄다비아 영지민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을 때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모든 이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허황한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탄다비아가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뿐, 사람이 사는 건 지구와 똑같았다.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었고, 각자의 처지에 따라 매일매일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났다.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든 사람들이 이제 좀 사람답게 살아 보려는데, 그걸 방해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도 강력한 적들에게 둘러싸여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었다.

“…네, 너무 어렵네요.”

네로에 질문에 대답하는 경일의 모습에 쓸쓸함이 녹아 있었다.

* * *

프라인의 영주와 아드리온의 영주의 앞에 한 인물이 서 있었다.

남자는 이번에 두 영주가 초청한 광산 개발 전문가였다.

“안녕하십니까, 두 영주님. 제 이름은 하우르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하하하, 그래, 오는데 불편하지는 않았고?”

패드래건이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

“아닙니다. 보내 주신 마차를 타고 아주 편하게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일은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는가?”

마음이 급한 게렉스가 물었다.

“일은 내일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래,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게나. 내가 모두 구해 주겠네.”

“알겠습니다.”

“온다고 피곤했을 텐데, 이만 가서 좀 쉬게나.”

“네, 영주님.”

하우르는 두 영주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다음 날, 아침부터 하우르는 부지런히 움직여 프라인 영지와 아드리온 영지의 경계에 있는 광산으로 곧바로 향했다.

광산의 입구에는 두 영지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기사로 보이는 한 인물이 하우르에게 물었다.

“이번에 광산 개발하러 온 하우르입니다.”

“아, 그래. 내 미리 말을 들었지. 필요한 게 있으면 나에게 말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하우르는 자신이 데려온 몇 명의 인부들과 함께 곧바로 광산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광산이라기보다 동굴이었다.

20미터 정도 길이의 동굴 벽엔 군데군데 금으로 보이는 것들이 박혀 있었다.

“음…….”

전체적으로 동굴 안을 한 번 둘러본 하우르는 작업에 들어갔다.

깡깡깡깡!

이내 곡괭이 소리가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몇 명의 인부는 금광을 파고 들어갔고, 금광에서 채굴한 광석과 흙은 밖으로 내보냈다.

처음 깬 광석이 나왔을 때는 두 영지의 영주까지 나와 확인할 정도였다.

광석에서 금을 분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 모습을 본 두 영주의 입가엔 커다란 웃음이 걸렸다.

“이거, 생각보다 금의 매장량이 많아 보입니다.”

금을 보자 얼굴이 상기된 게렉스의 입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계속된 영지의 어려움에 웃을 일이 없었는데, 금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 이 정도면 두 영지가 나누어 써도 충분할 거 같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공동 개발을 할 걸 그랬군.”

“동의합니다. 괜히 애꿎은 병사들만 희생시켰네요.”

“뭐,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겠나. 앞으로 미래만 바라보세.”

“하하하하!”

두 영주는 금광이 주는 달콤한 미래를 기대하며 돌아갔다.

광산의 일은 매우 고되고 대단히 위험했다.

크고 작은 사고가 늘 일어났지만, 그만큼 수입이 좋아 광부에 지원하는 사람은 많았다.

땅을 파고 들어가는 이상, 늘 크고 작은 암석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금광의 개발에서 가장 힘든 경우가 큰 암석을 만날 때였다.

그럴 경우 암석을 불에 뜨겁게 달구었다가 찬물을 부어 재빨리 식혀 암석을 쪼개며 전진하는 착암 방식을 이용했다.

막힌 공간에서 암석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그대로 갱도에 남을 수밖에 없는데, 광부들은 그 연기를 직접 마셔 가면서 암석을 깨고 더 깊이 들어갔다.

그들이 열심히 일한 만큼 금의 생산량은 늘어갔다.

프라인과 아드리온의 두 영주는 입가의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매일매일 생산되는 금의 양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두 영지가 당면한 문제를 넘어 더 막강한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한 나날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 광산에 사고가 터진 것이다.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야?”

“금광이… 금광이 무너졌습니다.”

“뭐라?”

두 영지의 영주는 같은 시각, 같은 보고를 받았고, 둘 다 한동안 넋이 나갔다.

정신을 차린 두 영주는 빠르게 광산으로 움직였다.

“하우르, 하우르는 어찌 됐느냐?”

패드래건이 급히 금광의 개발 책임자를 찾았다.

다행히 하우르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금광이 무너졌던 것이다.

하우르는 두 영주를 보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하우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이곳은 금의 매장량이 많지만, 금광의 역할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금광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게렉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땅을 파고 들어갔는데, 토질이 단단하지가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길이까지는 갱도가 버텨 줬지만, 갱도가 깊어지자 지금처럼 무너진 걸로 봐서 이곳의 지반은 일부 암석과 푸석푸석한 토질이 혼합된 연약 지반으로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갱도를 파고 들어가도 어느 지점 이상을 파고 들어가면, 또다시 무너질 겁니다.”

“하우르, 방법이… 금을 캘 방법이 없는가?”

패드래건이 간절하게 물었다.

“갱도에 나무로 천장을 만들고 갱목을 받혀서 파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만, 그 역시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방법이 있는데 힘들다니?”

“우선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부터가 힘듭니다. 누구도 연약 지반의 광산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또 다른 문제는, 갱도의 가장 안쪽에는 갱목을 설치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암석을 깨기 위해서는 불을 피워야 하는데, 나무로 만든 천장과 갱목이 가까우면 불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금광의 가장 위험한 곳에는 천장에 갱목을 설치할 수가 없으니, 결국에는 또다시 무너져 내릴 겁니다. 안타깝지만, 지금까지 채취한 금으로 이 금광의 수명은 끝이 났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이럴 수가…….”

게렉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귀족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충격이 너무 컸는지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했다.

패드래건도 게렉스와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금광에 모든 것을 걸은 만큼, 충격이 컸다.

휘청이는 몸을 나무에 기대 서 있을 뿐이었다.

결국은 프라인과 아드리온은 전혀 쓸모없는 광산을 두고 무려 20년이나 서로 싸우고, 애꿎은 병사들의 목숨만 희생시킨 것이었다.

광산을 놓고 반목한 세월이 길었던 만큼, 지금까지 죽어 간 병사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 캔 금은 그들의 희생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았다.

두 영주는 기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각자의 영지로 돌아갔다.

어깨는 축 처지고 걸을 힘도 없는지 다리를 바닥에 끌다시피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초라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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