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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04화 (204/300)

[204화] 납치

일부러 외출한 척 함정을 파고 도둑을 잡아 보려 노력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아는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번은 아예 한 달을 집에 숨죽이며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는데도 도둑이 나타나지 않자, 그 허탈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딱 한 번, 거의 잡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함정인 줄 모르고 도둑이 집으로 들어왔고, 대기 중인 헌터들이 곧바로 집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도둑은 마치 귀신처럼 사라져 버렸다.

김형성이 도둑을 잡는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때마침 그 일이 일어났고, 그의 의욕은 다시금 불타올랐다.

길고 지루한 잠복을 이어 가기로 한 것이다.

“하하하하하!”

경일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의도대로 김형성이 다시 자신을 잡기 위해 지루한 잠복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을 스킬로 확인했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김형성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모든 게 자신을 놀리려고 한 행동일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터.

“광산에 보낸 것과 다르게 이건 또 이것만의 유쾌함이 있네. 그 성질에 무작정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닐 텐데. 나를 생각하며 이를 갈고 있겠지. 지금쯤이면 성한 이가 하나도 남지 않았을 거 같은데 말이야, 큭큭큭.“

며칠을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버티는 김형성을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김형성은 그의 질긴 고집답게 끈질기게 기다렸다.

경일에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도 모르고, 이번에는 꼭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희망에 차 있었다.

“이 새끼를 어떻게 고문하지? 아니야, 이 방법은 너무 평범해. 내가 당한 게 얼만데,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뭔가 센세이션 하고 죽어서도 잊히지 않을 그런 대단한 게 필요해. 그나저나 이 새끼는 언제쯤 오려나. 집에 불도 못 켜고 구석에 쪼그려 있으려니, 좀 힘들긴 하네.”

“왜 이리 안 오지? 준비해 둔 음식도 떨어져 가는데. 이거 밖에 한 번 나갔다 와야 하는 건가. 아니야, 아직 라면은 많이 남아 있으니 버티자. 워낙 귀신같은 놈이니까, 그 사이에 왔다 갈 수도 있어.”

“씨발, 라면도 더 떨어져 가는데 왜 안 오는 거지? 이제 라면만 봐도 신물이 올라올 정도야. 나가서 음식이라도 사 올까?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리자. 분명 다시 나타날 거야. 그럼 다시 나타나고말고. 내가 이렇게 최고급 가전으로 채워 놨잖아. 다시 나타날 게 틀림없어.”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하, 배도 고프고 돌아 버리겠네. 오늘 안에 나타나면 절대 죽이지 않을게. 그러니 제발 와 달라고! 내가 이렇게 빌잖아. 흑…….”

하지만 경일은 그림자도 보여 주지 않았고,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나타나다니.

김형성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놈은 도저히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에요. 길드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목이 갈라진 듯 나오는 그의 쉰 목소리는 악에 받쳐 있었다.

김형성은 거의 반미치광이 꼴을 하고 있었다.

살이 빠져 광대가 툭 튀어나왔으며, 머리와 수염도 깎지 않아 지저분했다.

늘 깔끔한 슈트 차림을 선호했던 과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남들에게 고통을 주는 걸 즐겼던 그가 일방적으로 고통을 당하자, 분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길드가 무너질 판이야. 사업체는 전부 문을 닫았고, 여기저기서 돈을 달라고 난리야. 조만간 길드 건물도 압류될 지경인 거, 모두 알지? 어디 가서 도둑 한 명 못 잡아서 길드가 망했다고 말도 못 해. 쪽팔려서. 차라리 싸움에 져서 길드가 망했다면 속에서 이렇게 열불이 나지는 않을 거 아냐? 누구라도 좋은 생각이 있으면 제발 말 좀 해 봐.”

문근철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회의실에 모인 팀장들을 애원하듯 바라보지만, 그들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저기… 길드장님, 이게 모두 분식점 사장 놈의 소행이 아닐까요?”

싸늘해진 분위기를 뚫고 1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분식점 사장 놈의 소행이라니?”

“이번에 해성 길드가 그놈이랑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우리가 밀려난 거고.”

“그래서?”

“그놈이 해성 길드에게 복수를 부탁한 게 아닐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일개 분식점 사장의 부탁에 해성 길드가 움직인다고? 그것도 이런 황당한 방법으로?”

“그놈이 가진 게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네 말은, 그놈이 가진 게 우리를 망하게 할 만큼 많다는 이야기잖아. 만약 그렇다고 해도 대형 길드가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들은 언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명분 없이 이런 짓을 하다간 길드뿐만이 아니라 그룹에 큰 타격을 입을 거야.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압박할 방법은 이런 치사한 짓 말고도 수없이 많아. 오히려 이런 짓이 그들 처지에선 더 피곤하지. 안 그래?”

문근철의 말에 1팀장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려고 말한 측면이 강했다.

“도박장을 다시 열 방법은 없나?”

문근철은 1팀장과의 대화를 마무리 짓고 도박장 사업을 총괄하는 3팀장을 보며 물었다.

“그게 좀…….”

3팀장이 곤란한지 얼굴을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

도박장은 세보 길드에게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사업이었다.

이 일대는 모두 세보 길드의 영역이라 독점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도박할 장소를 대여하는 것을 넘어 비싼 이자로 돈놀이까지 하고 있으니, 그 수입이 엄청났다.

세보 길드의 악명을 잘 알고 있는 이상, 돈을 떼먹을 간 큰 이들은 드물었고, 정말 돈이 없는 경우라면 마른걸레를 쥐어짜듯 어떡해서든 돈을 받아 냈다.

적은 노력으로 큰돈을 벌어들일 수가 있으니, 도박장 폐업은 제대로 급소를 찔린 듯이 아팠다.

더군다나 여기서 벌어들인 검은 돈은 각종 로비에도 이용됐다.

하지만 수입이 끊기자 로비도 끊어질 수밖에 없었고, 세보 길드가 받던 혜택 또한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도대체 도박장인 걸 어떻게 알고 매번 신고하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3팀장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도 아마 그 도둑놈이랑 관계가 있는 거겠지?”

“증거는 없지만, 그럴 거라 예상됩니다. 그놈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부터 신고가 시작됐으니까요.”

처음에는 길드에 불만을 품은 내부인의 소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범인을 찾는 한편, 경찰에게 돈을 먹여 신고를 무마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범인은 찾을 수가 없었고, 신고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경찰 입장에서도 계속 신고가 들어오자 무시하기 힘든 상황까지 왔고, 결국 도박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걱정은 하지 않았다.

고객 명단이 있으니 다른 곳에 도박장을 열기만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사한 곳은 물론 세보 길드가 운영하는 모든 도박장에 신고가 들어갔다.

결국 모든 도박장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짐작대로 이 모든 신고는 경일의 소행이었다.

경일은 문근철의 집에서 턴 서류에서 도박장의 주소와 책임자를 알아냈다.

이사한 도박장을 찾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세보 길드 본사 앞에서 퇴근하는 3팀장을 확인한 후, 사람 찾기 스킬로 그가 주로 가는 곳을 탐색했다.

그리고 대포폰을 이용해 지겹도록 신고하기만 하면 됐다.

“저기, 길드장님. 이번 주 수요일에 길드원들에게 월급이랑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데요…….”

회계 팀장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문근철에게 물었다.

“씨발, 돈이 있어야 주지. 내가 주기 싫어서 안 주냐고!”

선불 맞은 호랑이처럼 문근철은 분을 못 이겨 사납게 씩씩거렸다.

길드원들이라도 한 몸으로 뭉쳐 위기를 맞선다면, 어떡해서든 길드 유지는 가능했다.

던전에서 거둬들이는 수입만으로도 길드는 충분히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연락이 되지 않은 길드원들의 숫자가 반이 넘어갔다.

길드원들이 길드를 위해 무조건으로 희생할 리가 없었다.

겉으로는 의리를 표명하지만, 알고 보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이지 않은가.

길드에서 돈을 받지 못하자, 나머지 길드원들도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기랄, 겨우 도둑 하나에 길드가 무너지다니… 이게 말이 돼? 말이 되느냐고?”

문근철은 답답한지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내려쳤다.

얼마나 분한지 살갗이 파르르 떨리고 목의 핏대가 도드라졌다.

“놈! 잡히기만 해라! 네놈의 뼈란 뼈는 모조리 씹어 먹어 버릴 테니까!”

문근철은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날 저녁, 그는 술을 진탕 마셨다.

“씨발, 어떤 새낀지 걸리기만 하면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다. 으아아아악!”

“길드장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너 뭐야? 죽고 싶어? 내가 누군지 몰라?”

말리는 술집 직원이 겁을 집어먹고 꼬리를 내렸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온갖 행패를 부렸다.

술잔은 물론이고 술병을 던지기 일쑤였고, 집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새하얀 벽지가 술병을 맞아 누렇게 물이 들었고, 고급스럽던 인테리어는 그가 던진 집기에 여기저기 상처 입어 그 모습을 잃어 갔다.

문근철이 누군지 알고 있는 술집은 신고를 하지 못했다.

괜히 신고했다가 곤란한 일이 있을 수도 있었고, 길드장인 그가 술이 깨고 나면 충분한 보상을 해 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술집에서 나온 그는 대리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씨발 새끼. 내가 꼭 잡고 만다.”

문근철은 술에 취해 잠든 상태에서도 도둑을 향해 온갖 악담을 했다.

깊게 잠든 그는 차츰 뺨이 아파졌다.

꿈이라고 여기고 계속 자려는데,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술에 취해 나가 버린 정신이 뺨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인해 조금씩 돌아왔다.

“아, 씨발.”

그는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떴다.

“야, 야, 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찰싹, 찰싹!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뺨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씨발,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며 그는 완전히 눈을 떴다.

막상 눈을 뜨긴 했지만, 아직 눈동자의 초점이 잡히지 않아서인지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다.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신 거야. 뺨이 개구리처럼 부어올랐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네. 야, 야, 야, 정신 차려. 너, 너희 집이랑 길드 재산 털어 간 도둑 잡고 싶지?”

“도둑?”

문근철이 도둑이라는 말에 반응을 했다.

“그래 도둑.”

“그 새끼 지금 어딨어?”

문근철이 벌떡 일어섰다.

초점이 돌아온 눈에선 불꽃을 뿜어냈다.

“이야, 어지간히 내가 미운 모양이네. 뺨이 팅팅 부어오르도록 일어나지 않던 놈이 도둑이라는 이야기에 정신을 차리는 걸 보니.”

“너 누구야? 아, 씨발. 뺨이 왜 이리 아프지?”

약간 정신이 돌아오자, 그 즉시 고통부터 밀려들었다.

입이 움직이면서 뺨도 같이 움직이자, 고통이 배가 되었다.

입에서 피 맛이 나는 게 입술도 터진 듯했다.

혀에 허전한 감촉이 들어 만져 보니, 앞니가 하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아픈 뺨에 손을 대 보니, 열이 나면서 퉁퉁 부어 있었다.

“이런 개 썅. 이거 지금 네가 했냐?”

“엉, 내가 했는데.”

문근철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상대방의 모습에 뚜껑이 확 열렸다.

“이런 미친 새끼가!”

그는 참지 못하고 기세를 끌어 올렸다.

시뻘게진 눈으로 상대를 직시함과 동시에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술에 취했는지 그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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