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05화 (205/300)

[205화] 대리 기사

문근철은 유들거리며 웃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워워, 진정하라고. 너 도둑 잡기 싫어?”

남자가 두 손을 뻗으며 뒤로 물러섰다.

문근철은 도둑이라는 말에 순간 뒤집혔던 눈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만큼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너 누구야?”

“나? 대리 기사.”

대리 기사의 정체는 바로 경일이었다.

그는 진짜 대리 기사에게 돈을 주고 자신이 대신 문근철의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대리 기사?”

문근철이 그제야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상대의 태도가 이 상황과 맞지 않게 너무 당당하다.

오히려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장난처럼 말하는 대리 기사라는 말에 등골에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일개 대리 기사가 나에게 이런 짓거리를 한다고?’

차가운 바람이 화끈거리는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주위가 지나치게 어두웠다.

“씨발, 도대체 여긴 또 어디야?”

흙바람이 몰아치고 지나가자, 흙먼지가 들어갔는지 눈이 따끔거렸다.

안 그래도 억지로 눈을 떠서 눈이 뻑뻑했는데, 흙먼지가 들어가니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었다.

흙먼지를 씻어 내려는 몸의 반응에 눈물이 찔끔 났다.

겨우 눈을 떠 주위를 살피니, 차는 불빛 하나 없는 인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이곳은 황량한 벌판이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작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몸을 지배하고 있던 알코올 성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머리가 싸하게 식어 가며 목이 뻣뻣해져 왔다.

“너, 누구냐?”

술에 취해 꼬부라진 혀로 부정확하게 말하는 그는 더 이상 없었다.

“대리 기사라니까,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야?”

경일이 장난치듯 투덜거렸다.

“이 새끼가 지금 어디서 장난질이야. 너 도둑이랑 무슨 관계야? 나를 굳이 여기까지 데리고 온 이유가 뭐야?”

문근철은 작금의 상황을 빠르게 분석했다.

자신을 죽이려면 술에 취했을 때 분명 기회가 있었을 건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건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하하, 궁금해?”

경일이 짓궂은 얼굴로 문근철을 놀렸다.

“도둑이랑 음… 이걸 무슨 관계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깐 내가 바로…….”

“썅! 지금 나를 데리고 말장난을 하자는 거냐?”

경일은 자신이 도둑이라고 밝히려고 했는데, 성질 급한 문근철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끝까지 말을 잊지 못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으면서 이따위 짓거리를 하다니, 아주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뒤에서 수작이나 부리는 것들을 내가 무서워할 거 같으냐? 네놈을 여기서 반 죽여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을 모두 알아낼 수도 있어. 그러니 기회를 줄 때 쓸데없는 말장난은 집어치우고, 내 질문에 답을 해!”

“허 참, 성질 한 번 급한 놈이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데, 네가 내 말을 끊었잖아. 그런데 너, 착각하고 있는 게, 내가 네놈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너 그러다 큰일 나.”

“뭐라고?”

문근철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지금까지 무력으로는 누구에게도 꿀린 적이 없었다.

세보 길드가 길드의 규모에 비해 영향력이 큰 이유도 모두 자신의 무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밑에 있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뱀의 머리가 됐지만, 대형 길드가 탐내하던 인재였다.

대형 길드의 팀장급을 이기긴 힘들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였다.

“술 취한 나를 가만히 둔 거로 봐서는 다른 것을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장난이나 하고 있군. 일단 네놈 기를 좀 꺾어 놓고 대화를 하는 게 빠르겠어.”

“하하하, 술 취한 널 건들지 않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니.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말이야, 다르게도 한 번 생각해 봐. 네놈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자신이 있어서 너를 깨운 것일 수도 있잖아.”

“이런 미친 새끼가!”

안 그래도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문근철의 이마가 더욱 찌푸려졌다.

사실 경일의 마지막 말은 허풍이 살짝 섞여 있었다.

문근철과 싸움에서 자신이 백 퍼센트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물론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일이었다.

만약 문근철에게 못 미치는 실력이면 곧장 도망갈 생각이었다.

아무리 그가 강하다고 해도 자신도 약하지 않은 이상, 충분히 도망갈 자신은 있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게이트를 열면 되니 큰 걱정은 없었다.

경일이 문근철을 광산으로만 보내려고 했으면, 그가 술에 취해 정신을 없을 때 습격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대리 기사를 매수하고 문근철을 납치해 도심지와 떨어진 이곳으로 온건,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스탄다비아를 오가며 최근 빠르게 강해지긴 했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 실력의 헌터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미 문근철에 대한 정보 파악은 모두 끝나 있었다.

그가 어느 정도의 헌터인지, 그가 주로 다니는 던전의 등급은 어떻게 되는지.

문근철은 자신의 실력이 어떤지 알려 주는 일종의 바로미터였다.

그런 만큼, 이번 싸움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좆만 한 하룻강아지 새끼가 감히, 오늘의 행동을 평생 후회하게 해 주마!”

경일의 오만한 말에 문근철이 벌컥 화를 냈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지나친 자신감은 자신의 눈을 가릴 수도 있었다.

이건 그간의 싸움을 통해 익힌 진리와도 같았다.

사자는 쥐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무조건 방심은 금물이었다.

눈앞의 상대와 싸워,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긴장할 필요는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상황은 자신이 원해서 벌어진 상황이 아니었다.

상대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데, 자신은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자신을 바라보고 히죽 웃는 저 입이 거슬렸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비웃는 듯한 모습.

저놈의 입을 쫙 찢어 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선수 필승.

문근철에겐 싸움의 좌우명과 같은 단어였다.

이왕 싸울 거면 선빵이 최고였다.

그는 땅을 강하게 박차며 경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경일의 앞으로 도착한 그는, 달려 나가는 힘까지 실어 일직선으로 주먹을 뻗었다.

왼발을 내밀면서 자연스럽게 허리를 돌려 온몸의 체중을 실은 주먹은 날카로우면서도 빨랐다.

경일의 코를 정확히 노린 공격이었다.

회심의 한 방이지만, 그의 주먹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허공만을 타격했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주먹을 거둬들이며 반대편 주먹을 경일을 향해 뻗었다.

그의 주먹은 가로막는 모든 걸 부숴 버리겠다는 듯이 날아들었다.

방어를 도외시한 채 오로지 공격 일변도였다.

경일이 다시 한번 주먹을 피하려다 몸을 움찔거렸다.

이런 여우 같은.

생긴 것과 다르게 그는 매우 영리했다.

반드시 때리겠다는 의지를 담아 날린 두 번째 주먹은 페이크였다.

그는 때리려는 주먹을 멈춰 세움과 동시에 왼발을 차올렸다.

뻑!

제법 큰 소리와 함께 경일이 옆으로 쭉 밀려났다.

“제법인데? 조금 아팠어.”

경일은 문근철에 맞은 오른팔을 돌리며 고통을 가라앉혔다.

급하게 가드를 올려 막아서 다행이지, 그대로 맞았으면 타격이 꽤 컸을 만큼 강한 공격이었다.

“건방진 새끼. 넌 오늘 살아갈 생각은 버려라. 조금이라도 편하게 죽고 싶다면, 알고 있는 걸 모두 토해 내야 할 거야.”

“공격을 성공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감이 너무 넘치는 거 아냐?”

“네놈이 제법 강한 건 인정하지. 하지만 나를 이기기엔 많이 모자라군. 세보 길드의 가장 큰 전력인 나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일을 벌이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군. 아니, 그 덕에 네놈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지금까지 당한 것의 열 배로 갚아 주마.”

문근철은 경일이 입을 열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을 노리고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이런!”

반 박자 빠른 공격에 경일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하하하하!”

그는 자신이 유리한 상황이 즐거운지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의 양손과 양발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경일을 노렸다.

파바박!

두 사람의 손과 발이 끝없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문근철이 경일을 향해 달려들며 연달아 주먹을 퍼부었다.

경일의 가드 위를 때리는 묵직한 소리가 연달아 났다.

한 번씩 잔 펀치가 가드를 통과해 경일의 얼굴에 닿았다.

충격은 크지 않았으나, 날카로운 공격에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기세를 잡은 문근철이 큰 공격을 날렸다.

이 순간, 방어만 하던 경일의 눈이 빛난다.

마치 지금의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깨 위로 문근철의 주먹을 흘리며, 날카로운 크로스 카운터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문근철도 만만치 않은 강자.

중심이 무너진 자세에서도 기어코 몸을 움직여 경일의 주먹을 흘려 냈다.

‘씨발.’

분명 자신이 훨씬 더 많은 공격을 하고 있지만, 한 번씩 들어오는 날카로운 반격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한 발짝만 더 가면 분명 이길 수 있는데, 그 한 발짝이 도저히 디뎌지지가 않았다.

문근철은 마음과 달리 무표정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갔다.

확실히 그는 베테랑이었다.

어려운 순간일수록 그는 더 거칠게 몰아붙였다.

둘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최선을 다해 상대를 쓰러뜨리려 노력했다.

퍼벅벅!

퍼억!

퍽!

싸움이 이어지자 서로의 공격 패턴이 익숙해졌고, 클린 히트가 터져 나왔다.

경일의 얼굴이 주먹에 맞아 휙 돌아갔다.

맞는 순간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이는 문근철에게 더 강한 펀치를 날렸다.

“헉!”

문근철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휘청이는 경일을 잡으러 들어가다 오히려 주먹을 허용할 뻔했다.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주먹에 그의 몸이 멈췄다.

분명 큰 공격을 허용하고도 도리어 한 번씩 나오는 경일의 말도 안 되는 투지에 그의 흐름이 계속해서 깨졌다.

그 순간, 눈에서 번쩍하고 번개가 쳤다.

경일이 멈춰 선 그를 향해 뻗은 짧은 펀치가 정확하게 문근철의 눈을 때린 것이다.

결국 힘들게 잡은 기회가 무산되고 오히려 수세에 몰렸다.

급하게 가드를 올렸고, 경일의 반 박자 빠른 펀치가 그의 가드를 깨부수려 했다.

“으윽!”

팔뚝에 연속해서 꽂히는 주먹으로 인해 피부가 퍼렇게 멍이 들고 뼈가 울렸다.

처음으로 경일이 공세를 잡았다.

‘제기랄, 이상한데.’

문근철은 경일과의 공방이 길어질수록 표정이 점점 진지해지며, 조금 전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조금씩 깎여 갔다.

‘이 새끼가 왜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 들지?’

처음 공방을 나누었을 때와 지금의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상대는 분명 자신보다 두 수는 아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차이가 서서히 메워져 갔다.

지금까지는 마음 놓고 공격했는데, 이제는 방어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경일의 공격을 막는 것이 버거워질 정도였다.

‘싸울수록 강해진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혹시 처음에는 약한 척을 하면서 나를 가지고 논 거 아냐? 아니야, 느낌이 달라. 이 새끼는 처음부터 자신의 실력을 모두 드러냈어. 틀림없어. 믿을 수가 없지만, 이 새끼는 나를 먹이로 점점 강해지고 있어.’

퍼억!

결국, 제대로 된 타격음이 울렸다.

문근철의 얼굴에 경일의 주먹이 정확히 꽂힌 것이다.

“아악!”

그러나 의외로 비명이 터져 나온 건 경일의 입에서였다.

“어휴, 아파. 무슨 쇳덩어리를 친 거 같잖아.”

경일이 뒤로 물러나며 문근철의 얼굴을 때린 주먹을 주물렀다.

“이런, 제기랄!”

문근철의 얼굴이 석상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자신의 비장의 한 수인 스킬을 쓸 만큼, 방금 공격은 위협적이었다.

그는 헌터들 중 소수만 가지고 있다는 전투 스킬의 소유자였다.

몸의 일정 부분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스킬로, 덕분에 자신보다 강한 헌터들을 이겨 왔다.

스킬로 경일에게 타격을 주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수인 만큼,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해야 해야 하는데 너무 쉽게 적에게 보여 주고 만 것이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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